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파룬궁수련생 스원줘가 지린성 감옥에서 당한 고문

[밍후이왕] (밍후이통신원 지린성 보도) 스원줘(史文卓)는 올해 48세이며 전 지린성(吉林省) 주타이시(九臺市) 식량창고 직원이다.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11년 중에서 스원줘는 두 차례 불법구류를 당하고, 1년 노동교양을 선고 받았으며, 9년 판결을 당했다. 지금 여전히 지린성 제2감옥 3감옥구역에 불법 감금돼 있다. 이 기간 스원줘는 머리칼이 곤두설 정도로 참혹한 학대를 당했다. 다음은 근근이 스원줘가 당한 일부 박해 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스원줘는 이미 전에 두 차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현지로 납치당해 돌아온 뒤 두 차례 모두 1개월 시간을 불법 구류당한 적 있다. 2000년 7월, 스원줘는 구치소에서 직접 인마허(飮馬河)노동수용소로 이송돼 10개월 동안 불법 감금을 당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2002년 11월 18일, 스원줘는 주타이시 공안국에게 불법 체포됐다. 주타이시 법원에서는 그가 파룬따파 현수막을 걸고 파룬궁진상을 작은 나팔로 방송했다는 이유로, 그를 9년 불법 판결했다. 다음은 각종 경로를 거쳐 전해 온 스원줘가 박해를 당한 기초 자료다.

2004년 5월 20일, 스원줘가 감옥에서 이른바 ‘전향’(즉 수련을 포기)을 접수하지 않고 확고하게 수련했기에 ‘늘이는 침대(抻床)’에 반 달 동안 묶였다. 엄혹한 관리를 맡은 사악한 경찰 후중쉐(胡忠學)는 일반 죄수 쉬즈강(徐志剛), 딩자오쑹(丁兆松)과 다른 두 명의 이름 모를 죄수를 지시해 스원줘를 혹독하게 구타했으며 아울러 그를 ‘늘이는 침대’에 묶어 놓았다. ‘늘이는 침대’는 일종 극히 잔혹한 고문 학대다. ‘늘이는 침대’위에 오른 후 사람 몸은 모두 허공에 떠있게 되고 팔, 다리와 살까지 모두 갈라 터진다. 마치 멀쩡한 물건을 잡아당겨 산산조각 내듯이 몇 분 지난 후면 사람은 기절해 버리고 땀투성이가 되며 눈앞이 어두컴컴해진다. 한참 늘이고는 내려놓았다가 고정한 뒤 재차 늘이는데 연속해서 몇 차례나 늘인다. 이때 고문을 당한 사람은 손발이 무감각함을 느낄 뿐이다. 늘일 때면 정말 살려고 해도 살수 없고 죽으려고 해도 죽지 못한다. 늘이는 침대에서 내려놓은 뒤, 스원줘의 손발은 움직일 수가 없었으며 손발은 늘어져 변형이 됐다. 이 때 후중쉐는 사람을 시켜 스원줘를 집중 관리실로 들고 가게 했다. 이후에 계속해서 스원줘가 전향하도록 핍박했다. 그 후 스원줘는 팬티가 축축함을 느꼈는데 오줌을 눈 것도 몰랐다. 스원줘는 화장실로 가겠다고 요구했다. 리춘린(李春林)이 스원줘를 도와 허리띠를 풀어 주었다. 이때 스원줘는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하며 말하려 해도 입이 말을 듣지 않는 감각을 느꼈다. 그들은 또 스원줘를 집중 관리실로 들고 가서는 좌반(坐板)에 앉혀놓았다. 스원줘는 그 후 몸이 매우 허약해졌다. 스는 요구해서 세 차례 병원으로 갔다. 이런 상황 하에서 교육과의 왕위안춘(王元春)은 스원줘를 찾아와 여전히 스원줘를 전향시키려고 담화했다. 왕위안춘은 전향하고 수련을 포기한다는 보증서 등 ‘4서’를 쓰기만 하면 원래 감옥구역으로 되돌려 보내겠다고 말했지만 스원줘는 거부했다. 그 후 그들은 스원줘의 몸이 정말 위험하게 되자 그를 원래 감옥구역으로 되돌려 보냈다.

2004년 11월 1일, 1감옥구역의 사악한 경찰들은 다시 한번 스원줘를 집중 관리하고 이어서 또 스원줘를 고정 침대에 올렸다(사람의 사지를 대자형으로 침대 위에 고정해 놓는데 장시간 내려놓지 않음).

