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사오둥현 악경 재물을 탐내 청화궈를 학살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난보도) 후난(湖南) 성 사오양(邵陽) 지역 사오둥(邵東) 현 악경(사악한 경찰)은 6일도 되지 않아 파룬궁수련생 청화궈(曾華國)를 때려죽였다. 청화궈는 2010년 8월 19일에 사오둥 현 국보국(國保局)으로 가서 악경이 집에서 빼앗아간 파룬따파 서적을 요구했다. 악경은 돌려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청화궈를 납치하고 혹독하게 구타했다. 6일이 되지 않아 그를 무참하게 박해해 때려죽였다. 그의 이마 부위에는 바늘로 꿰맨 뚜렷한 상처가 있었고 치아는 두 개가 빠졌으며, 또 두 발의 복사뼈도 구타로 부러지고 온몸은 도처에 상처였다.

法轮功学员曾华国

파룬궁수련생 청화궈

박해로 사망한 후, 경찰은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았다. 중공의 무리들은 또 그의 집 촌민위원회에 소식을 봉쇄하라고 통지했다. 하루 지난 뒤에야 가족에게 통지했으며 아울러 가족을 속여서 “그는 병원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말했다.

몸이 건강하던 좋은 사람이 이렇게 국보대대의 심한 박해로 사망했다. 이웃들도 모두 “이렇게 덕망이 높은 연장자가 며칠도 안되어 공산당에게 무참한 박해를 당해 사망했다. 게다가 죽은 다음 하루 지나서야 가족에게 통지하고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모독했다”고 하면서 분노했다. 청화궈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혹독한 구타로 사망했는가? 그리고 그의 온몸의 상처는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도대체 이 수일 내에 청화궈는 어떠한 고문학대와 얼마나 큰 고통을 감당했는가? 이런 구체적 상황은 중공 사악한 당에게 엄격하게 봉쇄되어 있다.

청화궈(남, 57세) 집은 사오둥현 가전성3로(家電城三路) 100호-102호에서 살고 있다. 집에는 몇 백만 위안의 재산이 있고 사람됨됨이가 정직했다. 아들 하나 딸 하나인데 모두 가정을 이루고 모두 가전성3로(家電城三路) 79호에서 솽시(雙喜)가전 장사를 하고 있다. 청화궈는 예전에 신경을 쓰며 장사를 해서 과로로 우울증에 걸린 적이 있는데 몹시 고통스러웠다. 2007년 파룬궁을 수련한 후 원기가 왕성해져3년 동안 어떠한 병에도 걸리지 않았다. 마음이 넓고 평온했으며, 생기가 흘러 넘치고 얼굴 혈색이 좋았는데 주변 사람들 모두 대법의 신기함과 초상(超常)함을 체험했다.

청화궈는 생명을 구해준 파룬따파에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여겼으며 자신이 몸소 겪은 체험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파룬따파는 사람을 구하는 진정한 불법(佛法)이다. 중공 나팔수와 유언비어를 날조한 모함을 쉽게 믿지 말고, 불법을 비방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는데 참여하지 말라. 무지 속에서 죄를 저지르지 말라.” 그의 진실한 말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으며, 많은 사람들도 이로부터 파룬궁이 중공 사악한 당의 박해를 당한 진상을 알게 되었다.

2010년 6월 21일, 청화궈는 한 세인을 직접 마주해서 진상자료를 나눠주었으며 아울러 그에게 입이 닳도록 재삼 권고해 “정말로 자네를 위해 일세”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사악한 사복경찰이었으며 당시 그를 사오둥 쑹자탕(宋家塘)구치소로 납치했다. 6월 21일 오전 11시, 경찰은 그의 집에 가 불법수사를 하고 대법서적을 빼앗아 갔다. 청화궈는 구치소에서 여전히 파룬따파를 수련해 이로움을 본 진상을 이야기해 사악을 저지했다. 가족은 끊임없이 대책을 세워 구원했다. 그의 사위가 그를 대신해 이른바 ‘3서’위에 서명해서야 10일 후 청화궈는 집으로 돌아왔다.

청화궈가 집으로 돌아온 후, 가족은 그가 이번에 감금된 일로 인해 충격을 받아 그에 대해서도 매우 큰 교란을 조성했다. 청화궈는 출국 여권수속을 다 해놓았다. 게다가 출국 후 생활비에 쓰려고 은행에 돈 14만 위안을 저축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출국하려 하지 않았으며, 또 그가 출국하는 것마저도 반대했다. 청화궈는 그가 저축한 14만 위안은 출국하려고 준비한 것임을 가족 사람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그 14만 위안에 관해 끊임없이 캐물으면서 또 그와 다퉜다. 다른 사람들도 그의 아내와 그가 다투는 것을 보고 또 그에게 출국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는 그의 아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지지하지 않는다면 더욱 큰 오해를 조성할 까봐 두려워 그도 출국하지 않았다.

2010년 8월 19일 오전, 청화궈는 사오둥현 국보국으로 가서 자신의 파룬궁 서적을 달라고 하다가 도리어 사오둥 현 국보대대 중대장 덩젠화(鄧建華)를 우두머리로 한 악경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그의 가족이 사오둥현 국보국에 가서 사람을 풀어달라고 요구했을 때, 악경에게 속아 청화궈가 14만 위안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러 갔는지 모르겠다는 등 말을 했다. 악경은 곧 청화궈에게 그 14만 위안의 행방을 캐물었으며 그에게 고문으로 학대해 자백을 강요했다. 청화궈는 또 집에 전화를 걸어 가족에게 돈을 써버리지 않았으니 악경에 대해 돈에 대한 말을 꺼내지 말라고 알려 주었다.

