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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성 자무쓰시 파룬궁수련생 두후이가 당한 박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성보도) 자무쓰시(佳木斯市) 파룬궁수련생 두후이(杜輝)는 2005년 12월에 납치되어 불법 노동교양 박해를 당했다. 두후이는 이번 불법 노동교양 박해에 대해 “이것은 나의 일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이다. 그것은 육체에 대한 박해였을 뿐만 아니라 일종의 정신적인 파괴였다. 나는 죽고 싶을 정도로 슬프고, 존엄이 없고, 신체의 자유가 없었다. 늘 극도의 고통 속에 빠져 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 지옥 같은 나날들을 회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아래는 두후이가 진술한 사실이다.

나는 두후이라고 불리며 올해 34세이다. 나는 남편(한중-韓衆)과 1998년 10월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한 뒤 심신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다. 몸이 건강하고 가정이 화목해졌다. 세인이나 세상과 싸우지 않고 일에 부딪치면 먼저 남을 고려해 무사무아하고 도덕이 고상한 경지에 도달했다. 그리고 ‘쩐,싼,런(眞善忍)’만이 사람의 도덕을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과 인생의 참뜻을 알았다.

더욱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중공 일언당의 거짓말을 똑똑히 알리기 위해 나와 남편은 다른 네 명의 파룬궁수련생(왕스린(王士林), 리전진(李振金), 왕수셴(王淑賢), 리야제(李亞傑))과 2005년 12월 11일 저녁에 우리집 212 짚차를 타고 쑹장향(松江鄕) 신민촌(新民村)에 가서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돌아오는 중에 쑹장파출소는 경찰차 두 대를 출동시켜 우리를 불법 납치했다. 변명과 반박할 여지를 주지 않지 않고 야만적으로 우리 일행 6명을 끌고 갔다.

1. 구치소에서 당한 박해

불법 감금을 당한 기간에 경찰들은 나의 남편과 왕스린(王士林)을 단독으로 격리해 불법 감금했다. 왕스린을 방열기 위에 채워놓고 고문하여 자백을 강요했다. 그리고 소장 옌훙빈(闫洪斌)이 남편에게 혹독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고 폭력을 휘둘렀다. 세 명의 악경이 교대로 구타했는데 빗방울 같은 사나운 주먹이 남편의 머리와 몸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의 핸드폰을 강탈하고 위협했다. 네 시간 동안 우리에게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고 기편했다. 우리 네 명의 여파룬궁 수련생들은 선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그들에게 사람이 되는 도리와 파룬궁 진상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강제로 몸수색을 해서 나의 호주머니에서 집 열쇠를 빼앗았다.

12일 새벽 3시, 옌훙빈을 우두머리로 한 6명의 악경은 남편을 협박해 우리 상점과 집을 토비처럼 강탈했다. 방안은 온통 난잡하게 어질러졌고 집안에 있던 대법서적, 사부님 법신상, 파룬궁 진상자료, 컴퓨터, VCD 플레이어, 핸드폰, 제책기, 시디, 전자시계 등과 남편이 몸에 지녔던 3백 위안의 현금을 강탈해갔다. 그리고 우리 집 짚차(후에 2천 위안의 돈을 강탈하고야 되돌려 주었음)를 압수했다. 우리에게 만여 위안의 경제적 손실을 보게 했다.

그들은 이튿날 아침에 여전히 두 명의 경찰을 우리 집 부근에 잠복시켰다. 우리 가족이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 뒤쫓아 와 납치하려 하다가 우리 가족인 것을 보고는 손을 놓았다. 쑹장파출소는 또 다른 네 명의 파룬궁수련생의 집을 불법으로 수색했다.

시(市) 둥펑(東風) 공안분국과 시공안국은 10여 년 동안 줄곧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박해에 참여했다. 극히 악명이 높은 천완유(陳萬友)와 ‘610’의 류옌(劉衍)도 박해에 참여했다. 저녁 8시가 넘어서 우리를 자무쓰구치소로 납치해 18일간 불법 감금했다. 구치소에서 박해하는 동안 굳은 옥수수떡에 기름 한 방울도 없는 배추국만 먹었다. 우리를 핍박해 죄수복을 입게 하고 이쑤시개를 고르는 노역노동을 시켰으며 ‘다마야(大馬牙)’를 시켜 우리의 모든 행동을 감시했다.

