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 통신원 장쑤성 보도) 2010년 6월 23일은 장쑤(江蘇)성 쿤산(昆山)시 파룬궁 수련생 천슈펀(陳秀芬)이 억울하게 세상을 뜬 지 7년 되는 제삿날이다. 이 마음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 혹독한 구타를 당하고, 엄지손가락 채우기 등 고문 학대를 당한 후, 억울하게 세상을 뜬지 이미 7년이 되었다.
천슈펀이 생전에 찍은 고해상도 사진
파룬궁을 수련해, 병이 사라지고 온몸이 가볍다
천슈펀 여사는 1942년 6월 3일 태어났다. 쿤밍시(昆山市) 폐기물질 회수공사(廢舊物質回收公司) 직원이었다. 집은 쿤산시(昆山市) 자오양신촌(朝陽新村) 20동 203호실이었다. 1996년 10월에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천슈펀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몸이 아주 좋지 않았다. 고혈압, 지방간, 담결석, 풍습성 관절염, 흉막염 등 질병이 있었는데, 몸이 불편할 때면 코에서 출혈이 몹시 심했다. 직장에서는 그녀가 오래된 환자이며, 약과 주사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수련한 이후, 온 몸의 병이 모두 기적처럼 사라졌다. 가정생활도 과거에 비해 더욱더 화목하고 행복해졌고, 남편 우훙치(吳鴻奇)도 대법수련으로 들어섰다.
1999년 ‘7.20’부터 중공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후, 재난이 천슈펀과 그녀의 가정에 들이닥쳤다. 쿤산 ‘610’(중국 공산당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만든 초 법적 불법 기구이며, 공안, 검찰, 법원 위에 군림하고 있음), 국보대대, 자오양(朝陽)파출소, 주민위원회 등의 인원들이 끊임없이 그들 부부를 핍박해 전향(즉 파룬궁 수련을 포기)시키고, 세뇌를 진행했으며, 장기간 감독 통제했는데 정신과 육체에 대한 학대가 이어졌다.
베이징에 가서 대법이 좋다고 이야기해, 납치와 고문을 당하다
2000년 6월 20일, 천슈펀과 현지의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은 함께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으며, 자신이 몸소 겪은 것들로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아름다움을 정부에 알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 때의 국무원 민원국은 근본적으로 파룬궁 수련생들의 청원을 받아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경찰들이 파룬궁 수련생들을 납치하는 장소로 되었다.
어찌 할 방법이 없이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은 톈안먼(天安門)으로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천슈펀과 그 밖의 수련생들이 톈안먼 광장에서 막 현수막을 펼치고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를 외쳤을 때, 한 무리의 미친 듯한 경찰들과 사복경찰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시비여하를 따지지 않고, 그들의 현수막을 빼앗아 갔으며, 정면에서 맹렬하게 한 바탕 혹독하게 구타, 전기 충격을 가한 다음, 현수막을 펼친 사람들을 전부 경찰차에 밀어 넣고 톈안먼 파출소로 보내 불법감금 시켰다. 당시 톈안먼 광장에서 납치된 파룬궁 수련생이 너무 많았던 이유로, 이미 다 가두기가 어렵게 되었다. 몇 시간 이후, 사람들은 또 베이징시 핑구현(平谷縣)수감소로 옮겨져 감금 당했다.
핑구현(平谷縣) 간수소에 도착 한 그 날 저녁, 일부 파룬궁 수련생들은 전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하룻동안 굶긴 후, 여전히 수갑과 족쇄를 채워 놓았다.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경찰들은 연속해서 혹독하게 구타했다. 경찰은 극히 저질적인 깡패의 언어로 욕설을 퍼붓고, 뺨을 때렸으며 두 귀에서 윙윙 소리가 나게 했는데 이미 다른 소리도 똑똑히 알아 듣지 못하게 되었고, 두 귀의 청력은 맞아서 엄중하게 손상되었다. 사람마다 맞아서 코가 시퍼렇게 되고 얼굴이 붓었는데, 머리 전체와 얼굴은 아주 크게 부어 올랐으며, 눈마저도 뜰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입과 코에서는 피가 흘렀으며, 온 입안의 치아는 전부 흔들렸다. 팽팽하게 채워진 수갑과 족쇄로 피부, 살이 마찰되면서 상했고, 살속까지 깊게 채워졌다. 경찰은 때리다가 지치면 또 다른 죄수에게 지시해 때리게 했다. 줄곧 이 사람들이 장쑤 쿤산사람들이란 것을 알게 될 때까지 고생시켰으며, 쿤산 경찰측에 통지해 그들을 쿤산으로 압송해 가게 했다.
