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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 핵심 기구 : 해방군 총후근부(사진)

글/전쥔(甄鈞)

【명혜망 2009년 11월 10일】 1999년 장쩌민이 파룬궁(法輪功) 박해를 발동할 때 군권(軍權)을 장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중공 군부는 비록 겉으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박해에 가담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장쩌민의 독단적인 박해에 대해 객관적으로 엄호하는 역할을 했다. 군대는 파룬궁 박해 중에 큰 역할을 했으며 아울러 군대에 대한 중공의 엄밀한 통제와 군대 자체의 특수성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게 했다. 이중 가장 주요한 것이 바로 총후근부(總後勤部)를 중심으로 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로 폭리를 취한 사건이다.

중공 군대의 부패를 가속화시킨 장쩌민

장쩌민이 군권을 잡은 중요한 일환은 자기 파벌을 등용해 군부 내 고위층을 자신의 인물로 물갈이한 것이다. 1994년 장쩌민은 19명의 중공군 상장(上將 역주: 중공군 최고위직)을 임명했다. 이때 그가 발탁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충성심이었다.

누구근 “당중앙의 핵심인 장쩌민을 옹호한다”는 말만 하면 관운이 형통했고 이런 언급을 하지 않으면 승진에서 탈락했다. 예를 들어 차오솽밍(曹雙明) 상장은 공군사령관으로 임명된 지 불과 2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장쩌민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지 않고 불만을 토로냈다는 이유로 1995년 초에 해임 당했다.

하지만 함께 불만을 토로했던 2포대(二炮) 정법위원 쑤이융지(隋永舉)는 장쩌민의 환심을 사서 어느 날 갑자기 중장(中將)에서 상장(上將)으로 승진했다.

중국에서 승진은 재물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특히 장쩌민이 집권하던 시기에 중국 국내의 부패는 날로 심해졌다. 장쩌민은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들에게 방종하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군부와 자본이 결탁해 나라를 망치고 군을 타락시켰다.

공안부 부부장(副部長) 리지저우(李紀周)는 사사로이 1천여 억 위안을 착복했다. 하지만 군대-자본 유착(주로 밀수)에 비하면 이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주룽지 전(前) 총리는 일찍이 모 회의에서 98년 한해에만 군대에서 총과 대포를 이용해 세관 밀수 단속반원, 공안, 무장경찰, 사법부 간부 450여 명을 살해했고 2200여 명을 다치게 했다고 밝혔다. 인민해방군의 밀수는 기상대와 군사용 통신을 이용하는데 심지어 총리의 서명을 도용하거나 군사위원회 부주석의 인장을 멋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1998년 11월 중순 중앙군사위원회, 중앙군사기율위원회가 베이징 서산(西山)에서 회의를 소집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인원들은 국가주석 장쩌민, 주룽지 총리, 장완녠(張萬年), 츠하오톈(遲浩田), 장전(張震) 등인데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이중 츠하오톈은 94년 이후 군대에서 운영하는 경제실체의 자본과 수입 중 80%가 고급 및 중간 간부들에 의해 사사로이 착복되었다고 말했다.

1998년부터 1999년 2월까지 중국인민해방군 각 군(軍), 병종(兵種), 각 대군구(大軍區), 각 성군구(省軍區) 내부에서는 사사로이 수백만, 수천만, 수억, 수십억에서 심지어 수백억에 이르는 인민폐를 횡령했다. 가령 쭌이(遵義) 주둔군과 구이저우(貴州) 성군구는 260만 위안을 쟁탈하는 과정에서 주둔군 건물에서 총격전이 발생했으며 90여 명이 다치고 52명이 사망했다.

동북에서는 랴오닝 진시(錦西) 주둔군과 2포부대가 합작회사 운영을 둘러싼 이권다툼 과정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선양(瀋陽)군구 사령관과 2포대 사령관이 모두 헬기를 타고 현장에 도착한 후에야 가까스로 더 큰 충돌 막을 수 있었다.

이 기간에 살해된 군인 중 계급이 가장 높은 자는 13군 부군단장 추이궈둥(崔國棟) 소장이었다. 추이궈둥은 1998년 11월 28일 비행기로 시창(西昌)에 갔다가 시창군분구(西昌軍分區) 후근부(後勤部) 부부장에게 2천만 위안을 요구했다가 현장에서 피살되었다.

해군 부사령관 왕서우예(王守業)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동안 총후근부 부부장 및 기건영방부(基建營房部) 부장으로 있는 동안 직권남용과 탐오, 공금횡령으로 무려 1억 6천만 위안을 착복해 1심에서 사형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이는 지금까지 밝혀진 군대부문의 부정부패 중 금액이 가장 크고 직책이 가장 높은 경우(상장)에 속한다.

