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2010년4월7일】(밍후이 통신원 광둥보도) 광둥(广东)성 마오밍(茂名)시 마오난(茂南)구역의 정바오(郑保)는 질병에 시달리던 노인으로 파룬궁을 배우고 연마한 후 남은 여력을 사회를 위해 공헌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으로 되었다. 근기 있게 수련을 견지하고, 진, 선, 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으나 오히려 중공에 의해 6~7년의 불법구금을 당했다. 몸이 박해를 받을 대로 받아 2010년2월22일에 끝내 세상을 떠났는데, 76세였다.
정바오는 1934년8월에 출생하였고, 직장은 마오밍시2건(二建)이었다. 정바오는 원래 심한 폐결핵에 걸렸고, 오랫동안 치료하여도 낫지 않아 건강이 아주 나빴다. 다행히 1997년 대법을 얻고 대법에 따라 수련한 후 아주 빨리 건강을 회복하였다. 환갑이 다 된 노인이 또 목공가구를 만드는 데까지 참가할 수 있게 되어, 가정수입도 늘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정바오는 진선인 수련을 견지하였고, 중공의 불법요구에 타협하지 않았다. 대법을 수련하지 않는다는 보증서에 서명할 것을 거절하였기에, 마오밍(茂名)“610”(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전직기구)에 의해 여러 차례 납치되어 박해 당했다.
2000년3월18일, 정바오와 몇 명 파룬궁 수련생들은 정부를 신임하고 헌법이 부여한 청원의 권리에 따라, 어려움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北京)으로 청원하러 떠났다. 정부로 하여금 파룬궁은 나라와 인민에게 다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풍찬노숙(风餐露宿)하고, 온갖 신체적인 어려움을 무릅쓰고 4월8일 허난창거(河南长葛)시에 이르렀다가, 현지의 중공인원에 의해 납치당했다. 그들은 불법으로 이 시의 간수소에 구금당하여 7일간의 노역으로 박해를 받았으며, 후에 또 마오밍제2간수소에 전송되었다. 그들은 식사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굶으면서 장시간 동안 노역을 해야 했으며, 정바오는 그해 5월에야 사악한 소굴을 벗어났다.
2000년8월, 정바오는 마오밍 관산둥(官山东)에서 동수들과 함께 단체로 대법공부를 하다가 한 패거리가 된 마오밍의“610”, 국가 보안, 국보 대대에 납치당했다.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마오밍 간수소에 구금당해 박해 받았으며 돈과 재산을 잃었다. 정바오는 또1년의 불법노동교양을 받고 싼수이(三水)노교소에 갇혀 박해 받았다. 정바오는 발랐고, 사당의 불법요구를 승인하지 않았기에, 반년 후 노교소에서 정정당당하게 뛰쳐나왔다.
또한 2002년1월, 정바오는 중공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민중에게 알 권리와 대법의 결백함을 밝히기 위하여, 마오밍 가오산눙민(高山农民)거리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진상을 똑똑히 알지 못하는 악인에게 모함당해, 또 마오밍“610”에 의해 납치당했다. 아울러 재차 불법으로 1년의 노동교양을 받았으며, 강제적으로 싼수이노동교양소에 보내져 박해 당했다. 정바오는 반년 후 또 노동 교양소에서 뛰쳐나왔다.
2004년5월10일, 정바오와 다른 두 명의 파룬궁수련생은, 집에서 마오밍시 마오난구역 공안분국 국보대대의 황샤오화(黄晓华), 왕전위안(王振源), 리원우(黎文武)등 10여명의 경찰에 의해 납치되어, 비밀리에 마오밍의 이른바 “법제학교”(法制学校)(사실은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에게 박해를 진행하는 세뇌반이다)에 구금당했다. 정바오 등 사람들은 세뇌반의 악인에 의해 밤낮없이 번갈아가며 파룬궁을 모독하는 거짓말을 주입 받았고, 악인들은 정신과 육체의 이중박해를 진행하였는데, 전향을 거절하면 곧 능욕하고 심지어 구타까지 당하였다. 7월2일, 정바오 등 사람들은 마오밍 제1간수소에 전송되어 노역의 박해를 받았다.
