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8년 5월 1일】 명혜망 4월 25일자 소식에 의하면 현재 베이징 조양(朝陽)구 관장(管莊) 주가정(周家井) 단지에 사는 청화대학 박사과정의 위핑[俞平]과 부인 자우위민[趙玉敏] 여사가 4월 19일 오후 4시에 이유없이 집으로 쳐들어온 양자[楊閘]관장(管莊)파출소의 악경 7명에게 재산을 몰수당하고 납치되었다. 지금은 불법으로 동성(東城)구 칠리거(七裏渠)파출소에 감금되어 있다. 위핑부부와 같이 납치된 法輪功수련생은 또 궈리[郭麗], 진위란[金玉蘭], 자우징민[趙京敏] 그리고 위핑의 모친 등이 있다.
나는 위평의 동창이다. 1999년 7월 20일 전에 그와 한 연공장에서 연공을 하였다. 그가 또다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슬펐다. 위평은 청화(淸華)대학 열(熱)에너지과 1995학년도 대학원생이었는데 1997년 3월에 성적이 우수하여 앞당겨 박사과정을 하게 되었고 청화대학 ‘1.29’ 장학금을 받았으며 ‘서문자(西門子)’ 장학금도 받았다. 그는 또한 과의 대학원생 학생회 회장 그리고 대학원생 워크팀 부팀장을 담당하였다. 2000년 6월초에 학위논문 답변 때 심사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국가 863계획 우주비행영역첨단과학 항목이 통과되었으며 동시에 우수졸업논문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2006년 6월 20일에 천안문 광장에 가서 法輪功(파룬궁)을 위해 평화적인 청원을 했다는 이유로 청화대학에서는 학위를 수여하지 않고 박사과정 수료로만 처리하였다. 위핑은 당시 이미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전액 장학금을 받았지만 후에 진상을 하다가 불법판결 4년형을 받아 악명이 높은 북경시 공안7처와 북경전진(前進)감옥(天津茶澱)에 감금되어 미국으로 유학할 기회를 잃었다.
위핑의 부인 자우위민[趙玉敏]여사도 불법판결의 박해를 받아 북경여자감옥에 감금된 적이 있다. 그들은 모두 온갖 불법 혹형과 학대를 당했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위핑부부에게는 두 살도 안 되는 아기가 있는데 집에 남겨져 돌볼 사람이 없다!
분명히 위핑부부 등의 수련생들이 잡혀간 것은 중공사당(中共邪黨)이 ‘올림픽’을 빌미로 다그쳐 法輪功수련생을 잡아가 박해하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바로 위핑부부가 잡혀간 다음날 즉 4월 20일 오후 5시 경 북경 조양(朝陽)구 法輪功수련생 장렌영[張連英]과 그녀의 남편 뉴진핑[牛進平]은 네 살 된 딸과 함께 장을 보고 돌아왔는데, 아파트 밑에 있는 사복 경찰 몇 명에게 폭력으로 납치당하고 잇따라 경찰 10여 명이 집으로 쳐들어가 불법으로 재산을 몰수하였다. 컴퓨터 본체와 이동디스켓 그리고 MP4와 대법서적이 든 가방을 세 개나 강탈해갔다.
위핑 외에 오늘까지 여전히 10명 이상의 청화대학 파룬궁 수련생들이 중한 판결을 받아 불법으로 감금되어 있다.
2008년에 접어들어 북경 한 곳만 해도 이미 파룬궁수련생을 잡아가는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예를 들어 쉬나[許那], 위주[于宙] 부부인데, 음악인인 위주는 또 잔혹한 박해로 사망까지 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위핑부부를 포함한 파룬궁수련생을 구출하고 전 세계 정의의 인사들이 함께 사당 중공이 ‘올림픽’을 빌어 박해하는 행위를 제지시킬 것을 긴급히 호소하는 바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국제가 관심을 가지고 지금 중국대륙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재난에 다같이 관심을 기울여 하루 빨리 이번 발생하지 말아야 할 인간세상의 비극을 끝낼 것을 호소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여전히 불법으로 감금된 청화대학 수련생은 아래와 같다.
