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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춘(長春)텔레비전 스팟보도에 참여했던 량전싱(梁振興), 박해로 사망 (사진)

【밍후이왕 2010년5월4일】(밍후이통신원 지린보도) 창춘케이블TV 스팟보도망을 이용해 진상을 널리 알렸던 지린성 창춘파룬궁수련생 량전싱이, 2010년 5월1일 오전 10시경 궁주링(公主嶺)감옥 간수의 감독 관리아래 궁주링 중심병원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창춘케이블TV 스팟보도에 참여한 파룬궁수련생 중, 량전싱, 류청쥔(劉成軍)은 불법으로 19년, 저우룬쥔(周潤君)은 20년 형을 받아, 1999년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최고형이다. 량전싱은 사망하기 전, 지린감옥, 톄베이(鐵北)감옥, 쓰핑스링(四平石嶺)감옥, 궁주링감옥에서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창춘 스팟보도” 약술

장쩌민(江澤民)일당은 날조된 거짓말로 파룬궁을 증오하도록 민중을 부추 켰다. 수많은 민중들이 장쩌민에게 속아 우롱당하고 있을 때 2002년 3월5일 저녁 8시경, 지린성 창춘케이블TV 여덟 개 채널에서 일제히 파룬궁의 진상을 알리는 다큐멘터리 《파룬따파가 세계에 널리 전해지다》, 《자살인가 아니면 속임수인가》 40~50분에 걸쳐 긴급 방영됐다.

창춘케이블TV 방송사 사용자는 30만 명이며, 시청자는 1백만 명이 넘는다. 이 일은 중국 민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많은 중국민은 파룬궁 박해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장쩌민악당은 이 사건에 직면해 두려움에 경악하며 “용서하지 말고 죽여라”는 밀령을 내렸다. 잇달아 지린성에는 장쩌민 추종자들이 불법으로 5,000여명의 창춘파룬궁수련생을 대대적으로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적어도 7명이 폭행당해 사망했고, 다른 15명은 불법으로 4~20년 형을 선고 받았다. 그 중 파룬궁수련생 량전싱, 류청쥔이 불법으로 19년, 저우룬진이 20년 형을 받았는데, 이는 1999년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최고형이다.

량전싱이 당한 박해의 일부

량전싱은 2002년9 월 불법판결을 받기 전 창춘 톄베이간수소에 납치당해 갔다. 그는 2~3일에 한 번씩 심문을 받을 때마다 천으로 눈을 가린 채 끌려갔다가, 매번 돌아올 때마다 온몸에 피멍이 들어있었다. 창춘 징웨탄(净月潭)에 있는 비밀 심문실, 그곳에서 당시 납치된 창춘파룬궁수련생들이 각종 혹형과 모진 고문을 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2년 3월, 불법으로 량전싱이 구금되다

량전싱은 여러 감옥을 전전하면서 박해를 당했다. 2002년 불법으로 지린감옥에 구금되어, 이른바 교정치료센터(矯治中心)에서 혹형 “고정침대”(固定床) 고문을 두 차례 받았다. “고정침대”는 길이가 2미터인 널빤지 양쪽 끝에 각각 강철판을 덧대어 윗면에 뚫린 구멍에다 손발에 수갑을 채워 고정해놓는 것이다. “고정침대”는 당겨서 펴는 기능이 있는 외, 주로 고정하는 작용을 한다. 사람을 고정시킬 때 침대와 몸을 밀착시켜 떨어지지 않게 한다. 그리고 위로 상승하지 않으며(不腾空), 사지의 긴장정도는 “당겨서 펼” 때보다 느슨하다. 대변을 볼 때만 내려올 뿐, 소변과 수면을 취할 때 모두 내려놓지 않는데, 어떤 이는 몇 달 동안 고정시키곤 한다.

량전싱은 2004년 지린감옥에서 창춘톄베이감옥으로 이전되어 독방에 있는 동안 갖은 구박을 다 받았지만, 그는 폭행을 두려워하지 않고 법학습과 연공을 견지하였다. 이에 대대장 왕샤오광(王小光)과 교도원 장리저우(張力周)의 사주를 받은 죄수는 “그래, 내가 너를 때릴 때 누구를 찾아도 소용없다.”라고 하며 광폭한 폭행을 가했다.

