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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 파룬궁수련생 15명,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2010년 4월 3일】(밍후이통신원 윈난보도) 1999년 7월 20일부터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래, 밍후이왕 보도와 최근에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윈난(雲南) 파룬궁수련생 수천 명이 납치당하여 세뇌반, 간수소, 노동수용소, 감옥에서 박해를 당했다. 2000년 9월 3일, 젠수이(建水)현 린안(臨安)진 부진장(副鎭長)인 파룬궁수련생 쿵칭황(孔慶黃·33)이 젠수이현 간수소에서 박해로 사망한 것부터 2009년 7월 16일에 윈난성 위시(玉溪)시 부녀보건소 의사인 파룬궁수련생 선웨핑(沈躍萍)이 억울하게 사망한 것까지, 그리고 최근에 또 장슈잉(張秀英), 양쑤펀(楊素芬), 허메이화(何美華) 3명이 박해로 사망한 사실을 얻게 되었다. 지금까지 윈난 파룬궁수련생 10여 명이 박해로 생명을 잃었다.

그들은 아래와 같다.

1. 장슈잉(60세가량)

거주(個舊)시 사람. 2007년 11월 공장 휴가일 오후 4시경, 거주시 바오화(寳華)공원에서 진상자료를 붙이다가 공원에 잠복하고 있던 경비에게 납치되었다. 아울러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당하고 대법서적과 진상자료를 강탈당했다. 동시에 딸의 집도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당하고 대법서적과 진상자료를 강탈당했으며, 불법으로 거주시 간수소에 19일 동안 감금당하였다. 공안은 갑자기 그녀의 아들에게 공안국에 오라는 통지를 내렸다. 나중에 가족에게서 장슈잉이 이미 사망했다고 들었다. 가족은 사악의 박해가 두려워 지금까지도 감히 사망원인을 폭로하지 못하고 있다.

2. 양쑤펀(여·52)

거주시 지제(鷄街) 기차역의 철도직원이고, 이미 퇴직하였다. 2005년 3월 21일, 지제진 싼다오거우(三道溝)농촌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악인에게 무고 당해 지제공안국 악경에게 납치되었고, 거주시 ‘610’, 공안국에 의해 불법으로 노동교양 2년 반을 받았다. 윈난성 여자노동수용소에서 양쑤펀은 사악의 세뇌와 각종 고압 하에 심신에 막대한 상해를 입었다. 2007년 6월 석방되어 돌아 왔을 때는 몸이 극히 허약했다. 그리고 11월 11일 오전 9시에 카이위안(開遠)철도병원에서 억울하게 사망했다.

3. 허메이화(여)

윈난성 진핑(金平)현 국영농장 직원. 1999년 7월 20일 후에 악인에게 납치당해 불법으로 윈난성 쿤밍(昆明) 다반차오(大板橋) 여자노동수용소로 보내져 1년 노동교양을 당했다. 매일 강제로 세뇌당하고 노역을 했으며 욕을 먹고 구타를 당했다. 그리고 잠도 자지 못하게 하고 독방에 가두며 핍박해서 삼서(三書)를 씌게 하는 등 박해로 목숨이 위태로웠다. 악경은 책임을 감당할까봐 두려워 그녀의 가족에게 데려가라고 했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사망했다.

4. 쩡사오란(曾紹蘭·여·50)

윈난성 젠싼(建三)공사의 퇴직 공인. 2002년 7월 쩡사오란은 장 씨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을 폭로한 진상전단지를 붙이다가 판룽(盤龍)공안분국 둥자완(董加灣)파출소에 납치되었고, 가택수색과 불법감금을 당하였다. 그녀는 악경에게 신문당할 때 공갈협박을 받았는데, 가족에 의해 담보로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8월 6일에 사망했다.

5. 장펑셴(張鳳仙·여·45)

윈난성 쿤밍시 관두(官渡)구역 관상(關上)진 솽차오(雙橋)촌에서 살았다. 남편 옌징슝(嚴經雄, 파룬궁수련생)이 2000년 2월 8일에 국가보안국 ‘610’ 악경에게 불법으로 납치되어 한 달 동안 감금당한 것 때문에 심신에 큰 타격을 입었다. 2001년 4월 26일, 악경은 또 와서 소란을 피웠다. 그녀가 거주하고 있는 집을 불법으로 수색하였고, 불법으로 그의 남편을 하루 동안 구류해 각종 고통을 주었다.