쿤산 수감소에서 ‘엄지손가락 채우기’고문을 당해
천슈펀 등, 베이징에 청원 갔던 파룬궁 수련생들은 사람마다 맞아서 상처투성이었다. 쿤산에 압송해 온 후 전부 쿤산 수감소에 감금했다. 쿤산시‘610’ 두목 쭈싱(祖興), 국보대대 두목 리둥린(李冬林)을 우두머리로 한 경찰들은 또 새로운 한 차례의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종류가 아주 많았다. 단지 수갑과 족쇄로 사람을 학대하는 고문만 해도 몇 종류인지 모른다. 단지 크고 작은 무게, 용도가 다른 수갑과 족쇄만 해도 도대체 몇 종류인지 알기 어렵다. 일반 사람들은 오늘날 중국 공산당과 경찰이 파룬궁을 박해한 야만적이고 잔혹한 정도가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를 상상조차 할수 없을 것이다.
설명도: 엄지손가락 채우기 고문
천슈펀은 쿤산 수감소에 1개월간 불법적으로 감금을 당했으며, 이미 전에 엄지손가락 채우기 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 이런 유형은 반지보다 좀 더 큰 엄지손가락 쇠고랑인데, 전문적으로 엄지손가락을 채우는데 사용한다. 천슈펀의 고통을 더 증가하기 위해 경찰들은 천슈펀으로 하여금 두 손으로 감옥의 철 난간을 몇 대 에워 싸게 한 다음, 재차 두 손의 엄지손가락을 한데 채워 놓았다. 천슈펀의 체격이 비교적 작았기에 금방 시작해서 두 손사이에 에워 싼 철 난간이 너무 많았기에 경찰들은 그녀의 두 손의 엄지손가락을 한데 채울 방법이 없게 되었다. 악경들은 밀치락거리면서 천슈펀의 몸 전체가 팽팽하게 철 난간위에 바싹 닿이게 했다. 맨 마지막에 두 손 사이에 철 난간 한 대를 적게 안아서야 겨우 두 손 엄지손가락을 한데 채워 놓을 수 있었다.
열 손가락의 아픔은 마음과 연결돼 있다! 뿐만 아니라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이런 엄지손가락 쇠고랑과 수갑은 마찬가지며 역시 움직일 수록 더 팽팽해 진다. 채워져 잠깐 시간이 지나기만 하면, 두 엄지손가락은 천천이 색깔이 변하기 시작한다. 붉게 변했다가 새파래지고, 자색으로 변했다가 재차 검은 자색으로 변한다……전신을 모두 팽팽하게 바싹 철 난간위에 닿게 하고, 두 손을 철 난간을 에워 싸게 한 다음 엄지손가락을 한데 채웠기에 몸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렇게 특수한 자세로 오래 서있게 되면, 두 팔은 저리고 아프며 머리가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해 진다. 잠깐 사이에 사람은 견딜수 없을 정도로 아프게 되며 극도로 고통스럽게 된다.
수감소에서 나온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무릇 고문을 당한 사람은, 어떤 종류의 고문 학대를 받았든지를 막론하고, 고문을 가하기만 하면 쉽게 그 사람을 놔두지 않는다고 한다. 대소변에 관해서 화장실로 가든지 말든지, 밥을 먹든지, 잠은 어떻게 자든지 경찰은 근본적으로 다시 와서 이런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며칠이 지나서야 풀어줄지에 관해서, 그것까지도 경찰들이 언제 마음이 내키는가를 봐야 한다. 줄곧 천슈펀이 채워져 혈압이 올라가고 얼굴색이 이상이 생겼을 때까지 채웠는데, 경찰들도 인명사고가 생길까 두려워 그제야 그녀를 풀어 주었다. 이런 혹독한 구타, 욕설, 엄지손가락 채우기 고문을 당할 때는, 천슈펀이 58세 생일을 막 맞은 다음이었다. 이 연령의 사람은 사실 거의 그들 젊은 경찰들의 부모의 연령이다.