이익을 위해 장기적출에 개입한 중공군대

중공군의 체제는 현재 모든 군사부문을 총참모부(總參謀部), 총정치부(總政治部), 총후근부(總後勤部) 및 총장비부(總裝備部) 4부문으로 귀속시켜놓았다. 이중 총후근부는 군대 내부의 돈과 물자를 관리하는 곳으로 이익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부문이다. 군병원은 직접적으로 총후근부의 관할에 속하며 의료개혁을 거치면서 군병원은 중요한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

일찍이 1989년부터 군병원은 군인의 입원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이익을 위해 우선 돈이 되는 민간인 환자들을 받은 후 병원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액수에 도달할 경우에 한해 군인 환자들을 받았다.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후 중공은 파룬궁 수련생을 가장 큰 적으로 간주했다. 1999년부터 2006년 5월까지 중공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종교문제의 처리에 관한’ 전문적인 회의를 6차례 열었는데 주로 파룬궁을 겨냥한 것이다. 이후 후근부를 중심으로 한 중공군 계통에서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육체적으로 소멸하라”는 군사위원회 주석 장쩌민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생체 장기적출에 나섰다. 아울러 장기를 팔아 남긴 이익은 장쩌민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군대에서 재산을 축적하는 수단이 되었다.

군사위원회 주석 장쩌민으로부터 파룬궁 수련생들을 산채로 장기적출의 공여자로 결정하라는 명령을 직접 전달받은 총후근부는 군대계통과 국가자본을 이용해 베이징에 청원하러 왔다가 신원을 밝히지 않은 파룬궁 수련생들 및 각지에서 불법으로 체포된 파룬궁 수련생들의 혈액샘플을 채취해 컴퓨터에 입력하고 군용차량, 비행기, 군용 경비부대와 각 지역 군사시설을 이용해 이들을 비밀 강제수용소(集中營)에 집중시켜 통일적으로 감금한 후 통일적으로 관리에 나서 전국 규모의 인체장기공장으로 만들었다.

총후근부에서는 이들 비밀 강제수용소들을 통일적으로 분배하고 관리하며 운수, 교섭, 경비와 회계 업무를 맡았다. 장기를 이식하는 과정 중에 만약 장기이식이 실패할 경우에는 장기를 적출당한 사람의 자료와 시신이 72시간 내에 전부 소각되었다.

모든 자료와 시체, 심지어 산 사람을 화장시키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군사감독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군사감독관은 정보를 발설하는 의사, 경찰, 무장경찰, 연구원 등에 대해 체포, 감금, 강제 처결할 수 있는 전권을 갖는다. 군사감독관은 중앙군사위원회에서 권한을 위임받아 관련 인원 및 군사기구를 집행할 권한이 있다.

총후근부는 각종 경로를 통해 장기 공여자를 군사병원과 일부 지방병원에 분배하는데 운영방식은 병원에 한 사람의 공여자를 제공할 때마다 직접 현금(또는 외환)을 대가로 받는 형식이다. 병원 장부는 총후근

군부내 고위층들은 총후근부를 통해 직접 이익을 취하는데 장기를 판매한 이윤은 군 예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장기를 적출하는 각종 계통은 모두 군비에서 지출된다. 때문에 생체장기적출에서 얻는 돈은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순수익이다. 군대 내부 이식은 가면에 불과하고 지방병원에 장기를 판매하는 수익은 단지 과외 수입일 뿐이다. 이들의 진정한 목적은 지방 병원을 이용해 해외환자들을 유치하는 창구로 삼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중공 군부 내에서만 장기이식수술을 시행했다면 이런 사실이 세상에 폭로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군장기이식중심(全軍器官移植中心) 주임인 스빙이(石炳毅)는 2005년에만 약 만 건에 달하는 신장이식, 약 4천 건에 달하는 간이식이 있었고 2006년에는 역사상 최고치에 도달해 약 2만 건에 달하는 장기이식수술이 진행되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1999년에는 중국 전역에서 겨우 4천여 건의 신장이식이 있었을 뿐이며 간 이식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중국의과대학 제1부속병원 국제이식인터넷지원중심에 발표된 신장이식 비용은 약 6만 불(인민폐로 40여만 위안), 간이식은 10만 불(인민폐로 70만 위안)에 달한다. 또 폐와 심장을 이식하는 비용은 더욱 비싸 약 15만 불 이상이 필요하다.

