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10여 년 전에 나는 인체과학에 흥미가 있어 몇 가지 가짜 기공 등을 배웠다. 그러나 당시 내 취향에 맞지 않아 다시 절에 가서 귀의하여 승려, 비구니들과 교분을 맺었다. 나중에 그들도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결코 그렇게 순수하고 존경할 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 절에서 사 온 경서를 읽어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후에는 친구들과 함께 백두산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스승을 모셨다. 바로 그때 한 거사가 나에게 《파룬궁(수정본)》을 빌려주었다. 책을 펼쳐 사부님의 사진을 보는 순간, 마치 어디선가 자주 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개광(開光)’에 관한 내용을 보고서야 나는 이분이 법력이 높고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절에 있는 50여 명의 승려와 십여 명의 거사들이 대웅전에서 오전 내내 경을 읽어도 개광을 몇 개 못하는데, 이 사부는 사진으로 30초만으로 진정한 ‘개광’을 할 수 있다니 그 법력이 얼마나 높은 것인가?’
나는 《파룬궁》 책을 단숨에 다 읽은 후 “나는 전무후무한 이 공법만 수련하겠다. 다른 건 모두 필요 없다!”라고 외쳤다. 그 후 여러 우여곡절 끝에 사부님의 광저우 제5기 설법반 입석권을 얻게 됐다.
1994년 12월 20일, 광저우역에서 나와 보니 옆 광장에 버스 몇 대가 서 있었는데 버스에는 ‘파룬궁 접수처’라고 쓰여 있었다. 한 여성이 나에게 손짓하며 “이리 오세요, 이 차를 타세요”라고 했다. 버스에 오르자 광주 사허(沙河) 부대 초대소에 숙소를 배정받았다. 그곳에는 미국, 대만, 일본, 베이징, 난징 등지에서 온 수련생들이 있었다.
이튿날 회의장인 웨슈(越秀) 체육관으로 갔다. 육교 아래로 내려가는데 놀라 멍해졌다. 수백 명이 넘는 많은 사람이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앉아 있었는데, 땅바닥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경이로웠다. 체육관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줄을 서 있었고 한 직원이 “입장권은 있지만 자리가 없는 사람은 이리로 오세요!”라고 외쳤다. 나는 즉시 그쪽으로 가서 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을 들여다보니 관중석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 대형 농구장 앞쪽에는 탁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마이크가 가득했으며, 뒤쪽 배경에는 황금색 막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강단 가까이에 자리를 배정받아 맨바닥에 앉았는데, 그중 많은 이들이 중국의 오지 성에서 왔다고 했다. 내 주위에 앉은 몇 분은 수천 리 밖 구이저우성에서 왔다고 했다. 그들은 두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튼 채 땅에 앉아 있었는데 정말 숙연하고 경건한 느낌마저 들었다.
강의 시간이 다 되어 가자 주위에서 갑자기 천둥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도 즉시 박수를 쳤다. 키가 크고 훤칠하며 비범한 기품을 지니신 사부님께서 미소를 머금고 걸어 들어오셨다. 사부님은 걸으시며 사방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셨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자리에 앉으신 후 양복 주머니에서 작은 쪽지 한 장을 꺼내셨는데 그 쪽지가 바로 원고였다.
나는 4번째 줄에 앉아 있어서 사부님과 매우 가까웠기에 사부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 눈은 횃불처럼 광채가 나셨고 눈빛은 엄숙하시어 저절로 깊은 경외심이 일었다.
사부님께서는 강단에서 과거 신조차 알지 못했던 천기(天機)와 법리를 설파하셨는데, 십악독세(十惡毒世)의 중생을 고해(苦海)에서 제도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다. 그때 모르게 나도 눈물이 쏟아져 내렸고 멈출 수가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매일 한 시간 반씩 강의하셨고 그 후에는 사부님과 함께 온 수련생이 공법을 가르쳤다. 사부님께서 옆에서 동작을 바로잡아주셨다.
그다음 날 천목(天目)에 대해 말씀하실 때 나는 이마 앞쪽이 안으로 당겨지고 살이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방에 묵었던 베이징에서 온 한 엔지니어는 내가 앉은 자리 아래에 작은 수풀과 스님이 보인다고 했다. 나는 오성이 부족해 그녀가 잘못 봤다며 따졌다. 3일째 되던 날, 난징에서 온 한 여성이 자신은 귀가 어두우니 나와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그녀의 좌석번호를 보니 매우 멀리 있었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심성을 제고하고 타인을 위해 생각하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라 나는 기꺼이 표를 바꿔주었다.
4일째 되는 날, 사부님께서 우리의 몸을 정화해주셨는데 일어나서 발을 구르게 하셨다. 사부님의 구령에 따라 ‘쿵!’ 소리가 일제히 울려 퍼졌다. 6, 7일째 되던 날, 베이징의 몇몇 공우(功友, 당시의 호칭)들이 자기들 쪽에 빈자리가 있다고 했다. 가보니 무대 뒤편이라 강단이 가려져서 속으로 실망했다. 그때 사부님 말씀이 들려왔다. “제 뒤에 앉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빠짐없이 받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은 문답 시간이었다. 당시 광둥성에는 소위 유엔상을 받았다는 1척 크기의 사각형 ‘기공기(氣功機)’가 유행하고 있었다. 이 기계는 조작이 간단하고 효과가 뚜렷하다고 선전되어 많은 사람이 구매했다. 대만에서 온 사람은 절에서 이것을 이용해 여러 신도들에게 무료로 병을 치료해준다고 했다.
두 명의 미국 공우가 나에게 이 기계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나도 한 대를 샀는데 호주로 가져가 무료로 병을 고쳐주려 했다. 그러나 사부님의 ‘부체(附體)’ 법리를 들은 후 이건 옳지 않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쇠로 만든 기계이지 사람에게 붙는 부체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쪽지를 써서 사부님께 가르침을 청했다.
마침 사부님께서 우리 쪽으로 걸어오시기에 재빨리 쪽지를 전달드렸다. 사부님은 보시고 돌아서셨다가, 잠시 후 다시 오셔서 그 위에 작은 부체가 있다고 하셨다. 이어서 내게 샀냐고 물으셨고 내가 샀다고 하자 사부님께서 알려주셨다. “제 사진을 들고 대연화수인을 하면서 개광하세요!” “예, 사부님.”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은 자비로우시고 법력이 높으시구나. 이 나쁜 것을 정말 미국이나 호주로 가져갔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해를 입을 뻔했는가. 이는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치는 짓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꼈다.
문답이 끝난 후 각지에서 온 수련생들이 사부님께 꽃다발과 현수막을 올렸고 멀리서 보니 정말 아름답게 빛났다. 가장 눈에 띄었던 건, 한 수련생이 양손으로 들고 있던 사람 키보다 큰 황금색 ‘불(佛)’자 현수막이었다. 그 현수막에 강당 전체가 감응이라도 한 듯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마지막에 사부님께서 강단에 오르셔서 두 팔을 교차해 밀어내시며 돌리신 후, 장내를 향해 양손을 뿌리셨다. 우리에게 가장 진귀한 것을 주신 것이었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 경건한 박수를 치고 합장해 인사드렸다. 모두들 회의장을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10여 년이 지나갔다. 생각지도 못하게 이 설법반이 사부님께서 중국에서 하신 마지막 설법반이 됐다. 이 설법반은 우주의 역사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원문발표: 2008년 12월 27일
문장분류: 나의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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