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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룬후이 노인, 지둥감옥 박해로 상황 위급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성보도) 66세 헤베이(河北) 노인 리룬후이(李閏慧)는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탕산(唐山) 지둥(冀東)감옥에 불법감금을 당했다. 현재 몸 상황이 극히 좋지 못한데 여러 차례 심장병이 도지고 사람은 아주 수척해졌으며 입은 중풍에 걸려 비뚤어졌다. 그는 병 보석으로 치료를 받도록 요구 했지만 거절 당했다. 그 후 감옥 측은 그의 직장에 통지를 했는데, 그의 직장 ‘610’측은 만약 ‘전향(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또 그를 정신병에 가두겠다고 리룬후이를 위협했다.

리룬후이는 화베이(華北)유전 채유2공장의 일반 직공이다. 2009년 5월 10일 저녁 집 안에서 납치 당하고 후에 7년 불법 판결을 받았다.

리룬후이는 탕산 지둥감옥 4지대 중심병원 외과로 납치됐다. 이 4지대는 사실상 ‘환자대’인데 여기에 가둬진 사람은 돈을 내고 연줄을 대어 들어온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심각한 병세가 있는 사람들이다.

리룬후이는 불법감금을 당해 들어 온 후 오래지 않아, 갑자기 심장병이 도졌으며 상황이 급박했다. 리룬후이는 연공을 하여 견지했으며 병원의 경찰은 그를 핍박해 위험이 나타나면 감옥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각서에 서명토록 했다.

2010년 초, 리룬후이는 또 한 번 갑자기 심장병이 도졌다. 리는 병 보석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요구했는데 감옥에서는 자격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 후 병원 책임자가 리룬후이의 몸 상황이 확실히 매우 위급한 것을 보고는 곧 법원을 통해 그의 직장 화베이유전 채유2공장에 통지했다.

채유공장 ‘610’의 류촨무(劉全木), 공안인원 왕이민(王一民)은 7월에 지둥감옥으로 가서, 리룬후이를 ‘전향’하도록 핍박했으며 아울러 리가 만약 ‘전향’ 하지 않는다면 그를 정신병원으로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리룬후이는 두 사람이 간 뒤 또 한번 심장병이 도졌다. 얼마 전에 리룬후이의 아들이 면회할 때 리룬후이가 아주 많이 수척해지고, 입도 중풍에 걸려 비뚤어졌으며 정신상태도 아주 좋지 않은 걸 보았다. 가족은 매우 걱정하고 있다.

리룬후이 노인은 이미 전에 질병으로 시달렸는데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몸이 가볍고 신체가 건강해졌다.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뒤, 리룬후이는 1999년 10월에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러 베이징으로 갔다가 납치당해 런추(任丘) 수이뎬(水電)구치소에 1개월간 불법감금을 당했다. 화베이유전 610은 또 그의 돈 2천 위안을 강탈했다.

그 후 중공의 박해는 끊이질 않았으며 공장에서는 사람을 파견해 리룬후이 부부를 감시했다. 2000년 3월, 리룬후이와 그의 아내 쑨구이친(孫貴芹)은 밖에서 연공하다가 또 공장 610에 의해 수이뎬구치소에 20일 동안 불법 납치를 당했으며 아울러 1천 위안을 강탈당했다. 같은 해 쑨구이친의 올케가 14세인 남자애를 데리고 그들의 집을 방문했다. 쑨구이친은 엄마와 아들 두 사람을 데리고 베이징으로 여행하러 갔다가 그 결과 모함을 당하게 되었다. 경찰은 리룬후이의 집안에 뛰어들어 세 사람을 납치하려 했는데 남자애는 굴복하려 하지 않았다. 3~5명의 젊은 경찰은 한줌에 그를 침대 위에 눌러 넘어뜨리고는 수갑을 채웠다. 차갑고 견고한 쇠고랑이 단번에 아이의 손목에 패여 들어가 상해서 피가 났다. 그 후 공장 610에서 쑨꾸이친의 올케가 거주하고 있는 곳에 전화를 걸어 그들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서야 풀어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도리어 정신적 충격을 당해 늘 저녁에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여러 방면에서 용한 의사를 찾아 오래 동안 치료를 해서야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러나 리룬후이 부부는 도리어 또 한 차례 수이뎬구치소로 불법납치를 당했다. 두 부부는 박해를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단식으로 항의했다. 리룬후이는 연이어 24일간 단식했다. 구치소의 경찰은 인명 사고가 발생할까 두려워 곧 강제로 음식물 주입을 했다. 리는 협조하지 않아, 치아 하나가 비틀려 빠졌으며 아울러 강제로 우유 한 근을 주입 당했다. 그의 위장도 주입 당해 손상을 입었다. 쑨구이친은 단식 후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2001년, 화베이유전 채유2공장에 파룬궁진상 현수막이 나타났다. 리룬후이 부부는 또 수이뎬구치소로 납치당했다. 그들의 딸은 그때 마침 결혼하려고 할 때였다. 마지막에 그들의 딸이 간청해서야 쑨구이친을 풀어 보내 딸의 혼례식에 참가하도록 했으며 그런 다음 또 납치했다. 2개월 후, 두 사람은 화베이유전세뇌반으로 납치돼 2개월 동안 박해를 당했다. 이 때문에 직장에서는 세뇌반에 8천 위안을 바쳤다.

