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2010년 5월 29일】광저우(廣州) 파룬궁수련생 주젠펑(朱建朋)은, 11년 이래 중공의 박해를 여러 차례 겪고, 2010년 4월 9일 원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주젠펑은 수련하기 전의 자동차사고로 인하여 불구가 되었는데, 파룬궁수련을 한 후 건강을 되찾았다. 그러나 주젠펑은 도리어 중공경찰에 의해 여러 차례 납치되어 학대받고, 불행하게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다.
1. 한 불구자가 파룬따파를 수련하여 심신이 건강한 사람으로 되다
주젠펑은 원래 광저우 회사 판위융다(番禺永大)의 총무과 직원이다. 회사일로 오토바이를 타고 출장 갔다가 자동차사고로 머리에 중상을 입었다. 수술 받을 때 머리부위에 생긴 구멍은 강철조각으로 막았다. 생명은 보존하였지만, 도리어 불구자가 되었다. 한 손으로 물건을 쥘 수 없게 되었고, 한쪽 발도 절음발이가 되었는데, 걸을 때 두 발은 하나가 높고 하나가 낮아 절뚝거렸다. 동시에 대뇌가 손상되어 간질로 기억력이 떨어지는 등의 후유증을 남겼다. 때문에 여자 친구도 그를 떠나버렸다. 그로부터 성격이 크게 변했으며, 말수가 적고, 스스로 열등감을 가졌다. 그는 식당 직원이었기에 일상적으로 식당을 드나들어야 했기 때문에 늘 식당에서 간질이 발병했다.
1997년 다른 사람의 소개로 파룬따파수련에 들어섰다. 성격이 점차 쾌활해지고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으며 얼굴색도 희면서 붉은 빛이 돌았다. 약 한 알 먹지 않고도 이후 다시 간질이 재발하지 않았는데, 이전에 비하면 전혀 딴사람과 같았다. 사람마다 모두 이건 확실히 생명의 기적이라고 하였다.
2. 한 불구자에 대한 중공악당의 박해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주젠펑이 신앙을 확고하게 견지하고,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 공개적으로 파룬따파는 좋다는 공정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중공사당은 그를 세뇌반으로 두 번 납치했으며, 노교소로 세 번 협박했다.
주젠펑은 2000년에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경찰에 의해 하이뎬취(海澱區)간수소에 납치되었다. 악경은 부정한 방법으로 주젠펑의 개인 자료를 얻기 위하여, 협박하기도 하고 이익을 내세워 회유하기도 하였다. 주젠펑이 단호하게 거절하여 아무런 정보도 밝히지 못하게 되자, 악경의 흉악한 몰골을 여지없이 드러냈는데, 그의 옷을 모두 벗기고, 또 냉수로 그의 몸을 흠뻑 적셨다. 한 불구자를 몹시 추운 곳에서 강제로 학대하였다. 그때는 한겨울이었기 때문에 기온이 영도이하로 내려갔는데, 악경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2001년 양력 1월, 악경은 그를 광정우 판위간수소계독소로 납치해와 강제로 “전향”시켰다. 그동안 신체적인 자유를 통제하고, 강제로 파룬따파를 모함한 “천안문 분실자살녹화”를 보게 하였으며, 강제로 이른바 “반성문”(悔過書)을 쓰게 했다. 그러나 주젠펑은 그런 것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악경은 어떠한 법률절차도 거치지 않고 그를 강제로 제1노교소로 압송해 박해하였다. 강제로 노역을 시켰고, 윤번으로 정신세뇌를 하였으며, 강제로 파룬따파를 비방하는 녹화와 글을 보게 하였다. 장시기의 정신과 육체적 학대를 거친 후, 주젠펑는 간질병이 재발하였는데, 재발할 때는 전신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고, 입에서는 흰 거품을 토해냈다. 그리고 또 정신이 희미했으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였다. 집에 돌아온 후, 몸은 점점 건강을 다시 회복하였다.
대략 2004년, 주젠펑은 박해를 주관한 경찰에게 ‘선함을 권하는 서신(勸善信)’ 한 부를 썼는데, 또 황부(黄埔)세뇌반으로 납치되어 박해 당했다.
주젠펑이 진상전단지를 배포한 원인으로, 2007년 3월부터 9월까지 또 “광저우시 법제학교”(사실은 세뇌반임)에 납치되어 박해를 당했다. 그는 세뇌반에서 진상을 알렸기에, 악경은 그에게 잠자는 것, 목욕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악경은 침대만큼 큰 사부님사진을 인쇄해서 침대널빤지위에 놓아, 그로 하여금 잠을 자지 못하게 하였다.
2008년 7월 올림픽 전, 주젠펑은 진상자료를 배포한 이유로 다시 구류소에 납치되었다. 옥졸에게 혹독한 매를 맞았는데, 그로 인해 페결핵 증상이 발생했다. 그러나 악경은 여전히 그를 광저우 제3노교소에 압송해 박해하였다. 후에 병세가 심해져서 그를 광저우 무장경찰병원으로 옮겨가야만 했다. 이런 학대는, 마지막에는 경찰마저도 관계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주젠펑의 심신건강에 심한 손상을 주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온 후, 몸은 비록 좀 회복이 되었지만, 여러 해 동안 끊임없이 당한 학대와 집에 돌아온 후에도“610”, 거민위원회 등의 끊임없는 교란으로 인해, 몸은 점점 약해졌고 불행히도 세상을 일찍 떠나고 말았다. 사당의 박해가 없었다면, 그는 절대로 그렇게 일찍 세상 뜨지는 않았을 것이다.
3. 박해를 멈출 때까지 계속 진상을 알리다
바로 주젠펑이 대법으로 좋은 점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박해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장기간 사회에 진상을 알릴 수 있었다. 여러분 모두 생각해보세요. 한 불구자로서, 그는 원래 매달 단지 3백 위안의 장애비(殘疾費)로 생활비를 했다. 2008년에 가서야 3백5십 위안으로 올랐다. 이런 돈의 일부를 그는 여전히 진상자료를 만드는데 썼다. 그의 생활에서의 절약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가히 말할 수 있다. 그는 무엇을 위해 그랬는가? 결국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여 많은 세인들에게 알리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일부 여행단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돈을 타고 자료를 배포한다는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말했다. 사실, 중공의 사람들만이 일을 돈에 의거하여 하지만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의거하여 일을 한다. 주젠펑을 보면 가히 증명할 수 있다.
문장발표:2010년 05월 29일
문장분류:박해진상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5/29/224492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