2001년 7월 20일, 악경이 또 집에 찾아 와서 수색하는 바람에 남편은 집이 있어도 돌아올 수가 없었다. 2001년 12월 28일, 장펑셴과 그녀의 남편이 채소를 거두러 가려던 참에 악경이 물어볼 말이 있다며 속이고 남편을 간수소로 납치했다. 어떠한 범죄행위나 증거도 없는데, 윈난성 쿤밍시 관두공안분국은 불법으로 2년[처리자 펑쥔(馮軍)] 노동을 시켰다. 아울러 윈난 제2노동수용소의 관리과에 의해 불법으로 7달 반 형기를 더 가하여 받았다[관리과장 취카이밍(曲開明)]. 그녀의 남편이 노동수용소에서 돌아온 후, 악경은 또 여러 번 집에 찾아 와서 소란을 피웠으며, 또한 불법인원이 늘 문밖에서 감시를 하였다. 수차례의 박해로 장펑셴은 항상 가슴 아팠다. 그리고 2005년 5월 8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6. 양쑤훙(楊蘇紅·여·24)

키가 1.2미터이고 체중이 23kg밖에 안 되는 장애인. 쿤밍시 시산(西山)구역 마제(馬街)사무소 지산(積善)사회구역에서 살았다. 양쑤훙은 어릴 때부터 운명이 기구하여 8살부터 병마에 시달리기 시작했는데, 연이어 ‘결핵성복막염’, ‘백혈병’ 등을 앓았다. 부모는 딸의 병을 치료하려고 도처로 다녔고 쿤밍의 큰 병원은 다 다녔다. 하지만 1998년은 더욱 설상가상이었다. 쿤밍종양병원에서 ‘골암 말기’라는 진단과 함께 기껏해야 몇 달 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생명의 마지막 고비에서 양쑤훙은 1998년 2월에 다행스럽게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쩐·싼·런(眞·善·忍)’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수련해 심신에 매우 큰 변화가 일어났으며, 그녀의 몸에 있던 각종 질병들이 점차적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10여 년 동안 쓰던 약탕관을 던져버렸고 병마에서 벗어났으며, 생활의 즐거움과 생명의 진의를 다시 얻었다. 예전에 그녀를 진단했던 의사는 다시 양쑤훙을 보고는 “네가 아직도 살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감탄했다.

1999년 7.20 이후에 양쑤훙은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악도들에게 여러 차례 불법적인 가택수색, 심문, 감금 등 박해를 당했다.

2004년 11월 30일, 양쑤훙은 쿤밍시 시산구역 국보대대 악경에게 속아 윈난성 다반차오 여자노동수용소로 납치당했다. 양쑤화는 노동교양서(勞教書)에 서명하는 것과 소위 ‘전향’을 거절하였다. 노동수용소 감금당한 반년 동안, 양쑤훙에게 핍박으로 강도를 초과한 노역노동을 시킨 반면에 법공부와 연공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아 박해로 피골이 상접하여 사경을 헤매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2005년 5월에 집으로 돌아왔으나 겨우 한 달 남짓 만인 단오절 오후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7. 왕롄즈(王蓮芝·여·73)

쿤밍 파룬궁수련생. 왕롄즈는 2008년 4월 15일 오후 6시경에 집에서 밥을 하다가 시산분국 악경 천쿤광(陳坤光)과 진비(金碧)파출소의 선밍구이(沈明貴), 왕웨이추(王維處)에게 납치당했다. 이틀 후에 가족은 노인이 이미 체포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그리고 10월 중순에는 아들이 옷을 전하러 간수소에 갔다가 노인이 이미 8월 7일에 제2여자감옥에 보내졌다는 통지를 받았다. 다그쳐 감옥에 가봤으나 도리어 만나지 못하게 했으며, 석 달이 지나야 만날 수 있다고 하였다. 11월 10일, 고생 끝에 아들은 결국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조금 초췌했지만 정신만은 정상이었다.

