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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세 명, 차례로 중국공산당 박해로 사망 (사진)

글/ 산시 파룬따파제자 펑젠전

[밍후이왕] 나의 남편, 아들, 모친은 차례로 중국공산당의 박해로 사망했다. 나도 현재 압력으로 인해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며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다. 2010년 4월 25일 아침 7시가 채 안 되어 리촨현(禮泉縣) 공안국 신스향(新時鄕)파출소 악경 둥지하오(董繼浩), 뤄웨이강(雒維剛) 등이 사람들과 함께 경찰차 세 대를 몰고 신스에 있는 딸의 집으로 갔다. 통행세 징수소에서 담벽을 뛰어 넘어 집으로 올라와서 문을 밟고 방총망을 뜯고 커텐을 열어 사람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를 내며 떠나갔다. 잠시 후에 우리 촌으로 와서는 이웃집 담벽으로 들어오려 했지만 그 집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앞문으로 왔는데 나는 집에 없었다. 대문을 밟아 열고 일부 사람은 방안에 들어와 위성안테나를 뜯고, 일부는 창문을 넘어 방안에 들어와 드라이버로 궤의 나사못을 떼어냈다. 그런 다음 샅샅이 뒤지고 조사해서 노트북 컴퓨터 한 대, 프린터 두 대, 위성안테나, 접수기, 플라스틱 봉합기계 등의 개인재물을 강탈하고는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황급히 가버렸다.


펑젠전(馮建珍)의 남편


펑젠전(馮建珍)의 아들


펑젠전(馮建珍)의 모친

1. 파룬따파는 우리 가족을 구했다

나는 펑젠전이다. 신시성(陝西省) 리촨현(禮泉縣) 신스향(新時鄕) 포상촌(坡上村) 사람이다. 집에는 남편, 아들, 며느리, 작은 딸, 작은 손자 등 여섯 식구가 있었다. 가정 형편이 그다지 부유하지 못하고 나와 남편은 몸이 좋지 않았지만 괜찮게 지내는 편이었다. 우리는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서 파룬따파가 좋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농사일과 생계를 유지하느라 바삐 보냈기에 늦도록 법을 얻지 못했다. 그 후 집에 아주 큰 재난이 발생해서 완전히 역경 속에 처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수련에 들어서서 삶에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대법을 얻기 전 남편은 여러 가지 진단하기 어려운 질병으로 일년 내내 약을 달고 살았다. 유일한 아들은 1997년 9월 6일에 교통사고를 당해 산시 의과대학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4개월 17일 동안 치료를 받아 목숨은 건졌지만 사지가 마비되었다. 의사는 퇴원할 때 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길면 1년을 살 수 있고, 짧으면 반 년 밖에 살지 못해요.”라고 말했다. 이 부고는 우리 가족에게 설상가상 격이었다. 원래 병이 많던 남편이 어찌 이런 난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는 몸져누웠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병석에 누운 두 사람을 보살폈다. 그들을 마주할 때는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하고, 그들이 안 볼 때는 샘솟듯 눈물을 흘렸다. 하늘을 불러도 대답이 없고 땅을 불러도 대답이 없는 이 때, 한 파룬궁수련생이 나에게 『전법륜』한 권을 주었다.

1998년 4월 25일은 내가 평생 잊지 못할 날이다. 한 파룬궁수련생이 사부님 설법 녹화를 보라고 나를 불렀다. 나가서 기분을 전환하려는 생각으로 남편과 함께 갔다. 듣자마자 ‘파룬궁은 이렇게 좋구나!’하고 내심으로 매우 격동되었고 고난을 조성한 원인을 알았으며 이후에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병 많은 남편과, 휠체어를 타고 외출하기 싫어하던 아들이 법공부와 수련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집에 연공장을 차렸다. 두 부자는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통해 상태가 점점 좋아졌다. 특히 남편은 1년이 넘도록 약 한 알 먹지 않고 주사 한번 맞지 않은 상황에서 밭에 나가서 농사일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아들의 정서와 몸에도 뚜렷한 변화가 있었다.