이후 우리는 죄명을 뒤집어쓰고 3년의 불법 노동교양을 받아 12월 31일 자무쓰시 시거무(西格木)노동수용소에 불법 감금되었다. 남편 한중은 구치소에 15일 간 불법감금당한 뒤 자무쓰시 공안국 국가보안지대 교도원 천완유(陳萬友) 등에 의해 현금 2만여 위안을 갈취 당한뒤 풀려났다.

2. 노동수용소의 잔악무도함

불법으로 노동수용소로 납치된 후에야 우리에게 3년이란 불법 노동교양 판결서를 하달하고 우리를 핍박해 서명시켰다. 여 악경 왕슈룽(王秀榮)은 욕설을 퍼부었고 교도원 위원빈(于文斌)을 우두머리로 해서 쑨후이민(孫慧敏)과 루위(陸宇)와 한 패가 되어 우리를 핍박해 옷을 깡그리 벗기고 이른바 ‘검사’를 했다. 내가 협조하지 않고 서서 움직이지 않자 위원빈은 나를 꾸짖으면서 강제로 벗겼다. 브래지어와 팬티만 남았을 때 그녀는 다가와서 브래지어를 잡아당겨 한쪽에 던져버렸고 나의 팬티를 벗기려 했다. 옆에 있던 파룬궁수련생이 더 이상 보지 못하고 “그녀는 달거리가 왔어요.”라고 말했다. 위원빈은 듣지 않고 심한 말로 욕설하면서 팬티를 벗기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옆에 있던 감옥경찰들은 음흉하게 웃었다. 그 순간 나는 인격이 없고 존엄이 없음을 느꼈다. 중공 경찰은 백주대낮에 문을 열어놓고 이른바 ‘검사’를 했다.

악경은 나를 단독으로 격리해 강제전향을 시켰고 강제로 ‘전향서’를 쓰게 했다. 내가 협조하지 않자 사악한 여경찰 쑨후이민은 말끝마다 저속한 말을 했고 여경 리슈진(李秀錦)은 악독한 눈을 부릅뜨고 소란을 피웠다. “내가 바로 당신들이 접착 테이프로 붙여놓은 데서 말한 리슈진이다. 나를 어쩔 셈인가!” 이때 여경 위원빈은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사납게 귀뺨을 때렸다.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데 그 세 사람은 매우 포악하게 나를 눌러놓고는 손가락을 비틀어 펜을 손위에 밀어 넣었는데 펜이 튕겨 나왔다. 그녀들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반복해서 여러 차례 펜을 나의 손에 밀어 넣어 손을 꽉 잡고는 한 장의 백지위에 나의 이름을 써놓았다. 나는 “이것은 내가 쓴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나를 차고 어지러운 창고같은 작고 어두운 방으로 납치했다. 방안에는 창문 하나 밖에 없었는데 흰 종이로 붙여 놓아 햇빛이 조금도 없었고 침대위에는 이불이 없고 나무판만 있었다. 사악한 경찰은 내가 단식을 할까 두려워 한 죄수를 시켜 나를 지키게 했고, 말하지 못하게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했으며, 두 다리는 반드시 곧게 펴게 했다.

일주일 후 나를 강제로 작업실로 내려가 차 허리받이를 짜는 일을 시켰다. 매일 8시간의 과부하 노동을 했고 하루 종일 감옥경찰의 강제적인 관리와 박해를 당해야 했다. 말하지 못하게 하고, 발을 마음대로 놓지 못하게 하고, 눈을 감지 못하게 하고, 입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등의 박해를 했다. 그들은 늘 듣기조차 민망한 말들로 파룬궁수련생들을 모욕했고 ‘성범죄(性侵犯)’식으로 몸수색을 했다.

