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녜페이웨 창사 신카이푸 노교소 학대로 미쳐 (사진)

【밍후이왕】(밍후이 통신원 후난 보도) 올해 37세인 녜페이웨(聶飛躍)는 원래 후난성(湖南省) 헝양(衡陽)시 후이옌펑(迴雁峰) 술 공장 기술원이다. 1997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해 심신의 건강을 얻었다. 쩐, 싼, 런(眞,善,忍)의 수련 표준으로 늘 자신을 요구했으며, 됨됨이가 성실하고 선량하여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좋은 젊은이였다.

자신의 합법적인 권리를 행사하여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간 것과,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중국에서 받은 박해 진상을 말한것을 이유로, 두 번이나 후난 창사 신카이푸 노동교양소에 감금되어, 혹형과 정신상의 학대를 받았다. 2004년 집에 돌아왔을 때는 정신이상이 되었는데, 6년간 사람들과 말도 하지 않고, 세수할 줄도 모르며, 밖에서 마구 돌아다녔다. 어떤 때에는 창문 앞에 서서 몇 시간 동안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녜페이웨가 학대로 미치다

2000년 7월 무더운 여름날, 녜페이웨와 네 명의 파룬궁 수련생은 신카이푸 루자오대(入教隊)의 검은 방안에 갇혔다. 중간에 큰 화로가 놓여 있었다. 그들을 협박하여 둘러싸게 세워 놓고 움직이기만 하면 때리고, 24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 고문을 당했으며, ‘연공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도록 핍박당하였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그들을 각 대대에 내려 보내, 매일 15~16시간의 강제 노예노동을 시켰다. 심지어 어떤 때에는 24시간을 노동을 시켜, 머리가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두 눈에 핏발이 서고, 아프게 하였다.

2003년 10월, 녜페이웨는 또 신카이푸 노교소로 납치되었다. 처음에 감옥 경찰은 하루 종일 파룬따파를 모함하고 비방하는 녹화를 보게 강박하여 잔혹한 정신적인 학대를 하였다. 10여 일 후에도 ‘전향’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3분대 대장 허쥔(何珺)등이 황페이(黄飛), 왕춘빈(王存斌), 푸지중(付繼中,색정, 도박, 마약으로 노동 교양을 받았음)에게 지시하여, 하루 종일 포위자(가장 많을 때에는 6명의 포위자가 있었음)를 바짝 따라붙게 하여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였고, 말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밤새 잠을 재우지 않고, 체벌, 구타하여 장기간 고문하였다. 또 그를 침대 위(두 손은 뒤로 묶은 다음, 높이 매달고, 두 발도 묶어놓고, 몸은 천(綁布)으로 침대 중간에 묶어놓았는데,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양말로 입을 틀어막아 몇 번이나 질식할 뻔 했다)에 묶어놓았다. 이렇게 꼬박 4일간 묶어놓았는데, 풀어주었을 때에는 이미 전신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꼬박 일주일은 걸을 수가 없었고, 두 손은 마비되어 밥그릇도 들지 못하였다. 사람이 어리벙벙하고, 멍했으며, 기억을 상실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악경, 악인은 여전히 그를 못살게 굴었다. 밤새 잠을 재우지 않고, 서있는 벌을 세웠으며, 일상적으로 구타하였다. 이렇게 장시간 고문을 받아 정신이상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와 아내가 헝양에서 찾아왔는데, 면회도 못하게 하고 가족들을 기만하였다.

2004년, 불법형기가 만기되어 현지 ‘610’(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기구)에서 녜페이웨를 집에 데려온 후, 가족들은 그가 정신 이상이 된 것을 발견하였다.

녜페이웨는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중얼거렸으며, 일을 할 줄도 몰랐다. 아내 또한 직업이 없고, 아이가 겨우 몇 살 밖에 안 되는데, 네 식구는 부친의 약간의 퇴직금에 의지하여 어렵게 살아가야 했다. 친구는 이런 형편을 보고, 자신의 회사에서 일을 하게 하려 했지만, 그는 한사코 하려 하지 않았다. 몇 사람이 잡아끌어 겨우 광저우로 왔다. 그러나 그는 온종일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하지 않았으며, 끌어도 끌어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를 집에 돌려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6년이 지났지만 호전이 없다.

문장발표: 2010년 05년 31일
문장분류:박해진상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5/31/224617p.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