화베이유전 형사경찰과 과장 리스전(李時珍)은 세뇌반 두목의 한 사람인데 45세 가량되었다. 그는 이미 전에 주먹으로 쑨구이친을 때린 적이 있다.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세뇌반에서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 어떤 이는 강한 햇볕에 오래 쪼이게 하고 마당에서 풀을 뽑게 했으며, 서서 밥을 먹게 하고 아주 늦게 잠을 자게 하거나 혹은 혹독하게 구타를 당했다. 세뇌반에서는 또 그들 전향 당한 사람들을 이용해 확고한 파룬궁수련생을 전향했는데 매일 여러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파룬궁을 모욕하는 동영상을 틀어놓았다. 무거운 압력아래, 리룬후이 두 부부는 핍박에 못 이겨 마음을 어기고 ‘전향서’를 썼다. 쑨구이친은 1개월 후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다. 리룬후이는 1년 불법 강제노동 결정을 받고 스자좡(石家莊)시 노동수용소에 불법감금을 당했다.

직장에서는 리룬후이의 월급을 중지했다. 리룬후이가 석방된 후 그에게 매달 300위안의 생활비밖에 주지 않았다. 그 후 공장에서는 명예퇴직을 실행했는데 다른 사람은 대략 16~17만 위안을 얻을 수 있었지만 유독 리룬후이만이 명예퇴직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쑨구이친은 세뇌반에서 나온 뒤, 자신이 사악한 경찰에게 협조해 마음을 어기고 ‘전향’하지 말아야 했음을 반성하고, 곧 세 통의 편지를 써서 자신이 폭력아래 쓴 이른바 ‘전향’을 폐기한다고 성명했다. 그 후 쑨구이친은 핍박으로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 다니게 되었다. 공장에서는 또 한 번 그녀의 동북의 고향집까지 쫓아갔다.

2007년 11월 1일, 리룬후이는 집을 나가 산책하다가 갑자기 공장의 사악한 경찰에 의해 세뇌반으로 납치돼 2개월간 박해를 당했다. 풀어 돌려보낸 다음, 리룬후이 부부는 사악한 경찰의 교란을 피하기 위해 또 한 차례 집을 떠나 생활을 했다.

올림픽 기간, 공장에서는 사람을 파견해 동북의 쑨구이친 친척집으로 쫓아가 그들을 찾았는데, 리룬후이 부부는 협조하지 않았다. 그 후 그들 두 사람은 불법으로 전국에서 지명 수배를 당했다. 2008년 말, 공장 ‘610’인원 류촨무(36세), 공안 왕이민(50세 가량)이 두 사람에게 이미 별일 없이 되었다고 기만하면서 리룬후이 두 사람을 유인하며 속여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2009년 5월 10일 오후 2시경, 공장의 사람이 리씨네 집으로 와서 책임자가 두 사람을 찾아 얘기를 하자고 한다고 말했다. 리룬후이는 거절했다. 그날 저녁에 곧 7~8명의 흉악한 경찰에게 납치당하고, 그 후에 7년 불법 판결을 선고 받았으며 탕산 지둥감옥 4지대 중심병원 외과에 불법감금을 당했다.

현재 리룬후이는 여전히 지둥감옥에 불법감금을 당하고 있는데 여러 차례 심장병이 도지고 중풍에 걸려 몸 상황이 극히 위험하다. 가족은 사방으로 뛰어다니면서 그를 구해내어 집에 돌아오게 하려고 하고 있다. 각계 선량하고 정의로운 인사들이 관심과 원조를 줄 것을 바랍니다.

문장발표: 2010년 08월 2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8/22/2286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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