2008년 11월 27일, 아들은 감옥에서 걸어온 전화(0871-5126191)를 받고 감옥에 갔더니 성이 류(劉) 씨인 경찰이 그에게 ‘담보서(擔保書)’에 서명하라고 했다. 아들이 왜 서명을 하느냐고 묻자 어머니에게 병이 있는데, 병보석으로 풀려나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무슨 병이냐고 물으니 류 씨는 대장인 양환(楊歡)에게 “너 저 사람한테 무슨 병인지 아직 안 알려줬어?”라고 떠넘겼다. 양환은 어쩔 수 없이 “아직 안 알려줬다.”고 하였다. 양환은 왕롄즈의 아들이 재삼 따지자 ‘정신분열증’에 걸렸다고 했다.

아들은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10여 일 전만해도 아무 일이 없었는데, 어떻게 정신분열증에 걸렸단 말인가? 누가 진찰했느냐고 아들이 묻자 시 정신병원이라고 했다. 아들이 진찰서를 보자고 요구하자 마지못해 보여주었다. 수상쩍은 구석(양환은 그녀가 고혈압 약을 먹지 않아서 약을 밥에 버무렸다고 했다. 밥에 다른 무엇을 또 버무렸는지 누가 알랴?)이 있기에 아들은 서명하지 않았다. 그래도 먼저 어머니를 꺼내와 병 치료를 받게 하려는 생각에 바로 12월 1일(감옥의 기한)에 서명을 한 뒤, 병세가 중한 어머니를 보겠다고 요구했으나 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으려면 아직도 상급의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며 거절했다.

2009년 1월 7일 되어서야 왕롄즈는 ‘병보석 치료’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심신은 엄중한 박해를 당해 거의 식물인간이 되었다. 치아는 흔들려 다 빠졌고 머리는 계속 심하게 아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11월 16일, 노인은 쿤밍시 제1인민병원에 보내졌는데, 그 기간에도 계속 혼수상태에 처해 있었다. 병 치료를 해도 효과가 없어 11월 25일에 퇴원했으며, 11월 27일에 세상을 떠났다.

왕롄즈 노인은 2002년에 불법으로 쿤밍 우화(五華)구역 간수소에서 36일간 감금당한 적이 있고, 아울러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당했다. 그리고 불법적인 노동교양을 판결 받고 쿤밍 다반차오 여자노동수용소로 보내졌으나 당시 혈압이 220까지 높아져 생명 위험이 있어 노동수용소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자 국보대대에서는 그녀의 가족에게 담보서를 쓰게 한 뒤에 왕롄즈 노인을 풀어주었다. 왕롄즈 노인을 납치하는 데 참여한 경찰은 국보대대대장 롄쉐텅(練學騰), 경찰 마빈(馬斌)과 투차오(土橋)파출소의 악경 등이다.

8. 선웨핑(沈躍萍·여·49세)

윈난성 위시시 여성·유아보건소 의사. 2000년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3년 노동교양을 받았다. 2004년 12월, 위시 훙타(紅塔)구역 공안분국의 허샤오페이(何曉沛), 장샹위(張翔宇) 등 악경이 가오위안밍주(高原明珠)의 전시판매회에서 선웨핑, 푸즈밍(普誌明) 부부와 두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하였다. 훙타구역 법원은 정법위원회, ‘610’ 등 사악한 기관의 의도 하에 사법의 독립과 공정을 모독하고 4명의 대법제자에게 1~5년의 차이로 불법판결을 내렸다. 선웨핑은 4년 불법판결을 받았다. 악경이 자신의 아이에게 3일간 불법으로 수갑을 채우고, 놀라게 한 일을 법정에서 폭로한 것 때문에 선웨핑은 법원에 의해 가형(加刑) 1년을 더 받게 되었다.

5년간 감금당한 선웨핑은 이른바 ‘전향’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2007년 3월부터 영창에 3년 동안 갇혀 비인간적인 갖은 학대를 다 당했다. 악경들은 하루 종일 돌아가면 공격하고 귀에 담을 수 없는 욕설 을 하고 악당이 사악하게 독을 주입한 라디오를 듣게 했다. 영창에 감금당한 기간에는 목욕을 하거나 옷을 갈아입을 수 없었고, 마음대로 서거나 앉을 자유도 없었다. 또한, 생리가 와도 생리대를 못 쓰게 했을 뿐 아니라, 늘 구타를 하거나 혹은 바늘로 찔렀으며, 심지어 음식물에 중추신경을 손상시키는 약물 등을 넣었다.