악경은 이 돈을 가지기 위해 그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문을 가했는지 모른다. 8월 23일 밤 1시 경, 청화궈를 사오둥 쑹자탕(宋家塘)구치소에서 비밀리에 사오둥현 인민병원으로 납치했지만 그의 가족에게도 통지하지 않았다. 박해로 사망한 후, 하루가 지나서야 가족에게 통지했는데 이건 완전히 재물을 탐내어 목숨을 해쳤으니 정말 도둑이 제 발 저리게 됐다. 청화궈의 아들은 그의 아버지의 이마 한 곳에 바늘로 꿰맨 후 이미 아물어 붙은 상처가 있고 치아가 두 대 빠졌으며, 그리고 두 발의 복사뼈가 부러지고 온몸의 도처에 상처인 것을 보았는데 몸 위에도 모두 피가 흐르지 않았다. 분명 금방 건물에서 떨어져 난 새로운 상처가 아닌 것 같았으며, 당연히 며칠 전에 납치당할 때 때려서 난 상처일 것이다. 병원 도처에는 웹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은 국보 악경에게 “당신의 말로는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하는데, 당신은 병원 카메라 안의 녹화기록으로 증명하라.”고 질문했다. 국보 악경은 그 자리에서 거짓말을 하면서 “카메라가 없다. 일찍이 가져 갔다.”고 말했다. 이어서 곧 위협하고 이익으로 유인하는 방식을 취했으며 아울러 입을 막는 비용 26만 위안을 냈다. 며칠이 지나서야 그의 아들에게 이른바 건물에서 떨어진 녹화기록을 가서 보게 했으며, 말로는 청화궈는 이른 아침 5시에 건물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다. 뜻밖에 병원 안의 사람을 시켜, 어떤 사람이 병원 안에서 연공을 했는데 건물에서 떨어져 자살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말하게 했다. 게다가 모함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할 수 있는 능력을 다 해서 대법을 모독했다. 그의 가족은 뜻밖에 악경에게 속아 대법수련자를 원망했으며 그 14만 위안은 대법 수련생에게 기만당했을 거라고 의심했다. 그리고 악경에게 속아 그들을 협조해 함께 기타 대법제자를 찾아가 그 14만 위안의 이른바 행방을 캐물었다.

사악한 당은 뜻밖에 이렇듯 사악하고 비열했다. 사람을 죽이고도 도리어 자신을 깨끗하게 씻고는 도리어 좋은 사람을 모함했다. 덩젠화를 우두머리로 한 흉수는 여태껏 여전히 법을 어기고도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행동하고 있으며, 도리어 유언비어를 날조해 선량한 사람들을 독해하고 있는데, 기만을 당한 사람들은 도리어 생각해 보지 않는다. 연공하는 사람이 어떻게 되어 병원으로 납치돼 갔는가? 악경들은 가족마저도 통지하지 않았는데 다만 말이 나갈 까봐 걱정돼서였다. 청화궈에 대해 이렇듯 엄밀하게 감시하고 게다가 의무 인원이 현장에 있었는데 어떻게 그로 하여금 건물에서 뛰어내리게 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청화궈는 수련한 뒤로 마음이 넓고 평온하여,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절대 그는 건물에서 떨어져 자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른바 건물에서 떨어진 녹화를 당시 왜 카메라가 없다고 말하고, 그 후 또 있다고 했는가. 게다가 이른 아침 5시에 날이 아직 밝아오기도 전인데, 녹화기록에서 또 어떻게 ‘건물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를 똑똑히 보아낼 수 있었겠는가? 투쟁 철학의 중공 사회에서 나쁜 사람은 마구 날뛰고 좋은 사람은 박해를 당한다. 중공은 표면적으로는 그럴 듯 하지만 배후에서는 나쁜 일이란 나쁜 일은 다 했다. 또 거짓을 꾸며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흑백을 헛갈리게 했으며, 시비를 전도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한 선과 악을 가리지 못하게 했다. 중공의 전문적인 독재아래에서 국민은 어떻게 해야만이 이러한 사악의 잔학함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다음은 관련인원의 명단 및 전화이다: (사오둥현(邵東縣) 지역번호 0739)

사오둥현610주임:뤄원(羅文) 13973978648

사오둥현610 사무실:류젠바오(劉檢寳) 13762888586

사오둥 공안국 국보대대 대대장:룽옌윈(龍彦雲) 13807391788

교도원:펑위잉(彭玉英) 13508426622

부대대장:샤오즈슝(肖志雄) 13975902269

중대장:덩젠화(鄧建華)(주요 흉수)13907392377

중대장:인즈훙(尹志紅) 13975904999

부중대장:랴오옌우(廖彦武) 13789189956

국보경찰:리링링(李玲玲) 13786972340국보경찰:탕쥔민(唐俊民) 13574992701

사오둥현 공안국 국장: 양슈원(楊修文) 13973961612

규율검사 서기: 왕융샹(王永祥)13037399623

사오둥현 공안국 부국장: 저우위훙(周預宏)13607392498

부국장:류더훙(劉德宏)13607395098

부국장:양즈청(楊智成) 13807395098

부국장:선즈쥔(申智軍)13517422856

사오둥현 가전성(家電城) 사회구역 주임:천롄성(陳連生) 13975957566

사오둥현 가전성(家電城) 사회구역 경찰:장신허(蔣新和) 13973581954

사오둥현 정공계 (政工系)주임:어우밍구이(歐明貴)13508426746

현 법제판(法制辦): 샤오다싱(肖大興)13973596602저우간(周乾)13973950656

탕젠궈(唐建國) 13607398388주윈(朱惲)13907398388

리융샹(李永祥)13973992229

문장발표: 2010년 10월 05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0/5/2305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