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2010년 10월 10일 오후 4시 35분, 창춘(長春) 파룬궁수련생 쑨수샹(孫淑香,53세)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다. 사악한 중공 장쩌민 집단이 1999년 박해를 시작한 뒤 지금까지, 쑨수샹은 여러 차례 중공에 납치, 감금되어 무수한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 권익을 보호하는 가오즈성(高智晟) 변호사는 2005년 12월 12일 후(胡), 원(溫)과 중국 동포들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밝힌 바, 당시 48세인 쑨수샹은 6년 동안 총 9번이나 불법감금 당했다.
가오즈성 변호사가 상담했던 파룬궁수련생 왕위환(王玉環)과 류리화(劉麗華)도 중공의 박해로 사망했다. 그중 왕위환은 10여 차례 불법 감금을 당했고, 호랑이 의자위에서 3박2일 동안 고문을 가해 복사뼈의 유골이 드러나고, 팔도 비틀려 부러졌다. 악경은 그녀의 얼굴에 전기충격을 가해 태우고, 담배꽁초로 눈알을 지졌으며, 대나무 이쑤시개를 사용해 두 귀를 찔러 그녀의 온몸을 피범벅으로 만들었다……그녀와 다른 여성 파룬궁수련생의 옷을 죄다 벗긴 다음 대자형으로 단단한 나무판위에 26일 동안 묶어 경찰, 감옥 의사와 남자 죄수들에게 모욕을 당할 만큼 당하다 결국 2007년 박해로 사망했다. 다른 한 사람은 산둥(山東) 옌타이시(烟臺市) 푸산구(福山區)의 여 퇴직교사 류리화다. 그녀는 수차례나 중공에게 불법 감금, 불법 강제노동, 판결을 당했다. 2009년 3월 24일 재차 중공에게 납치돼 5년간 불법 판결을 선고받은 뒤 심각한 고문을 당하다 결국 2010년 1월 28일 숨졌다.
쑨수샹의 대략적인 상황
쑨수샹은 1957년 8월 29일에 태어났다. 그녀는 담낭염, 위축성 위염, 관상동맥경화 협심증(冠心病心絞痛), 난소 종양 등 여러 가지 질병을 앓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차례로 큰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했지만 어떻게 해도 완화되지 않았다. 원래는 종양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그녀의 심장병이 매우 심각해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다만 약물에 의거해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뼈만 남을 정도로 야위고 얼굴색은 노랗게 뜬 채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없었다. 1997년 8월 29일에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며칠 사이에 몸은 좋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연공을 시작한지 40여 일이 되자 신체가 완전히 변해 있었다. 몸은 고무풍선처럼 지면에서 떨어진 듯이 걸음걸이도 가벼워졌으며 온몸은 언제나 힘이 솟구쳤다.
10년 동안, 쑨수샹은 민중들에게 파룬따파의 진상 알리기를 견지하다 중공 당국에게 적어도 12차나 납치당해 불법 감금, 강제노동교양, 고문학대를 당했다. 남편은 악경의 공갈 협박에 견디지 못하고 핍박으로 그녀와 이혼했으며, 노모는 비통하게 세상을 떠났다.
2009년 9월 21일 저녁, 쑨수샹은 딸 집에서 외손자를 보살펴주고 이튿날 막 어린 손자를 학교에 데려다 준 다음 곧 창춘시 국보지대 ‘610’악경에게 강제적으로 납치 당했다. 창춘시 공안국, 창춘시 제3구치소와 지린성 헤이쭈이쯔(黑嘴子) 여자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자백을 강요하며 9개월 동안 불법 감금 및 잔혹한 박해를 경험했다. 불법 감금을 당한 기간, 쑨수샹은 심각한 저혈당 증상이 나타나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었다. 게다가 물을 마시거나 음식물을 넘기거나 호흡하기 곤란하게 되었다. 또 복수사 차서 몸은 극도로 허약했다.
