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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 가오룽룽이 억울함을 벗기도 전에 노모 사망(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보도) 2010년 7월 16일, 여든 살에 가까운 가오룽룽(高蓉蓉)의 노모 장쑤쿤(張素坤)은 사랑하는 딸을 고통스럽게 잃은 5년 후 슬프게 세상을 떠났다. 노인은 향년 78세다.

高蓉蓉的母亲张素坤
가오룽룽의 모친 장쑤쿤

중국 공산당 노동수용소의 사악한 경찰(악경)의 전기충격을 당한 가오룽룽은 박해로 사망한지 이미 5년이 넘었다. 장쑤쿤 노인과 가족은 억울함이 있어도 호소할 곳이 없었으며, 게다가 중국 공산당 610, 공안 및 국가보안 특무의 괴롭힘과 박해를 당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야, 베이징 국가보안은 베이징에서 살고 있는 노인과 가족을 찾아와 위협했다. 가오룽룽 사건을 위해 청원하지 못한다고 했으며 가족을 독촉해 가오룽룽의 시신을 화장하는 것을 동의하도록 했다. 중국 공산당 사당(邪黨)이 중국을 독재 통치한 60년 경축 즈음에, 베이징시 하이뎬구(海澱區) 광다화원(光大花園) 주택 단지에서 살고 있는 가오룽룽의 부모는 중공 국가보안, 공안이 파견된 사람에게 매일 집 입구에서 잠복감시를 당했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중국을 방문할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장 노인의 외손녀가 출국해 유학을 가려해도 중공 국가보안에게 저지당해 갈 수 없었다.

老人心爱的女儿高蓉蓉
노인이 애지중지하는 딸 가오룽룽

高蓉蓉遭电击毁容
전기충격을 당해 얼굴이 훼손된 가오룽룽

2004년 5월 7일, 가오룽룽은 파룬따파 ‘쩐싼런(眞善忍)’ 신앙을 견지한 이유로 노동수용소 경찰에게 전기충격을 당해 얼굴이 훼손돼 국제사회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해 10월 5일, 선량한 인사의 도움 하에 가오룽룽은 불법감금을 벗어나 병원에서 탈출했다. 2005년 3월 가오룽룽은 재차 중공 당국의 납치를 당했다. 줄곧 가오룽룽이 사망하기 전까지, 선양시(沈陽市) 장스(張士)노동수용소, 마싼자(馬三家)노동수용소에서 랴오닝성(遼寧省)사법국, 성(省) 노교국 등 부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말과 태도를 통일하고 그의 가족에 대해 “당신들은 마음 놓으세요. 법률은 흉수를 엄하게 징벌할 겁니다. 당신들은 다시 찾을 필요가 없으니 집으로 돌아가 기다리세요. 상부에서 사건을 종결하지 않은 것이지 이번에는 가오룽룽의 잘못이 없어요”고 말했다. 가오룽룽은 2005년 6월 16일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겨우 37세였다. 이들 줄곧 ‘가오룽룽의 잘못이 없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가오룽룽의 가족에게 압력을 가해 급히 시신을 화장하려 했다.

가오룽룽의 어머니 장 노인은 20여 년 전에 불행하게 직장암에 걸렸었는데 수술한 후로 수년 동안 병세가 심해졌다. 바로 노인이 몇 달이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사경을 헤맬 때인 1996년 5월, 노인은 행운스럽게 대법을 얻었다. 『전법륜』이란 이 진귀한 책을 열심히 읽고 가족의 부축임 하에 노인은 매일 집 인근 연공장에 가서 연공했는데 근근이 일주일 시간에 노인의 몸은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 장쑤쿤 노인이 있던 직장인 선양시 전기기계학원(원래 선양 55중학교) 책임자는 기뻐서 설 명절 때 과일을 들고 집으로 와서 노인을 문안을 하고는 “당신은 중병 환자였지만 파룬궁을 수련한 후 학교에 의료비를 절약해 주었습니다”고 말했다.

