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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 왕청현 최광영씨(조선족)가 생전에 박해받은 사실을 폭로한다

[명혜망 2008년 6월 7일] 2008년 5월 29일 저녁, 길림성 왕청현 동신향(东新乡) 전각루촌(转角楼村)의 조선족 최광영씨가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70세 넘은 모친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2007년 10월 12일, 마음대로 직책을 사용하여 후과가 두려웠던 경찰이 진(镇)에서 회의를 연다는 명목으로 최광영을 속여 회의장으로 가게 하였다. 최광영과 연세 많은 모친은 농사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악경은 2시간 후에는 보증하고 집에 돌려보낸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노인은 재삼 2시간 후에 꼭 아들을 집에 돌려보낸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아들을 보냈다.

순박하고 선량한 백성들이, 악당 하수인들의 말은 근본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랴. 그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오기 전에 이미 계략을 꾸며 놓았다. 악경은 그날 최광영을 데리고 무슨 회의장소에 가지 않았으며, 직접 납치하여 이미 체포한 11명의 대법제자와 함께 모두 큰 버스 한 대에 태우고 갔다. 저녁 8시가 넘자 몇 십 명의 경찰들은 대법제자들을 왕청현 공안국 민경훈련기지로 납치하여 불법(不法)으로 감금하고 강제적으로 세뇌하여 박해하였다.

최광영, 남, 38세. 그는 예전에 전각루촌(转角楼村)의 회계 담당이었다. 그는 1996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였으며, 회계를 십여 년 하는 동안 종래로 공공재물을 일전도 탐오하지 않았다. 파룬궁의 “진, 선, 인”을 배운 후 더욱 농민들을 위해 책임지고 마을을 위해 책임지는 태도로 자신의 회계일을 잘하였다. 그러나 탐오하고 부패한 촌장 이영식은 청렴한 수련생 최광영을 매우 미워하였다.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했으니, 청렴한 회계원을 신변에 두어 언제나 마음이 불안하였다. 그래서 언제나 이 회계원을 없애려 하였으나 아무리 찾아도 면직시킬 구실을 찾지 못했다.

1999년 7월 중공악당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전각루촌의 악당인원은 몇 번이나 최광영을 찾아 소위 “담화”한다고 하면서 핍박하여 파룬궁을 연공하지 못하게 하였다. 거대한 압력하에서도 최광영은 시종 파룬따파를 견지하였으며 묵묵하게 회계일을 잘하였다. 2003년에 한 대법제자가 악경에게 납치당하여 불법으로 감금되었는데, 사악이 그를 혹독하게 때리자, 마음을 어기고 최광영이 그에게 한 부의 진상자료를 준 사실을 말하였다.

악인 촌장인 이영식은 이 소식을 알고 한 무리의 경찰들을 거느리고 그 어떤 증명서도 내놓지 않은 정황하에서 불법으로 최광영을 납치하였다. 그들은 최광영을 핍박하여 진상자료의 내원을 말하게 하면서 그를 위협하였으며 그를 때렸다. 심지어 독방에 감금시켜 창문을 열고 옷을 다 벗기고(팬티만 남겼다) 모기에게 물리게 하였다. 비록 여름이지만 북방의 여름, 특히 밤에 집안은 매우 썰렁하다. 악경이 어떤 수작을 부려도 최광영은 진상자료는 자신이 길에서 주운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최광영을 열흘간 괴롭혔지만, 악경은 그 어떤 박해증거도 얻지 못했다. 악경은 방법이 없어서 그를 석방하였다. 석방하기 전에 촌장 이영식은 최광영의 모친에게서 3000원(한화 약 45만원)을 갈취하였다. 이 돈을 내야만 석방시킨다고 했던 것이었다. (이영식은 탐오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분노한 농민들이 2007년 봄에 다같이 그를 기소하여 이미 면직당한 상태이다)

최광영은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악당의 사악한 통치를 다 꿰뚫어보고 그의 회계일을 사직하였다. 비록 십 년 동안 회계일을 하였지만, 그는 언제나 “진, 선, 인”으로 자신을 요구하였으며 한 푼의 공공재산도 탐오하지 않았다. 촌장이 십 년 간 그에게 준 월급은 적고도 적어 일 년 동안 받은 돈이 천 원도 안 되었다.

