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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7년 감옥살이 기술 엘리트, 재차 납치 (사진)

【밍후이왕 2010년 5월 10일】(밍후이통신원 후난보도) 2010년 5월 5일 저녁, 파룬궁수련생 쩡하이치(曾海其)는 주저우(株洲)현 셴징(仙井)향 부근에서 파룬궁이 박해 받는 진상을 이야기하다가 오토바이를 탄 현지 순찰인원 몇 명에게 추적체포, 폭력적인 납치를 당했다.

 

쩡하이치

쩡하이치는 금년 39세이고, 후난(湖南)성 주저우현 훙샤(弘夏)진 사람이다. 매우 성실하고 용모가 준수하며 성격이 쾌활하나 말수는 적다. 기계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쩡하이치는 공장장의 걱정을 가장 많이 덜어 주는 직원이었다. 그는 선반 기능공으로서 기술 엘리트였다. 공장에서 월급은 작업건수로 계산하였는데, 직원들이 어떤 때는 사흘이 멀다 하고 제대로 출근하지 않아 주문서가 많이 들어 올 때면 공장은 또 원자료를 묵혀야 했다. 쩡하이치는 항상 “그래도 책임지고 그를 도와 이걸 다 끝내자…….”라고 말했다. (공장은 공장장의 자영업이다.) 그는 늘 혼자 차 안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일했고, 공장장, 직원들도 모두 그를 좋아했으며, 이웃들도 모두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2000년, 쩡하이치는 파룬궁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7년 판결을 받았다. 그 사이 혹형 학대로 상처를 입었는데, 오른손이 자칫하면 불구가 될 뻔했다.

츠산감옥에서 매달아 수갑 채우기, 전기형벌, 끈으로 조이기, 혹독하게 구타, 강한 햇볕 오래 쬐기 등 각종혹형을 당하다

2000년, 쩡하이치는 억울하게 7년 판결을 받은 후, 후난 위안장(沅江) 츠산(赤山)감옥에 불법감금 되었다. 엄관대에 3개월 감금되었는데, 초기에는 한 달이 넘도록 그에게 밥 반 공기만 주었다. 이후 한 달은 약 15그램 정도(찐빵의 3분의 1정도 무게임)만 주었다.

2004년 3월 1일, 쩡하이치가 쪼그리지 않고 숫자를 보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감옥장 쯔웨이(資煒)의 지휘 하에 감옥경찰과 수감자 몇 명이 그에게 혹형을 가하였다. 그의 두 다리를 벌리고 두 발끝을 밖으로 돌려서 일직선을 이루게 하고는 강제로 마룻바닥에 몇 시간이나 꿇어앉게 하였는데, 이 혹형은 그 고통이 비할 데 없이 아프다.

그런 다음에 쩡하이치는 엄관대에 갇혔다. 엄관대 대장 쩡셴바오(曾憲保)는 매일 각종 방법으로 쩡하이치를 18시간이나 수갑 채워 매달았다. 예를 들면, 그의 두 손을 등 뒤로 하여 수갑을 채운 다음에 창문 위에 매달았다. 그런 다음 두 다리는 앞을 향해 곧게 편 다음에 들어서 높은 걸상 위에 걸쳐놓았다. 이렇게 하여 전신의 무게가 수갑을 내리누르게 하였는데 극도로 아팠다. 어떤 때는 쩡하이치의 두 손을 등 뒤로 수갑을 채우고, 다시 끈으로 수갑을 얽맨 다음에 큰 나무 위의 쇠고리에 매달았는데, 매번 몇 시간씩, 가장 길게는 하루 종일 매달아 놓았다. 엄관대 교도원 덩잉펑(鄧迎峰)은 수감자를 시켜 여러 가지 형구로 쩡하이치를 학대하였다. 그러나 보이는 증거는 남기지 못하게 하였다. 쯔웨이는 박해 심도가 약하다는 불만을 품고 회의를 열어 악경 쩡셴바오와 덩잉펑을 꾸짖으며, 3개월 엄관 기한이 다 찬 후에도 쩡하이치를 단독으로 남기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는 수감자 8명을 배치해 24시간 번갈아가며 형구를 사용하여 그를 못살게 굴었다.

2003년 5월 5일, 쯔웨이는 특수경찰대 악경을 거느리고 쩡하이치를 마구 두들겨 팼으며, 전기곤봉 몇 개를 사용하여 끊임없이 그의 전신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5월 20일, 쯔웨이는 특수경찰대를 데리고 쩡하이치를 혹독하게 때리고 난 다음에 그의 옷을 모두 벗기고 약한 삼밧줄로 묶었는데, 조여들어서 쩡하이치의 혈관이 팽창했다. 재차 고압전기곤봉으로 전신에 전기충격을 가했는데, 피부근육이 타서 방안은 온통 탄 냄새로 가득했다. 이렇게 단숨에 1시간 넘게 전기충격을 가하였다.

