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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민족대학 여교수 량보, 경찰에게 재차 납치당해

[밍후이왕] (밍후이통신원 베이징보도) 중앙민족대학 원좐(文傳)학원의 여교수 량보(梁波)가 현재 불법으로 하이딩(海定)구치소에 감금되어 있다.

량보는 2009년 5월 18일에 민족대학 원좐학원에서 납치당한 후, 단식으로 박해를 제지하는 과정 중에 생명이 위급해져 가족이 집으로 데려왔다. 그 후 2010년 5월 20일, 하이딩분국에서는 량보에게 분국에 가서 사건을 마무리하라고 했으나 그녀는 거절했다. 하이딩분국에서는 강제로 량보의 집에 뛰어들어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한 후 폭력적으로 그녀를 납치했는데, 그녀에 대해 체포, 판결을 내리려고 도모하고 있다.

량보는 품행이 단정하고 사람 됨됨이가 정직하고 선량하다. 그녀가 재차 중공당국인원의 납치를 당해 현재 집에 있는 두 아이를 보살펴줄 사람이 없다. 남편은 중공사당이 아내를 납치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량보가 파룬궁수련을 견지하고 자신의 도덕성을 높인다는 이유만으로 일가족은 장기간 중공사당 각급인원에게 교란과 박해를 당했다.

1. 강의할 권리를 박탈당하다

량보는 1995년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하였다. 1998년 석사연구생을 졸업한 후 민족대학 중문과 교수로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과 학생들을 사랑했다. 항상 파룬따파 ‘쩐, 싼, 런(眞, 善, 忍)’ 표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여 좋은 사람이 되었고 좋은 교수가 되었다. 학생들과 지낸 짧은 기간에 그녀는 두 과의 과주임과 뉴스교육을 맡았다. 학생들에 대한 세심하고 인내성 있는 애호와 교단에서의 자태를 학생들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1999년 7월 22일, 장쩌민과 뤄간 범죄 집단이 사심과 이익, 소인의 질투를 갖고 제멋대로 파룬궁수련생을 전면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중공은 모든 국가의 폭력기구와 여론선전 도구를 이용하여 파룬궁에 대해 먹칠을 하고 비방, 모함하며 탄압하였다. 중앙민족대학은 중공폭정을 위해 쇼를 하고, 그의 통치를 위해 복무하면서 줄곧 사당을 바싹 따랐다. 이른바 유명한 전문가를 이용하여 탄압의 기세를 올려 대법에 먹칠하고 교내 모든 학생들을 독해한 외에, 또 《중화인민공화국헌법》, 《교사법》의 관련규약과 《국제인권공약》관련규정을 위반하였는데, 본교에서 무고하게 박해를 당한 파룬궁수련생을 보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산당을 도와 나쁜 짓을 했으며 적극적으로 박해에 참여하였다.

1999년 9월, 량보는 파룬따파를 견지한다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과주임 자격을 취소당하고 강의할 권리마저 박탈당했다. 또한 승진도 허락하지 않았으며, 업무도 맡기지 않았다. 또 학교 측에서 늘 사람을 파견하여 ‘담화’, ‘사상공작’ 명목으로 소란을 피우고, 보안인원을 파견하여 24시간 그림자처럼 추적하고 감시, 통제하였다. 한 번은 한 보안인원이 백주 대낮에 창문을 통해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2. 비밀리에 납치당하다

2003년, 량보는 하이난(海南)국도대대에 의해 불법으로 납치된 후, 며칠 동안 실종되었다. 가족은 근심 걱정으로 애간장이 타서 여러 번 학교에 문의하였다. 학교 측은 속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도리어 거부하면서 가족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불법으로 감금당한 기간, 량보는 임신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얼굴도 내밀지 않던 학교 측은 박해에 계속 협조하려고 여러 차례 사람을 파견하여 학교병원, 가도 등 서로 관계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왔다. 그리고 서로 돌아가며 강경책과 온화책을 함께 썼다. 악인들은 이미 임신 4개월이 넘고 남편 등 가족이 곁에 없는 상황에서 량보에게 분만촉진 방법을 쓸 것을 요구했다가 본인과 가족의 과격한 말에 거절당하고 나서야 그만두었다.

