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통신원 쓰촨보도) 샤오쭌이(肖尊義)는 쓰촨(四川)성 청더우(成都)시 다이(大邑)현 파룬궁수련생이다. 견정하게 진(眞), 선(善), 인(忍) 대법을 수련한 이유로 99년 이래 여러 차례 불법으로 가택수색, 납치,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으며 벌금 등 박해를 당했다. 다음은 샤오쭌이가 자술한 직접 겪은 것 들이다.
10년 동안,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이유로 거듭 중공이 지시한 사악한 경찰(이하 악경)의 벌금, 가택수색, 납치,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 당하며 학대를 받았다.
파룬따파와 사부님이 중공으로부터 근거 없는 모함을 당한 후, 1999년 9월말 어느 날 우리 현지 70여 명의 동수들이 어떻게 법공부를 견지하고, 연공을 했으며, 계속해서 자신의 문제를 제고 했는가를 중녠원(鍾年文)의 집에서 한 차례 단체교류를 진행하였다. 교류를 진행하던 중에 우리는 나쁜 사람에게 무고를 당했다. 사부님의 보호 하에 모두 신속히 떠났다.
그 날 악경은 중녠원, 쑹슈잉(宋秀英)부부를 다이 진위안(晋原)진 파출소에 불법으로 구류시켰다. 이튿날 신창(新場)파출소의 악경 우샤오룽(伍小龍)은 나 마저 진위안(晋原)진 파출소로 납치하였다. 류쉐메이(劉學梅), ‘610’(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설립한 불법적 기구이다. 이 기구는 중국대륙 각급정부에 널리 분포되어 있고,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을 조종하여 무고한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한다)의 악경 등 6명의 사람들이 나에 대해 고문을 가해 자백을 강요하였는데, 나로 하여금 교류회를 진행한 상황을 말하라고 하였다. 그들이 어떻게 고문을 하든지, 나는 어떠한 것도 누설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악경들은 우리 세 사람을 15일 불법구류 시켰으며, 매 사람에게서 150위안을 강탈하고 나서야 우리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당시 나와 수련생은 베이징으로 법을 실증하러 갔다. 베이징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악경에 의해 가로막혀 베이징주재 쓰촨사무실로 납치 되었으며, 이틀 후 또 청다오계독소(成都戒毒所)로 납치되어 왔다. 악경은 내 몸에 지녔던 모든 현금을 깡그리 수색해 냈으며, 나를 다이수감소로 가둬 넣었다. 그들은 나에게 베이징으로 간 목적을 협박하며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대법을 수호하기 위해서, 베이징에서 사부님의 결백함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들은 또 나를 15일 불법구류를 시켰다.
간수소에서 나오자 둔이향(敦義鄕)무장부장 정쉰쩌(鄭訓澤)는 치안대대장 주총화(朱從華)를 파견하여 나를 둔이 향정부로 납치했다. 정은 나에게 나를 찾아 온데 소요된 차비와 생활비조로 500위안을 강탈하고 나서야 나를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집에 돌아 온 후 알게 되었는데, 내가 베이징에 법을 실증하러 간 기간에 정쉰쩌는 아내가 문을 잠그고 외출하자 집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파출소경찰 천쓰쓰(陳厶厶), 촌장 푸더린(付德林), 치안원 양훙원(楊洪文)으로 하여금 문을 부수고 쳐들어가게 했다. 그런 다음 담배, 식품, 조미료, 위생용품, 학용품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을 빼앗아갔는데, 대략 1천5백 위안 정도의 물건들이었다.
2001년 3월 어느 날, 악경 유안쥔(游安軍), 류쉐메이(劉學梅)와 ‘610’주임이 나의 집에 와서 나의 녹음기 한 대와 연공테이프 두 세트를 빼앗아갔다. 2002년 5월, 신창파출소 우샤오룽이 또 우리 집에 와 가택수색을 하였으며, 사부님 법신상 두 장, 녹음기 한 대를 빼앗아갔으며, 또 수련할 때 읽는 경문과 자료가 있었다. 이어서 그들은 나를 신창파출소로 납치하고 큰 의자 위에 하루 동안 밤낮으로 채워 놓았고, 대소변도 보게 못하였으며, 나에게 자료출처를 협박하며 물었다. 그들은 또 나에게 서명하도록 시켰지만 나는 거부했다. 후에 성이 위안(袁)이라는 경찰이 나를 강제로 다이간수소로 압송해 1달 동안 형사구류를 시켰다.
2003년, 다이공안국1과 과장 저우원차이(周文才), 악경 류쉐메이, 610사무실주임이 나를 신창파출소로 납치했다. 그들이 여러 방면으로 나서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며 나에게 자료출처를 말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후에 진위안파출소 악경 양융(楊勇)과 둔이(敦義)치안원 리웨이(李偉), 천타오(陳濤)가 나를 신창파출소로 납치하였으며, 저우원차이가 전문적으로 나에 대해 심문을 진행했다. 나는 두 시간 동안 묶여 있었는데, 손이 만두처럼 부어 올랐다. 내가 쇼크상태에 처하자 그들은 나를 내려놓았으며, 재차 찬물을 끼얹어 나를 정신차리게 하였다. 저녁 때 저우원차이는 또 나에 대해 자백을 강요하였는데, 고문하고 발길로 차며 땅 위에 꿇어 앉게 하였다. 나는 이렇게 반복해서 8일 동안 밤낮 자백을 강요 당했다. 그 기간 악경은 나를 자지 못하게 했으며, 내가 눈만 감기만 하면 곧 나를 때렸다. 여덟 번째 되던 날 밤중에, 나의 수갑은 저절로 풀어졌다. 나는 사부님이 나를 가도록 한 것이라 깨달았다. 이렇게 나는 순조롭게 소굴을 벗어나게 되었으며, 의지할 곳을 잃고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는 나날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내가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 다닌 9개월 동안 악경은 도처로 나의 행방을 찾았는데,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후에 저우원차이가 과장직무에서 해직당했다.
2008년 8월 올림픽 전야에 악경 옌보(嚴波), 유안쥔(游安軍), 슝융(熊勇), 610의 주임 양량(楊良) 등 6명이 어떠한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재차 나에 대해 불법가택수색을 진행하였다. 어떠한 자료도 수색해 내지 못한 상황 하에 나를 신창파출소로 납치 했다. 당시 나는 세 수련생이 이미 파출소 정원 안의 나무 위에 묶여있는 것을 보았다. 악경 옌보(嚴波), 유안쥔(游安軍)은 번갈아 가면서 나에 대해 자백을 강요하였다. 나에게 자료를 어느 곳에 놓았는지를 물었지만 나는 거절하며 협조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었다. 맨 마지막에 그들은 아무런 수확이 없게 되자 어쩌는 수 없이 공안국으로 돌아 갔다.
문장발표:2010년 06월 29일
문장분류:박해진상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6/29/2261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