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창춘 헤이쭈이쯔 노동수용소에서 쑨수샹이 당한 학대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지린 보도) 2005년, 가오즈성(高智晟)변호사가 그의 유명한 공개편지에서 창춘 파룬궁수련생 쑨수샹(孫淑香)이 당한 박해를 기술한 적이 있다. 이 부분의 기술을 보고 나면 사람들은 모두 중국 공산사당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의 잔혹함과 사악함을 체험할 것이다. 2009년 9월 22일, 쑨수샹은 재차 납치되었다. 창춘시 헤이쭈이쯔 노동수용소에서 9개월 동안 학대를 받고 몸에 뼈만 남은 쑨수샹은 2010년 6월에 집으로 돌아왔다(사진). 다음은 쑨수샹이 직접 자기 입으로 진술한 이번의 박해 내용이다.

 孙淑香从劳教所回来十天后(摄于二零一零年六月)

쑨수샹이 노동수용소에서 돌아와 10일 지난 뒤 모습(2010년 6월에 찍음)

경찰에게 납치되어 ‘등뒤로 채우기’ 고문을 당하다

2009년 9월 22일 오전, 쑨수샹이 어린 손자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와서 막 집문을 열자마자, 시 국보대대의 경찰이 입을 막고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한 후 다른 세 명의 사악한 경찰들이 집안에 뛰어들었다. 많은 개인물품과 금품을 강탈해 갔는데, 대법책 세 권, 진상 시디 20여 장과 쑨수샹 몸에 지녔던 진상화폐(삼퇴를 권고하는 등의 진상문구가 찍혀 있거나 혹은 씌어 있는 돈) 1천8백 위안을 포함해서이다.

시 공안국에서 사악한 경찰은 강제로 쑨수샹의 지장을 이른바 ‘자료’위에 누르게 했다. 사악한 경찰은 쑨수샹의 한쪽 팔을 억지로 어깨에서부터 아래로 당겨 가고는, 또 다른 한쪽 팔을 억지로 등뒤에서 위로 당겨 올렸다. 그리고 다시 수갑으로 두 손을 팽팽하게 채웠다(사악한 경찰은 이런 유형의 학대방식을 ‘검을 등에 짊어지다(背劍)’라고 부름). 쑨수샹의 비명소리 속에서, 사악한 경찰들은 그녀의 열 손가락을 하나씩 비틀어 사악한 경찰들이 꾸며낸 ‘자료’위에 지장을 누르게 했으며, 이 ‘자료’를 진일보해서 쑨수샹을 박해하는 의거로 삼았다.

3일 후, 쑨수샹은 창춘시 제3구치소로 보내져 불법 감금을 당했다. 구치소로 간 세 번째 날, 이른바 신체검사를 할 때 채혈을 하지 못해 쑨수샹을 창춘시 공안병원으로 보냈다. 쑨은 옆 칸의 파룬궁수련생들이 하나씩 강제로 묶여 링거를 맞히는 것을 들었다. 쑨수샹은 빈 병으로 벽을 두드려 박해에 항의했다가 한 일반죄수(파견되어 와 쑨수샹을 감시하는 수감된 죄수)에게 난폭하게 저지당하고 아울러 이 죄수의 공격을 당했다. 쑨수샹은 창춘시 공안병원에 감금당한 기간에 매일 강박으로 링거를 맞고 이름 모를 약물을 주사 당했다.