딸들은 어머니 신체에서 발생한 기적과 『전법륜』 속에서 이야기한 좋은 사람으로 되는 이치를 보고나서 파룬따파는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을 고층차로 이끌어 가는 대법이고 대도임을 알았다. 장쑤쿤 노인의 세 딸은 연이어 대법수련에 들어섰으며 眞善忍의 밝은 빛은 노인과 가족에게 무한한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일가족은 대법에 따라 수련해 몸과 마음이 모두 승화됐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의 3년 동안에 매년 전국 각지에 재해 상황이 나타나 거민위원회에서는 돈을 기부하고 물건을 기부하도록 요구했다. 장수쿤 노인은 모두 선두로 기부했으며 또 많이 기부하려 하고 좋은 물건으로 기부하려 해서 사회 구역과 거민위원회 공작인원들도 모두 아주 감동을 받았다. 바로 1999년 중국공산당 사당이 파룬궁을 탄압한 후 사회 구역 및 거민위원회 사람은 여전히 장쑤쿤 노인을 지지했다. 이 기간, 노인의 작은 딸 가오룽룽은 또 무상으로 편벽한 지역에서 가난해서 학교를 다니지 못한 아이들을 도왔다. 도움을 받은 아이는 감격해서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가오룽룽에게 감사를 표했으며 가오룽룽을 그들 고향으로 방문하도록 요청했다. 가오룽룽은 회답편지에 자신은 파룬따파를 수련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할 줄 알게 됐고, 비로소 자원적으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돕게 됐다며 아이들도 기회가 있으면 파룬궁을 배우길 바랐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 및 장쩌민 깡패집단은 질투와 사사로운 이익에서 출발해 제멋대로 眞善忍을 수련하는 선량한 민중에 대한 진압을 발동했는데 검은 구름이 몰아치고 거센 파도가 밀려오듯 했다. 이 온 천지를 뒤덮을듯한 사악의 탄압 가운데서 무수한 파룬궁수련생들이 참혹한 박해를 당했다. 1999년 7월 22일 후, 전국 텔레비전, 신문까지 파룬궁과 그의 창시자에 대해 악독한 공격을 시작했다. 장쑤쿤 노인과 딸들은 함께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 노인은 집권자에게 “파룬궁에 대한 탄압은 잘못된 것입니다. 무리하게 유언비어를 날조하는 것은 사람 마음을 너무 상하게 합니다”고 알려주려고 생각했다. 베이징에서 그들은 정상적으로 말할 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국무원 민원실은 파룬궁수련생을 붙잡는 어두운 거점이 됐다. 톈안먼광장의 무장경찰과 사복경찰도 파룬궁수련생을 붙잡으려고 호시탐탐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각 성과 시에서는 모두 610, 공안, 사회 구역, 각 직장의 대량 인원을 베이징으로 파견해 들어와 본 성과 시에서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온 파룬궁수련생들을 붙잡았다. 베이징과 전국의 각 구치소, 감옥, 노동수용소에는 대량의 파룬궁수련생을 불법 감금하고 있었다. 베이징의 각 성과 시 베이징 사무처도 파룬궁수련생을 임시 감금하는 검은 감옥이 됐다.

장쑤쿤 노인과 딸들은 선양시 공안과 베이징공안의 결탁으로 납치돼 강제로 선양으로 보내져 불법 감금을 당했다. 노인은 두 차례나 불법 감금을 당했는데 가장 오랜 한 차례는 1개월 동안 감금 당했다. 두 번째 납치 중, 선양시위원회에서는 또 전문적으로 음모를 꾸미는 회의를 열었는데, 하나는 노인의 작은 딸 가오룽룽이 선양 노신(魯迅)미술학원에서 일하며 선양 노신미술학원에서 파룬궁 연공장 보도원을 맡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당시 사당이 ‘10.1’ 국경절을 이용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고, 청원하러 간 수련생들이 베이징에 남아 있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음모 하에 노인과 딸들은 납치를 당한 후, 선양 팡자란(方家欄)구치소에서 불법적으로 기한을 초과해 1개월 동안 감금당했다. 불법 감금당한 기간, 구치소에서는 연로한 장 노인을 돌보지도 않고 매일 채소국물만 조금 주었으며 아침은 모두 옥수수떡이었다. 노인의 작은 딸은 구치소에서 경찰에게 수갑으로 두 손을 거꾸로 채워졌고 둘째딸은 구치소 사악한 경찰에게 전기봉을 이용한 전기충격을 당했다.

뒤이어진 수 년 동안,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수련생들에 대한 박해는 점차 심해졌으며 노인과 딸들도 줄곧 끊임없이 괴롭힘과 박해를 당했다. 특히 작은 딸 가오룽룽은 2003년 선양 노신미술학원에서 선양시 610 및 공안이 결탁함에 의해 납치된 후, 선양 룽산(龍山)교양원에 불법 감금당했으며 사악한 경찰 탕위바오(唐玉寳)와 장자오화(薑兆華)에게 전기충격을 7~8시간 참혹하게 당해 얼굴부위가 심각하게 훼손됐다. 그 후, 한때 자유를 얻었던 가오룽룽은 사악한 악당 우두머리 뤄간(羅幹)이 직접 명령해 있는 힘을 다해 체포하라는 상황 하에 또 납치됐다. 가오룽룽이 전기충격을 가해 얼굴이 훼손당한 사진이 전 세계에 폭로되자 가오룽룽을 비밀리에 랴오닝성 마싼자노동수용소에 불법 감금했다. 2005년 6월 16일에 가오룽룽은 박해로 사망했다.

