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9년 10월 1일] (명혜 리포트, 헤베이에서 보도) 2009년 9월 16일, 추적을 앞두고 장자커우시 교서구 북새마을에 살던 대법제자 왕더량(王德亮, 남)이 장기간의 박해로 인하여, 원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1999년 7월 20일이후, 중공이 대법을 미친듯이 박해하자 왕더량은 사람을 만나면 대법이 좋다고 말하면서 진상을 알렸다. 이로 인하여 북신마을의 파출소, 판사처, 구위회로부터 장기간의 감시, 소란, 협박을 받았다. 2001년 10월 25일, 현지 정부는 그와 부인을 납치하였고 불법(不法)적으로 집을 수색하였고 손목시계와 현금 등을 빼앗아 갔다.
일주일 후 노인은 장자커우시 간수소에 감금되었는데, 386일 간의 시달림을 받고, 이후 알지 못할 죄명으로 3년 판결을 받았고,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610”에 의해 부단한 소란과 위협을 받았고 주민등록증을 압수당하고 감시에 의해 문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등 각종 박해를 받았다.
올림픽 기간에도 아무런 이유 없이 어떠한 수속도 없이, 부인과 함께 두 달 간 감금되었다. 이 기간 악경들의 태도가 매우 악렬하였고, 먹는 것은 좋지 않았다. 또한 아무런 연고 없이 감금된 것으로 인하여 정신적인 충격이 몹시 심한 상태에서 위암에 걸려 원한을 품고 세상을 뜨게 되었다.
문장완성 : 2009년 10월 1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9/10/1/2093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