왕워이위[王爲宇]: 청화대학 정밀계기와 기계학과 96년도 박사과정. 학급 회장, 과의 청년단 위원회 서기, 과학협회 부주석등을 담당했다. 우수 졸업생 획득, 우수학생 장학금과 페리프장학금 등 여러 종류의 장학금을 받았다. 1999년 9월과 10월에 法輪功수련심득교류회에 두 차례 참석했다는 이유로 불법 감금되었다. 2000년 6월 또다시 정학당하고 7월 22일 천안문광장에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했다고 일주일간 구류당했다. 후에 핍박으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2002년 8월 12일에 회사에 출근하는 기간에 국가보안에 의해 비밀로 납치당했다. 후에 불법 판결 8년을 받아 지금까지도 전진(前進)감옥에 감금되어 있다. 왕워이위의 아킬레스건이 발에 차여 다쳤는데 지금까지도 여전히 옥외에서 치료를 할 수가 없다.
왕신[王欣]: 청화대학 정밀계기과 99년도 박사과정, 우수간부 장학금, 우수학생 2등 장학금, 하오라이시[好来西]교육장학금, 세월육영(細越育英)장학금 등을 받았다. 그리고 반 회장, 과 과학협회주석 등의 직무를 맡았다. 본과 졸업 후 시험을 면제받고 직접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1999년 10월 청화대학에서 그에게 강제로 집에 가서 휴학하기를 명령했고 동시에 “사상에서 이탈하지 않으면 학교로 돌아 올 수 없다.”고 말했다. 2001년 4월에 잡혀간 후 북경시 공안국 칠처(七處)에 감금되었다. 2001년 12월 13일 북경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인터넷을 사용하여 대법 진상자료 전파’, 그리고 ‘기구를 날려 보내는 방식으로 대법 현수막을 걸었음’, ‘대법 진상 전단지 배포’ 등의 죄명으로 왕신에게 불법으로 9년 판결을 내렸다. 처음에는 요녕(遼寧)성 요양(遼陽)시 화자(鏵子)감옥의 3감구에 감금했다가 2007년 말에 대련(大連)감옥으로 이송되어 2008년 초부터 작은 감방에 가두고 고통스럽게 박해했으며 가족들의 면회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왕신의 모친은 아들을 너무 그리워 하다가 과로로 2004년 경에 세상을 떠났다.
류즈메이[柳志梅]: 여, 청화대학 화학과, 97년도에 시험을 면제 받고 추천으로 입학한 본과 대학생. 2001년 5월 해전(海澱)구에 있는 셋방 집에서 납치되었다. 그간 여러 간수소로 납치되었다가 후에 북경시 공안국 칠처(七處) 간수소로 감금되어 혹형의 괴롭힘으로 인해 머리는 맞아서 변형이 되었고 가슴은 맞아서 다쳤으며 손톱도 박해로 여러 개나 빠졌다. 2002년 11월 달에 해전구의 위법원(僞法院)에서 불법으로 12년 판결을 내려 산동여자감옥(제남[濟南]에 있음)으로 이송되어 계속 박해를 받았다. 장기적으로 소위 ‘전향’에 협조하지 않자 사악의 사람은 최후에는 ‘복학’으로 그녀를 기만하였다. 압력과 기만에 본심을 어기고 ‘전향’되자 청화대학에서 사람이 나가 ‘검수’하고 나서 그녀의 복학을 동의하지 않았다. 류지메이는 바로 정신이 이상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불법으로 산동여자 감옥에 감금되어 있다. 류지메이의 모친은 시골에 있는데 딸이 12년 판결을 받았다는 것을 듣고 역시 정신이 나갔다.
