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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말기에서 건강 회복한 노인 연공 견지해 박해 당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난보도) 이것은 74세인 암 말기환자가 파룬궁을 수련한 후 건강을 되찾았으나, 파룬궁 연공을 견지해 중공 사당의 박해를 당한 이야기이다.

웨양시(岳陽市) 왕타오잉(王桃英,여,74)은 후베이(湖北) 푸팡(浦紡)총공장 공소처(供銷處)의 퇴직 직원이다. 1994년 병원의 진단으로 말기 위암으로 판명 됐으며, 의사는 많아야 3개월 동안 살 수 있으니 수의를 다 준비해 놓으라고 말했다. 그는 자녀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남편과 함께 여러 곳의 기공 수련을 알아 본 후 태극권을 비롯한 여러 기공 수련을 해 보았으나 모두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는 늘 그런 기공들을 배우다 현장에서 쓰러졌는데, 주위 사람들 모두가 두려워했으며 감히 일으켜 세우지도 못했다.

1997년 5월 30일, 우연찮게 파룬궁과 인연을 맺게 됐으며 그로부터 대법 수련을 하게 됐다. 수련을 시작한 지 6일 째 되던 날 사부님은 그에게 몸을 조절해 주셨는데, 심한 구토를 하고 대. 소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 하지만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도 있었다. 이로부터 예전에 있던 모든 병이 전부 사라지고, 혈기도 좋았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천년에도 만나기 어렵고 만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고심대법을 얻었음을 알았으며, 수련을 끝까지 하리라 맹세했다.

그러나 좋은 날이 오래 가지 않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사당 장쩌민 집단이 권력을 악용 해 파룬궁을 탄압하고, 일반 국민이 연공으로 이로움을 얻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왕타오잉은 ‘가능하게 정부에서 파룬궁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파룬궁 수련으로 직접 도움을 받은 사람이니, 말할 권리가 누구보다도 있다. 나는 사부님을 위해, 대법을 위해 정부당국에 가서 공정한 말을 해야 한다.’ 고 생각했다.

10월 20일, 그는 두 동수와 함께 그 지역 시 민원실 책임자를 찾아가, 3가지 청원사항을 제출 하였다. 첫째 사부님의 명예를 회복하라. 둘째 대법의 명예를 회복하라. 셋째 연공을 허락하라. 시 당국에서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 3인은 곧바로 베이징으로 갔다. 막 기차에서 내리자, 사악한 경찰은 그들에게 파룬궁과 사부님을 모독하는 구호를 외치라고 강요 했다. 이에 응 하지 않자 악경은 그들을 강제로 납치하여 베이징 주재 후베이 푸팡(浦紡)사무실 지하실에 이송 시킨 후, 4일 동안 감금했다. 그런 다음 원 직장에서 보증한 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01년 1월 16일 저녁, 웨양(岳陽) 진에산(金鶚山)파출소 후(胡)소장과 궈(郭)교도원(여)이 그녀의 집을 찾아와서, 그녀에게 간단히 물어볼 말이 있다며 파출소로 가자고 하여, 그녀는 기만당해 차에 올랐다. 도착해 보니 이미 몇 십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이미 납치당해 와 있었다. 그들은 박해를 반대하고 법을 외우며, 구호를 외쳤다. “파룬따파는 좋다! 대법이 결백함을 되돌리라! 사부님이 결백함을 되돌리라!”

3개월 동안 불법 감금을 한 채 풀어주지 않았다. 그들은 ‘감옥 밥은 먹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단체로 단식을 했다. 이 기간, 음식물주입을 당하고 구타와 온갖 욕설을 들었다. 악경 황자오(黄教)는 사납게 굴며 왕타오잉의 귀뺨을 때렸다. 한 번 세차게 때리자 그는 힘에 밀려 뒷걸음치며 벽에 부딪쳐 숨을 헐떡였다. 그 후 악경은 “2호실의 여 죄수 왕 할미의 귀뺨을 한 대 때렸는데, 손바닥이 20여 일 동안 아팠다.”고 말했다.

그 후, 어떤 파룬궁 수련생의 생명 위험이 나타나, 구치소에서는 잇따라 사람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왕타오잉의 가족은 현금 천 위안을 그들에게 갈취당하고, 그녀의 4~5개월 퇴직금 지급을 중지 당하고야 풀려났으나, 어떠한 수속도 없었다.

2002년 2월 6일, 웨양 진에산파출소의 소장 어우양화(歐陽華)와 경찰 리페이(李飛)는 또 그녀에게 파출소에 가서 물어볼 일이 있다는 말로 기만하여, 왕타오잉을 끌고 가서 또 웨양시구치소에 불법 감금을 당했다.

3개월 후, 남편이 면회를 와서 “그들이 당신에게 3년 노동교양을 시키려 한다.” 고 말했다. 이튿날 그녀는 목욕하다가 얼굴을 위로 하고 땅위에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었다. 감옥 의사가 와도 어쩔 도리가 없자, ‘610’ 에 통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국보대대에서 사람을 파견해 와, 그녀를 병원으로 보내 응급 처치를 했다. 의사는 “사람이 이미 글렀습니다. 내장이 전부 상했어요. 속히 가족들에게 후사를 처리 하도록 하세요.” 하고 말했다. ‘610’ 등은 책임을 감당하기가 두렵게 되자, 할 수 없이 그녀의 석방을 허락했다. 집으로 돌아 온 왕타오잉은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여 아주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그 후, 왕타오잉은 네 번째로 쥔산구(君山區) ‘610’과 국보대대 자오원화(趙文華) 등에게 다시 납치돼 웨양현구치소에서 41일 동안 불법 감금당했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은 자오원화에게 현금 천 위안을 갈취 당했는데, 어떤 정당한 절차적 수속도 없었다.

문장발표: 2010년 9월 4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9/4/22922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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