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7년의 억울한 감옥살이, 단지 ‘진선인’을 신앙해서였다

(밍후이통신원 헤이룽장 보도)헤이룽장 성 솽청시 러췬향 부녀 왕수룽(王淑荣)은 “真善忍”을 신앙하는 것으로 공산당에게 붙잡혀 7년간 억울한 감옥살이하면서 박해 당했다. 아래는 그녀가 진술한 경위이다.

나는 왕수룽(57)이라 한다. 집은 솽청시 러췬향 유하오촌이다. 대법 수련 십 몇 년간 나의 심신에는 거대한 변화가 나타났고 많은 이익을 얻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은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으며 나는 여러 차례 박해를 당했다.

1999년 11월 초 나는 법률에 따라 베이징에 청원갔으며 베이징 공안에게 붙잡혀 3일간 감금당했다. 그 후 솽청시 정부사무실에 의해 솽청 간수소에 납치돼 2달간 감금당했다. 또 하얼빈 완자 강제노동수용소에 1년간 감금당했다.

2000년 말 나는 두 번째로 베이징에 파룬따파의 공정성을 말하러 갔다. 그때 천안문 광장에서 경찰에게 붙잡혔으며 파출소에서 그들은 나에게 전기충격을 가했고 옷 속으로 찬물을 부어넣기도 했으며 강박으로 마보(권술의 기본자세 중 하나)를 서는 등 형벌을 당했다. 그 후 또 솽청 간수수에 납치당했다. 20여일 후 또 만자 강제노동수용소에 보내져 2년간 박해를 당했다.

이곳에서 그들은 강제로 나에게 수련을 포기하라 했고 강제로 노예 노동을 시켰다. 여러 차례 나를 혹형했다. 두 손을 등에 묶고 높이 매달았으며 두 발끝만 간신히 땅에 닿게 했다. 이로 전신의 중력이 견갑골에 모여졌으며 매달면 몇 시간이었다.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작은 감방에 갇히기도 했다. 좁은 칸에서 냉랭한 침대에 한손은 수갑이 채워졌고 화장실에 갈 때에만 이 방에서 나갈 수 있었다. 또 장시간동안 쭈그리고 앉게 했으며 철의자에 앉히기도 했다. 온 종일 쪽걸상에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더욱 심한 것은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주입하는 것인데 내용물은 소금물이다. 나의 치아는 비틀어 열려져 느슨하게 됐다.

2004년 말, 나는 진상을 알리다 모함으로 현지 파출소에 붙잡혀 솽청 간수소에 갇혔다. 50여일이 지나서 3년 반을 선고 당했고 헤이룽장 성 여자 감옥에 납치당했다. 그곳에서 나는 여러 차례 작은 감방에 한 달 동안 갇혀 형벌을 받았다. 또 범죄자들의 감시로 나의 자유가 제한 당했다.

7년간의 억울한 감옥살이, 내가 도대체 무슨 법률을 위반했는가? 신앙을 견지하는 것은 매개 공민의 합법적인 권리이다. 그러나 오늘의 중국대륙에서 중공은 이렇게 심하게 박해하고 있다.

문장발표: 2010년 7월 2일

문장분류: 밍후이주보 169기 > 중국소식
문장위치: http://zhoubao.minghui.org/mh/haizb/169/A04/index.html#7135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