2004년 8월부터 민족대학에서는 량보의 월급지불을 중지하였으며, 일체 복리대우도 취소하였다. 학교 후방근무 관리처에서는 또 강제로 교내 직원아파트를 회수했는데, 부처장 탄자젠(譚家健)이 심야에 사람을 파견하여 집에서 나가라고 하면서 방안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을 무지막지하게 때려 다치게 했다. 탄자젠은 학교에서 이미 해고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량보는 여러 차례 전보를 치고 직접 학교로 가서 관련부문들에 이 일을 문의하였지만 서로 책임을 떠넘걌다. 인사부의 포청취안(樸承權)은 또 이전에 악담을 하며 위협한 적이 있는데, 량보는 지금까지도 학교 측으로부터 해고에 관한 정식문서를 받지 못했다.

3. 공개적인 납치

2009년 5월 18일, 량보는 학교에 와서 학교 측에서 말한 자신을 해고한다는 정식문서를 찾아보았다. 원좐학원 서기 류춘쉬(柳春旭)가 일부 서류를 펴본 후에 관련문서를 찾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이미 보위과에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량보는 이전에 학교 측 인사부에 갔는데, 업무를 맡은 사람이 문서가 원좐학원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자 파출소 경찰이라고 자칭하는 평복을 입은 사람 3명이 량보에게 완서우쓰(萬壽寺)파출소로 가서 “담화하자.”고 하였다. 량보 자신은 단지 학교에 와서 문서를 찾아 보려할 뿐이니 파출소까지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을 즉시 흉악한 몰골이 여지없이 드러내면서 “가고 싶어도 가고, 안 가고 싶어도 가야 한다.”라고 떠벌렸다.

그날 밤, 량보는 하이딩 구치소로 보내졌는데, 진일보로 가해하고 불법판결을 내리려고 모의하였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이 박해 행위를 두려움이 없이 저지하였다. 그 기간 매일 두 번씩 야만스럽게 강제로 호스를 꽂고 음식물을 주입 당했다. 3번이나 999구급센터에 보내져 응급 치료를 했다. 몸이 극도로 허약해져 생명이 위급해지자 가족에게 데려가게 했다.

량보는 중앙민족대학의 정식 직원이므로 학교 측에서 해고를 할 때는 해고문서를 당사자에게 송달할 의무가 있다. 당사자가 가서 찾아 본 것도 당연히 정당한 요구에 속한다. 그런데 학교 측 관계자는 무엇 때문에 량보가 이 문서를 보는 것을 이렇게 무서워하는가? 좋은 사람이 되려는 량보에 대해 그들은 ‘경제적 단절’을 하고, 또 이렇게 사악하고 잔인하게 ‘육체 소멸’을 시도하고 했다. 일이 있고난 후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학교 측은 거짓말을 퍼뜨려 자신들의 떳떳하지 못한 추태를 감추려고 했다. 이런 면모는 고등학부의 고상함을 더럽힘과 동시에 나라의 관련 법률도 위반하고 공민의 인권도 침범한 것이다. 참여한 모든 박해자와 책임자는 꼭 멀지 않은 장래에 법률의 정의적인 엄벌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함께 량보를 구할 것을 호소한다.

하이딩 구치소 : 베이징시 하이딩구 쑤자퉈(蘇家坨)진 원양로(溫陽路)25호, 우편번호 100194

베이징시 하이딩구 국보대대:010- 82519350

베이징시공안국 하이딩분국010-82519110

국장 : 장웨이강(張偉剛) 010-82519110

하이딩분국 규율위원회 010-82519180

하이딩분국 감찰(督察) 010-82519210

예심원(預審員) : 010-62902266전환107호실

감찰사무실82519638, 82519213, 정치처 82519140, 82519529

내보처(內保處) 010─82519636, 82519638, 82519216, 82519213

베이징시 하이딩구 구치소 010-62902266에서 전환하여 3500혹은3582로 걸어주십시오

하이딩검찰원 전화:010—82644513

하이딩공안분국 장치위원 : 쉬커자(許克嘉),핸드폰:13701022756 주택전화:010—83531798

문장발표 : 2010년 06월 01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6/1/2246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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