高母悲痛落泪
가오룽룽의 어머니가 비통해서 눈물을 흘리다

高蓉蓉年迈的父母申冤遭拒
억울함을 호소하려다 거부당한 가오룽룽의 부모

장쑨쿤 노인이 가장 애지중지하는 작은 딸이 참혹한 박해를 당하고 참혹하게 학살당해 노인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중국공산당은 무엇 때문에 좋은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가? 사람을 선(善)을 행하게 가르치고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게 하는 좋은 공법을 용납하지 못하는가? 가슴에 비통을 가득 품고 노인은 중병으로 앓고 있는 영감을 부축이면서 억울함을 하소연하려고 분주히 뛰어다녔다. 랴오닝성 검찰원 감소(監所) 검사처 부처장 린이(林沂)는 이미 전에 “가오룽룽은 파룬궁을 연마했기 때문에(그녀는 전기충격으로 얼굴이 훼손됐음) 특정한 역사시기의 특수사건에 속합니다. 랴오닝성 사무실에서 책임지고 사건을 처리합니다. 610 조직은 매우 방대한데 무엇이든 모두 관할합니다. 610 이 부서는 특정한 역사시기 산물이며 직접 정법위에 귀속돼 영도합니다. 이 사건은 애초에 610에서 관할합니다. 성 검찰원의 그 당시 공작도 610의 지휘를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 이 610은 여전히 파룬궁 이 유형 사건을 책임지고 처리하는데 그것은 여전히 이 직책입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랴오닝성 검찰원 감소 검사처 원래 처장 친춘즈(秦春植)는 더욱 노골적으로 말했다. “가오룽룽 사건은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랴오닝)성 610사무실, (랴오닝) 성위원회 성정법위원회 서기가 직접 참견했으며 뿐만 아니라 직접 선양시 610사무실에서 조사하고 처리하게 넘겼습니다.”

5년 동안, 억울함을 벗지도 못하고 심지어 사랑하는 딸 가오룽룽의 시신마저 사악한 중국 공산당에 의해 숨겨졌다. 가오룽룽이 박해로 사망해서부터 대량의 랴오닝성 공안, 국가보안, 사법 인원들이 가오룽룽의 시신을 선양 원관툰(文官屯) 빈이관(殯儀館)으로 압송한 후, 가족은 다시는 그녀의 시신을 보지 못했다. 장쑨쿤 노인과 가족은 지속적으로 중공 610, 공안 및 국가보안 특무의 괴롭힘과 박해를 당했다. 장쑨쿤 노인은 베이징 올림픽 기간 선양의 고향에 있었는데 선양 공안에 의해 감시 대상 명단에 올랐으며 베이징으로 돌아올 때 가로 막혀 저지를 당했다. 노인의 거주지인 선양시 허핑구(和平區) 신싱(新興)파출소 구역 경찰은 노인을 핍박해 파룽궁 수련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게 했다. 노인은 날카롭고 엄숙하게 “나의 목숨은 모두 나의 사부님이 주신 것이다. 당신이 나를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시키려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딸 가오룽룽에 대한 그리움, 딸이 당한 참혹한 박해와 당한 고통이 떠오르고, 사랑하는 딸이 억울함을 벗을 수도 없는데다 가족들도 계속해서 연루되어 박해를 당한 이 5년 동안, 지루한 고통의 시달림 속에서 장쑨쿤노인의 정신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2010년 7월 16일 가오룽룽의 노모 장쑨쿤은 억울함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장 노인은 딸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떠났는데 그녀는 딸이 억울함을 벗는 시각을 볼 수 없었다. 파룬따파는 노인에게 건강한 몸과 아름다운 생활을 주었지만 사악한 중공의 잔혹한 박해는 한 차례 한 차례의 고난과 비통만을 조성했다.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것은 천리다. 중국공산당 사당은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했다. 하늘은 꼭 가만두지 않을 것이며 그것에 대해 깨끗이 청산할 것이다. 같이 악행을 한 자들이여, 마땅히 자신의 퇴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모든 선량한 사람들 모두 중국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을 똑똑히 가려 중공을 이탈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길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09월 0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9/1/22907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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