나는 마음이 넓어졌다. 이 신기한 공법이 남편의 몇 십년 동안의 고질병을 없애고, 아들의 몸이 회복되는 희망이 갖게 한 데 대해 감탄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기침을 했다. 해마다 겨울철이 되면 내내 기침을 하고, 가슴이 아프고, 숨이 찼다. 이후 치통, 두통, 결장, 관절염이 생겼고 손에 냉수를 닿기만 하면 경련을 일으키는 증상이 있었는데 이런 각종 질병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우리 가족은 기운을 냈다. 농사일을 하는 외에는 연공하고 법공부를 했는데 삶에 대한 희망으로 충만되었다.

2. 남편이 중국공산당의 박해로 세상을 뜨다

그러나 사악한 공산당은 사람이 편안하게 살지 못하게 했다. 1999년 7월 20일,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가렸다. 우리 가족은 감시와 전화도청을 당했다. 사악한 경찰과 향정부에서는 사흘이 멀다 하고 우리 집으로 와서 교란하고 위협했으며 공갈 협박해서 연공과 법공부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더욱 심한 것은 2000년 새해, 작은 딸과 사위가 혼행을 갔다가 사악한 경찰의 감시를 당한 것이다. 딸과 사위가 여행하고 돌아와 뜨거운 물도 마시기 전에 사악한 경찰은 뒤를 바싹 따라와 두 사람을 붙잡아 가서 사위는 노동교양을 당했다(딸은 이후 정념으로 벗어났음). 이건 정말로 한창 피를 흘리고 있는 마음에 소금을 뿌린 격이다. 몸이 약한 남편은 또 한번 몸져누웠다.

사악한 공산당은 우리 가족을 여전히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늘 교대로 와서 교란하고 ‘연공을 하지 않는다’는 서명을 강요했다. 우리는 서명하지 않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마음을 닦고 인격을 수양하게 하고, ‘쩐,싼,런(眞善忍)’에 따라 수련하여 더욱 좋은 사람이 되게 했어요. 이렇게 좋은 공법이 무슨 잘못이 있어요?” 그들은 전혀 듣지 않았다.

2000년 1월 26일 점심,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리 집에 세 차례나 왔다. 먼저 파출소에서 오고, 두 번째로 향정부에서 사람들이 와서 위협하고 정신적인 학대를 했다. 남편은 이튿날인 1월 27일에 억울하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사악한 경찰은 여전히 수색하고 통제했으며 아들의 손에 쥐고 있는 대법책 마저 빼앗아 갔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은 장애인의 손에서 대법책을 빼앗아 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라고 말했다. 2001년 6월 5일, 사랑하는 아들은 이런 타격을 더 감당하지 못하고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예전에 우리가 몸에 병이 있을 때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고, 생활이 어려울 때 누가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는가? 교통사고로 아들의 생명이 위급하고 며느리가 집을 떠났을 때 누가 도와준 적이 있는가? 나는 연공한 후 몸이 호전되기 시작했고 생활에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건이 사회에 얼마나 큰 이로움인가? 우리들은 나라에 손을 내밀지 않고 일체 곤란을 스스로 해결했는데 그들은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편히 살게 못하는가?