창춘시 헤이쭈이쯔 노동수용소에서 강제노동, 구타, 전기 충격을 당하다

한 달이 넘어서 쑨수샹은 창춘시 헤이쭈이쯔 노동수용소 1대대로 보내져 불법 감금당했다. 1대대 대장 옌리펑(闫立豊, 여, 40여 세)은 매일 쑨수샹을 핍박해 파룬따파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게 했으며 아울러 쑨수샹을 핍박해 대법과 사부님을 모독하는 이른바 ‘5서’를 쓰게 했다. 쑨수샹이 굴복하지 않았기에 감옥경찰은 한편으로는 쑨수샹을 강박해서 일하게 하고(바로 감옥 경찰을 위해 복리와 상금을 획득하게 하는 일임), 한편으로는 쑨수샹을 강박해 대법을 모독하는 텔레비전을 보게 했다. 어느 한번, 하루 동안 강제노역을 한 쑨수샹은 저녁 8시 30분에야 침실로 돌아왔는데 또 핍박으로 서 있었다. 20분 후, 쑨사샹은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다, 이튿날 쑨수샹은 강제로 침대에서 끌려 내려와 핍박에 못 이겨 일하러 갔다. 악인들은 체력적으로 쑨수샹을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또 정신적 신념에서 그녀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때문에 낮에 노동하는 기간에 쑨수샹을 핍박해 세뇌하는 것들을 보게 하고, 저녁에는 또 그녀를 핍박해 대법을 모독하고 대법사부님을 비방하는 것들을 보게 했다.

2009년 겨울에 첫 눈이 내린 다음, 옌리펑은 사악한 경찰 저우잔훙(周占紅, 여, 30여 세)에게 지시하여 쑨수샹을 영하 30여 도나 되는 날씨에도 눈을 쓸러 나가게 했다. 이튿날 눈을 쓸 때 쑨수샹은 더군다나 허약해져 이미 걸을 수 없었다. 사악한 경찰 왕레이(王雷, 여, 40여 세 전후)는 그녀가 늦게 걷는다고 나무라면서 강제로 힘껏 쑨수샹의 팔을 잡아당겼다. 쑨수샹은 왼쪽 갈빗대에 극렬하게 동통이 나는 감을 느꼈으며 숨이 올라오지 않았다. 쑨은 몸에 심각한 박해를 당하여 여러 차례 공안병원이나 혹은 중일연일(中日聯日)병원으로 보내져 강제로 몸을 검사하고 링거를 주사 당했다. 한번은 중일연합병원으로 갔는데 경비과(警衞科)의 사악한 경찰 한 사람은 쑨수샹이 말하는 것에 대하여 불만족하다는 이유로 쑨의 아픈 가슴과 위장 부위에 대해 세차게 한 대 쳐서, 쑨으로 하여금 숨을 쉬지 못하게 했다. 이 후 쑨은 장기간 밥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했으며, 위 부위에 통증이 생겨 쑨으로 하여금 더욱 심각하게 박해를 당하게 하고 매일 밥을 먹을 수 없을 수 없게 했다. 노동수용소에서 X-ray를 찍은 결과 쑨수샹의 창자줄기가 막혀 뱃속에 온통 공기가 찼다는 것이다. 쑨수샹이 한 번 기침을 하기만 하면 창자는 뱃속에서 아래 위로 뒤섞여 움직이고 몸은 극도로 허약해졌으며, 심장 박동이 아주 빠르고 숨이 올라오지 않았으며 또 늘 배를 문질러 아픔을 완화해야 했다.

매 번 쑨은 강제로 링거를 다 맞고는 몸이 어떠하든지를 막론하고 일을 해야 했다. 쑨수샹이 5서를 쓰지 않았기에 매일 정신학대를 받아야 했는데, 서있다가 서있지 못하게 되면 앉게 해서 대법을 모독하고 사부님을 비방하는 책을 보게 했다. 매일 11시거나 혹은 12시경까지 앉아 있어야 했다. 어느 하루, 저우잔훙은 계속해서 밀고 당기면서 쑨을 교도관실로 데려가 강박으로 5서를 쓰게 했다. 쑨이 쓰지 않자 저우잔훙은 전기 곤봉으로 쑨의 왼쪽 팔을 때려 검고 자주빛색이 되게 만든 다음, 강제로 필을 쑨의 손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저우잔훙은 쑨의 손을 잡고 강제로 5서 두 벌를 썼다.