친펑[秦鵬]: 청화대학 공상(工商)관리과 대학원생. 1999년 10월 친펑은 수련심득교류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잡혀갔다. 2000년 6월에 또 공개적으로 연공한다고 납치되어 후에 청화대학에서 강제로 휴학시켰다. 2001년 1월 1일 새벽 친펑은 중관촌(中關村)파출소 경찰에게 잡혔고, 후에 2년의 불법 노동교양 판결을 받았다. 북경 퇀허[團河]노교소 3대대에서 혹형의 괴롭힘을 당했다. 2003년 6월 19일 금방 노동교양소에서 풀려나온지 몇 개월 밖에 안 되는 친펑은 청화대학교의 불법인원들에게 속아 학교로 돌아와 또다시 불법으로 잡혔다. 그는 불법으로 북경시 법제(法制)학교에 감금된 적이 있다. 두 손을 침대에 수갑을 채워놓고 한 달 동안 단독으로 감금해 두었으며 그의 무릎을 발로 차서 상하게 하였다. 2003년 12월에 친펑을 불법교양 2년 6개월을 시켰다. 그 후 또 악명이 높은 하북(河北)성 보정(保定)시 고양(高陽)노교소에 감금해 두어 친펑은 온갖 고초의 박해를 받았다. 지금까지도 행방불명이다.
멍쥔[孟軍]: 청화대학 전자공정과 조교, 청화대학 전자과 99년도 석사. 1999년 9월과 10월에 두 차례나 파출소와 북경시 공안국에 구류 당했다. 믿음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초빙 임용제를 실시할 때 핍박으로 실직되었다. 후에 2000년 6월에 천안문광장에 가서 파룬궁을 위해 평화적인 청원을 했다고 구류되었다. 2000년 12월 31일 심야에 대법 진상자료를 부착하다가 중관촌(中關村)파출소 토비 경찰에게 잡혀가 혹형의 고초를 겪었다. 후에 북경시 공안국 칠처 간수소에 감금되었다. 2001년 12월 13일 북경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인터넷을 사용하여 대법 진상자료 전파’, ‘기구를 날려 보내는 방식으로 대법 현수막을 걸었음’, ‘대법 진상 전단지 배포’ 등의 죄명으로 멍쥔에게 불법으로 10년 판결을 내렸다. 지금까지도 북경전진감옥에 불법으로 감금되어 있다.
요우웨[姚悦]: 여, 청화대학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96년도 석사 대학원생, 본과 졸업할 때 북경시 우수 졸업생으로 평가되었다. 청화대학 열량과 97년도 석사 대학원생(法輪功수련생) 류원위[劉文宇]의 부인이다. 1999년 9월 3일 학교 내에서 공개적으로 연공했다는 이유로 청화대학파출소로 강제로 연행되어 가서 다음날 새벽까지 심문받았다. 출학당하고 개인정보를 학교에서 강제로 이전시켰다. 2001년 1월 1일 새벽 중관파출소에서 문을 부스고 쳐들어와 잡아갔다. 후에 북경시 공안7처 간수소에 감금되었다. 2001년 12월 13일 북경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인터넷을 사용하여 대법 진상 자료 전파’, ‘기구를 날려 보내는 방식으로 대법 현수막을 걸었음’, ‘대법 진상 전단지 배포’ 등의 죄명으로 요우웨에게 불법으로 12년 판결을 내렸다. 지금까지도 북경여자감옥에 불법으로 감금되어 있다.
위차우[虞超]: 청화대학 정밀계기 90년도 학생(95년 졸업), 네트워크 엔지니어이며 추퉁[褚彤]의 남편이다. 2000년 천안문광장에서 가서 현수막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를 펼쳤다는 이유로 불법 노동교양 1년을 받았다(노교소 밖에서 집행). 후에 핍박으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2002년 8월 13일 부인 추퉁과 같이 거리에서 610과 국가보안에게 북경단하(團河)의 소위 ‘법제연수센터’로 납치되었다. 후에 불법으로 9년 판결을 받아 지금까지도 전진감옥에 감금되어 있다.