노동수용소에 있는 동안 감옥경찰은 새로 들어온 일반 노동교양인원을 진귀한 보물을 얻은 것 같이 그녀들을 훈련시키고 충동질해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했다. 형기를 늘이거나 줄이는 등의 수단을 이용해 그들은 유혹해서 강제로 그들이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에 참여하게 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매일 위협을 당해 강도를 초과한 노역노동을 하고 검은 가루로 만든 찐빵을 먹었으며 기름 한 방울 없는 국물을 마셨다. 반드시 매일 오전 5시경 일어나 10여 명이 함께 세수하고 이를 닦아야 했다. 그리고 가지런히 서서 가지 못하게 하고 말하지 못하게 했다. 만약 누가 말하는 것을 보기만 하면 귀신이 소리 지르는 것처럼 떠들썩하게 욕한다. 세수하고 화장실 가는 것마저 조금만 늦으면 욕을 먹는다. 독촉을 받아 신경이 긴장되어 어떤 이는 심지어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게 되었다. 화장실은 줄을 서서 가야 했다. 어떤 때에는 참지 못할 상황에서도 가지 못하게 했다. 대소변을 보는 차례가 되었을 때에는 이미 참다 못해 볼 수조차 없었다. 네 사람이 한 팀으로 ‘롄왕(聯網)’이라 불렀다. 반드시 함께 화장실에 가야했다. 밤에 잠을 자는 중에도 한 사람이 화장실에 가면 모두 일어나 따라가야 해서 늘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만일 악경의 규정대로 하지 않으면 형기를 늘려 박해했다.

자무쓰 노동수용소는 인간 지옥과 같다. 이곳의 악경은 진짜 깡패다. 중공은 이런 깡패를 사용해 훔친 국가권력을 보호하고 있다. 그들은 정말 동류이다!

내가 정신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자무쓰노동수용소 소장은 여감옥 의사 리쉐눠(李雪娜)와 결탁해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강제로 약물을 주사했다. 나는 그들이 심한 손상을 주어 죽일까 두려워 주사를 거부했다. 세 차례 주사바늘을 뽑자 악경 리슈진은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달래고 기편하면서 죄수를 시켜 나를 내리누르게 했다. 여섯 번째 날까지 맞았을 때 나의 팔은 이미 온통 바늘자국으로 빼곡히 찼고 피골이 상접했다. 바늘을 찔러도 들어가지 않자 그들은 조금도 인간성이 없이 미친 듯이 나의 팔에 주사바늘을 마구 찔러 땅 위에는 온통 피가 튀었다.

양심이 눈꼽 만큼도 없는 박해에 직면해 나는 사는 게 죽느니만 못했다. 나는 울면서 의사에게 찌르지 말라고 빌었다. 온 팔이 퍼렇게 되었고 손은 찐빵만큼 크게 부어올랐다. 리의사는 여전히 그만두지 않다가 내가 혼절하고 나서야 멈추었다.

불법노동수용소에 감금당한 동안 자무쓰시 공안국 국가보안지대 교도원 천완유와 ‘610’의 류옌(劉衍), 노동수용소 소장 쉬리펑(徐利峰)이 우리 가족에게서 현금 7천 위안을 갈취했다. 이어서 자오취(郊區) 공안분국 내보과(內保科) 과장 리완이(李萬義)가 가족에게 현금 5천 위안을 갈취한 후 2006년 9월말에야 나를 집으로 돌려 보냈다. 내가 돌아온 후, 자무쓰시 공안분국 국가보안대대 교도원 천완유와 그의 기사 뤼더창(吕德昌)이 우리집 상점에 와서 나를 여러 차례 교란하고 갈취해 나는 정신적 압력이 매우 컸다. 늘 놀라고 겁이 나서 벌벌 떨었고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당한 박해는 여전히 참혹한 박해를 당하고 있는 수없는 파룬궁수련생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들은 구치소, 노동수용소, 감옥에서 시시각각 양심이 없는 악인들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다.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주입당하고, ‘사인 침대(死人床)’위에 묶이고, 호랑이 의자에 앉히고, 전기 곤봉에 전기충격을 받고, 고춧가루 물을 주입당하고, 정신병원에 납치되고, 강제로 독극물을 주사당하고, 장기를 생체적출 당하는 등의 박해이다. 모든 박해수단은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분노하게 만드는데 그 죄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진술할 수 없다.

몸소 겪은 경험이 없다면 영원히 중공의 인간성을 상실한 박해가 얼마나 잔혹한지 상상할 수 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박해에 참여한 사악한 악도 옌훙빈 등은 중공에 의해 2등공으로 기록되었다. 『9평공산당』이 책은 중공의 치명적인 약점을 찔렀으며 중공의 사악한 본질을 폭로했다. 사람들이 빨리『9평 공산당』을 보고 옳고 그름을 똑똑히 가려 일찍 이 사악한 공산당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0년 08월 28일
문장분류:박해진상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8/29/228933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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