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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성 컴퓨터 기술자 류보 억울하게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 통신원 구이저우 보도) 구이저우성(貴州省) 건설은행 컴퓨터 기술자이자 파룬궁 수련생인 류보(劉波)는 장기간 직장 불법인원, 현지 ‘610(중공의 파룬궁 탄압 불법 기구)’과 경찰의 박해, 학대를 당한 이유로, 2010년 4월 14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류보, 1961년 출생, 1984년 총참3부(總參三部)의 정저우(鄭州) 정보공정학원(信息工程學院)을 졸업했으며, 졸업 후 군부대에서 일했다. 이미 전에 부대 대군구(大軍區)과 총부에서 기술 진보상, 우수 기술공작자, 선진개인 등 상을 획득한 적이 있다. 이후에 지방 구이저우성 건설은행 과학기술처로 일자리를 옮겨 컴퓨터 기술자로 임직했으며 직장의 기술 핵심이었다.

대기근 연대에 출생한 이유로, 류보는 어릴 적 부터 몸이 허약하고 잔병이 많았는데 10살 때에 아메바 이질, 급성 간염에 걸렸다. 그의 부모가 일이 바빠 그를 많이 보살펴 줄 겨를이 없었던 이유로 그의 간염은 결국 만성간염으로 발전됐다. 1993년 6월, 류보는 부대 병원에 입원했는데 간경화로 진단을 받았다. 그 때 그는 밥도 먹을 수 없었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으며 몸은 허약하고 무기력 했다. 그리고 머리는 풀을 가득 주입한 듯한 느낌을 느꼈는데, 장기간 치료해도 효과가 없었으며 희망이 없이 고통 속에 처해 있었다.

그 다음 류보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온 몸의 질병들은 약을 먹지 않고도 전부 나았다. 그로부터 20여 년 간의 간질환 고통에서 벗어났다. 류보는 파룬따파의 법리 ‘쩐싼런(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으며, 직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공인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공무로 건설은행 하급 단위로 가서 검사하고 일을 도와 준 이유로 하급 단위에서 보너스 혹은 토산품을 주었지만 그는 가능한 모두 사양했다. 사양할 수 없으면 건설은행 기술자들에게 넘겨주거나 혹은 전해 주었으며 자신은 갖지 않았다.

1999년 ‘7.20’, 중공은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했다. 광적으로 탄압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해 모함했는데 온 천지를 뒤엎을 듯했다. 류보는 각종 기회를 이용해 직장 동료 및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 때문에 ‘610’의 눈엣가시가 됐다.

2001년 1월 가을, 구이저우성 건설은행은 구이저우성 ‘610’과 협조해 류보를 박해했다. 외근이라는 명의로 그를 유인해 차에 오르게 하고, 그를 중바(中八)세뇌반으로 납치했으며, 반 년간 감금 박해했다. 2002년 봄, 류보는 세뇌반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건설은행에서는 그의 기존 일거리를 주지 않았으며 억지로 직장을 떠나도록 강요했다.

2002년 가을, 구이저우성 건설은행에서는 재차 구이저우성 ‘610’과 협조해 류보를 베이징루(北京路) 파출소로 납치했다. 많은 경찰들이 공개적으로 류보를 구타했으며, 그의 몸에 지녔던 대법책, 핸드폰과 신분증을 빼앗아 갔다. 베이징루 파출소에서 류보는 족쇄에 채워졌고, 몸은 ‘대’자형으로 벌려져 철문 위에 10여 시간동안 채워졌다. 이튿날 오전, 류보는 간수소로 납치됐으며 욕을 먹고 구타를 당하는 등 학대를 받았다. 핍박으로 화장실 옆 땅위에서 잠을 잤는데 발을 반드시 화장실 안에까지 펴서야 곧게 펴고 누울 수 있었다.

이후에 류보는 3년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 받았다. 노동수용소에서는 류보가 이미 전에 간경화로 앓은 적이 있다는 걸 알고는 한 번 수감을 거절했다. 이후에 ‘610’의 지시하에 류보는 불법 노동교양을 받았다. 류보는 중바 노동수용소로 들어가자마자 즉시 경비대에 가둬져 강제 ‘전향’을 당했다. 그는 거부했고 ‘전향’하지 않았다. 악경과 마약범들은 곧 매일 그를 혹독하게 때렸다. 어떤 죄수는 걸상으로 그의 몸을 마구 때렸으며 장시간 그를 벌 주어 서있게 했다. 이렇게 세우면 3,4일을 세웠으며 잠을 자게 허락하지 않았다. 악도들이 류보를 납치해 간 후 또 그의 가족에 통지하지 않은 원인으로, 겨울철이 다 돼서도 류보는 여전히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악도들은 여전히 죄수들을 지시해 류보 몸 위에 냉수를 끼얹었으며 저녁이면 또 개를 풀어 물게 했다.

이렇게 대법을 수련해 건강한 신체를 얻었던 류보는 2-3개월 만에 이런 악인들의 학대로 사경에 이르게 됐다. 노동수용소 의무실에서는 간경화가 심해졌다고 말하면서 병보석으로 치료를 받게 하라고 시켰다. 그러나 ‘610’과 건설은행 악인들은 류보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강제로 그를 구이저우성 공안병원에 가뒀으며 계속해서 박해를 실시했는데 줄곧 2005년 9월까지 박해했다.

류보가 불법 노동교양을 당한 기간, 건설은행에서는 류보의 월급 지급을 중지했으며 류보가 파룬궁을 포기하지 않으면 그에게 공작을 안배해 주지 않고 월급 지급을 중단한다고 표명했다. 아울러 2006년 6월 류보를 강박해 노동계약을 해제했다.

장시기 박해 때문에 류보의 정신과 몸은 극히 심한 손상을 입었다. 신체 상황이 갈수록 나빠졌는데 2010년 4월 14일에 인간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2010년 07월 15일

문장분류:박해진상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7/15/227036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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