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2010년 5월 19일】(밍후이왕통신원 산둥보도) 산둥(山東) 주청(諸城) 파룬궁수련생 리원성(李文勝)은 40세가 조금 넘었는데,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충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사람마다 과찬하는 좋은 사람이 도리어 올해 4월 2일, 산둥 주청의 중공법원에서 비밀판결을 받은 후에 지난(濟南)감옥으로 보내져 박해를 당하고 있다.
리원성은 예전에 이미 불법노동교양 3년을 받은 적 있다. 리원성의 부친 리하이(李海)는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듭 박해를 당하다 2002년 말에 세상을 떠났다.
리원성은 산둥 주청 하오거좡(郝戈莊)진 샤오좡거우(小莊溝)촌 사람이다. 부모와 그 자신, 일가족 세 식구는 1999년 이전에 파룬궁 수련에 들어섰다. 1999년 7·20, 장쩌민(江澤民, 이하 장 씨) 집단이 천지를 뒤덮을 듯 파룬궁을 미칠 듯이 진압하기 시작해 행복했던 가정이 파괴되고 심지어 사망에 이른 이도 발생했다.
리원성의 부친 리하이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위병을 앓았고 어떤 때에는 다리가 아팠으며 술과 담배를 끊지 못했다. 그러나 파룬궁을 배운 후, 다리가 아픈 증상과 위병이 치료하지 않아도 나았으며, 술과 담배를 끊어 신체가 건강해져 집 안팎에서 계속 바삐 보냈는데, 젊은이들처럼 일했다.
1999년 7월 20일부터 장 씨 정치깡패집단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래, 하오거좡진에서도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였다. 사당서기 리융밍(李永明), 정법위원회 서기 왕신쥔(王新軍)의 조종 하에 파출소소장 리펑춘(李逢春), 악경 왕화(王華,) 정더밍(鄭德明), 저우젠보(周建波), 장중광(張重光), 웨이리화(魏立華), 구역장 자오빙쥔(趙丙軍), 주시펑(祝夕峰), 샤오좡거우촌의 원래 촌서기 궈팡쉐(郭方學), 민병중대장 궈팡밍(郭方明)등이 리하이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강요했다. 그리고 1999년 7월 22일, 그를 하오거좡진 자오자좡쯔(焦家莊子)촌으로 납치해 그에게 악독한 체벌을 진행하고 때리고 욕했다. 게다가 하오거좡진 전체 당원들이 그를 상대로 비판대회를 열어 검토하고 그에게 텔레비전에 출연해 대법을 비방하라고 핍박하였다. 이렇게 그는 심신에 모두 심한 손상을 입었다.
2000년 10월, 리하이의 아내 펑서우란(封守蘭)과 아들 리원성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 두 모자는 모두 불법구류와 형사구류를 당했다. 리융밍, 왕신쥔의 조정 하에 악경과 악인들은 리하이에게 전혀 거리낌이 없이 제멋대로 굴었다. 당시에 주청시 공안국은 하오거좡진 파출소에게 벌금 5000위안을 지시하였다. 이 5000위안을 위하여 악경 리펑춘, 장중광, 저우젠보, 정더밍, 악인 주시펑, 궈팡쉐, 궈팡밍은 돌아가며 거의 매일 찾아오다시피 해서 돈을 달라고 욕설을 퍼붓고 협박, 강탈하였으며, 어떤 때는 리하이를 파출소로 납치해 혹독하게 때리고 욕설을 퍼부었다. 게다가 그의 집에 전문적으로 사람을 파견해 지키게 했고 또 추적을 진행하였다.
리원성은 불법형사구류를 1개월 당한 후에 또 하오거좡진 위원회와 파출소에 의해 하오거좡 식품소로 납치되어 40여 일 감금당했고, 각 촌에서 사람을 파견하여 번갈아가며 지켰다. 이 후 3년 노동교양을 받았다.
이런 야만적인 박해로 리하이는 항상 정신이 흐리멍덩했고 눈물을 마구 흘렸다. 한 번은 악인 궈팡쉐, 궈팡밍의 부추김 하에 악경 리펑춘이 하오거좡진 파출소에서 그에게 공갈 협박을 하고 욕설을 퍼부은 다음에 철기로 머리를 세게 때렸다(그는 생전에 자신의 병은 바로 리펑춘이 때려서 생긴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는 당시 맞아서 눈앞이 번쩍하였으며, 단숨에 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혔다. 그 후로 리하이는 항상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우울했으며 일할 때도 힘이 없었다. 경찰, 경찰차를 보기만 해도 두려워했고, 다리근육이 위축되었다. 그의 몸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으며, 가슴 한가운데를 막던 그 숨이 항상 넘어갈 듯 했다. 다리에는 20여 센티미터 길이의 혹이 생겼고 상반신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으며 입에서 피를 토했는데, 어떤 때는 너무 아파 땅위에서 대굴대굴 굴렀다. 그는 병고로 2년 동안 시달렸다. 정신적 상처는 결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또 항상 창러(昌樂)노동수용소에 불법감금 되어 비참하게 박해를 당하고 있는 아들을 걱정하였다. 리하이는 2002년 섣달 23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임종할 때도 그가 밤낮 그리던 아들을 만나보지 못하였다.
리원성은 2004년에 창러노동수용소에서 돌아왔다. 그러나 악경이 계속 소란을 피워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었기에 밖에서 품팔이를 하며 생활했다. 노동보호조건이 아주 차한 자영업 수공업공장에서 그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개인의 득실도 따지지 않았다. 성실하게 일해 직장동료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바로 이렇게 좋은 사람이 도리어 작년 5월, 주청에서 악경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게다가 주청간수소에서 근 1년 동안 불법감금을 당했다. 올해 4월, 중공법원에서는 비밀리에 리원성에게 판결을 내렸으며, 그 다음 지난감옥에 보내 박해하였다.
나이가 고희를 넘은 리원성의 어머니는 고통스럽고 억울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중공사당 독재통치 하에 중국대륙에서 이처럼 거듭 박해를 당한 가정이 어찌 리원성의 집안뿐이겠는가?
문장발표 : 2010년 5월 19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5/19/2239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