다시 납치와 세뇌를 당해 억울하게 사망
천슈펀이 두 번째로 납치된 때는 2002년 7월이었다. 쿤산 ‘610’과 국보대대에서 제2기 세뇌반을 조직했을 때인데, 강제로 천슈펀이 참가하도록 요구했다. 천슈펀이 거부하자 사악한 경찰들은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네 명의 경찰들은 토비처럼 한꺼번에 떼지어 몰려왔으며,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여 장슈펀을 땅위에 때려 엎어 놓았다. 장슈펀의 옷, 머리가락, 팔을 꽉 틀어잡고 땅위에서 끌었는데 줄곧 아랫층으로 가서 경찰차에 밀어 넣을 때까지 끌었다. 이렇게 납치된 다음 세뇌반으로 보내 세뇌를 진행했으며, 1개월간 불법감금을 했다.
끊임없는 정신적 괴로움과 육체적 고문 학대는 천슈펀의 건강을 철저히 파괴했다. 원래 착하고, 그다지 말하기 좋아하지 않던 천슈펀으로 하여금 정신적 괴로움이 극에 달해 극한을 견뎌왔다. 2003년 6월 23일 저녁 9시가 넘어서 쿤산시 중의원(中醫院)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 갔다.
천슈펀이 세상을 떴을 때, 그녀의 두 아들 딸들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다. 현재 아들과 딸은 모두 이미 자기의 아이가 있다. 애석하게도 천슈펀은 귀여운 손자 손녀들도 보지 못하게 됐다. 집에는 남편 우훙치(吳鴻奇) 혼자만이 남아 천슈펀의 위패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남편 우훙치가 당한 박해
천슈펀의 남편 우훙치는 중등 전문 학교 출신인데, 1938년 12월 6일 출생했다. 부부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대법을 수련하여 가져온 아름다움을 몸소 함께 겪었으며, 함께 법공부를 하고 정진했다. 그리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했다. 2000년 9월 8일 대법자료를 복사한 이유로, 진상에 똑똑하지 못한 세상 사람에게 고발을 당했다. 우훙치는 쿤산시 둥먼(東門)파출소 악경에게 납치돼, 간수소로 보내져 1개월 불법감금을 당했다. 2002년 5월 또 경찰에게 납치돼, 제1기 세뇌반으로 붙잡혔고, 강제로 세뇌를 당했으며, 1개월 불법감금을 당했다.
천슈펀이 억울하게 세상을 뜬 7년 이래, 그녀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은 매번 벽에 걸린 유상을 볼 때마다, 그녀가 생전에 당한 일련의 고문 학대의 처참한 조우가 떠올라 모두들은 마음이 몹시 비통해하며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번 큰 재난은 이미 꼬박 11년 지속됐다. 각종 원인으로 여태껏 폭로해 내지 못한 사건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쿤산, 전국 경제의 100대 현 중에서도 앞자리를 차지하는 현급에 속한 도시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박해로 사망하고, 상해를 입고, 불구로 되는가? 희망하건대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연속해서 폭로하시기 바란다. 쿤산 현지 민중들로 하여금 쿤산 ‘610’ 과 국보대대의 사악한 경찰들이 어떻게 파룬궁을 박해했는지를 다 알도록 하게 하자. 중국 공산당의 죄악을 폭로하는 것이 바로 국민들의 각성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누락된 기타 박해 경위 및 직접 천슈펀을 박해한데 참여한 흉악한 자들의 이름, 연령, 직장 등 개인 정보는 또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연속해서 보충해주기 바란다.
천슈펀을 박해한데 참여한 책임부문과 책임자:
쿤산시 정법위원회
쿤산시 공안국
쿤산시 ‘610’사무실
‘610’사무실두목 쭈싱(祖興) 및 수하에서 박해에 참여한 하수인
쿤산시 국보대대 (원 쿤산시 공안국 정보과)
국보대대 두목 리둥린(李冬林) 및 수하에서 박해에 참여한 하수인
쿤산시 자오양파출소 악경
쿤산시 둥먼파출소
쿤산시 자오양가도위원회 불법인원
쿤산시 자오양사회구역 불법인원
쿤산시 간수소
세뇌반 악인
문장발표: 2010년 07월 21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7/21/22726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