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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발생한 혹형 ㅡ 빙산의 일각

글/ “파룬궁 인권” 조직

[명혜망 2008년 4월 15일]중공정권은 베이징 올림픽을 빌미로 파룬궁 수련생을 대량으로 체포하고, 장족 민중들을 학살하며, 매체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다시 한 번 만방에 폭로하는 것이다.

지금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박해와 혹형 상황은 이미 파룬궁 인권 조직이 세계 각국의 정부, 비정부 조직, 인권단체 그리고 개인에게 전자우편으로 몇 백만 통 발송했다. 중공은 올림픽 게임을 유치하기 위해 인권 상황을 개선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 인권상황은 도리어 뒷걸음질 하고 있다.

아래 일부 보고서를 보면 몇 년 동안 파룬궁이 중국 대륙에서 당한 잔혹한 박해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박해 사례는 빙산 일각일 뿐 감옥, 노교소에 갇힌 몇 십만 파룬궁 수련생들은 지금 현재도 고문을 당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신념을 지키면서 중공의 박해를 저지하고 있는 백만 명의 일부 전형적인 실례이다.

1, 장 위란 : 중공정권이 올림픽 게임을 유치하기 위해 “인권을 개선” 하겠다고 약속한 2년 후, 장 위란의 부친 장 쵄푸는 2003년 1월 8일 장춘 조양구 노교소에서 박해로 목숨을 잃었는데 그의 나이 65살이었다. 열흘 후 오빠 장 치파가 2003년 1월 19일 역시 장춘 조양구 노교소에서 박해로 목숨을 잃었는데, 그해 겨우 38살 이었다. 2000년 장위란은 장춘 여자 노교소에서 고역을 당했는바, 늘 밤중까지 시간 외 초과 근무를 하였으며 전기 곤봉으로 몸을 지지는 고문을 당했다. 2007년 11월 28일 오전, 경찰은 장 위란을 강제 납치한 뒤 지금 장위란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 당국은 장 위란 가족에게 그녀가 있는 곳을 알려 주지 않아 생사여부를 알 수 없다.

2, 자오 충링 : 자오 충링은 그동안 다섯 번 납치 되었다. 거의 매 번 석방되어 집에 돌아 올 때면 모두 상처투성이었다. 2007년 3월 23일 자오 충링이 다시 체포된 지 한 달 후 그녀의 생명이 위급했지만 당국은 그녀의 석방을 거절 하였고, 아주 무거운 족쇄로 침대에 채워 놓았다. 더구나 빈사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에게 3년 판결서를 낭독하였다. 한 달 반 후 자오 충링은 박해로 사망했는데 그해 그녀 나이는 44세였다. 그녀가 죽은 뒤 현지 정부는 가족을 핍박하여 판결서에 서명하게 했다.

3, 류 훙워이, 무핑: 2005년 5월 13일, 류 훙워이 부인 위 리신은 길림 헤이쭈이즈 여자 감옥에서 학살 되었다. 류 훙워이는 핍박으로 유랑했다. 무핑의 남편 사우 후이는 2002년 8월 길림시 공안국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무핑 역시 파룬궁을 수련했기 때문에 3년 노교 뒤 석방된 후 그녀의 아들이 항상 그의 곁에 따라 다녔다. 류 훙워이와 무핑이 서로 알게 된 후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일자리를 찾았다. 2006년 10월 24일 경찰은 류 훙워이와 무핑을 납치한 뒤 강제 가택수색 후 7만위안의 예금을 동결했다. 두 아이는 돌볼 사람이 없게 되어 무핑의 모친은 심장병이 재발했고, 양가 어머님의 정신은 거의 피폐해 졌다. 지금 류 훙워이와 무핑은 여전히 수감 중이다.

4, 웨이 펑쥐 : 웨이 펑쥐는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1999년에 구속 수감되었다. 감옥에서 그는 매일 17~20시간 일을 하였으며 잠자지 못하게 할 때가 비일비재했다. 교관은 전기 곤봉으로 그녀의 가슴과 입을 충격하였고 입은 전기 충격으로 변형 되었다. 2007년 2월, 웨이펑쥐는 재차 수감 되어 혹형에 시달려 배가 아파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풀려 나온 후 줄곧 회복되지 못하다가 2007년 7월 12일에 세상을 떴다. 웨이펑쥐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을 수 없다. 그들 (장춘 헤이쭈이즈 여자 노교소)은 나에게 주사를 놓았다”

5, 리 훙푸 : 리 훙푸는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여러 번 수감되어 박해 받았으며, 혹형 시달림을 받았다. 이를테면 쪽걸상에 앉기, 고압전기 충격, 열손가락에 참대 꼬챙이 꽂기 등등 , 그리고 마약 죄수들에게 폭행당해 리의 비장이 파열되고 갈비뼈가 부러졌으며, 토하고, 호흡이 곤란했다. 체중이 80근도 채 나가지 않아 사람의 형상이 말이 아니었고 부축해야만 했다. 리 훙푸는 2006년 12월 8일에 세상을 떴다.

문장발표 : 2008년 4월 1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4/15/1765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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