3. 악경에게 머리카락이 뽑히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생사이별의 고통을 경험했다. 남편과 아들이 세상을 뜨고, 며느리가 집을 떠나고, 작은 딸은 시집갔다. 집에는 나와 6살도 안 되는 작은 손자만 남았다. 나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호 아래 신념을 확고히 했다. 손자와 함께 서로 고무하면서 눈물을 닦고 법공부와 연공을 했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들이 죽는 크나큰 고통을 당한 후 나와 손자는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2005년 7월 8일, 손자에게 밥을 해주고 있는데 사악한 공안 경찰은 또 우리 집에 뛰어들어 컴퓨터, 비디오 플레이어, 전자책 두 개, MP3 한 개, 대법책과 대법자료를 전부 빼앗고 나를 강제로 공안국에 끌고 갔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심문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파룬궁을 연마하려 합니까?” 나는 집안 사정을 그들에게 알려주고 내가 과거에 앓던 여러 질병들이 대법을 수련한 후 나아졌다고 했다. 그들에게 “만약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진작 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연공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겠어요? 만일 당신들이 박해하지 않았다면 나의 남편과 아들은 지금 멀쩡하게 살아 있었을 겁니다. 대법은 사람을 구합니다. 대법책이 여기 놓여 있어요. 보세요. 만일 모든 사람들이 책에 따라 한다면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이로운 점이 있겠어요? 깨우치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되고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게 하는데 나는 대법을 늦게 얻었을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여 경찰 네 명이 나와 한 시간 넘게 있었다. 파룬궁이 이렇게 좋다는 말을 듣고 경쟁하듯 말했다. “이모, 빨리 우리들에게 당신들 파룬궁을 이야기해 주세요.” 그 후 몇 사람이 나와 함께 하루 저녁을 보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 없을 때 대법책을 가져다 보았다. 밤중에 공안국에서 왔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다음 “국가에서 연마하지 말라면 하지 마세요(중공의 사악한 당은 고의적으로 ‘국가’, ‘정부’, ‘당’을 혼동시켰다.” 심지어 ‘당’을 ‘국가’ 위에 놓았는데 국가가 어떻게 일반 국민에게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할 수 있는가?

이튿날 사악한 경찰 둥지하오(董繼浩), 뤄웨이강(雒維剛), 천핑(陳平) 세 사람이 와서 나를 심문했다. “자료는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가?” 내가 말하지 않자 그들은 욕설을 퍼붓고 마구 때렸다. 나는 눈앞이 번쩍거리게 맞다가 땅에 쓰러졌다. 나의 얼굴과 머리는 맞아서 부었고 사악한 경찰 둥지하오에게 잡아당겨져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다. 그리고 발길질에 채여 허리, 팔, 다리는 시퍼렇게 멍들었다. 그 후 나는 싱핑(興平)감옥에 보내졌다. 감옥대장은 나의 머리와 얼굴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온 머리카락이 빠지고, 머리위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무의식중에 말했다. “노인을 때려놓아 이게 뭡니까? 이 지경으로 때리다니…….”

4. 불법 노동교양으로 모친이 억울하게 세상을 뜨다

2007년 하반기, 딸은 나와 손자를 그녀 집에 와서 살게 했다. 작은 딸은 사진관을 열어 생활을 유지했다. 나와 손자는 수입이 없었는데 딸은 그녀의 집에 작은 상점을 차려주어 나와 손자의 생활을 유지하게 했고 상점을 보는 중에 막 한 돌이 지난 아이를 돌보게 했다.

나의 모친은 80여 세이며 예전에 여러 가지 질병이 있었다. 간이 붓고, 기침을 하고, 천식에 걸린 지 60년 가까이 되었다. 가슴 한 가운데에 10여 센티미터 길이에 3~4센티미터의 너비로 된 굳은 종기가 있어 늘 괴로워하며 늘 내 손으로 그녀의 배를 만지게 했으며 두통도 있었다. 병원에 가보니 뇌동맥경화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병이 도지면 갑자기 쓰러져 인사불성이 된다. 나는 모친에게 법공부와 연공을 가르쳐 주었다. 여동생은 어머니에게 녹음기 한대를 사주었다. 법공부와 연공을 거쳐 일체가 모두 호전되었다. 노인은 글은 읽을 줄 몰랐지만 심성은 아주 좋았다. 10여 년 동안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전법륜』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연로하신 모친을 보살펴 드리고, 자신의 효도를 하기 위해 모친도 딸의 집으로 모셔왔다.

