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룬궁수련생 부판웨이(卜繁偉)의 박해당한 경력
[밍후이왕 2010년 4월 6일](밍후이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사람의 삶 중에서 청춘은 얼마나 되는가? 또 10년이라는 세월이 얼마나 있는가? 당시 스무살의 젊은 부판웨이는 1999년 8월부터 2009년까지, 10년 중에서 9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는 10여 개 간수소, 노동 교양소, 감옥을 거쳐 가는 곳마다 고통과 시달림, 박해를 잔인무도하게 받았으며 그로 인해 여러 차례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헤이룽장성 탑하현 신화가에 거주하였다. 십여 살이 넘어서부터 파룬궁 수련을 하였고 더욱이 순박하고 선했다. 항상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좋은 아이였기에 사람마다 좋아했다.
1999년 중공은 공개적으로 파룬궁 박해를 시작하였으며 스무살이 된 그는 파룬궁에 대한 바른 말을 하기 위해 여러 번 상급기관에 가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을 요구하였다. 眞(쩐),善(싼),忍(런)에 대한 신앙을 견지하였다는 이유로 여러 번 납치당해 불법 감금 된 채 9년 동안을 감옥에서 살았다.
1999년 8월, 타허 간수소는 불법으로 그를 보름 동안 구류하였다.
2000년 그는 타허현 공안국에 불법으로 구류되었다. 타허현 간수소에 있는 동안 무장경찰, 범인, 악경들을 시켜 야만스럽게 그에게 강제적으로 음식물을 투입하였다. 그 후 타허현 공안국은 그를 강제로 수이화 노동교양소로 보내 1년간 불법 노동교양을 시켰다.
2001년 2월 베이징 퇀허 노동교양소에서 악경은 크고 작은 5개의 전기 몽둥이로 충격을 가하여 그의 온 몸에는 물집이 잡혔고 얼굴은 검게 변하였다. 6월, 베이징 둥청 간수소에서 악경들이 전기 바늘을 그의 체내에 꽂고 전기충격을 가한 후 그의 위에 호스를 꽂고 짠 소금 250g을 투입하였다.
2001년 8월 17일, 베이징시 둥청구 법원은 그가 천안문에서 “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글자가 새겨진 현수막을 펼쳤다는 이유로 그에게 8년이라는 불법판결을 내렸다.
2001년 10월, 그는 하얼빈 감옥에 불법 감금되었는데 그 곳은 더욱 죄악이 판을 치고 횡포한 짓을 하는 마귀 소굴이었다. 감옥 경찰은 범죄자를 시켜 그를 박해하였다. 우선 24시간 동안 잠을 못 자도록 정신적 고통을 주고 계속하여 매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혹형을 가해 육체적 고통을 주었다.
2002년, 하얼빈의 겨울 날씨는 영하30~40도나 된다. 몇 명의 악도들은 얇은 옷을 입고 있는 그를 들어서 냉탕에 집어 넣었다가 또 문밖에 끌어다 놓고 바깥의 찬바람을 쐬게 하였다. 그는 얼어서 온몸이 자주색으로 변했고, 사람의 본성을 완전히 상실한 악경은 계속 그의 몸에 찬물을 부었다. 한동안 악경들은 거의 날마다 그를 냉탕에 한동안 담그는 박해를 가했다.
2003년 9월, 하얼빈 감옥 경찰은 대나무 젓가락을 뾰족하게 깎아서 그의 손톱 밑을 찔러 손톱이 억지로 벌어지게 하였다. 10대대 악경은 또 범죄자를 시켜 이와 같은 혹형을 하게끔 지시하였다. 범죄자들은 그를 밧줄로 묶어놓고 대나무 젓가락을 뾰족하게 깎아서 손톱 사이에 박아 넣고 전요계(电摇表)와 전기 바늘을 이용해 그의 전신에 전류가 통하게 하였다. 또 겨울엔 그의 옷을 벗긴 후 밖의 가득 차 있는 물 속에 눌러 넣고 나서 바람이 통하는 곳에서 찬바람을 쐬게 하고 또 찬물을 붓고 다시 찬바람을 쐬게 하였다.
2004년 7월, 그를 다칭 감옥 4감시구역에 이전하여 불법 감금하였다. 그는 장기적인 박해로 여위어서 피골은 상접하고 생활 자립 능력도 상실하여 오로지 침대에만 누워있고 대,소변은 다른 사람이 도와주어야 했다. 매일 식염수와 칼륨을 주사하여 생명을 유지할 뿐, 수시로 사경을 헤매여 생명이 위험에 놓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칭 감옥에서는 그에 대한 박해를 포기하지 않았다. 3일에 한번씩 음식물을 투입하고 이 기회를 이용해 잔인한 수단으로 호스를 반복적으로 넣고 빼고 해서 관식 후에는 매번 코피를 흘렸고 기침을 할 때도 피가 섞여 나왔다. 가족들은 숨이 곧 끊어질 듯이 침대에 누워 있는 그를 보고 보석하여 치료 할 수 있도록 강렬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다칭 감옥에서는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부감옥장 장수천(姜樹臣), 4감구역장 청쥔창(程軍昌)은 가족에게 “사람은 이미 안 된다. 나가서 치료 한다 해도 죽을 것이고 죽어도 우리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2004년 8월 24일, 헤이룽장성 다칭 감옥 부감옥장 왕자런 (王家仁)、정치부 주임 리웨이룽(李威龍)、부주임 리웨이난(李偉南)、형법집행과 과장 위안훙쥔(元洪軍)은 폭력 방지팀 무장 경찰들을 데리고 감옥 범위내의 모든 감금 인원과 감시구를 조사하였다. 4감시구에서 부판워이는 폭력 방지팀 경찰 가오중화(高忠華)에게 경찰 몽둥이로 머리의 태양혈을 맹렬하게 맞아 즉시 땅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그를 작은 감방에 감금하고 철제 의자에 묶어 놓았다. 감방 당직 경찰 류치(劉奇)는 수갑을 차고 있는 그의 두 손을 한발로 힘껏 찼다. 그는 비명을 질렀고 수갑은 살을 파고 들어갔다. 경찰 류치는 큰 소리로 “내가 당직일 때마다 혼내 줄 것이다. 사는 것이 죽는것만 못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5년 8월, 26세인 대법제자 부판웨이는 대칭 감옥에서 박해를 받아 장작같이 바싹 마르고 생명이 위급한 상태로, 매우 엄중했다. 혈압은 40~70mmHg 로 내려가고 검은 변을 보고 호흡은 미약하여 항상 혼미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감옥에서는 그를 놓아 주지 않고 계속하여 박해 하였다. 부판워이 가족들이 보석치료를 요구하였으나 다칭 감옥에서는 생명이 위독한데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2007년 8월 4일 오전 9시, 다칭 감옥에서는 형사범과 대법제자들을 모두 운동장에 모아놓고 정치부주임인 리워이룽, 리워이난은 폭력방지 팀 악경들을 시켜 불법 감금된 대법제자 자이즈빈(翟志斌), 부판웨이, 우춘원(武春文) 등을 구타하고 강제로 죄수복을 걸치게 하였다. 몇 명 제자들은 맞아서 일어 날수 없었고 신체는 매우 허약해졌는데 그 중 부판웨이는 혼미상태에 처하였다.
2009년 출옥할 당시 부판웨이의 나이는 31세였고 몸에는 상처 자국이 가득하였다.
문장발표:2010년 04월 06일
문장분류:박해진상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4/6/2210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