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 후난성 레이양시 샤오수이중학교 교사 량젠친이 거듭 박해당해 억울하게 사망
량젠친(梁劍琴)은 후난(湖南)성 레이양(耒陽)시 샤오수이(小水)중학교 교사다. 전후로 다섯번 납치당했는데, 네 번은 불법으로 레이양시 간수소에 구금됐고, 불법적으로 1년 노동교양을 받았으며, 한번은 강제로 세뇌반에 들어가 박해를 받아 심신에 막심한 학대를 받았다. 특히 창사시(長沙市) 신카이푸(新開鋪)노교소에서 독주사를 주입당해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져 글도 똑똑히 보지 못하고, 다리도 정상적으로 걸을 수가 없게 됐으며, 간이나 신장 등 내장이 심한 손상을 입게 됐다.
2010년 2월 16일, 거듭 중공의 박해를 당한 량젠친은 원한을 품고 인간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나이 겨우 46세였다.
– 랴오닝성 이현 파룬궁수련생 웨이수원이 박해로 억울하게 사망
랴오닝성 이현(義縣) 청관향(城關鄕) 관디먀오춘(關帝廟村)의 64세인 파룬궁여수련생 웨이수원(魏書文)은, 10여 년간 사악의 박해를 경과한 후, 2010년 5월 15일에 집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이미 전에 두 번이나 불법 노동교양 박해를 받아 생명이 위급하게 된 적이 있다.
1. 파룬궁을 수련해 각종 질병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웨이수원 노인을 복병, 메스꺼움증, 심한 요도염, 어지러움, 심장병 등 각종 질병에 걸렸다. 가정생활이 곤란하고 또 세 아이를 공부시켜야 해서 치료할 돈이 없었다. 몸이 상당히 약해졌는데 생활하기가 매우 고통스러웠다.
1998년 7월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한 후 웨이수원은 심신이 이로움을 보았다. 먼저는 몸에 신기한 변화가 발생했는데 수년간 시달렸던 각종 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태어난 후 처음으로 병이 없이 온 몸이 가뿐한 미묘한 느낌을 경험했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만 만나면 파룬따파는 좋다고 말했다.
이후는 바로 심령의 정화이고 생활의 충실함이었다. 수련은 웨이수원에게 진정한 인생의 함의를 알게 해줬는데, 그것이 바로 반본귀진(返本歸眞)이며 사람은 살아서 바로 늘 각 방면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때문에 생활 가운데서 그녀는 엄격하게 파룬따파 ‘眞ㆍ善ㆍ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으며 사람들로부터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받았다.
2. 베이징에서 불법 노동교양을 받다
2010년 9월 22일, 웨이수원과 막내 아들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 천안문 앞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를 외쳤다가 모자는 쳰먼(前門)파출소경찰에 의해 납치됐다. 그 후 웨이수원의 큰 아들이 베이징에 와서 반달 넘게 찾았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전 가족은 마음이 타는 듯 초조했는데 두 달이 지나서야 웨이수원이 베이징여자노교소에 갇혔으며 동시에 막내 아들도 베이징에서 불법 노동교양을 받았다는 통지를 받았다.
베이징여자노교소에서 악경들은 웨이수원에 대해 강제로 세뇌전향을 진행했으며 비인간적인 박해을 했다. 정신상으로도 학대했다. 잠자지 못하게 하고, 화장실에 못가게 했으며, 바오자(包夾-감옥측이 지정한 감시자)가 공격을 했다. 장시기 일종 자세로 벌을 서있게 해 앉지 못하게 했고, 강제적으로 장시간, 초강도의 노예노동 등으로 육체상에서 박해했는데 전혀 인신자유가 없었다. 웨이수원은 박해로 혈당이 높아져 혼절하는 증세가 나타나 병원에 보내져 40여일간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았다. 또 입원했을 때 웨이수원에게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혔다.