2005년 4월 26일부터 4월 28일까지, 리융주(李勇主)는 진일보하여 스원줘에 대해 위협하고 공갈 협박했다. 그로 하여금 핍박에 못이겨 신앙을 포기하게 하기 위해, 먼저 그들의 위협과 공갈 협박 하에 배신자로 된 바이예(白野), 옌펑(閆峰), 우칭둥(鄔慶東) 세 사람을 충동질해 폭력을 가하는 것으로 스원줘가 전향하도록 핍박했다. 그들은 스원줘를 강박해 쭈그려 앉게 했는데 줄곧 스가 구토하고 손이 다 경련을 일으킬 때까지 쭈그리게 했다. 그 후 그들은 일이 생길까 두려워 그제야 풀어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끊임없이 스원줘에게 욕설을 퍼부었으며 밥을 먹을 때가 돼도 스원줘에게 밥을 못먹게 했다. 스원줘는 “밥을 먹지 못하게 한 것이지 당신은 내가 단식했다고 말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들은 듣자마자 곧 찐빵을 들고는 스원줘의 코를 잡고 그의 입안에 힘껏 찐빵을 밀어 넣었으며 또 끊임없이 그를 모욕했다.

2005년 11월 2일, 교육과에서는 스원줘가 사사로이 편지를 부쳤다는 것과 또 그들과 견해를 일치하게 유지하지 않았다, 관리에 불복한다는 등 구실로 그를 영창에 가뒀다. 리융성(李永生)은 또 주먹으로 스원줘의 머리부위를 치고는 집중 관리를 맡은 죄수 쉬즈강(徐志剛) 등 사람을 지시해 스원줘를 강제로 집중 관리대대로 끌어갔다. 그리고 혹독하게 구타하고 장기간 그를 핍박해서 좌반에 앉혔으며 1개월 동안 감금해서야 원래 감옥구역으로 돌려보냈다.

2007년 1월 17일, 교육과 왕위안춘은 스원줘가 파룬궁 사부님의 경문을 봤다는 이유로 강제로 집중 관리에 가둬 박해했다. 왕위안춘은 한 무리 죄수들을 시켜 스원줘를 5층에서 억지로 집중 관리대대로 끌어내려 가게 했다. 도중에 왕위안춘은 죄수를 시켜 걸레로 스원줘의 입을 막게 했다. 쉬즈강이 가죽 띠로 스원줘를 후려쳤지만 왕위안춘은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원줘는 왕위안춘에게 “당신이 나를 때리면 나는 당신을 신고하겠다. 우리집에서도 당신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간 스원줘의 가족이 두 차례 면회하러 왔지만 모두 만나지 못하게 했다. 설을 쇠기 사흘 전, 가족은 성 감옥 관리국 옥정처로 찾아갔다. 그리고 지린성 감옥 사악한 경찰들이 죄수를 용인해 사람을 구타하고, 늘이는 침대에 올리며, 침대에 고정해 놓고, 집중 관리를 한다는 등 이유로 가족과의 면회를 거절하는 등 박해와 그를 핍박해 신앙을 포기시키는 정신 학대까지 가했다. 스원줘의 노모는 옥정과에서 슬프게 큰 소리 내어 울었다. 당시 옥정과 성이 량(粱)가인 처장은 직접 지린 감옥에 전화를 걸었으며 지린감옥에서 스원줘를 데려내와 부모와 면회시키라고 했다. 가족은 창춘시(長春市)에 위치해 있는 지린성감옥 관리국에서 직접 지린감옥으로 가서 스원줘를 면회했다. 가족이 스원줘의 표정이 약간 질겁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곧 스원줘에게 누가 때렸는지를 물었다. 스원줘는 당시 감히 말하지 못했다. 가족은 어찌된 일인지를 뻔히 알고 더는 묻지 않았다. 설을 쇤 후 감옥 안에서 형기가 차서 석방돼 나온 사람이 직접 스원줘의 집을 찾아와 그의 부모에게 알려주었다. “당신들 가족이 설 전에 스원줘를 면회할 때 스원줘는 고정침대위에서 금방 풀려났습니다. 왕위안춘은 스원줘를 공갈 협박해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 만나러 왔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지!’고 말하고는 스원줘에게 어떠 어떠하게 하라고 암시했습니다. 집중 관리를 해소한 다음, 왕위안춘은 또 여러 차례 공갈 협박해서 ‘다시 잘못해서 내손에 들어오지 말아라, 만일 내손에 들어오기만 하면 내가 당신을 어떻게 해치우나 봐라’고 말했습니다.”