2005년 8월 창춘시톄베이감옥 22감구역에서 쓰핑스링(四平石岭)감옥으로 이전한 량전싱은 그곳에서도 곧장 독방에 감금됐다가 교육감구역에 구금되었다. 쓰핑감옥 간수는 누구도 그와 말하지도 접촉하지도 못하게 했다. 만약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거나 심지어 그를 한번 보기만 해도, 가혹한 폭행을 당할 정도였다. 간수는 감옥에 갇힌 량전싱을 오랫동안 발에 족쇄가 채우고 침대에 고정시켜 놓았다. 네 바오자(包夹)죄수는 악독한 간수의 지시로 매일 24시간 그를 감시 통제했다. 바오자 죄수는 평소 량전싱을 때리고 싶으면 때리며 폭행을 일삼았는데, 전기곤봉, 무단폭행, 벽을 마주하고 세우기, 귀뺨때리기, 수면박탈, 영하 20~30도인 겨울에 냉수를 끼얹는 등, 온갖 고문을 가했다. 또 악한 죄수들은 돌아가면서 포르노 잡지를 읽기도 했다.

2006년 7월, 창춘 “610”(파룬궁박해를 위해 장쩌민이 조직한 기구, 공안, 검찰, 법원위에 군림한다)은 쓰핑감옥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이른바 “교육도우미”(幫教)를 고용해 파룬궁수련생의 신앙을 강제로 포기시키려 했다. 량전싱이 거절하자 악인은 매일 호스를 코에 꽂아 음식물을 주입했고, 음식물을 주입한 호스도 뽑지 않고 꽂아 놓았다. 바오자의 두 죄수는 늘 량전싱을 감옥2층으로 데려가 세뇌박해를 진행하였다. 4~5명이 번갈아 돌아가면서 공산사당의 강변과 사설을 팔았지만 량전싱은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 교육감구역의 감구역장 인서우둥(尹守東), 교도관 양톄쥔(楊鐵軍), 간사 우톄(武鐵)등은 전기곤봉 4개를 한꺼번에 이용해 전기충격을 가했다. 량전싱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으로 두 번이나 계단에서 뛰어내리다 한번은 방열기에 부딪쳐, 두개골(腦顱骨)이 파손돼 직경 4~5센티미터 가량의 흉터를 남겼다.

파룬궁수련생 7명, 대대적인 체포 중 사망하다

장씨 깡패집단의 “용서하지 말고 죽이라”는 밀령에 5,000여명의 창춘파룬궁수련생들이 불법 체포되었다. 창춘케이블TV 스팟보도 사건으로 적어도 7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대대적으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숨졌다.

2002년 3월11일 저녁, 창춘시 콴청(寛城)구역 공안 분국은 파룬궁수련생 류하이보(劉海波,34세)를 집에서 납치해 새벽 1시가 넘도록 혹형을 가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경찰은 류하이보가 심장이 멎은 것을 확인한 뒤에서야 급히 120구급센터에 보냈지만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2002년 3월16일, 30여세 가량 된 한 남자 파룬궁 수련생이 창춘진청(錦程)공안분국 형사대대에서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그의 온몸은 상처투성이였고, 내장 또한 여러 곳이 파열돼 온몸이 변형된 상태였다.

2002년 3월18일, 류이(劉義,34세)는 창춘 뤼위안(綠園)구역 공안분국 형사경찰대대 사무실에서 폭행치사 당했다.

2002년 3월20일, 여 파룬궁수련생 리수친(李淑芹,54세)은 창주루(長久路)파출소 경찰에 납치돼 창춘제3간수소에서 고문치사 당했다.

지린대학 응용수학교수 선젠리(沈劍利,34세)는 2002년 3월6일 체포돼 2002년 4월 하순 현지공안에게 고문치사 당했다.

여 파룬궁 수련생 리룽(李容)은 2002년 3월 창춘케이블TV 긴급보도에 참여했다 이유로 경찰에게 체포돼, 3월말부터 4월초까지 짧은 기간 동안의 박해로 치사했다.

“610”은 파룬궁수련생 허우밍카이(侯明凱,35세)를 5만 위안의 상금과 2급 승진조건으로 체포령을 내렸고 결국 그는 2002년 8월21일 체포돼 이틀만에 고문치사 당한 뒤 2002년 8월23일 비밀리에 화장처리 됐다.

류청쥔, 21개월간 고통 감당하다 사망

2003년 12월26일 (금요일) 새벽4시, 주요 인물이었던 류청쥔은 1년9개월 동안 감옥의 잔혹한 고문을 감당하다, 창춘지린대학 중일롄이(聯誼)병원에서 숨졌다.

중국뉴스넷(中新網) 2002년 4월1일자 사진에도 분명히 드러나듯 갖은 고문에 시달린 류청쥔은 자연스러운 자세를 유지할 힘조차 없었다. 일관적으로 장씨 집단의 폭행을 분석하려는 중국뉴스넷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류청쥔이 고문당한 실제상황이 훨씬 더 심각했을 것임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2002년 3월24일 류청쥔을 납치해 갈 때 경찰은 이미 수갑과 족쇄를 채운 류청쥔의 다리에 고의로 두발의 총을 쏴 중상을 입혔다.

