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2010년 4월 23일] (밍후이통신원 지린성 보도) 지린(吉林)성 퉁화(通化)시 위롄허(於連和.41)는 태어날 때부터 혈우병이 있었다. 수혈로 성장을 유지했으며 이 병은 무릎과 골반관절이 조금씩 끊임없이 침식되는 병으로 18세 이후에는 장애인으로 취급된다. 1998년 3월 가족은 그를 업고 가서 파룬궁을 배웠는데, 한 달 사이에 위롄허의 병은 기적 같이 전부 사라졌다.
2009년 4월 12일 오후 6시경, 퉁화시 국보대대 싱구이취안(荆貴泉)은 경찰차 3대에 십여 명의 사람을 거느리고 위롄허의 집 담장을 뛰어넘는 등 불법 침입해 그를 납치했다. 9월 17일 퉁화시 공안, 검찰, 법원은 공모해 그에게 3년 판결을 내림으로써 위롄허는 10월 2일에 쓰핑(四平) 스링(石嶺)감옥에 옮겨져 계속 박해를 당했으며 2009년 10월 22일 마침내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지린성 숭위안(松原)시 대법제자 둥펑산(董鳳山)도 비밀리에 불법으로 9년 판결을 받았고, 감옥측은 둥펑산이 이미 병으로 세상을 떴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소식에 의하면 둥펑산은 무참히 맞아 죽었다고 한다.
위롄허가 혹독한 구타로 사망한 정황
대법제자 위롄허
2009년 11월 22일 일요일, 지린성 쓰핑 감옥 10감시구역의 3호 감시실에서 위롄허가 침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전 11시경에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옆 침대의 수감자 진타이수(金泰述)와 살짝 부딪혔는데 그는 즉시 욕설을 하며 위롄허를 심하게 구타했다. 먼저 주먹으로 위롄허의 머리를 맹렬히 공격하자 위롄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또 주먹으로 가슴부위와 늑골 부위를 3~4분간 심하게 때렸다. 위롄허가 고통으로 쓰러지자 진타이수는 구타를 멈추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돌아온 후 그는 쓰러져있는 위롄허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계속 때렸다. 이때 위롄허는 이미 너무 고통스러워 이마를 비롯한 몸 전체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오후 2시, 윗 침대 수감자 장쥔(張軍)이 위롄허가 땀을 흘리며 고통스럽게 침대에 구부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수감자 조장(3호 감시실의 조장) 한솽(韓雙)에게 “여기서 죽게 하지 말고 빨리 병원으로 옮겨라”고 했다. 한솽은 위롄허의 침대 앞에서 “엄살 부리지 말고 남자답게 일어나라”고 하자 장쥔은 “엄살 부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마의 땀을 봐라 빨리 연락해라”라고 말했다. 한솽은 심드렁하게 쇼우강(小崗)경찰(감옥 경찰)에게 알렸다.
원래 감시구역 옆 관리교육실에서 당직을 서야 하는 10구역경찰은 수감자 한 명도 없는 2층사무실에서 인터넷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었고, 오후 3시에야 감시구역에 돌아와 두 명의 수감자와 같이 위롄허를 부축해 감옥 병원으로 갔는데 검사결과 이미 구할 수 없는 상태임을 알았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2009년 11월 23일, 감옥 정찰과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조사해 증거를 채취하고 기록했다고 한다.
둥펑산이 혹독한 매로 사망한 정황
2008년 10월 29일 밤 7시 10감시구역(원래 교육 감시구역) 4소조의 조장(수감자) 루옌펑(陸晏豊), 포협(包夹-감시원)조장 위펑우(於風武), 한솽(韓雙), 디소우취안(邸少權), 왕궈샹(王國祥), 왕옌솽(王彦雙) (이미 2009년 5월에 형기를 감형하고 석방), 천촹(陳闖), 장디(張迪), 쑨초우(孫超)등 9명의 악인들은 대법제자 둥펑산을 화장실에 끌고 가 구타했는데 줄곧 저녁 9시까지 구타한 후 숙소로 돌아갔다.
이튿날 바로 10월 29일 감시구역 조장 인서우둥(尹首東), 4구역교육장 츠위린(郝玉林), 3구역 교육장 양테쥔(楊鐵軍), 리버(李波), 1구역교육장 리하이펑(李海峰), 2구역 교육장 우톄(武鐵) 등은 둥펑산의 팔과 다리를 잡아끌고 2층 노동 현장으로 가 전기 경찰봉 등 도구를 사용해 지속적으로 박해해 사망케 했다.
경찰들은 자신들이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3명의 형사범들에게 각각 5만 위안의 돈을 주어 둥펑산을 그들이 죽인 것으로 시인하게 했다.
문장발표: 2010년 04월 23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4/23/2220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