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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수련생 인화펑, 독극물 주사로 당한 박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쓰촨보도) 쓰촨(四川) 파룬궁수련생 인화펑은 1999년 7월부터 중공(중국 공산당)의 사악한 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해서, 총 23번의 박해를 당했다. 7차례나 불법 감금을 당하고, 3차례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으며, 핍박에 못 이겨 2년 넘게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 다녔다. 각종 고문학대를 받을 대로 받고 결국 2005년 3월 8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아래는 한 파룬궁수련생이 알고 있던, 인화펑이 독극물 주사로 박해당한 상황이다.

인화펑은 쓰촨성 더양시(德陽市) 황쉬진(黄許鎭) 사람이며, 더양시 스커(時刻)공원에서 가장 일찍 파룬궁을 수련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수련하기 전, 그녀는 치료할 수 없는 심각한 병(거리에서 상한 다리위에 향을 꽂고 구걸하는 사람의 그런 유형의 병과 흡사함)에 걸렸다. 내가 1996년 초 처음 파룬궁을 접했을 때 그녀는 이미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 당시 그녀는 40세가 좀 넘었지만 보기에는 27~28세처럼 젊고 예뻤으며, 경험이 풍부하고 민첩했으며, 또 열성적이고 매우 선량했다.

1999년 7ㆍ20에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나는 줄곧 그녀를 보지 못했다. 줄곧 2003년 7월에야 더양시의 거리에서 그녀를 만났다. 내가 그녀와 인사를 할 때, 분명히 그녀가 말하는 것이 느리고 혀가 뻣뻣한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그녀의 오랜 친구를 만나려 했기에 나는 그녀를 하룻저녁 머무르게 했다.

그날 저녁 그녀는 나에게 1999년 7ㆍ20이후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녀의 아들은 원래 더양시 방송국에서 근무했다. ‘610’이 진상자료 몇 부를 발견한 이유로, ‘610’은 직장을 위협해 그녀의 아들을 해고시켰다. 그 후 그녀는 청더우(成都)의 모 대학교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납치를 당해 청더우‘610’에 의해 강제로 신진(新津)세뇌반에 보내져 박해를 당했다. 세뇌반에서 그녀는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았는데, 갇혀 있던 어린 수련생은 그를 이름 없는 이모라고 불렀다. 그녀는 50여 일 동안 단식으로 박해를 항의했다가 강제로 독극물을 주사당했다. 그녀는 바오자(包夾), 경찰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주사 바늘과 플라스틱 호스의 연결된 곳을 빼버려 약물이 전부 체내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독극물을 주입당한 다른 수련생은 당시 곧 귀가 울리고, 시력이 흐릿하고, 혀가 뻣뻣해지고, 사지의 기운이 없어지고, 반응이 느린 등 증상이 나타났다. 그녀의 증상은 좀 늦게 나타났다.

이튿날 내가 그녀를 배웅할 때, 당시 그녀는 무게가 몇 근 되는 물건도 들지 못해 나더러 차위까지 들어 달라고 했다. 내가 그녀에게 어찌 된 일인지를 묻자, 그녀는 세뇌반에서 돌아온 후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독극물 가운데 내장 기관을 상해하는 약물(일종의 내장기관을 상해하는 만성 약물일 가능성이 있음)이 있을 거라고 추측하고 그녀와 교류했다. 그녀도 이렇게 인정했지만 당시 물증을 남기지 못한 것으로 괴로워했다.

2004년 12월 24일, 나는 더양시의 거리에서 또 그녀를 만났는데 그것은 내가 그녀를 본 마지막이었다. 2005년에 인터넷에서 그녀가 이미 박해로 사망했음을 보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알고 있던 인화펑이다. 한 건강하고, 열성적이고, 선량하던 좋은 사람이 쩐, 싼, 런에 대한 신앙을 견지하기 위해 중공 사악한 악인에게 죄악의 독극물을 주입당해 생명을 잃었다.

문장발표: 2010년 11월 0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1/2/2318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