2002년 5월초, 톄베이간수소에 이전된 류청쥔은 혹형과 자백을 강요당하며 호랑이 의자에서 52일간 고문을 당했다. 류청쥔은 재판 당시 들려서 법정에 들어왔다.

2002년 9월 중순, 류청쥔은 19년 불법판결을 받고 지린감옥에 감금되었다.

2003년 10월 하순, 이미 고문으로 탈상당한 류청쥔은 말을 하거나 글을 읽는 것도 이미 힘들었다. 류청쥔은 지린시중심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을 당시 이미 위독하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여전히 610사무실은 강제로 지린성공안병원으로 이송했다. 그곳에서 류청쥔은 요독증 최종 진단과 더불어 위독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지린감옥은 압력에 의해 11월4일 류청쥔을 병보석 수속을 했으나 류청쥔의 호구소재지 눙안(農安)현 더뱌오(德彪)파출소 동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파출소는 책임을 지는 게 두려워 11월5일 눙안현공안국에 보고했고, 눙안현610사무실에서는 병보석 허가를 불허했다. 후에 지린 감옥은 병보석 추진자료를 폐기해 버렸다.

2003년 12월26일(금요일) 새벽4시, 류청쥔은 1년 9개월간 감옥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하다 창춘지린대학 중일롄이(聯誼)병원에서 숨졌다. 그날 지린감옥은 대량으로 경찰들을 집합시킨 후,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체검사 과정을 생략한 뒤 오전11시경 강제로 시신을 화장했다. 한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류청쥔의 사체에서 코구멍, 귀, 허벅지 등에서 피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레이밍(雷明), 박해로 사망

2002년 3월15일 레이밍은 창춘케이블TV에 긴급보도한 이유로 악경과 악인에 의해 창춘시칭밍제(清明街)파출소에 납치당했고, 연이어 창춘시공안국에도 납치되었다. 창춘시 공안국의 악경은 레이밍을 전기곤봉으로 격렬하게 충격을 가한 그날 밤 8,9시경 창춘공안 1처에서 그를 신속히 납치해 갔다. 악경은 레이밍을 철로 된 호랑의 의자에 앉히고는 두 발을 꽉 묶고, 철몽둥이를 호랑의 의자 손잡이에 가로 놓고, 자물쇠로 의자를 잠궜다. 그런 다음 레이밍의 두 손을 등과 반대방향으로 놓게 한 뒤, 두 겨드랑이를 의자 등받이에 걸리게 하였다. 그런 다음 소가죽띠로 수갑 중간을 빠져나가, 의자다리를 거쳐 가로질러 감아 올렸다. 두 악경은 소가죽띠를 힘껏 아래로 잡아당겼고 그 중 화가 난 한 악경은 발로 수갑을 차기도 했다.

파룬궁수련생 레이밍

레이밍의 몸무게는 65키로그램이었으나 고문으로 35키로 나갔다. 그는 의지할 곳을 잃고 여기저기를 떠돌다 원한을 품고 인간세상을 떠났다.

악경들은 발광하듯 레이밍에게 다가와 그의 귀뺨을 쳤다. 또 두 악경은 각각 전기곤봉을 하나씩 들고 레이밍의 윗옷과 바지를 벗겼다. 그리고 동시에 레이밍의 목, 입, 허벅지, 흉부, 생식기, 홍문에 전기충격을 가해, 너무 고통스러웠던 레이밍의 비명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줄곧 전기곤봉의 밧데리가 다할 때까지 전기충격을 가했다. 악경들은 또 전기곤봉에 충전을 하는 사이 비닐주머니를 레이밍의 머리에 씌워 공기가 통하지 않아 숨이 넘어갈 때쯤 갑자기 비닐주머니를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레이밍이 갓 숨을 몰아쉬자 또 비닐을 씌웠다.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해 고문을 가했고, 줄곧 전기곤봉에 충전이 다 될 때까지 했다. 또 두 악경을 윤번으로 돌며 레이밍에게 전기고문을 가하는 것도 모자란다고 느꼈는지, 또 넓고 앏은 머리 드라이버를 전기난로에 달군 뒤 레이밍의 목에 대고 지져 데인 살가죽이 다 벗겨졌다.

