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통신원 헤이룽장보도) 하얼빈 파룬궁수련생 옌춘링(闫春玲·여)은 중공의 9년 불법 판결을 받았다. 7년이 지났으나 감옥 측은 옌춘링이 죄수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족과의 면회를 이미 2년간 금지해오고 있다. 가족은 무척 속을 태우고 있다. 옌춘링은 신앙을 견지해 장기간 독방의 열악한 환경에 가둬져 학대를 당했다. 그녀는 현재 이미 학대로 체력이 견디지 못하게 됐다. 전신이 아프고 혈압이 높으며 신근염이 있고 늘 구토를 하는데, 항상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한다.
운 좋게 대법을 얻어 심신이 건강해지다
옌춘링은 1963년 출생으로 하얼빈시 난강구(南崗區) 다즈가(大直街)에서 살았으며 하얼빈 제강소(鋼廠)의 실업 직원이었다. 옌춘링은 대법을 얻기 전에 체질이 약하고 잔병이 많았는데, 특히 신근염이 심했다. 그리고 담낭염, 갑상선 기능 항진증, 벤젠중독 등 각종 질병을 앓고 있었다. 1988년 1월, 결혼한 지 1년도 되기 전에 병원에 두 달 넘게 입원했었고, 매년 많은 의약비를 써야 했으며, 장기간 출근도 할 수 없었다. 집 계단마저 오르지 못했고 시어머니마저도 그녀를 약골이라 불렀다. 질병의 시달림으로 그녀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자주 했는데, 정말 아예 죽어버리고만 싶었다.
1994년 봄, 옌춘링은 운 좋게 대법을 얻었다. 수련을 한 후 오래 되지 않아 질병들이 전부 없어지고 심신이 건강해져 완전히 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시댁에서도 너무나도 신기하다고 여겼다. 가족과 이웃들도 대법이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주었음을 목격했다. 옌춘링은 대법에서 이로움을 얻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 대법을 끝까지 수련하겠다고 생각했다.
베이징에 대법을 실증하러 갔다가 ‘작은 백룡(小白龍)’ 매질을 당하다
1999년 ‘7·20’, 중공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인류 역사상 종래로 없었던 잔혹한 탄압을 시작했다. 연공을 하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모두 신문에 실었지만 옌춘링은 계속 수련을 했다. 직장에서는 그녀의 일할 권리를 박탈했다. 그녀는 박해로 생긴 곤란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으며, 베이징으로 가 자신이 몸소 겪은 것들로 대법을 실증하려고 결심했다. 경제 내원은 이미 끊겼다. 기차에 앉을 돈이 없어 그녀는 걸었다. 10월 2일에 거주지 난강구 허싱로(和興路)에서 시작해 10일간 지린성 궁주링(公主嶺)까지 걸어 왔을 때 악인에게 하얼빈 제2간수소로 납치됐다. 이 사악한 소굴에서는 아침 5시 넘어서부터 일을 시작해 줄곧 밤까지 일을 했다. 이러한 노역노동 박해에 대해 그녀는 단식으로 항의했고, ‘작은 백룡’매질을 당했다. 연공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2000년 1월 6일 석방될 때까지 70여 일 동안 수갑과 족쇄에 채워졌다.
2000년 5월 9일, 옌춘링은 두 번째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다가 기차에서 악경에게 납치돼 하얼빈 제2간수소로 보내졌다. 옌춘링이 거부하며 주사를 맞지 않자 악경은 그녀의 머리를 발로 밟으면서 사람을 불러 마구 두들겨 패게 했다. 나중에는 강제로 쇠의자에 앉게 했다. ‘3서(三書)’를 쓰지 않은 이유로 형기가 만기가 됐어도 여전히 그녀를 풀어주지 않았다. 옌춘링은 18일간 단식으로 항의했다. 이 기간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 당하고 괴롭게 며칠 간 학대를 당한 다음 1년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 받았으며, 완자(萬家)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학대를 당할 대로 실컷 당했다. 옌춘링이 ‘3서’를 쓰지 않자 독방에 가둬 바닥재(地板塊)에 2박 3일간 세워놓았다. 서있지 못하면 구타하고 큰 괘에 올렸으며, ‘비행기’에 앉기 혹형을 가했다. 옌춘링은 또 꼬박 2일간 남자감옥에 가둬진 채로 대소변을 보는 것도 금지 당했으며, 28일간 잠도 못 자게 했다. 그리고 장기간 독소가 있는 플라스틱 걸상에 앉혀 몸에 옴이 가득 자라났다. 교도소 의사는 피고름에 부스럼 딱지가 응결된 옴을 억지로 뜯어냈다. 너무도 아파 그녀는 죽을 것만 같았다. 감염으로 체온이 40도까지 올랐는데, 40여 일간 지속됐다. 그들은 가족과의 면회를 불허하고 노동교양 기한도 만기된 후 또 3개월 연기했다.