2006년 10월부터 선웨핑의 가족은 그녀와의 통신, 전화와 면회를 허가받지 못하였다. 2009년 6월, 그녀의 가족은 ‘병보석 치료’라는 통지를 받았다. 소식에 따르면, 당시 선웨핑의 몸 상태는 수액을 놓지 않으면 구토하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이미 박해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폐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녀는 7월 16일 저녁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쿤밍 제3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9. 구이밍펀(桂明芬·여)

연령은 아직 모름. 윈난성 쿤밍시 관두구역 마셴(麻線)촌 사람. 1998년 말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한 후에 많은 질병과 류머티스성 심장병이 나았다. 2000년 4월 4일에 구이밍펀은 성위원회로 청원을 간 후에 줄곧 악도들에게 미행당하고 두 차례나 불법구류를 당했으며 두 차례 불법적인 강제세뇌를 당했다. 여러 번 감시와 통제를 당하고 외출할 때도 제약을 받았는데, 반찬거리를 사러 밖에 나갈 때도 서명을 하라고 했다. 가족은 두려움에 그녀를 감시했고, 그녀의 몸은 나날이 나빠져 2년 넘게 대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 그리고 2005년 1월 25일에 끝내 세상을 떠났다.

10. 푸츙셴(付瓊仙·여·50여 세)

윈난성 장촨(江川)현 쳰웨이(前衞)진 사람. 원래 심한 심장병으로 앓고 있었는데, 언제든지 사망 위험이 있어 후사를 처리할 옷과 물품들도 이미 준비된 상태였다. 다행히 1999년에 대법을 수련하면서 심장병이 다 나았다. 그러나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만으로 2004년 6월에 납치당했으며, 2004년 9월 19일에 사망했다.

11. 왕싱(王星·여·30)

윈난 쿤밍철도국의 교사. 왕싱은 2000년에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불법으로 쿤밍으로 압송되어 돌아오는 도중에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차 창밖으로 뛰어 내리다가 불행히 사망했다.

1999년 7월 20일, 장 씨 집단은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악도들이 파룬따파와 사부님에 대대 악의적으로 중상모략하고 대법제자를 무고하게 납치, 가택수색, 감금하였다. 그럼에도 왕싱은 정부에 대한 신임을 꼭 품고, 2000년 5월쯤에 혼자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베이징 경찰에게 납치를 당한 후에 베이징 주재 윈난성사무소에 감금당했다. 쿤밍철도국 공안처와 직장에서 통지를 받고 사람을 데리러 베이징에 도착했다. 일행 몇 명이 불법으로 왕싱을 쿤밍으로 압송하려고 그녀를 기차에 태웠다. 기차가 스자좡(石家莊)역에 이를 즈음에 왕싱은 사악의 박해를 벗어나기 위하여, 화장실에 간 틈을 이용해 창밖으로 뛰어내리다가 불행하게 사망했다. 쿤밍철도공안과 직장에서는 책임을 피하려고 통일적으로 입을 맞추고는 “왕싱은 부부지간에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기차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고 헛소문을 냈다.

12. 쿵칭황(孔慶黃·남·33)

이족(彝族), 윈난 젠수이(建水) 사람. 윈난대학 경제과 본과생이고, 경제사, 국가공무원이었고, 젠수이현 린안(臨安)진의 부진장으로 5년 이상 임직했다. 그는 1997년 8월부터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법공부를 열심히 하며 자신을 아주 엄격하게 다스렸다.

2000년 4월 7일, 40여 명의 진(鎭) 전체 인민대표대회가 끝날 때, 쿵칭황은 진 전체의 가족계획 업무회의 후에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연공한 심득체험을 이야기하였다. 연공을 시작한 후에는 병이 전혀 없어 몸이 한결 가벼우며, 자신의 도덕관, 인생관, 세계관이 크게 변해 다시는 속인처럼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법공부를 하면서 심성을 제고하여 사회의 부패한 풍기—— 뒷거래, 뇌물, 사례금, 무절제한 향락 생활 등을 저지하였다. 파룬궁이 사람들에게 건강한 뿐만이 아니라 도덕적 승화를 주기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매사에 모두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데, 모순이 있으면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다……라는 등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또한, 파룬궁은 불법(佛法)이고, 세계의 모든 학설 중에서 가장 심오하며, 초상적인 과학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는 또 현재 신문매체가 대법과 사부님에 대해 보도하는 내용은 모두 터무니없이 꾸며대는 것이고 유언비어를 날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에서 그는 완전히 선한 일면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러나 뒤따라 온 것은 그에 대한 연금(軟禁)과 사상전향 공작이었다. 게다가 가택도 불법으로 수색당해 사부님의 책, 사진, 비디오테이프, 녹음테이프 등도 강탈당했다. 4월 9일에는 불법으로 간수소에 감금되었고, 부진장의 직위도 철회되었다.