2010년 6월, 노동수용소에서는 그제야 쑨수샹을 풀어주어 형기를 감옥 외에서 집행하게끔 동의했다. 그러나 쑨수샹의 생활은 여전히 감시를 당했다. 가족과 친척, 친구들이 전심전력으로 보살펴주었지만 쑨수샹은 여전히 건강을 회복 할 방법이 없었다. 같은 해 10월 10일에 집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하다
2009년 9월 22일 오전, 쑨수샹이 어린 손자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와서 막 집문을 열자마자, 시 국보대대의 경찰이 입을 막고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한 후 다른 세 명의 사악한 경찰들이 집안에 뛰어들어 물품과 금품을 강탈해 갔다. 시 공안국에서 사악한 경찰은 강제로 쑨수샹의 지장을 이른바 ‘자료’위에 누르게 했다. 사악한 경찰은 쑨수샹의 한쪽 팔을 억지로 어깨에서부터 아래로 당기고, 또 다른 한쪽 팔을 억지로 등 뒤에서 위로 당겨 올렸다. 그리고 다시 수갑으로 두 손을 팽팽하게 채웠다(사악한 경찰은 이런 유형의 학대방식을 ‘검을 등에 짊어지다(背劍)’라고 부름). 쑨수샹의 비명소리 속에서, 사악한 경찰들은 그녀의 열 손가락을 하나씩 비틀어 사악한 경찰들이 꾸며낸 ‘자료’위에 지장을 누르게 했으며, 이 ‘자료’를 근거로 쑨수샹을 박해하는 구실로 삼았다.
3일 후, 쑨수샹은 창춘시 제3구치소로 보내져 불법 감금 당했다. 구치소로 간 세 번째 날, 이른바 신체검사를 할 때 채혈을 하지 못해 쑨수샹은 창춘시 공안병원으로 보내졌으며 매일 강제로 링거를 맞고 이름 모를 약물을 주사 당했다.
고역과 세뇌를 당하다
한 달이 넘어서 쑨수샹은 창춘시 헤이쭈이쯔 노동수용소 1대대로 보내져 불법 감금당했다. 1대대 대장 옌리펑(闫立豊, 여, 40여 세)은 매일 쑨수샹을 핍박해 파룬따파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게 했으며 아울러 쑨수샹을 핍박해 대법과 사부님을 모독하는 이른바 ‘5서’를 쓰게 했다. 쑨수샹이 굴복하지 않았기에 감옥경찰은 한편으로는 쑨수샹을 강제노동을 시켰으며(바로 감옥 경찰을 위해 복리와 상금을 획득하게 하는 일임), 한편으로는 쑨수샹을 강박해 대법을 모독하는 텔레비전을 보게 했다. 어느 날 강제노역을 한 쑨수샹은 저녁 8시 30분에야 침실로 돌아왔는데 또 핍박으로 서 있었다. 20분 후, 쑨사샹은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다, 이튿날 쑨수샹은 강제로 침대에서 끌려 내려와 핍박에 못 이겨 일하러 갔다. 악인들은 체력적으로 쑨수샹을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또 정신적 신념에서 그녀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때문에 낮에 노동하는 기간에 쑨수샹을 핍박해 세뇌시켰으며, 저녁에는 또 그녀를 핍박해 대법을 모독하고 대법사부님을 비방하는 것들을 보게 했다.
학대로 사경을 헤매고 피골이 상접해져
2009년 겨울 첫 눈이 내린 다음, 옌리펑은 사악한 경찰 저우잔훙(周占紅, 여, 30여 세)에게 지시하여 쑨수샹을 영하 30도 날씨에 눈을 쓸러 나가게 했다. 이튿날 눈을 쓸 때 쑨수샹은 허약해져 이미 걸을 수 없었다. 사악한 경찰 왕레이(王雷, 여, 40여 세 전후)는 늦게 걷는다고 강제로 힘껏 쑨수샹의 팔을 잡아당겼다. 쑨수샹은 왼쪽 갈빗대에 극렬하게 동통이 느끼며 숨이 올라오지 않았다. 쑨은 심한 부상을 당해 여러 차례 공안병원이나 혹은 중일연일(中日聯日)병원으로 보내져 강제진료와 링거를 주사 당했다. 한번은 중일연합병원으로 갔는데 경비과(警衞科)의 사악한 경찰이 쑨수샹의 말에 불만을 품고 쑨의 아픈 가슴과 위장 부위를 세차게 한 대 쳐서, 쑨으로 하여금 숨을 쉬지 못하게 했다. 이 후 쑨은 장기간 밥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했으며, 위 부위의 통증과 더불어 매일 밥을 먹을 수 없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박해를 당했다. 매 번 쑨은 강제로 링거를 맞은 뒤 무조건 일을 해야 했다.