추퉁[褚彤]: 여, 청화대학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석사, 강사, 청화대학 정밀계기과 90년도 학생(95년 졸업) 위차우[虞超](法輪功수련생)의 부인이다. 1999년 10월 27일 천안문 성루에 가서 法輪功을 위해 청원하다가 경찰의 야만적인 구타를 당했다. 납치당한 후 북경시 공안국 7처에 감금되어 불법으로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감옥에서 나온 후 명혜망에 ‘엄정성명’을 발표하여 계속 대법을 수련하겠다고 표명하고 나서 뒤이어 핍박을 받게 되어 정처 없이 떠돌게 되었다. 2002년 그녀의 남편 (위차우[虞超])와 함께 북경의 숙소에서 비밀리에 납치되었다. 이번의 박해는 전문팀이 맡아서 전문적으로 관리했는데 안건이 중대하다고 인정하여 국가보안부와 ‘6.10’이 비밀리에 그들을 ‘북경시법제연수센터’로 압송하였다. 그들은 5개월 가까이 박해받았으며 후에는 비밀리에 불법으로 북경시 구치소에 감금되었다가 최후에는 북경시 조양(朝陽)구 구치소로 이송되었다. 2004년 1월 9월 북경시조양구법원에서 비밀리에 개정하여 추퉁, 위차우[虞超] 그리고 왕웨위[王爲宇] 등 청화대학 파룬궁 수련생 3명을 불법으로 재판했다. 개정한다는 소식이 폭로되었기 때문에 재판 하루 전날 법정에서는 임시로 비밀리에 개정 장소를 변경하여 불법으로 11년 판결을 내렸다. 추퉁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불법으로 북경시 여자감옥에 감금되어 있다.
치우수친[邱淑琴]: 여, 청화대학 직원, 여러 차례 불법 노동교양 당하고 세뇌(洗腦)반에 감금되었다. 최후에 2006년 2월 28일 집에서 펑타이[豊臺]공악국에게 잡혀갔으며 재산도 압수당했다. 구체적인 정황은 명확히 알지 못하는데 지금까지 여전히 불법 노공교양을 받고 있다.
허돠리엔[何端練]: 청화대학 건축설계연구원 직원. 노동교양을 두 번이나 당했는데 첫 번째 노동교양기간에 모친이 세상을 떠났고 두 번째 노동교양기간에는 부친이 세상을 떠났으며 후에는 핍박으로 남편과 이혼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중형(重刑)을 받았다고 한다.
바이룽춘[白榮春]: 요령성 심양(沈陽)시 사람, 원 청화자광(慈光)과 청화동방(同方) 그룹공사 컴퓨터 엔지니어, 항목 사장이었다. 2002년 9월 북경법원에서 불법으로 13년 형을 내렸다. 그리고 본적지로 보내 불법으로 원 심양대북(大北)감옥에 감금했다가 2007년 말에 판진[盤錦]감옥 일감구(一監區)로 옮겨졌다.
우샹완[吳相萬]: 청화자광(慈光)공사 직원. 2001년 4월 25일, 우샹완은 천안문광장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대법을 실증하다가 불법으로 노동교양 1년 6개월을 받았다. 북경시 간수소(七處)에서 불법으로 2개월간 그를 감금하고 학대한 다음 단하(團河)노교소로 납치하여 계속 박해하였다. 단하노교소 5대대(五大隊)에서는 우샹완의 믿음이 확고함으로 하여 집중훈련대로 격리시켜 중점적으로 박해했다. 악인 류진삐오우[劉金彪]는 만 볼트가 넘는 전기방망이로 그를 전기충격하였다. 여러 차례의 전기충격으로 인해 우샹완의 몸과 마음은 너무 상했으며 손이 떨려서 밥그릇을 들지 못한다. 2003년 1월 23일 해전(海澱)구 국가보안부의 불법 직원들은 문을 부수고 쳐들어가 두 사람을 납치했다. 그는 간수소에 1년 넘도록 감금되어 박해받은 후 2004년 5월 불법 개정으로 재판 받았다. 우샹완이 법정에서 이치에 의거하여 항쟁하자 위법정(僞法庭)에서는 놀랍게도 2001년 초 우샹완이 원명원(圓明園)에서 에드벌룬 6개(3개 실패)를 띄웠다는 이유를 들어 강제로 8년 판결을 내렸다. 우샹완은 불법으로 8년 판결을 받은 후 산동감옥의 세뇌반으로 납치되어 강제 세뇌 박해를 받았다. 현재는 행방불명이다.
