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우한 파룬궁수련생 류윈차오, 억울한 감옥살이로 생명 위독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베이보도) 우한(武漢)파룬궁수련생 류윈차오는 2009년 4월 황스시(黄石市) 샤루구(下陸區)법원에 의해 4년 불법 판결을 받고 사양(沙洋) 판자타이(範家臺)감옥에 불법 감금 되었다. 얼마 전 류윈차오의 가족은 사양 판자타이감옥으로부터 류윈차오의 병세가 위독하다는전화를 받았다. 서둘러 면회를 가보니 류윈차오는 피골이 상접했고 발등은 시퍼렇게 멍들었으며,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가족이 이름을 애타게 불러도 류윈차오는 긴 한숨을 한 번 몰아 쉴 뿐 이미 대답을 할수 없게 되었다.

가족은 류윈차오의 상태가 위급하므로 우한시로 옮겨 줄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감옥에서는 황스시와 우한시 610등 관련부문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며 도장을 받아오라고 했다. 가족은 우한의 시구역 610, 가도, 사회 구역 등을 찾아 도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장안구(江岸區) 610의 주임 후사오빈(胡紹斌)은 류윈차오가 이렇듯 완고하니 감옥에서 죽게 놔두라고 말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해 탕아가 마음을 고쳐 먹다

디자오(堤角)에 살고 있는 류윈차오는 어린시절 혼란기에 자랐다. 그 연대에는 반란을 일은키는 것이 도리에 바른시대였다. 어릴적부터 싸우기를 좋아해 사고를 쳤고, 그때마다 학교에서는 가족을 찾았다. 집에서도 마음이 상할 대로 상했다. 그때 사람들 마음속의 류윈차오는 나쁜 아이었으며 고칠 방법이 없다고 여겼었다. 그 후 건축대에서 미장이로 일했으며 온종일 정당한 일을 하지 않았지만 가도나 직장에서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류윈차오 자신도 삶의 의미를 느끼 못하고 자포자기하였다. 가정을 이룬 후, 생활이 아주 어려워 삼륜차를 운전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여전히 두목으로 행세하며 싸움을 해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의 장사를 강제로 점유했다.

이렇듯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하던 사람이 행운스럽게 ‘파룬따파’를 만나 인생이 개변되었다. 어느 날 아침, 류윈차오는 공원을 산책하다 파룬궁 연공음악소리를 들었다. 다가가서 보니 파룬궁을 소개하는 내용이 있었다. 또 심성수련, 성명쌍수(性命雙修), 우주의 특성 ‘쩐(眞), 싼(善), 런(忍)’에 동화 등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류윈차오는 아주 좋은 느낌이 들어 즉시 파룬궁을 수련하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그는 싸움을 일삼으며 빈둥거리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생활하고 본분을 지키는 좋은 사람이 되었다. 엄격하게 ‘쩐, 싼, 런’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심성을 닦았다. 지난날, 그렇듯 난폭하던 사람이 예의와 규칙을 지키고 양보하며 장사를 했다. 어느 날, 류윈차오는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뚱뚱한 두사람을 아주 힘들게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었는데 그들은 돈을 내지 않고 그냥 가려고 했다. 류윈차오는 그 부자(父子)에게 돈을 내지 않았다고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그 부자(父子)는오히려 눈이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고 욕을하며 돈을 주지않았다. 류윈차오는 “나는 수련인이다. 때려도 되받아치지 않고, 욕을 해도 말대답하지 않고 참아야 한다. ”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돈을 벌지 못했지만 수련인으로서 심성을 지켰다.

진상을 알리다 좋은 사람이 감옥에 들어가다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하자 류윈차오와 그의 가족도 중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수많은 파룬궁수련생과 마찬가지로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가족들은 류윈차오가 여러차례의 불법납치, 강제노동교양 판결을 받자 ” 좋은 사람이 되어도 불법 납치 당하니 공산당은 아주 나쁘다”고 말했다.

2000년, 류윈차오는 2년의 불법 노동교양을 처분을 받고 우한시 허완(何灣)노동수용소 2대대에 감금 돼 갖은 학대를 받았다. 사악한 경찰은 류윈차오를 두 발이 바닥에서 떨어진 상태로 35일 동안 매달았다. 또 장기간 어두운 독방에 갇힌 후, 두눈은 거의 실명할 정도가 되어 1m거리의 사물도 잘 보지 못했고 두 다리도 장애가 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악한 경찰은 류윈차오를 노동수용소에서 직접 세뇌반으로 보내 1개월 넘게 감금한 다음에 풀어주었다. 집으로 돌아온지 겨우 1개월 지난 2003년 1월, 두눈이 거의 실명에 가깝고 다리도 장애인 류윈차오는 또 사악한 경찰에 의해 강제로 납치되어 세뇌반으로 보내졌다.

2007년 8월 6일, 류윈차오는 우비린(吳碧琳)과 황포구(黄陂區) 288공장에서 진상을 알리다 중공에 독해되어 진상을 똑똑히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고하게 고발당해 우한시 황포구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2008년 9월 21일, 류윈차오는 황스 라오샤루(老下陸)파출소 부근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악의적인 고발을 당해 성이 마(馬)씨인 기사(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음)와 함께 라오샤루파출소의 경찰에게 납치 당해 황스시 제1구치소(즉 샤루구 펑례산(下陸峰烈山)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2009년 4월 1일, 황스시 샤루구법원은 류윈차오에게 4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했다. 류윈차오는 황스시 제1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한 기간, 황스시공안의 구타와 학대를 받았다. 장시간 밥을 배불리 먹지 못하게 하고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으며, 사악한 경찰은 류윈차오를 호랑이 의자위에 3일간 꼬박 묶어 놓았다. 당시 함께 붙잡힌 기사 마성챵(馬勝强: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음)도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하고 하루 동안 호랑이 의자에 묶여있었다. 마성챵도 2년 불법 판결을 선고 받았다.

몇 년 동안의 박해는 심신이 건강하던 사람을 불구로 만들었고 생명마저 위독하게 했다. 그런데도 중국 공산당 악인들은 여전히 사람을 풀어주려 하지 않고 있다.

문장발표: 2010년 09월 0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9/1/229088p.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