어느 한번 옌리펑은 집에서 그녀에게 쑨수샹을 박해하지 말라고 권하는 정고편지를 받았다. 옌리펑은 좋게 권하는 말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편지를 들고 깡패 말투로 쑨수샹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을 박해하지 않으면 나는 이 호칭(필자 주:가능하게 편지 가운데의 사악한 경찰이나 악인 등 용어를 가리킴)에 미안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며칠이 지난 다음 옌리펑은 쑨이 이른바 ‘답안장’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기곤봉을 들고 쑨수샹의 얼굴부위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노동수용소에서 파룬궁수련생들에게 약간의 물건을 나누어 주기만 하면 그들은 곧 강박해 ‘총결’을 써서 그들을 찬양하게 했다. 쓰지 않으면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을 다해 파룬궁수련생을 괴롭게 만들엇다. 쑨수샹의 몸이 극도로 허약해진 것으로 인해 위생소에서는 옌리펑을 시켜 매일 쑨수샹에게 닭알 하나를 먹게 했다. 쑨수샹을 책임져 지키고 관리하는 죄수는 쑨수샹을 강박해서 매주 사상회보 위에 감사의 말을 쓰게 했다.

박해로 피골이 상접해지고 복부에 물이 고이다(腹部積水)

몸과 정신적 박해로 인해 쑨수샹은 피골이 상접하고 극도로 허약해졌다. 이렇다 할지라도 옌리펑과 저우잔훙은 여전히 바오자(包夾)두목 푸차오윈(負巧雲)을 지시 하여 일을 빨리 하라고 해 쑨수샹을 괴롭혔다. 마지막에 쑨수샹이 박해로 가위조차 들기 어려운 상황하에 옌리펑은 그제야 가족을 찾아 서명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쑨이 가족이 서명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자 옌리펑은 곧 “당신이 가족으로 하여금 서명하지 못하게 한다면, 당신이 죽어서도 노동수용소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각서를 쓰라.”라고 말했다. 이튿날 옌리펑은 쑨이 한 글자도 쓰지 않은 것을 보고 곧 쑨을 억지로 잡아 끌고 가서 링거를 맞혔다.

2010년 6월, 쑨수샹은 노동수용소 위생소로 보내져 강제로 링거를 주사 당한 다음, 머리가 어지럽고 사유가 똑똑하지 못한 감을 느꼈다. 이때 노동수용소의 톈(田)소장, 노동수용소 주재 검찰원 사람이 녹화기를 들고 쑨수샹을 녹화하고는 증거로 삼는다고 말했다. 검찰원 사람은 쑨에게 “그들이 당신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는데 당신이 기어이 일한 것이 맞지?”라고 물었다. 쑨수샹은 “맞아요. 그들은 하지 못하게 해요. 그러나 이튿날이면 나에게 일하라고 해요.”고 말했다. 녹화하는 사람은 앞의 한마디만 녹화하고 녹화를 멈추었다. 톈소장은 “다른 사람은 모두 스스로 나를 찾아와 서명하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데, 이건 도리어 내가 당신을 찾아야 했다” 고 말했다. 그런 다음 쑨은 두 번째 링거가 걸려 놓여진 뒤 2층에 가서 자기 아들을 가서 만나 보았다. 쑨수샹은 머리의 의식이 똑똑하지 않은 상황아래 아들을 시켜 이른바 ‘보석’위에 서명하게 했다. 저녁이 되어 몸에 열이 올랐기에 쑨수샹은 창춘시 중일연일병원에 보내졌다. 그곳에 도착하자, 방안에 경찰들로 꽉 찼는데 쑨수샹의 검사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엑스레이를 찍은 다음 쑨의 위 안에 세 갈래의 상처가 있다는 진단을 내렸으며 기침을 하면 안 되고, 울어도 안 되고, 재채기를 해서도 안 되는데, 재채기를 하고 기침을 하고 또 울거나 혹은 웃게 되면 위가 심하게 아프며 복부에 온통 물이 고인다고 했다. 의사는 “이 노인의 복부는 전부 병들었다. 천자(穿刺)검사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쑨수샹의 아들은 그제야 피골이 상접해진 어머니를 업어 집으로 돌아오게 허락 받았다.

집으로 돌아 온 뒤 쑨수샹은 끊임없이 파룬따파책을 학습하고, 파룬따파 5조공법을 견지하며 연마한 상황하에 그제야 점차 건강을 회복했다.

문장발표: 2010년 08월 3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8/31/229050.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