2008년 7월 17일 오후, 딸은 없고 나와 모친만 집에 있었다. 갑자기 경찰차 세 대가 오더니 10여 명의 사악한 경찰들이 미친듯이 집에 뛰어들어 방문을 잠그었다. 그중 한 사악한 경찰은 발로 차서 문을 열고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일부 사람은 방으로 갔다. 일부는 화가 나서 대법 책 두 권, MP3 한 대, 일부 호신부들을 강탈해갔다. 심지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데 사용하는 컴퓨터, 프린터, 플라스틱 봉합기계, DVD 플레이어, 전원선, 전화 광대역 고양기(電話寛帶猫), 플라스틱 봉합막, 인화지, 캠, 위성접수기, 라우터, 이어폰을 전부 강탈해 간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 곳은 우리 집이 아니다. 이것은 내 딸이 사진을 찍을 때 사용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너무 이치를 따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친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랐다. 모친이 보는 앞에서 나는 강제로 끌려 갔다. 모친은 이 상황을 보고 곧 기절해 쓰러졌고 얼굴에 출혈이 생겨 멈추지 않았다. 딸은 파출소에 와서는 할머니가 넘어져 온 얼굴이 피투성이라며 나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사악한 경찰은 나의 딸을 문 밖으로 밀어냈다. 손자는 나의 모친이 출혈을 멈추지 않는 것을 보고는 다시 파출소로 와서 나에게 알려주었다. “할머니 얼굴이 온통 피투성인데 어쩌면 좋아요?” 사악한 경찰 천차오(陳超)는 흉악스럽게 쫓아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보려고 했다가 황차오펑(黄超峰)에 의해 밀려 넘어져 소파위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후 그들은 문을 잠그었다. 나는 “누구에게나 부모가 있는데 당신들이 이렇게 나를 대하면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파룬따파는 좋고 쩐싼런은 잘못이 없습니다.”고 말했다. 며칠이 지난 후, 그들은 나에게 3년 불법 판결을 내렸다. 모친은 내가 노동교양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몇 달 후 세상을 떴다. 딸은 할 수 없이 영업을 중지하고 문을 닫았다. 나는 지금까지 모친을 잘 보살펴드리지 못하고 모친의 장례를 치러 드리지 못해서 가책을 느낀다. 3년 불법 노동교양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나는 정념으로 노동수용소를 걸어 나와 계속해서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진상을 알렸다.

5. 핍박에 못 이겨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다

2010년 4월 25일 아침 7시가 안 되어 리촨현공안국 이신스향파출소의 사악한 경찰 둥지하오(董繼浩), 뤄웨이강(雒維剛). 천핑(陳平), 장판(張凡), 저우펑(周朋), 위안덩판(袁登攀), 양샤오치(楊小琪), 장쥐안(張娟), 황차오펑(黄超峰) 등이 경찰차 세 대를 타고 사람들과 함께 왔다. 먼저 신스에 있는 딸의 집에 갔다가 딸이 없자 통행세 징수소에서 담벽을 뛰어넘어 집으로 올라와 문을 밟고 방충망을 뜯고 커텐을 당겨 열어 사람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가 나서 떠났다.

이 사악한 경찰들은 잠시 후 우리 촌에 뛰어들었다. 먼저 이웃집 뒷담벽으로 들어오려 하다가 그 집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자 다시 앞문으로 걸어왔는데 내가 집에 없었다. 대문을 밟아 열고 일부 사람은 방 안에 들어와 위성안테나를 뜯고, 일부는 창문을 뛰어 넘어 방안에 들어와 드라이버로 궤 위의 나사못을 떼었다. 그런 다음 샅샅이 뒤져 노트북 컴퓨터 한 대, 프린터 두 대, 위성안테나, 접수기, 플라스틱 봉합기계 등 개인재물을 강탈하고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황급히 가버렸다.

사악한 경찰들이 떠나간 뒤 촌의 사람들은 우리 집을 한 바퀴 돌면서 의견이 분분했다. “너무도 심하다! 촌에는 책임자도 없다! 사람이 집 안에 없는데 문을 밟아 열쇠를 비틀어 열다니. 그야말로 토비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이 그것들을 소멸하지.”

여태껏 나는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고 압박에 못 이겨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고 있다.

문장발표: 2010년 09월 05일
문장분류:박해진상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9/5/229245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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