장리엔쥔[張連軍]: 청화대학 토목과 학생. 2003년 1월 23일 장리엔쥔은 국가보안대대에게 불법으로 잡혀갔다. 2004년 10월 단지 眞·善·忍(쩐·싼·런)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북경시 국가보안대대에 의해 박해를 받아 식물인간이 되었다. 장리엔쥔은 북경공안국 병원에 있을 때 말라서 피골이 상접했고 온 종일 천장을 마주하고 누워있었으며 먹고 마시는 것을 모르고 서있거나 앉을 수도 없었으며 몸을 뒤척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소변에는 카테테르가 꽂혀 있었고 대변은 다른 사람이 도와주어야 했다. 누가 그와 말을 하면 그는 언제나 대답도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혼수상태에 처해 있었으며 의식이 깨어 있지 않았다. 후에 이미 연속 1년을 단식한 장리엔쥔을 법정으로 들것에 들고 와서 강제로 8년 판결을 내렸다. 불법인원들은 후에 이미 식물인이 된 장리엔쥔을 내몽골 적봉(赤峰)으로 이송하여 불법으로 지금까지 감금하고 있다.
저우레이[周磊]: 심수(深圳) 法輪功[파룬궁] 수련생, 1969년 6월 14일 출생, 광서(廣西) 장족(壯族)자치구 백(白)현 사람, 청화대학 컴퓨터과 원 소프트웨어(심수)공사 마케팅 사장이다. 2000년 10월에 납치되어 2002년 11월 8일에 심수시 복전(福田)구 법원에서 불법으로 저우레이에게 12년 도형을 내렸다. 후에 불법으로 사회(四會)감옥에 감금되어 온갖 ‘전향’의 각종 박해를 받았다.
전향
전향 : 각급의 610 사무실에서 비밀리에 전달한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무너뜨리며 육체를 소멸한다.’, 法輪功수련생에 대해 ‘때려 죽어도 그냥 때린 것이고 때려서 죽으면 자살로 친다.’, ‘신원을 확인하지 않고 곧바로 화장한다.’는 등의 정책 아래 기만, 공갈, 정신적인 괴롭힘 등 방식에 혹형을 맞추어 박해하여 파룬궁 수련생으로 하여금 ‘삼서(三書)’를 쓰도록 핍박한다. 즉 파룬궁수련을 포기한다고 표명한 것을 서면형식으로 실증해야할 뿐만 아니라 게다가 서면으로 法輪功[파룬궁]과 法輪功 창시자를 저주하는 말로 욕을 퍼부어야 한다.
‘610’
‘610’은 1999년 장쩌민이 파룬궁을 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중국의 헌법, 법률, 사법(司法)부 체계를 초월하는 당(黨)의 특별 업무 기구이다.
명혜망
명혜망: 1999년 6월 21일에 개설하여 일주일 후 (6월 25일) 정식으로 개통한 法輪大法[파룬따파]사이트이다. 취지는 장(江)씨 집단의 法輪功(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폭로하고 法輪功 진상을 밝히는데 있으며 동시에 대법제자들이 교류하고 탁마하는 진귀한 마당이다. 명혜망은 동시에 세 가지 독자를 마주한다. 진상 알기를 희망하는 세인, 대법제자 그리고 위에서부터 아래까지의 각급 박해자들이다.
문장완성 : 2008년 4월 30일
문장발표 : 2008년 5월 1일
문장수정 : 2008년 5월 1일 00:59:14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5/1/1775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