그 해 10월21일, 마오난구역 법원에서는 불법으로 개정하였다:심판장:저우원샹(文祥周),심판원:리하이잉(李海英),청바오이(曾宝颐), 서기원:원궈야오(温国尧); 검찰원의 검찰인원 투뱌오(涂标)등 악인들은 법률을 위반하고, 가족한테 법정에 오라는 통지도 하지 않은 채, 비밀리에 조사하고, 제멋대로 판결하여 정바오는 억울하게 9년 재판을 받았다. 정바오는 변호사를 초빙하여 무죄상소(无罪上诉)를 하였는데, 마오밍 중원심판장(中院审判长) 황창원(黄昌文), 대리심판원 천샤오링(陈小玲), 쉬(徐)모모, 서기원 리차오(李超)등은, 변호사가 법정에 나서서 무죄 변호하는 것을 거절하였으며, 억울한 재판을 계속하였다.
2005년1월10일, 정바오 등 사람들은 양장(阳江)감옥 제10감옥구역에 보내져 박해를 받았다. 양장감옥장 차이시펑(蔡锡鹏), 부감옥장 두원타오(杜文涛)와 우잔화(吴湛华), 감옥“610”의 량 관 훙(梁观宏)과 천(陈)모의 지시아래, 매일 12시간 동안 파룬궁을 모독하고, 파룬궁 창시인한테 먹칠하는 세뇌와 주입을 하였다. 그리고 정신상에서 박해하고, 강제로 매일 한편의 이른바 학습심득을 쓰게 하였으며, 매 주마다 무슨 회보를 쓰게 하고, 매 월마다 사상회보, 매 년마다 총결을 쓰게 하였다. 또 정기적으로 무슨 세뇌반 학습을 조직하여, 강박적으로 대법을 비방하는 비디오를 보게 하였다. 그들은 있는 수단을 다 써가며 사람의 사상신앙을 바꾸려하였는데, 사람의 두뇌를 떼 내어 기억을 바꾼 다음 다시 맞추어 넣을 수 있었다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이익의 부추김아래, 양장감옥에서는 수감인의 신체적 상황을 알려하지 않고, 노약자, 환자, 장애인의 생명의 안위는 고려하지도 않았다. 층층이 아래에 전달된 과부하의 생산임무를 완성하기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다그치면서, 수감인원에게 노역을 시켰는데, 명절과 휴일도 놓치지 않았다. 칠순을 넘은 정바오도 이런 악랄한 환경가운데서 몸이 망가져, 폐결핵이 재발하였고, 오랫동안 미열이 계속되었지만 쉬면서 치료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일하러 나가서 생산임무를 완성해야만 했다. 이리하여, 또 심한 심장병을 일으켰다. 감옥에서는 사람이 잘 못 될까봐 두려워, 2008년 말 가족한테서 이른바 담보로 8,000위안을 받아내서야, 병보석으로 치료 받을 수 있게 정바오를 풀어주었다.
가족은 정바오에 대한 한차례 또 한 차례의 박해를 목격하고, 일찍이 낙담하였다. 또 경제상의 손실(정바오가 억울하게 재판받은 후 퇴직금도 1년 넘게 지불이 정지되었다)이 가슴 아파서, 오히려 파룬궁에 화풀이 하였다. 게다가 악당이 지시한 것 때문에, 가족은 이미 걷기도 불편한 정바오에 대해 엄격히 통제하고, 그가 법공부와 연공을 못하게 하였으며, 그가 어렵게 얻은 대법책을 태워버렸으며, 파룬궁수련생과도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가정이 감옥으로 변하고,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도 못하게 된 정바오의 몸은 나날이 쇠약해졌으며, 비록 가족이 최선을 다해 치료를 진행했지만, 필경 의료수준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정바오는 2010년2월22일에 마오밍인민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갔는데, 그때 연령이 76세였다.
현재 중국사회에는 여러 가지 혼잡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살인방화, 탐오부패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 일체를 중공은 관계도 하지 않고, 관계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단지 맹목적으로 진, 선, 인에 따라 수련하는 좋은 사람만 박해하고 있다. 사람이 처벌하지 않으면 하늘이 처벌한다. 현재 빈번해지고 있는 천재인화는 바로 하느님의 사람에 대한 경고이다. 아직도 악을 행하는 그런 사람들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선악은 보응이 있다는 것은 천리이다.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위하여, 악을 행하는 것을 멈추시오, 계속 하느님의 자비를 농담으로 여기지 마시오.
문장발표:2010년04년07일
문장분류:박해진상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4/7/22112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