2008년 4월 22일, 스원줘는 재차 집중 관리를 당했다. 이번은 스원줘가 감옥 측에, 죄수가 독약을 넣어 파룬궁수련생 장원펑(張文峰)을 강간한 일을 반영하고 무조건 석방하라고 요구한 것이 그 이유다. 이 편지는 감옥장 왕쿤(王坤)과 류웨이(劉偉)에게 쓴 것인데 도리어 감옥의 압수를 당했다. 당시 3감옥구역의 사악한 경찰 장싱(張興)은 마약을 팔아 사직됐는데 현재는 식당주방에서 파룬궁사부님의 경문을 본다는 이유로 재차 스원줘를 영창에 가뒀다. 사악한 경찰 리융성은 재차 스원줘를 찾아 담화해 스원줘가 전향하도록 요구했지만 스는 협조하지 않았다. 리융성은 “당신은 집중 관리실로 가서 있어라!”고 말했다. 게다가 휴식시간에도 스윈줘를 철저히 굴복시키지 않으면 절대 풀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원줘는 집중 관리대대에서 2개월 동안 박해를 당해, 심장병 증상이 나타났다. 그들은 사람을 풀어주지도 않고 또 병도 치료해주지 않았다. 이 기간 가족은 세 차례나 면회하러 갔다가 모두 헛걸음을 했다. 스원줘가 집중 관리대대에서 나온지 8일 만에 가족이 면회하러 갔다. 스원줘의 목이 쉬고 용모가 초췌해진 걸 본 스원줘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누가 박해했느냐고 물었다. 당시 면회실의 사악한 경찰도 역시 감청하고 있었다. 그들은 즉시 전화를 중단하고 면회를 중지시켰다. 이번 면회는 2분도 안 됐다.

2009년 2월 28일, 3감옥구역 개조구역장(改造區長) 사악한 악경 웨퉁(嶽桐)은 죄수 장바오쥔(張寳君), 펀바오룽(焚寳龍), 리윈지(李雲吉) 세 사람을 지시해 스원줘를 구타하게 했다. 장바오쥔은 연속 6차례나 스원줘를 혹독하게 구타했는데 스원줘가 땅위에서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구타했다. 스는 7~8일 동안 몸을 돌릴 수도 없었다. 그들은 다 때린 다음 또 특별히 사람을 지시해 속이게 했다. 웨퉁은 스원줘의 가족을 보고 마음이 켕기어 거듭 이런 일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스원줘가 감옥장에게 쓴 사실 진상자료가 당사자에게 여전히 압수당해 있다. 가족이 면회할 때 감옥 경찰 왕위안춘은 스모에게 “우리는 그를 관할하지 못합니다. 죄수에게 그를 관할시켜야 합니다. 이 감옥 안에서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죽은 것도 있지 않습니까? 죽으면 죽었지.”고 말했다. 스원줘가 구타당한 일에서 한 명의 사악한 경찰도 처분을 받지 않았고 죄수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2009년 10월 19일, 감옥 경찰은 스원줘가 죄수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와 기타 세 명 파룬궁수련생들을 함께 집중 관리대대에 가뒀다. 스원줘의 눈부위는 정진하오(鄭金浩)에게 채여 다쳤다. 쑨펑쥔(孫鳳軍)은 전기봉으로 번갈아 가며 구타하고, 자오쉬(趙續)도 손을 써서 구타했다. 이번 집중 관리대대에 3개월 21일 동안 가두었는데 가족이 7번이나 갔지만 스원줘를 만나보지 못했다.

2010년 8월 8일, 스원줘는 재차 집중 관리를 당했다. 이 기간에 발생한 박해상황은 똑똑하지 않다. 가족이 면회허러 가서도 스원줘를 만나지 못했다. 그들은 스원줘가 규율을 위반해서 면회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상은 우리가 파악한 스원줘가 이 10여 년 동안 박해를 당한 일부 사실이다. 감옥 및 중국 공산당 당국에서 소식을 엄밀히 봉쇄했기에 아직도 많은 박해 사실이 전해오지 못했다. 우리들은 지린감옥의 어두운 내막을 파악하고 있는 파룬궁수련생들이 모두 펜을 들고 중국 공산당 감옥의 죄악을 써냄으로서, 그들 공산당을 도와 나쁜 일을 하는 사악한 경찰들이 속히 박해를 멈추길 바란다. 신의 눈은 피할 수 없다. 누구든지 사악한 일을 했으면 곧 천벌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법률도 그들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을 징벌할 것이다.

문장발표: 2010년 09월 04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9/4/229225p.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