심신의 박해로 쑨수샹은 이미 피골이 상접하고 극도로 허약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옌리펑과 저우잔훙은 여전히 바오자(包夾)두목 푸차오윈(負巧雲-여, 50여 세)을 지시해 일을 빨리 하라고 해 쑨수샹을 괴롭혔다. 마지막에 쑨수샹이 박해로 가위조차 들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그제서야 가족을 찾아 서명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2010년 6월, 쑨수샹은 노동수용소 위생소로 보내져 강제로 링거를 주사 당한 다음, 머리가 어지럽고 사유가 똑똑하지 못했다. 이때 노동수용소의 톈(田)소장, 노동수용소 주재 검찰원은 쑨수샹을 녹화한 뒤 증거로 삼는다고 말했다. 검찰원은 쑨에게 “그들이 당신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는데 당신이 기어이 일한 것이 맞지?”라고 물었다. 쑨수샹은 “맞아요. 그들은 하지 못하게 해요. 그러나 이튿날이면 나에게 일하라고 해요.”고 말했다. 녹화하는 사람은 앞의 한마디만 녹화하고 녹화를 멈추었다. 톈소장은 “다른 사람은 모두 스스로 나를 찾아와 서명하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데, 이건 도리어 내가 당신을 찾아야 했다” 고 말했다. 그런 다음 쑨은 두 번째 링거를 꽂은 채 2층에 가서 자기 아들을 가서 만나 보았다. 쑨수샹은 의식이 똑똑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들을 시켜 이른바 ‘보석’위에 서명하게 했다. 저녁이 되어 몸에 열이 올랐기에 쑨수샹은 창춘시 중일연일병원에 보내졌다. 그곳에 도착하자, 방안에는 경찰들로 꽉 찼는데 쑨수샹의 검사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엑스레이를 찍은 다음 쑨의 위 안에 세 군데 상처가 있다는 진단을 내렸으며 기침을 하면 안 되고, 울어도 안 되고, 재채기를 해서도 안 되는데, 재채기를 하고 기침을 하고 또 울거나 혹은 웃게 되면 위가 심하게 아프며 복수가 찬다고 했다. 의사는 “이 노인의 복부는 전부 병들었다. 천자(穿刺)검사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쑨수샹의 아들은 그제야 피골이 상접해진 어머니를 업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오즈성 변호사가 기술한 잔인한 박해
가오즈성 변호사가 2005년 12월 12일 후, 원과 중국 동포들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당시 48세인 창춘시민 쑨수샹은 6년 동안 총 9번 불법 감금을 당했다. 다음은 그녀가 증언한 그중 몇 차례의 불법 강제노동기간의 일부 경험이다.
“2002년 7월 초, 내가 아버지 집에 있는데 사복 경찰이 갑자기 뛰어들어 나에게 쑨수샹이 맞냐고 물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납치 당했다. 이튿날, 창춘시국 공안1처에서는 차로 약 두 시간을 달려서야 나를 목적지까지 끌어갔다. 도착한 후, 두 경찰은 나를 끼고 공포로 소름이 오싹 끼치는 지하실로 끌어간 다음, 머리위에 씌웠던 씌우개를 벗겨 버렸다. 동시에 8~9명 경찰이 우르르 들어왔다. 탁자 위에는 대, 중, 소형의 세 개의 전기곤봉과 끈 한 묶음이 놓여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3개의 호랑이 의자를 병렬해 놓았다. 두 경찰은 나를 호랑이 의자 위로 끌어갔다. 손잡이 위에는 수갑을 고정해 걸어 놓았는데, 손을 손잡이에 놓고 뒤집자마자 채워졌다. 호랑이 의자 손잡이 위에는 같지 않은 사이즈의 작은 구멍들이 한 줄 있었는데 같지 않은 실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적합하게 만들어졌다. 경찰은 노련하게 엄지손가락 굵기로 된 쇠몽둥이로, 호랑이 의자의 두 손잡이로부터 가슴부위를 거쳐, 복부를 가로질러 나를 호랑이 의자위에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해 놓았다. 그 중 한 경찰은 형구를 가리키면서 나에게 ‘당신 보았는가? 만약 당신이 사실대로 말하면 한 시간 쯤이면 내려 올수 있다.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각종 형벌을 당신으로 하여금 모두 맛보게 하겠다. 류저(劉哲-박해를 당한 자) 등은 또 어떠했는가? 이 위에서 살아서 걸어내려 간 사람은 얼마 없다.’고 말했다.”