4월 중순, 쿵칭황의 아버지는 아들이 감금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날 바로 숨을 거두었다. 쿵칭황은 5월 9일에 직장으로 돌아와 신문을 나르고 잡일을 하였다. 직장의 업무 변동에 대해서도 그는 태연하게 대했으며 미소로 일을 처리하였다.

6월 9일, 쿵칭황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떠났다. 그의 아내 왕자웨(王伽月)는 원래 연공을 하지 않았었는데, 쿵칭황이 재차 청원하러 가기 직전에 그의 영향으로 자신도 당연히 파룬따파를 수련해야 되고, 수련하지 않으면 영원히 지나쳐 버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의 청원을 지지하였다. 쿵칭황이 간 후에 왕자웨는 감시 통제를 받아 집에 있게 되었으며, 강제세뇌 박해를 당했다. 6월23일, 왕자웨는 청원을 가는 도중에 붙잡혀 간수소에 감금당했다. 바로 이 며칠 사이에 젠수이현 파룬궁수련생 10명이 청원을 하거나 혹은 대법을 수련한다는 이유만으로 납치, 감금을 당했다.

6월 28일, 쿵칭황은 집에 돌아온 후에 납치되어 간수소에 감금당했다. 정부에서는 서로 대화를 하거나 만나지도 못하게 하는 등 엄격하게 통제하여 연공인을 격리시켰다. 쿵칭황은 납치된 후, 줄곧 단식으로 항의하면서 파룬궁이 ×교가 아니라는 것을 정부가 알기를 바랐다. 단식 10여 일, 간수소에서는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였다. 그 후에는 4~5일 간격으로 한 번씩 주입했다. 8월 초가 되자 간수소에서는 음식물을 더는 주입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5~6일에 한 번씩 강제로 수액을 맞게 했다. 8월 25일쯤에는 그를 강제로 입원치료를 시켰다. 병원에서는 매일 쿵칭황의 피를 1~2통 뽑아 실험하려고 했다. 쿵칭황의 몸은 순식간에 망가지고 상당히 허약해졌다. 9월 1일에 이르러 쿵칭황은 음식물을 먹는 것에 동의하였으나 9월 2일에 혼수상태에 처했고, 9월 3일 밤 9시에 세상을 떠났다.

13. 천수추(陳淑秋·여·56)

외지에서 쿤밍으로 온 퇴직자. 대법수련생 천수추는 악경의 박해로 대략 2004년 10월 말에 집에서 사망했다.

2001년 5월 18일, 천수추는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악인의 무고로 납치당한 후에 성(省)의 여자노동수용소 2대대에 감금되어 노동교양을 당했다. 천수추가 전향을 거부하자 악경은 정신적으로 그녀를 학대하였고, 사람을 때리는 장면을 강제로 보게 하였다. 천수추는 충격을 받고 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었으며, 혈압이 230/120MMHG로 높아져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악경은 그녀를 핍박해서 일하러 나가게 했다. 나중에 의사가 병세가 엄중하다고 말하자 문제가 생길까봐 두려워 그제야 그녀의 아들에게 전화로 통지하였다. 아들은 박해로 몸이 상당히 허약해진 어머니를 보고는 노동수용소의 간부에게 “어머니는 파룬궁을 연마한 후에 병도 없이 아주 좋게 변했는데, 지금 당신들에게 붙잡혀 몇 달간 박해를 당해 이 모양이 됐다.”고 말했다. 노동수용소의 악경은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감당할까봐 두려워 곧 천수추의 아들을 시켜 그녀를 병보석으로 치료 받게 하였다.

