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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시 파룬궁수련생 왕위환(王玉环)이 생전에 박해받은 사례

[명혜망 2008년 6월 24일] 길림성 장춘시에 사는 52세의 파룬궁 수련생 왕위환은 2007년 5월 9일 현지의 십여 명 파룬궁수련생들과 함께 경찰에 납치되었다. 그로부터 약 다섯 달이 지난 10월 9일 저녁에 한 경찰이 전화로 가족에게 통지하였다. “왕위환이 피를 토하여 응급조치를 했으나 이미 사망했다.” 확실한 것은 왕위환 노인은 이미 반달 전인 9월 24일에 이미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아래는 왕위환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폭로한 이번 납치된 후 받은 박해내용이다.

2007년 5월 11일, 왕위환은 혈압이 200으로 올랐다. 늦은 밤인 12시 후에 족쇄를 달았고, 두 어깨와 다리는 고문에 엄중한 상처를 입었으므로 정상적으로 걷지를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가 말하기를, 이는 록원구 국보대대에서 채찍으로 때린 것이라고 하였다. 혈압이 200 이상인 상태인데도 악경에 의해 불법으로 쌍양제삼간수소 505실에 가두었던 것이다. 몇 번이나 심문하고 혹형으로 시달림을 주었다. 한번은 악경이 많은 형구를 가지고는 낡은 집의 냉동고로 왕위환을 끌고가서 박해하였다. 악경은 왕위환을 혼미하게 때려눕힌 후, 물 2통을 몸위에 쏟아부어 냉동고에서 얼게 하면서, 동시에 이름모를 약을 주사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왕위환을 5일 밤낮을 박해한 후에야 방에 보낸 것이고, 그때부터 정신이 똑똑하지 않는 현상이 출현한 것이다.

또 한번 록원구 공안분국은 불법으로 왕위환을 심문하면서, 악경이 왕위환의 머리를 벽에다 박으면서 참혹하게 박해하였다. 또 한번은 악경이 쇠호스로 왕위환에게 강박으로 관식하려고 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왕위환은 오래동안 추적을 받았다. 왕위환의 말에 의하면 불법으로 심문하면서 악경은 왕위환을 추적하던 비디오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왕위환이 자전거를 타는 과정까지 몰래 녹화해놓았던 것이다. 왕위환이 또 말하기를, 그가 불법으로 심문당할때 악경은 홍콩의 파룬궁수련생 정황을 이야기했다고 하였다. 악경은 또 고지성변호사가 쓴 3통의 편지중에 언급된 파룬궁수련생 일도 말했다. 당시 왕위환은 정신이 흐릿하여 그 구체적 정황은 잘 기억하지 못했다.

한 가지 보충 사례는, 2007년 5월 10일 영광로 파출소의 3층 집에서 한 파룬궁수련생(남자인데 이름을 모름)이 악경에 의해 참혹히 박해받아 비참한 비명소리가 끊기지 않았고 전기곤봉에 맞아 살이 타는 냄새를 2층에서도 맡을 수 있었다.

이번에 납치된 파룬궁수련생들이 갇힌 곳은 장춘시 이도구의 여섯 개 파출소인데, 동성파출소, 화순파출소, 길림파출소, 동역파출소, 영광파출소 등이다. 밤을 이어가면서 불법(不法)적인 심문을 진행했다. 왕위환은 장춘시 영광로 파출소로 납치당했다. 그날 저녁 왕위환, 양려, 풍립평, 천근태 등 네 명의 파룬궁수련생은 또 시국보대대에서 장춘시 정월담(净月潭)의 비밀장소로 납치당하여 밤새 심문을 당했다. 왕위환을 영광로 파출소로 돌려보낼 때 이미 온몸은 상처투성이였는데, 둘이서 거의 들어서 돌아왔던 것이다.

왕위환 노인은 이전에 파룬궁을 견지하여 8년 동안 장춘경찰들이 불법으로 십여 차례 가두었던 것이었다. 그는 호랑이 의자에 3일 낮과 이틀 밤을 묶여 지냈고, 발목은 시달림으로 뼈가 다 보였다. 손과 팔의 근골도 경찰의 반복적인 고문으로 비틀어 끊어졌고 얼굴도 전기곤봉에 의해 지져 눌러 붙었다. 담배꽁초로 눈알을 굽고, 대나무 꼬챙이로 두 귀를 뚫고, 온몸은 피와 살이 엉킨 상처투성이였다…… 그와 기타 불법으로 갇힌 여성 파룬궁수련생들은 의복을 벗기우고 대(大)자형으로 나무침대에 묶여 28일간 고생하면서 경찰 감옥 의사와 남자 범인들에 의해 수없이 모욕을 받았다.

문장완성 : 2008년 6월 23일

문장발표 : 2008년 6월 24일
문장수정 : 2008년 6월 23일 21:43:06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8/6/24/180836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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