9년 억울한 옥살이 박해, ‘독방’에 1년 넘게 감금
2003년 5월 19일, 옌춘링은 재차 납치를 당했다. 악경은 죄명을 뒤집어씌워 옌춘링을 모함하여 억울하게 9년 징역으로 판결을 내렸다. 감옥에서 옌춘링은 사악의 판결에 대해 불복했으며, 서명을 거부했다. 그리고 죄수복 착용을 거부하고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했으며, 줄곧 독방에 1년 넘게 감금당했다.
옌춘링은 불법 판결을 받은 후, 줄곧 2004년 4월 28일까지 다섯 번이나 하얼빈시 여자감옥으로 보내졌지만 여전히 감옥에서 수감하지 않았다. 매번 감옥에 넣지 못하게 될 때마다 공안 악경들은 돌아온 후 화가 나서 옌춘링을 혹독하게 한바탕 구타했다. 후에 악경들은 연줄로 강제로 그녀를 여자감옥에 넣었다. 감옥에서 옌춘링은 사악의 어떠한 요구에도 협조하지 않았다. 감옥 악경들은 그녀를 97일간 독방에 가뒀다. 옌춘링의 가족은 악경들이 이렇게 할 거라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각종 박해 방식으로 인해 옌의 몸에는 신근염, 고혈압, 얼굴색이 파래지는 등 병 증상이 나타났다. 악경들은 생명위험이 있을까 두려워서 2004년 8월에 그제야 독방에서 풀어주었다.
2006년 11월 10일, 옌춘링은 또 11감구역으로 보내졌다. 그들는 ‘궁젠(攻堅)대대’라고 부르는데, 8명의 수감자가 그녀를 지켰다. 그녀는 굴복하지 않았으며 연속해서 며칠 동안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 감옥경찰 왕야리(王亞麗)는 그녀에 대해 손과 발로 치고받고 했다.
2008년 3월, 옌춘링의 노모는 딸이 이미 독방에 장기간 감금돼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옌춘링을 아는 어머니는 딸이 어떠한 법률도 위반하지 않았기에 노역노동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매우 명백히 알고 있었다. 감옥경찰은 그녀에게 수갑과 족쇄를 96일간 채웠는데, 어머니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옌춘링의 어머니와 올케는 거의 매달 감옥에 옌춘링을 보러 갔다. 그러나 2년 동안 그녀들은 한 번도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옌춘링은 장기간 독방의 열악한 환경에서 학대를 당해 현재 이미 체력이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전신이 아프고 혈압이 높이 오르며 신근염이 있는데다 늘 구토를 하는데, 그녀는 항상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한다.
장기간의 박해, 가족은 고통 속에서···
본래 이번 박해는 마땅히 발생하지 말아야 했다. 옌춘링은 이미 억울한 감옥살이로 7년간 박해를 당했다. 가정은 예전의 즐거움과 상화로움을 잃었으며, 몇 십 명 가족들의 정신은 시종 우울한 상태에 처해 있다. 무고한 옌춘링은 단지 자신의 신앙을 견지했을 뿐이다. 신앙은 죄가 없으며, 자신이 법률을 파괴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죄를 범했다고 인정할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 옌춘링의 가족은 옌춘링이 살아 돌아오기를 고통스럽게 기대하고 있다.
문장발표: 2010년 07월 19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7/19/2271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