장기이식 수술에서 장기 가격이 전체 수술비 중 약 50%를 차지한다는 업계이 관행과 스빙이가 제시한 축소된 수자를 근거로 할지라도 2005년 1년 동안 파룬궁 수련생들의 장기를 적출해 군부가 얻은 순수익은 무려 5억 6천만 불에 달한다. 이는 인민폐로 환산하면 약 45억 위안에 달하는 거액이다. 하지만 중국 군사시설과 군대병원에서 비밀리에 시행된 장기이식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적출된 장기는 이보다 몇 배에 달할 것이다.

1999년부터 파룬궁 수련생들의 장기를 적출해서 얻은 순수익만 감안해도 이미 중공 군대 1년 군사예산 규모에 달하는데 여기에는 또 약품, 수술비, 간호비, 입원비 및 다른 부대 수입은 제외한 것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적으로 거대한 장기교역시장이 되었으며 국제생체장기매매의 중심이 되었다. 중국은 2000년 이후 세계 생체장기이식의 약 85%이상을 차지하는데 이 숫자는 군사위원회에서 보고한 자료의 일부이다. 중공 군부에서 여러 사람이 이 때문에 장군으로 승진했는데 바로 이 분야의 ‘성과’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총후근부 정법위원인 쑨다파(孫大發)이다.

 

총후근부 정법위원 쑨다파

파룬궁 박해에 적극 가담해 총후근부를 주관한 랴오시룽

현재 인민해방군 총후근부 부장인 랴오시룽(廖錫龍)은 평민 출신으로 월남과의 전쟁에서 저인산(者陰山) 수복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덩샤오핑에 의해 부군단장에 임명되었다. 그 후 육군 제11군 군단장, 청두(成都)군구 부사령관을 거쳤고 1995년부터 2002년 11월까지 청두 군구 사령관, 당위원회 부서기를 지냈다.

랴오시룽은 성격이 난폭하고 교활한 인물로 전쟁공로 때문에 사병신분에서 일약 대군구의 사령관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현 총후근부 부장 랴오시룽

1999년 4월 25일 후 장쩌민이 파룬궁을 사지로 몰아넣기로 결정했음에도 당시 중공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다른 6명이 모두 파룬궁 탄압에 반대했다. 이에 장쩌민은 배후에서 음모를 꾸며 다른 사람들에게 강제로 파룬궁 탄압에 대한 태도를 표시하게 했다.

장쩌민은 당시 청두 군구 사령관이자 당위원회 부서기였던 랴오시룽을 비밀리에 불러 파룬궁 탄압에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랴오는 늘 “베이징에서 시키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인물로 장쩌민이 자신을 찾은 것이 승진할 절호의 기회임을 알았다.

이에 랴오는 청두 군구 정보처에 비밀리에 명령을 내려 거짓정보를 날조해 중공 중앙에 보고하도록 했다. 청두 군구 정보처는 파룬궁 수련생의 우편함에서 파룬궁이 정치를 하고 공산당을 뒤엎으려한다는 편지를 발견했다고 했다. 장쩌민은 이 정보를 이용해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위협해 전체 상무위원들이 파룬궁 탄압에 대한 태도를 표시하게 했다.

랴오시룽은 단지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에 대한 기폭제 역할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중공의 파룬궁 박해에서도 선봉에 나섰다. 99년 7월 20일 이후 랴오시룽은 청두 군구 각 부대와 관련 단위에 명령을 내려 ‘적(파룬궁)의 정황을 엄밀히 파악하라’고 지시했고 파룬궁 수련생들을 매일 24시간 엄밀히 감시하게 했다. 아울러 파룬궁 수련생들을 대대적으로 불법 체포했다. 어떤 사람은 장기간 감금되었고 어떤 사람은 핍박에 의해 군에서 퇴역했으며 어떤 사람은 직장에서 쫓겨났는데 수많은 수련생들이 수련을 포기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랴오시룽은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정책을 전력을 다해 실행에 옮긴 결과 장쩌민의 칭찬을 받았고 2002년에 중공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해방군 총후근부 부장으로 승진했으며, 2003년에는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장쩌민이 랴오시룽을 총후근부 부장으로 발탁한 이유는 단지 권력과 돈이 많은 요직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쩌민은 자신의 뜻에 무조건 복종하는 그를 이용해 파룬궁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생체장기적출 운영을 주관하게 하는 동시에 생체장기적출을 산업화, 군사화하여 마치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지휘하게 하려 했다.

