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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 시창 후윈화이 박해로 생명 위급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쓰촨보도) 2010년 5월 7일, 쓰촨성(四川省) 파룬궁수련생 후윈화이(胡雲懷.여.50여세)는 자기 집 양복점에서 한 무리의 시창시(西昌市) 국보경찰에게 납치당한 후, 5월 27일 시 검찰원에 의해 불법으로 애매한 누명을 씌워 기소 되었다. 2010년 9월 20일 시창시 법원은 후윈화이와 우수쥔(伍淑君)을 법정 심문했지만, 아직 판결 결과는 내리지 않은 상태로, 후윈화이는 현재 시창시 퉈황(拓荒)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해 있는 상태다.

원래 몸이 건강하고 정신이 왕성했던 후윈화이는, 인명을 초개같이 여기는 퉈황구치소와 파룬궁을 전문적으로 박해하는 ‘610’, 그리고 국가보안들이 납치 후 5개월 여 간 모진 고문과 박해를 가해, 현재 생명이 위급한 사태다.

후윈화이가 퉈황구치소에 감금당해 박해 받는 동안 그들은 후윈화이의 틀니까지도 강제로 뽑아갔다. 구치소의 생활은 가장 열악하여 매일 두 끼 밥을 주는데, 식 재료도 저질인데다가 밥은 늘 차고 굳어있으며, 일년내내 기름기 하나 없는 끓인 맹물에 반찬 한 가지 뿐이다. 후윈화이는 틀니를 빼앗겨 밥을 먹는 것도 큰 어려움이 됐다. 그녀는 음식을 씹지 못해 넘기기가 매우 어렵고, 목구멍 식도 부위에 이물질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녀는 6월 23일에 구치소 측에 몸이 불편하니 검사를 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구치소에서는 묵살해 버렸고, 그 후 계속해서 여러 차례 몸 상태가 괴로우니 검사를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구치소에서는 역시 아무런 조치도 해 주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급속도로 수척해 졌으며 몸 무게는 50여 kg에서 35 kg으로 줄어들었다. 다만 딸이 보내 온 묽게 만든 음식을 좀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몸이 매우 허약해 졌다. 가족은 너무 안타까워 여러 번 시 공안국, 시(市)위원회 ‘610’ 등에 진정을 제기하여, 구치소에서 가장 기본적인 검사와 치료라도 받게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2010년 10월 15일, 구치소에서 후윈화이의 병세가 확실히 심각해져 어려운 상황에 이른 걸 알고서야 시 2병원으로 검사를 하러 갔다. 당시 의사가, “왜, 사람을 이 정도까지 끌다가 검사하러 왔냐.” 고 물으면서 입원해서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 했지만, 구치소사람들은 의사의 말도 듣지 않고, 후윈화이를 닝위안(寧遠)진료소로 끌고가 간단한 검사와 링거를 주사했을 뿐이다. 그리고는 10월 16일, 후윈화이의 건강이 매우 좋아졌다고, 가족에게 거짓말을 했다.

2010년 10월 18일, 가족들이 구치소 측에 강력하게 항의 하고 요구해서 주(州)1병원으로 가서 자비로 검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병원으로 이송돼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극도로 허약해진 후윈화이는 갑자기 쇼크를 일으켰으며, 의사의 신속한 응급처치를 하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의사의 진단결과 식도암으로 밝혀졌으며 의사가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때 구치소의 뤄(羅)가 성을 가진 경찰이 함께 있었다. 그렇게 겨우 기초적인 치료를 받던 중에 가족들은 병원으로부터 환자가 위중하다는 통보를 두 번씩이나 받기도 했는데, 모든 치료비는 후윈화이의 자비(自費)로 부담하고 있다.

후윈화이는, 구치소에 수감되기 전까지는 몸이 매우 건강했으나, 5월 7일 수감된 후 온갖 고문 박해로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또 처음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고 괴로워서 검사를 받게해 달라고 요구했을 때도 구치소 측이 이를 묵살 한 채 4개월의 시간을 끄는 바람에 치료의 적기를 놓쳐, 지금 생명이 위급해지게 된 것이다. 그 기간 본인과 가족들이 여러 차례 검사와 치료를 받게해 달라고 애원 했으나, 관련 각 부서마다 모두 외면하고 상대도 해 주지않아 결국 사람을 이런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후윈화이는 예전에는 몸이 매우 허약했으며, 여러 가지 질병을 앓았다. 장시간 머리가 아팠으며, 대뇌가 마비 될 위험에 직면해 성질도 무척 급했다. 그러나, 그녀가 파룬궁을 수련한 후로는 온몸의 질병은 다 나아졌으며, 몇 년 동안 병원에 간 적도 없었다. 사람도 온화하고 너그럽게 변했다. 그녀는 ‘쩐, 싼, 런(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가정에서 남편을 존중하고 자식을 사랑했으며, 부지런하고 선량하며, 이웃과도 사이좋게 지내, 사람들은 모두 그녀에게서 친근감을 느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외지에서 이주해 왔는데, 가족들 모두 손재간이 좋아 시창시에서 양복점을 내어, 속임이 없이 부지런히 장사를 하면서 착실하게 생활을 꾸려나가 가족들 모두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녀가 퉈황구치소로 납치당했을 당시만 해도 정신이 왕성하고, 얼굴의 혈색도 좋았는데, 짧은 몇 달 동안의 구치소의 고문 박해로 건강이 극도로 약화되어 생명이 위급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 같은 정황으로, 중공당국이 사람의 생명을 무시하는 사악의 본질임을 충분히 보아 낼 수 있는 것이다.

* 직접 박해에 참여한 자

. 시 국가보안대대: 대장 우훙톄(吳洪鐵), 부대장 타이강이 (太剛毅),

. 경찰:왕융룽(王永榮), 천성원(陳勝文)

. 시 ‘610’사무실 : 부주임 천치(陳其)

. 퉈황(拓荒)구치소:저우롄(周聯) 0834-3291022

. 그 외 관련 기관 및 인원 전화: ‘쓰촨시 창시 국가보안대대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모함하다’ 를

참고하시기 바람.

문장발표: 2010년 10월 2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0/22/2313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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