2007년 방금 설을 쉰 후, 왕청현 국보대 대장 관청우(管清友)는 한무리의 경찰을 데리고 와서 최광영의 집을 수색하였다. 그가 불법사이트(실제로는 외국사이트)를 방문했다는 이유로 수색하러 온 것이었다. 악경들은 기세가 흉측하였으나 이번에는 그 어떤 박해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 반나절이나 불법으로 찾더니 한마디 던졌다. “불법사이트에 다시는 올라가지 말라.” 그리고는 머리를 돌려 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시종 끊임없이 최광영을 감시하고 박해하였다.

2007년 5월 국보대에서는 여전히 하부 파출소 경찰을 파견하여 최광영의 컴퓨터를 몰수하게 하였으며 2008년 4월에야 최광영이 자신의 컴퓨터를 되찾아왔다.

악경이 자주 최광영의 집을 갑자기 수색하기에 그의 70여 세 되는 모친은 문을 노크하는 소리만 들어도 떨었다. 모친은 아들이 불법으로 붙잡혀가서 박해받을까봐 근심되었다. 최광영의 집은 평소에도 언제나 사람들에게 감시당했으며 집전화도 감시당했다. 외지에서 친지나 친구가 와도 사람들이 와서 감시하곤 했으며 근본상 공민의 인신자유를 논할 수 없었다.

최광영의 가족 4명 중에는 두 늙은 부모님과 뇌막염의 후유증이 있는 형님이 있다. 그의 부친은 병상에 드러누운지 40년 되는 장기 환자이며 신체가 허약하여 일년의 대부분 시간을 구들장에 누워서 보내야 한다. 집에는 주요하게 그의 70세 넘는 모친이 농사일을 하여 받은 적은 수입으로 생활을 유지하였기에 가정은 매우 곤란하였다.

2007년 10월, 마침 농사철이었다. 그러나 그해 가을에 그의 형님이 사고를 당했기에, 불행하게 어깨와 팔이 골절되어 일을 할 수 없게 되어서 엎친데 덮친 격이 되었다.

가중한 농사일은 모두 허약한 최광영 한 사람에게 얹어졌다. 사람은 적고 일은 많다.

최광영은 아침부터 밤 늦도록 부지런히 일하였다.

2007년 10월 12일, 현 국보대장 관청우(管清友)는 12명의 대법제자를 붙잡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악당인원은 백성들의 생사를 관계치 않고 그들은 단지 그들의 권리만 보존하려 한다. 당신이 법을 범했든지 범하지 않았든지, 농망계절이든지 아니든지 가정형편이 아무리 곤란하고 신체상황이 어떻든지를 막론하고 그들은 자신의 권리에 위협만 되면 흑백을 가리지않고 사람을 붙잡고 마음대로 박해한다. 최광영을 포함한 12명의 대법제자는 악경에게 각종 악렬한 방식으로 신흥향 삼도구촌에서 북쪽으로 십여 리 되는 왕청현 공안국 민경훈련 기지에 불법으로 납치되어 세뇌당하고 박해당하였다.

10월 25일 악당의 17차 대표대회가 끝난 후에야, 그들은 12명의 대법제자를 석방시켰다.

그러나 14일간 습기차고 추운 기지에 있었기에 정신상으로나 육체상으로 시달림을 받은 최광영의 신체상황은 더욱더 엄중하게 되었다. 당시 악경에게 납치당할 때 총망하게 매우 얇은 옷만 입고 있었다. 10월 중순의 북방 날씨는 매우 춥다. 마을사람들은 아침 저녁으로 솜옷을 입는다.

집에 돌아온 후, 38세 밖에 안 되는 최광영의 신체는 더욱더 허약해지고 더욱도 좋지 않게 되었다. 파룬궁을 연마한지 11년 이래 신체는 줄곧 건강하였고 병에도 걸리지 않았으며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던 최광영은 약을 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약을 먹으면서 한편으로는 일을 하였다. 치료해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최후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어려워졌으며, 2008년 5월 29일에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문장작성 : 2008년 6월 5일
원고발표 : 2008년 6월 7일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6/7/1798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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