이 분야에서 랴오시룽의 재주는 이미 월남전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당시 조직과장은 병사들의 관을 200개 준비하게 했는데 랴오시룽은 100개만 있으면 된다고 고집을 부렸다. 전투가 끝난 후 그가 토로한 바에 따르면 “당시 인민해방군 어떤 부대든 월남군의 수중에서 저인산 지역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사상자가 얼마나 적은가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당시 이렇게 사상자 수를 중시했는가? 왜냐하면 당시 군사과학원 원장인 쑹스룬(宋時輪)이 월남 전선에서 전사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랴오시룽은 상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사상자수를 축소하려 한 것이다.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 본받기 마련이다. 랴오시룽의 돈에 대한 태도는 그의 직속부하가 사망한 데서 볼 수 있다. 청두 군구의 제13집단군은 쓰촨 지역에서 유명한 투기꾼으로 군대에서 발생한 수많은 탐오와 부패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13군 부군단장인 추이궈둥 소장이 1998년 11월 28일 시창(西昌)에 가서 시창 군분구 후근부 부부장에게 2천만 위안에 달하는 거액의 돈을 요구하다 격살된 적이 있다.

후근부 정법위는 진상은폐의 주력

여기서 특히 주의할 것은 중공군대 정법위가 생체장기적출사건 중에서 중공 군부의 대변인이자 소방수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생체장기적출 업무를 주관하는 것은 부장(部長)이지만 대외에 선전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것은 정법위 소관이다.

현 총후근부 정법위원 쑨다파(孫大發)는 1999년 1월 선양군구 정치부 주임을 맡았고 2001년에 장쩌민에 의해 중장으로 승진했다. 2003년 8월에는 난징(南京) 군구 정치부 주임이 되었다. 2005년 1월 난징 군구 부정법위원, 기율위원회 서기를 거쳤고 2005년 7월에는 총후근부 정법위원이 되었으며 관직도 두 단계나 올랐다.

쑨다파가 막 총후근부 정법위원에 취임하자마자 쑤자툰(蘇家屯) 강제수용소(集中營) 사건이 폭로되었다. 그는 선양 군구에서 생체장기적출을 주관했기 때문에 중공의 소방수로 무대에 올라갔다. 그는 전국 각지의 관련 군사기구에 베이징에서 비밀리에 끝난 회의의 정신을 알리며 “특별군사감독관리구(강제수용소를 말함) 문제에 관한 정보가 대량으로 외부에 누설”되는 문제에 관해 “진일보로 파룬궁 정보 루트를 봉쇄하고 비밀보장을 강화하며 이후 비밀을 누설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 처벌한다”고 했다.

장기이식학회 사무총장이자 세계보건기구 고문인 델모니코(Francis L. Delmonico) 의사가 중국을 방문했을 대 그의 접대를 맡은 책임자는 위생부장 천주(陳竺)와 부부장 황제푸(黃潔夫)뿐만 아니라 군부인물(301병원의 정법위원 원더궁[文德功]을 포함. 다음 사진 참조 http://www3.interscience.wiley.com/cgi-bin/fulltext/119424217/HTMLSTART 이 사진에서 왼쪽부터 301병원 천자오링, 델모니코, 의사인 제레미 채프먼, 위생부장 천주, 위생부 부부장 황제푸, 301병원 정법위원 원더궁)이 절반을 차지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 장기이식계는 줄곧 국제 장기이식학계와 접촉하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장기의 출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델모니코의 말에 따르면 중공 관원들은 자국의 장기이식인사들이 국제학계와 접촉하기를 매우 강렬히 희망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중국 장기이식의 투명성은 몹시 중요하며 증거를 제공해야 한다. 죄수들의 장기는 서면을 통해 강제성이 없는 자발적인 기증임을 입증해야 하며 이식수술은 인가받은 이식센터와 자격 있는 외과의사의 집도하에 이루어졌다는 증명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의 승낙을 이행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301병원 정법위원 원더궁(文德功)은 장기이식을 담당한 의사가 아니며 위생부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의 출현은 바로 중공이 대량의 이식수술을 하게 된 장기의 출처에 대한 질문에 대답할 군부인사기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더궁은 단지 301병원이라는 가장 큰 군대병원의 정법위원일 뿐인데 그가 어떻게 군부를 대표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그는 301병원 정법위원을 맡기 전에 일찍이 총후근부 정치부 부주임을 거쳤고 생체장기적출의 흐름과 어떻게 서양인들을 대응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공 총후근부에서 주도한 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은 관련 정보가 군사기밀로 처리된다. 중공 총참모부는 정보계통을 이용해 전력을 다해 장기적출 진상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저지하고 있다. 중공군대 와 총후근부는 바로 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의 핵심기구이자 증거의 주요 출처이다. 바야흐로 이 두 곳과 관련한 보다 많은 증거들이 폭로되고 있다.

문장발표 : 2009년 11월 10일

문장분류 : 참고자료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1/10/21231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