2003년 6월 중순, 악경 허융(何勇)이 쩡하이치를 붉은 벽돌담 위에 매달아 놓고, 서쪽 면의 태양을 정면으로 쪼이게 하였다.(감옥의 서쪽 면은 오후가 되면 햇빛이 든다) 담의 온도는 섭씨 50도를 넘었으며, 손발은 곪아서 부종을 초래하였다. 쩡하이치는 연속 3년을 거듭하여 참혹한 박해를 당했다.

츠산감옥의 혹형 폭로로 당국에서 감옥을 바꾸었지만 혹형은 여전

위에서 말한 박해 정황은 2004년에 후난성 위안장 츠산감옥에 불법으로 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 241명의 가족들이 전인대, 최고검찰원, 사법청 및 후난성 고급검찰원, 사법청, 후난성 각급지시(地市)검찰원, 사법국에 넘겨준 고소 편지로 폭로되었다. 이 엄중한 박해정황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았다.

2004년 11월, 대륙 파룬궁수련생 241명의 가족이 서명한 공소편지를 전인대, 최고검찰원등 기구에 넘겨주어 츠산감옥을 공소한 이후, 불법으로 츠산감옥에 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들은 전부 창사(長沙)감옥, 창더(常德) 우링(武陵)감옥, 주저우 왕링(網嶺)감옥, 천저우(郴州)감옥 등 5개 곳으로 분산되어 감금당했다. 2005년 3월 23일, 쩡하이치, 덩예(鄧燁), 리쉐셴(李學先), 쉬신(徐鑫), 쩡즈위안(曾志遠), 정스푸(鄭士富), 왕칭성(王慶生), 쩡인화(曾胤華)등 8명이 츠산감옥에서 후난성 천저우감옥으로 옮겨졌다.

후난성 천저우감옥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하는 수단도 상당히 잔인하다. 2007년 3월에 이르러 천저우감옥에는 불법으로 파룬궁수련생 14명을 감금했는데, 그 중 파룬궁수련생 3명이 연이어 감옥경찰에 의해 ‘엄관’당한 적이 있고 혹형의 학대를 받았다. 예를 들면, 매달아 수갑 채우기(吊銬‐‐‐발끝이 땅에 살짝 닿게 함), 전기충격 가하기, 장기간 벽을 마주하고 서있기, 손과 발로 구타하기 등이다. 엄격히 관리해도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자 쩡하이치는 저녁에 악경에 의해 사무실에 갇혔다. 감옥경찰과 감독통제를 하는 수감자들은 두 손을 등 뒤로 채우고 거꾸로 추켜들게 하는 개구리뜀질(蛙跳) 학대를 가했다. 쩡하이치는 이전에 장기간 수갑이 채워져 매달린 적이 있어 두 손은 이미 상처를 입었으며 또한 상처가 아주 심했다. 재차 악 경에 의해 이렇게 박해당해 오른팔이 거의 불구가 되었는데, 오랜 시간 지났으나 아직 회복이 안 됐다.

귀가 2년, 하지만 수시로 감시통제 당해

2007년, 쩡하이치는 집에 돌아간 후, 현지 ‘610’사무실 등 기구의 감시통제와 박해(610사무실은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기구이다. 불법으로 설립한 당의 사무기구. 공안, 검찰, 법원 등 기구와 국가자원을 불법적으로 움직이고, 국가 법률의 단속을 받지 않으며, 파룬궁수련생을 잔혹하게 박해함.)를 피하기 위하여 선전(深圳)에서 일하는 형님에게 가서 일하였다. 대략 겨우 3개월 만에 즉시 주저우현 현지의 진(鎭)정부, ‘610’, 파출소 등이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그를 찾아냈고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교대할 방법이 없다고 하였다. 쩡하이치는 이 때문에 방금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핍박으로 현지 향진 ‘610’사무실에 의해 되돌아 와서 주저우현 셴징향 부근에 있는 기계 가공공장에서 일하도록 배치되었으며, 게다가 수시로 향진에 자신의 정황을 ‘회보’해야 했다.

