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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 엔지니어 탕이, 노동교양 박해로 사망 (사진)

【명혜망】 (명혜통신원 충칭 보도) 충칭(重慶)시 대법제자 탕이(湯毅, 남), 퉁량(銅梁)현 안쥐(安居)진 사람으로서 시난(西南)교통대학 석사연구생이며 철도건설 기술자였다. 파룬궁(法輪功) 신념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99년 7월부터 9월까지 회사에서 감금당하고 잇따라 해고당했다. 2000년 이래 여러 번 불법으로 감금당하고 노동교양 박해를 당했다. 2008년에 시산핑(西山坪) 노동교양소에서 강제로 음식물 주입과 구타를 당했다. 2008년 11월에는 골결핵이 발견되자 노동교양소는 책임을 짊어질까봐 가족들에게 데리고 가서 치료하라고 했다. 그러나 2009년 9월 22일 오전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나이는 겨우 46세였다.

 

대법제자 탕이의 사망 모습

2007년 말 중타이(中太)철도 현장의 탕이

탕이는 2008년 4월에 구이저우(貴州) 카이리(凱裏)지역에 가서 고속도로 공사의 인력 도급 일을 상담하고, 5월 2일에 카이리에서 열차(K529차)를 타고 충칭으로 돌아가 일꾼들을 데리고 오려고 했다. 열차에 탄 후에 열차 식당을 지나갈 때, 악경이 강제로 짐을 열고 파룬궁 경문과 일부 진상 호신부, 일하면서 사용하는 노트북 컴퓨터 등을 찾아냈다. 악경은 탕이를 열차 식당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으며, 5월 3일, 열차가 충칭에 도착한 후에는 탕이를 열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했다. 악경은 탕이를 그대로 열차에 태우고 항저우(杭州)로 갔다. 5월 4일 저녁에 탕이를 불법으로 항저우 열차 파출소에 감금하였고, 5월 5일에서 27일까지 불법으로 항저우 철도구치소에 구류했다.

항저우 악경은 즉시 탕이에게 소위 조사를 진행했고, 또 3 명을 파견해 충칭에 있는 탕이의 고향집에 가서 조사를 했다. 하지만 그들이 갖고자 하는 소위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또 사람을 파견해 탕이가 일하는 현장에 가서 은행 카드를 조사하고 같이 일하던 사람들을 조사했지만 모두 불법 감금시킬 구실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도리어 여전히 탕이를 구금시켰다. 탕이는 불법 감금에 대해 계속 단식 항의를 견지했으나 5월 28일에 충칭으로 납치당하고 불법으로 사핑바(沙坪壩)구 바이허린(白鶴林)구치소에 감금되었다.

충칭 사핑바구 신차오(新橋)파출소에서 담당업무를 맡고 있는 어우리창(歐禮常) 등은 탕이를 시산펑 노동교양소로 끌고 갔다.

시산펑 노동교양소는 탕이를 폭행했다. 이미 단식을 32일간 해서 몸이 허약해진 사람을 늘 넘어뜨리거나 혹은 바닥에 짓눌렀다. 상처를 입은 손을 끌고 바닥에서 물건을 끌듯이 끌어서 관절이 탈구했고 상처가 더욱 심해졌다.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할 때, 폭력을 가했으며 때로는 음식물을 주입하는 사람이 의사, 간호사가 아니라 잡일을 하는 마약 흡입 노동교양 인원들이었다. 마약 흡입자 노동교양 인원은 음식물을 주입하면서 때로는 귀뺨을 때리고 주먹질을 했으며, 때로는 사람을 아주 더러운 바닥에 짓눌러 놓고 음식물을 주입했고, 때로는 기술이 나빠서 그랬는지 아니면 고의적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콧구멍에서 피가 터질 정도로 쑤셔도 음식물을 주입하는 호스를 끼워 넣지 못했다.

탕이는 강제로 노동교양소 병원으로 보내졌다. 몇 개월 후에 그에게 골결핵 증상이 나타나 움직이기 어렵고 정상적인 일,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최후에는 소위 ‘보외치료’를 받게 했다. 악경이 수액에 어떤 약물을 더하고 혹은 어떤 수단을 썼는지 알 수가 없다.

대법제자 박해에 참여한 악을 행한 모든 자에게 정중히 알려주는 바이다. ‘선악에 보응이 따르는 것은 천리다.’ 하늘의 그물은 매우 넓고 선악은 분명하다. 얼마나 무지한 경찰들이 대법을 박해함으로써 악보를 받았는가. 관련된 사람들은 반드시 즉시 박해를 정지하고 불법으로 감금된 모든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들을 무조건 석방하고 자신의 죄를 깨끗이 씻길 바란다.

문장발표 : 2009년 9월 25일
문장분류 : 중국소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9/25/20898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