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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대학생, 대법제자 양소징이 10년간 참혹한 박해를 받다가 원한을 품고 세상을 뜨다

[명혜망 2009년 10월 6일] (명혜리포트, 베이징에서 보도) 2009년 10월 1일 아침 6시, 올해 45세인 베이징대학에 다니던 대법제자 양소징이 중공당국의 장기간의 소란과 협박중에서 원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남편 조둥(曹东)은 아직도 不法(불법)적으로 간수성 탠수이감옥에 감금되어 있다.

 

(사진) 갓 결혼한 양소징과 조둥

양소징과 조둥은 본래 응당 매우 행복하여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부여야 했다. 그러나 2000년부터 지금까지 부단히 악당의 감금과 박해로 인해, 결혼 9년간 두 사람이 함께 있었던 시간은 단 몇 주밖에 되지 않는다. 그녀가 감금되지 않으면 남편이 감금되곤 하였다. 양소징은 두 번 노동교양 4년을 당했고, 조둥도 두 번 판결을 받았는데 처음은 4년, 두번째는 5년이었다. 부부는 노동교양소와 감옥에서 각종 시달림을 받을대로 받았다.

감금되어 있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베이징 외국어대학을 졸업한 조둥은 2006년 5월 21일에 유럽의회 부주석인 스코터를 만나, 자기 부인과 신변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당하고 있는 참혹한 박해를 이야기하였다. 만난 후 두 시간도 안 되어, 조둥은 중공 국가안전부 특무들에 의해 납치되어 그의 고향 간수성에 끌려갔다. 2007년 2월 8일에 악당 법원은 5년 판결을 내렸다.

2006년 8월 말, 양소징은 베이징 녀나자감옥에서 박해를 받다가 집으로 돌와왔다. 감금된 남편을 구출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며 호소하다가 중공당국의 협박을 당하게 되었다. 2007년 8월 양소징은 조둥의 친구 위저우(于宙)와 함께 베이징에서 변호사를 찾아 도움을 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저우는 사악에게 납치되었고, 갈곳 없게된 양소징은 떠돌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양소징 박해로사망

비통한 부친

2008년 3월 위저우가 박해로 사망하게 되자 양소징은 너무도 마음이 아파 울기만 하였다. 양소징의 신체도 매우 빨리 허약해졌는데, 2008년 8월초에 시안 시쥔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임파선암이었다.

양소징이 사망하던 그날 5시 경에 70세가 넘는 아버지가 7시간이나 차를 몰고 간수감옥에 와서, 마자막으로 아내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하였으나, 대대장 류창토우는 장기간 휴가로 없었고, 감옥관리국장도 없어서 그 요구를 비준할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요구를 거절하였다.

양소징의 병이 엄중한 기간에도 중공 악당 인원들은 부단히 감시하고 소란을 피워 그녀의 병으로 하여금 더욱 심해지게 하였다. 2009년 10월 1일 밤 2시, 혼수상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5시 경에는 호흡하기가 갈수록 힘들어졌다. 아버지가 구급차를 불러 왔으나, 병원에 도착하는 그 순간에 양소징의 호흡을 중지되었다.

문장완성 : 2009년 10월 5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9/10/6/2098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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