가족과 한 자리에 함께 모인 날은 겨우 2년이다. 연로하신 부모는 그제야 효도하는 자식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고, 여러 해 동안 아버지의 사랑이 부족했던 딸은 그제야 응석을 부릴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이번에 쩡하이치가 또 납치를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당국은 경제를 미끼로 진실한 말을 하는 좋은 사람을 체포

주저우현은 40~50만 인구, 18개 향과 진을 가지고 있다. 샹장(湘江), 루장(淥江)은 주저우현 경내를 흘러 지나간다.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많은 주저우현 민중들은 파룬궁이 박해를 당하는 진상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였다. 현재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세계에서 널리 전해지고 있고, 무수한 사람들이 수련하여 건강을 얻고 심신의 정화와 승화를 얻었다. 쩡하이치도 이 복음을 고향의 동네 어르신과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모두 진상을 명백하게 알아 수익을 보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중공의 폭정 통치는 자신의 신앙을 견정히 믿는 맨 주먹뿐인 이 좋은 사람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중공 장 씨 집단은 천안문 분신자살사건(天安門自焚) 등 가짜뉴스를 만들어내고, 가짜사건으로 전국민중을 우롱하였으며, 사람들에게 파룬궁수련생을 오해하고 증오하도록 했다. 아울러 파룬궁수련생들의 청원 등 요구에 대해서는 국가기구 폭력으로 대응했다.

이번에 쩡하이치가 불법으로 체포당한 것은 바로 현지에서 경제이익 등을 미끼로 향진 각 계층인원을 발동하고, 순찰 경계를 엄밀하게 하면서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들을 체포하려한 것에 포함된다. 그러나 참여한 사람들 역시 중공의 가짜뉴스로 파룬궁에 대해 오해를 품고 사소한 이익을 위하여 이런 악행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역시 중공 통치 하에 ‘군중이 군중을 투쟁하는 것을 불러일으킨’ 또 하나의 역사적인 비극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라고 선하게 알려주다

진상을 똑똑히 알게 된 사람들, 지혜와 선량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한테 호소한다. 박해의 진상을 분명히 알고, 무고하게 박해를 받는 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라. 희망하건대, 주동적 혹은 피동적으로 박해에 참여한 사람들은 빨리 손을 멈추고 더는 죄업을 짓지 말라. 예로부터 수련하는 사람들을 박해하면 그 죄업은 한없이 크다고 했다. 빨리 자기 생명의 미래를 위해 출로를 남기라!

무릇 무고한 사람들을 박해하는 데 참여했던 사람들은 진상이 천하에 밝혀지는 그때에 가면 꼭 인간정의와 법률의 제재를 받게 될 것이다.

호소 : 즉시 무조건적으로 파룬따파 수련생 쩡하이치를 석방하라!

관련기구, 책임자정보와 전화(전화구역번호0731)

주저우현위부서기, 현장 차이저우량(蔡周良)

현위상위(縣委常委), 상무부현장 뤄커젠(羅克儉) (현정부상무공작을 책임지고, 공안, 사법, 신방,온정, 응급관리, 군사등 방면의 공작을 나누어 관리함)

부 현급간부, 현장조리 저우궈샹(周國湘)(공안공작을 관리하는것을 협조함)

현위상위, 부현장 청원페이(曾文飛)

현위상위, 부현장 류하이빈(劉海賓)

부현장 류신위(劉海賓)

부현장 장더윈(張德雲)

부현장 리원량(李文亮)

부현장 류메이허(劉美和)

부현급간부 샤오진룽(肖金龍)

현장조리 쑨추난(孫楚南)

주저우(株洲)현공안국

주소:후난성. 주저우시록구진록포동로25호(淥口鎭漉浦東路25號)

우편번호:412100

전화:27618222(교환대)

27638449(팩스)

27611642(110경보접수)

현재 알아낸 현공안국책임자 이름: 국장 쩌우안바오(鄒安寳), 부국장 리밍팡(李明放), 부국장 장옌(張艶), 기위(紀委)서기, 독찰장(督察長) 링야(淩婭)

국장실 27620570

부국장실 27628809

정보대대(政保大隊) 27620707

형사경찰대대(순라대대)27627112

치안과 27621778

법제과 27628807

후근 27629848

정공실(政工室) 27628805

(27628801이후로 점점 늘어나는 수의 위치번호는 모두 주저우현공안국 전화번호라고 짐작합니다. 예를 들면27628801부터 27628820사이의 전화번호는 모두 가능하게 주저우현공안국의 전화번호일것입니다.)

주저우현셴징(仙井)향파출소27692709

주저우현셴징향정부사무실27692998

주저우시610사무실전화:28829225

후난성주저우시공안국:후난성주저우시건설남로 90호(建設南路 90號)

교환대:28683133 28227871

정보(政保) 28683281신방과(信訪科)28242300경무독찰처(警務督察處) 28237234

법제처2868316028683162 사무실28683019 28683020당위사무실2868306528683050독찰사무실28683070기위(紀委) 28683060

공회28683069 치안대대 28683230형사경찰지대28683207경정지대(經偵支隊)28683220

후근처28683085출입경관리처(出入境管理處)28683170

당위사무실 28683065형정(刑偵)28683209

주저우시노교위(株洲市勞教委) 텅궈린(滕國林)(과장) 28226792

문장발표 : 2010년 5월 10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5/10/2232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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