3. 선양시 마싼자(馬三家)노교소에서 박해 당해
웨이수원이 집으로 돌아온 지 4일째 되는 날(3월 5일), 이현 이저우진(義州鎭) 파출소의 네명 악경(이름은 불명)이 집안에 뛰어들었는데 웨이수원과 그녀의 남편(수련인)을 이저우진 파출소로 납치했다. 악경은 두 노인을 위협하고 공갈 협박해 연공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게 했으며 강제로 지장을 누르게 했는데 이들은 거절했다. 이후에 큰 며느리가 대리로 써서야 두 노인을 풀어주어 집에 돌려보냈다.
2003년 7월 12일, 이현 이저우진 파출소 악경은 또 웨이수원의 집에 뛰어들었으며 두 노인을 현 간수소로 납치했다. 불법으로 한 달간 구금한 후 또 선양 마싼자 노교소로 납치해 1년 반 불법 노동교양을 시켰다.
마싼자 노교소에 있던 기간, 웨이수원은 또 악경들의 참혹한 박해를 받았다. 바오자들의 공격, 벌세우기, 잠 못자게 하기, 화장실로 못하게 하기 외에도 웨이수원을 강박해 죽은 사람을 위해 일종 무덤을 묻을 때 사용하는 공예품을 만들게 했다. 이런 유형의 공예품을 가공하는 과정 중에는 반드시 일종 휘발성이 강하고 냄새가 코를 찌르며 눈을 자극하는 독성 본드로 붙여야 했다. 6개월이 지나자 웨이수원은 몸에 심한 증세가 나타났는데 혈당이 높아지고 혼절하며 몸이 상당이 허약해져 생명이 위급하게 됐다. 노교소에서는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8개월이 됐을 때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고 감옥 밖에서 집행하는 박해방식을 사용해 웨이수원을 직접 돌려보냈다. 당시 웨이수원의 신체는 극도로 허약했다.
4. 끊임없이 위협하고, 공갈 협박하며 교란하다
웨이수원은 집에 돌아온 후 수련을 견지해 몸이 또 차츰 좋아졌다. 그러나 이현 공안분국 경찰은 웨이수원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박해를 중지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여러 차례 그녀 집안에 뛰어들어 위협하고 공갈협박하며 교란했다.
끊임없이 교란하고 박해하여 웨이수원의 몸은 큰 상해를 입었다. 이로부터 웨이수원의 몸은 점차 나빠졌는데 기억력이 감퇴되고 귀와 눈이 어두워졌으며 피골이 상접했다. 2009년 7월 어느 하루, 웨이수원은 혼절해 쇼크 상태가 나타났으며 인사불성이 되어 자녀들이 그녀를 구급차로 병원에 보냈다.
2009년 11월, 웨이수원 노인은 재차 혼절했는데 응급치료를 거쳐 위험을 벗어났다. 이때 웨이수원의 발가락과 발등에 당뇨병 합병증인 검은 반점이 나타났으며, 농혈이 흘러내렸는데 발은 이미 괴사했다. 시 부속병원에서 전문가, 교수들이 몇번 대진해 연구했는데 발을 잘라버려야만 신체 윗부분으로 확산는 것을 방지할수 있다고 했다. 당시 웨이수원은 동의하지 않았다. 때문에 치료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또 한 단락 간고한 수련을 거쳐 발은 점차적으로 좀 호전돼 농혈이 흐르지 않았으며, 게다가 검은색에서 발갛게 됐으며 이후에는 또 땅을 딛고 걸을 수가 있었다. 바로 웨이수원이 대법학습을 견지해 몸이 한동안 회복 상태가 나타나자 악경들은 그녀에 대한 교란 박해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웨이수원의 몸은 점점 악화되어 다시는 회복될 희망이 없었다.
이 같이 웨이수원은 사악의 10여년 간의 육체적, 정신적 박해를 당한 후 2010년 5월 15일 억울하게 인간 세상을 떠났다. 시신을 화장할 때 가족은 용광로로 화장할 것을 선택하고 유골을 남겨줄 것을 요구했다. 그녀의 척추를 보았는데 두개골과 척추가 전부 검은 색이였다.
문장발표:2010년 06월 05일
문장분류:박해진상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6/5/22490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