“표면으로 보기에는 아주 점잖은 경찰이 나의 귀뺨을 두 대 쳤다. 나에게 어느 수련생 수련생을 아는지 물었을 때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곧 전기곤봉을 들어 전기곤봉의 앞부분을 나의 갈빗대 사이에 꽂고는 전기충격을 가했다. 그 후 나에게 동수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내가 말하지 않자 곧 전기곤봉을 들어서 손가락끝부터 시작해 나에게 전기충격을 가했는데, 한 편으로 충격을 가하면서 나에게 어느 수련생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내가 말하지 않자 그는 전기곤봉으로 나의 팔 외측에서부터 머리를 거쳐 몸 다른 한 측까지 한바퀴 전기충격을 가했다. 내가 그래도 말하지 않자 그들은 전기곤봉으로 나의 눈을 집중해서 전기충격을 가했는데 눈이 다 튀어져 나올 듯 했으며 눈앞은 온통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래도 내가 말하지 않자 그들은 또 나의 갈비뼈를 충격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또 나의 앞가슴 부위를 충격하면서 어떤 동수들과 연계하냐고 물었다. 나는 아파서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동수의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하나씩 나의 눈앞을 지나갔는데, 마음속에는 오직, ‘’어쨌든 간에 동수 한 사람이라도 말할 수 없다. 한 수련생을 말하기만 한다면 곧 즉시 붙잡아와 박해를 할 것이다.’라는 일념뿐이었다. 경찰은 또 전기곤봉을 나의 입안에 넣고 충격을 가해 입이 다 충격으로 탔으며 부어올라 표면은 전부 물집투성 이었다. 그들은 충격을 가하면서 ‘그래. 당신이 말하지 말라. 두고 보라. 오늘 당신의 입을 비틀어놓겠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전기곤봉을 또 입안에 넣고 전기충격을 가했는데 꼬박 하루 동안 학대를 당해 나는 이미 사경을 헤맸다……!”
“2003년 초, 내가 싱구이링(刑桂玲)의 집에 잠시 묵고 있던 어느 날, 밤중에 천지를 놀랠 문을 부수는 소리를 들었는데, 순식간에 문 두 개가 부서졌다. 놀랍게도 쇠망치를 들고, 총을 든 한무리 경찰들이 집안에 뛰어들어 말했다. ‘꼼짝 말어. 움직이기만 하면 쏴 죽인다.’ 그 후 우리를 뤼위안구(綠園區) 공안분국으로 끌고가 작은 쇠 우리 안에 가뒀으며 나를 호랑이 의자위에 채워놓았다. 그들은 나의 앞에서 싱구이링을 구타하기 시작했으며 가죽띠로 그녀의 목을 조였다. 그녀는 마음이 찢어지고 폐가 파열되는 듯 비명소리를 질렀다. 나는, 싱구이링이 구타로 쓰러지고, 쓰러지면 또 발로 차서 일어나게 한 다음 재차 때려눕히는 것을 보았다. 때리고 차면서 그녀에게 연계하고 있는 동수 이름을 말하라고 했다. 이렇게 반복해서 학대한 다음 가죽띠를 풀어내 그녀의 목을 조였는데 줄곧 그녀가 숨을 쉴 수 없을 때까지 조였다. 경찰은 고함치면서 ‘그래. 당신은 그냥 말하지 말라.’고 말했다. 싱구이링은 학대로 사경을 헤맸지만 동수의 이름을 한글자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나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3일 동안 학대를 겪은 다음 우리를 제3구치소로 보냈다.”
“2003년 8월 4일, 나는 다시 경찰에 끌려 난관구(南關區) 공안분국으로 잡혀갔다. 한 심한 곰보 경찰이 나의 머리칼을 틀어잡고 벽에 부딪쳐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아찔해 났다. 그 후 또 나를 호랑이 의자에 앉혔다. 나의 두 손을 꽉 채운 다음 한 경찰이 나의 팔을 내리쳤는데 손이 수갑에 패여 다쳤다. 그리고 그들은 쇠고리로 나의 두 발목을 꽉 채운 다음 쇠고리위의 쇠몽둥이를 밟아 쇠고리가 점점 팽팽하게 채워지게 하여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발목이 아팠다. 또 비닐봉지를 나의 머리위에 씌운 다음 목 위에 팽팽하게 매놓아 숨을 쉴 수 없어 나는 숨이 막혀 하마터면 질식할 뻔 했다. 내가 숨이 넘어 갈 것 같으면 다시 머리씌우개를 벗겨 조금 괜찮아지면 다시 한 차례 시작했다. 또 숨이 넘어 갈 것 같으면 내려놓고 이렇게 총 세 차례나 박복했다. 또 발목위의 쇠몽둥이를 밟아 쇠고랑이가 점점 팽팽해져 너무 아파서 경련을 일으켰으며, 발목도 이미 상처가 나서 많은 피를 흘렸다. 나는 아파서 혼절해버렸다. 그들은 냉수를 끼얹어 정신을 깨운 다음 제3구치소로 보냈다. 나는 줄곧 혼미해 질 때까지 단식을 했다. 27일 째 되는 날, 사경을 오가자 가족에게 데려가라는 통지를 했다.
문장발표: 2010년 10월 13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0/13/2309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