이어, 악경은 전기곤봉으로 레이밍이 화상 입은 곳에 전기충격을 가했고, 다시 물을 목에 끼얹어 사는 게 죽느니만 못하게 하였다. 이 사이 악경들은 또 하나의 큰 철통을 레이밍의 머리위에 씌우고는, 큰 철몽둥이로 힘껏 내리쳐 귀가 멀 정도로 진동하게 했다. 악경들은 또 나무 몽둥이의 한 끝을 홍문에 박고, 그런 다음 다른 한 끝은 의자등받이 밑부분의 들보에 걸리게 하였다. 재차 전기곤봉으로 홍문에 전기충격을 가해 그 고통은 이루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레이밍은 4,5시간 계속된 고문에 팔, 손목뼈가 늘어나고 배기어 극도로 고통스러웠고, 온몸의 땀이 모두 흘러내린 듯 옷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한 악경이 뒤짐으로 잔등에 수갑을 채운 레이밍의 두 손을 움켜잡고, 위로 힘껏 들어올려, 레이밍의 앞가슴과 허벅지가 한데 딱 붙게 하였다. 그러자 레이밍의 소복부가 철 몽둥이에 배겨 몹시 고통스러웠다. 이런 자세를 대략 5분간 취한 후 손을 멈추었다, 두 손이 강한 힘에 늘어나 레이밍의 팔은 이미 탈절(脱节)되어 오른 팔은 벌건 검은색을 띄었고, 장애인처럼 흔들거렸다. 두 손은 찐빵만큼 부어 올랐고 손가락은 2,3배로 굵어졌다.

악경들을 이렇게 끊임없이 나흘 동안 밤낮으로 돌아가면서 레이밍을 박해했다. 마지막에 악경들은 레이밍을 톄베이간수소에 보냈으나 레이밍을 신체를 검사한 간수는 온 몸이 상처투성이로 고문당한 흔적에 수감을 거부했다. 그러나 시공안국 악경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후에 레이밍을 수감하는데 동의하였다.

레이밍은 감방에 도착한 뒤 먼저 목욕하고 머리를 깎았다. 레이밍이의 전신이 온통 상처투성이인 것이 드러나자 감방 죄수들 모두 깜짝 놀랐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감히 보지도 못했다. 레이밍의 온 몸은 전기충격을 받아 생긴 검은 점이 가득했으며, 목 위의 화상, 또 전기에 탄 상처, 손목, 팔, 발목은 고문당할 때 남겨진 상처자국들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감방의 두목은 “이전에 나는 파룬궁이 이렇게 엄중하게 박해받음을 믿지 않았지만, 오늘 나는 철저히 믿게 되었다. 이 공산당은 곧 끝장이다.”고 말했다.

당시 레이밍을 박해한 악경 흉수들은 :류후이빈(刘会斌), 장타오(江濤), 가오항(高杭), 장보(姜波), 성이 고(高)가인 과장 등이다.

레이밍은 각종 잔악무도한 고문을 당한 뒤 창춘시사당중급법원에서 17년 중형을 받았다. 지린 감옥에 납치돼 “늘이는 침대”등 각종 혹형의 시달림과 온종일 끊임없이 가해지는 정신적 압력으로 레이밍은 불구가 되었다. 두 다리 근육이 위축돼 걸을 수 없어 자립할 수 없었고, 폐결핵마저 앓게 되었다.

2004년 11월, 지린감옥은 이미 생명이 위독해진 레이명을 가족에게 떠맡겼다. 극도로 허약해진 레이명의 체중은 겨우 35키로 밖에 안 되었다. 그는 또 현지공안, 파출소, 감옥에서 늘 집에 찾아와 교란해 핍박으로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다 2006년 8월6일 원한을 품고 인간세상을 떠났다.

지린성궁주링감옥 우정주소: 지린성궁주링시1002편지함 우편번호:136100

지린성궁주링감옥 감옥장 안핑(安平) : 434—6282001 434—6289753

지린성궁주링감옥 부감옥장 쑤바오천(蘇寳臣) : 434—6282002

지린성궁주링감옥 부감옥장 푸궈둥(付國棟) : 434—6282003

지린성궁주링감옥 부감옥장 천중빈(陳忠斌) : 434—6282004

지린성궁주링감옥 전화교환대 전화번호: 434—6289236

교환대 번호를 눌러 통한 후 안내있음: 구내전화번호를 누르세요, 전화번호를 찾아보자면 “0”를 누르시면 됩니다.

구내전화번호

재차 구내전화전호2005、2006#를 누르고 다른 것은 이것에 의해 유추할 수 있으며, 능히 궁주링감옥 각 과실과 각 감구역의 전화를 누르시고 통화할 수 있습니다.

주택전화

류하이양(劉海洋) 0434-6287869

류빙(劉兵) 0434-6285255

마원이(馬文義) 0434-6229137

장야촨(張亞權) 15699529988

문장발표:2010년05년04일

문장분류:박해진상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5/4/222833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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