노동수용소에서 나온 후에 몸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데 쿤밍시 우화공안국 다관(大觀)파출소의 악경이 늘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다. 2004년 8월 24일, 법원에서 불법으로 대법제자 한전쿤(韓震坤), 궈쥐안(郭娟) 부부에 대해 개정하여 심리할 때, 천수추와 일부 수련생들이 법정 밖에서 심리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데, 악경이 불법으로 녹화를 하고 공갈협박을 했다. 나중에 관련된 모든 대법제자가 이 녹화기록 때문에 쿤밍 ‘610’, 공안에게 심문당하고, 어떤 이는 납치까지 당했다.

어느 날 저녁 11시경, 다관파출소의 악경이 재차 천수추가 살고 있는 곳에 와서는(남편은 이미 천수추와 이혼을 하고 두 아이는 모두 외지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녀는 쿤밍에서 세 들어 살고 가게를 차려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파출소로 가서 담화를 하자고 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문을 열지 않아 악경은 그냥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일이 발생한 후인 10월 30일쯤에 그녀는 동수에게 “악경이 밤에 와서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무서워서 잠도 못 잤다. 나중에는 저녁에 악몽을 꾸고 머리가 어지러웠으며, 사지가 무력하고 마음도 불편하다.”고 하였다. 두 번째 날, 이 수련생이 그녀의 가게를 지나다가 가게 문이 열리지 않은 것을 보았다. 나흘 후에야 그녀가 이미 방안에서 사망했고, 집 주인이 파출소에 신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출소의 악경은 천수추를 급히 화장했고, 그녀의 대법서적과 대법진상자료를 수색해 가져갔다.

14. 황쥐메이(黃菊美·여·48)

쿤밍 시정(市政)공사의 직원. 황쥐메이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고혈압 등 20여 가지 병을 앓고 있었다. 직장에서도 병이 많기로 유명했고, 26세에는 병으로 퇴직까지 해야 했다. 오랜 세월을 병에 시달리다보니 성격도 굉장히 급하게 변했고, 고부갈등이 심해 가족과의 관계도 안 좋았다. 1997년에 다행히 파룬궁을 수련하면서부터 치료하지 않아도 나았고 몸은 점점 좋아졌다. 수련한 뒤로는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대하고 하는 일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 고부갈등도 없어지고 가족관계도 점점 더 화목해 졌다.

파룬궁이 탄압을 당하자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에 겪은 심신변화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2002년에 공안에게 납치당했다. 감금당한 기간에 갖은 박해를 다 당해 혈압이 280/120mmHG로 높아지고 갑자기 심장병이 발작하였다. 공안은 그녀를 병원에 보낸 뒤에야 가족을 통지 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억울하게 사망했다.

15. 탄짜이즈(譚再芝·여)

연령은 아직 모름. 원래 윈난성 쿤밍시 둥촨(東川)구역 중의원에서 초빙한 중약방의 직원. 탄짜이즈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신장염’ 등 여러 가지 질병으로 않았다. 돈이 없어 치료를 못해 병세가 악화되어 ‘요독증’에 걸렸다. 하지만 97년에 파룬궁을 수련한 후, 치료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나았고 몸은 줄곧 아주 건강했다.

2000년 2월 14일, 탄짜이즈는 둥촨 단체연공에 참가한 것 때문에 납치되어 27일간의 감금을 당하고 풀려 나온 후에는 중의원에서 해고당했다. 구역 ‘610’, 공안은 그녀의 주택을 감시, 통제하고 항상 소란을 피우는 것도 모자라 농업은행에서 일하는 그녀의 남편에게 그녀가 파룬궁을 수련하지 못하도록 책임지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월급 지불을 정지하겠다며 협박했다. 핍박을 당한 그녀의 남편과 아들은 탄짜이즈가 연공할 때 사용하는 녹음기, 연공테이프를 망가뜨렸고 대법책을 감추어 탄짜이즈가 법공부, 연공을 할 수 없게 했다. 그래서 신장염이 재발했고 전신에 부종이 생겼다. 그의 가족은 의사와 내통하여 그녀를 속여서 병원에 데려가 침대에 눌려 놓고 강제로 수액을 놓았으며 약을 주입했다. 그 후에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고, 2001년 4월 26일 밤에 결국 억울하게 사망했다.

이상은 이름과 정황을 확정할 수 있는 박해로 사망한 일부 파룬궁수련생들이다.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를 당한 정황을 밍후이왕에 보도하여 박해를 제지하자.

문장발표 : 2010년 04월 03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4/3/2209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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