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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박해, 3,074명의 파룬궁수련생 치사 사례가 박해사실 입증

[명혜망 2007년 8월6일] (명혜망기자 리밍 종합보도) 1999년 7월 20일, 전 중국공산당의 우두머리 장쩌민이 헌법과 법률을 어기고 직접 파룬궁을 박해하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후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이 기간 중공과 장씨 집단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체계적이고 멸절적인 박해는 현재까지 정지된 적이 없었다. 천만 명을 헤아리는 파룬궁수련생들이 박해를 받아 해고당하고, 학업을 그만두게 되었고, 유리걸식하게 되었으며, 가족관계는 붕괴되었고 집은 잃어버렸다. 비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불법 판결 선고를 받은 수련생은 적어도 6,000여 명,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은 숫자는 100,000명 이상이다. 수천 명이 강제적으로 정신병원으로 보내어져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주사 당하는 고문을 당했다. 헤아릴 수 없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각지의 세뇌반에 납치당하여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라는 고문을 받았다.

8년래 비록 중공의 엄밀하게 박해진상을 봉쇄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3,074명에 달하는 파룬궁수련생들이 고문 받아 사망한 사례가 민간경로를 통해 실증되었다. 그 중 여성 파룬궁수련생이 54.2%이다. 평균 매달 고문으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생 수는 32명에 달하며 박해치사 사례는 전 중국의 31개성, 시, 자치구에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선량한 파룬궁수련생들은 사회 각 계층, 각 영역으로부터 온 민중들로써, 어린 아이로부터 70세가 넘은 노인까지 있다. 그들은 중공의 각종 인성을 근절하는 정신적, 육체적인 심각한 박해로 인하여 참혹하게 사망하였다. 명혜망 자료에 근거한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파룬궁수련생들에 대한 박해의 수단은 더욱 다양해져, 사용한 혹형 고문의 방법이 40여 종 이상에 달하며 그 종류는 아래와 같다.

– 장시간 잠을 재우지 않기
– 한 번에 몇 개의 고압전기충격기를 사용하여 오랜 시간동안 입에 전기충격기를 넣고, 가슴, 겨드랑이, 유두, 음부 등에 전기충격을 가하는 전기고문 가하기
– 지하 감옥, 물 감옥, 수갑과 족쇄를 채운 뒤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서 각종 어려운 자세를 취하게 하기, 거꾸로 매달아 놓기, 호랑이 의자, 침대에 사지를 늘려 결박하기
– 성적인 박해 등
– 채찍(가죽, 금속, 가시 쇠사슬, 뾰족한 대나무 꼬챙이) 등으로 때리기
– 음식물 강제주입, 고추가루, 고농도의 소금물, 대소변 강제주입
– 주사기를 이용하여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 주입하기

이와 같은 박해치사 사례는 단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대량의 파룬궁수련생들이 중공 경찰에게 납치된 후 실종되거나 중공의 비밀집중영에 감금되어, 이 몇 년래 급속하게 발전한 중공의 장기적출업을 위한 생체장기적출의 대상이 되었고 중공은 폭리를 얻은 후 시체를 소각하여 증거를 인멸하였다. 중공의 엄밀한 봉쇄로 인하여 이러한 천인이 공노할 이러한 만행은 감추어져 있다.

고문으로 사망한 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은 미성년인 자녀와 연로한 부모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들 백발의 부모들은 젊은이를 먼저 보낸 고통 속에서 시달리고 있으며 적지 않은 노인들이 아들과 딸을 비참하게 잃은 후, 얼마되지 않아 사망하였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잃은 동시에 또 학교와 사회에서 오는 중공의 거짓선전으로 선동된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다. 그들은 공포 속에서, 그림움 속에서, 현실 도피 속에서 생존하고 있으며 차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심신고통을 겪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이로 인하여 정신이상이 되었고, 어떤 아이들은 엄중한 질병을 앓고 있으며, 또 어떤 아이들은 심지어 너무 일찍 생명을 잃게 되었다.

8년간 중공 장씨 집단은 거짓과 폭력으로 조성된 이 한 차례 사악한 박해를 유지하기 위해 거액의 재정과 물력을 투입하였다. 일찍이 5년 전에 이미 요녕성 사법청의 고위관리가 한 대회에서 “파룬궁에 대처하기 위해 투입한 재정은 이미 한 차례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경비를 초과하였다.” 고 공개적으로 승인하였다. 중공 장씨 집단은 거액의 국가 재력을 국민의 도덕을 쌓고 경제를 건설하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유혹하고 부추겨 “진(眞), 선(善), 인(忍)”을 수련하는 수련인들을 박해하는 죄악 속에 참여하게 하여 직접적으로 전반 사회도덕의 급속한 하락과 빈번한 천재인화(天災人禍)를 초래하게 하였다.

인성을 모독하는 이 한 차례 박해는 현재까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중공은 세계올림픽이라는 명의 하에 또다시 새로운 박해를 시작하고 있다.

* 2007년 7월, 13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이 박해로 치사한 사례가 실증되다

2007년 7월 고문으로 사망한 13명의 박해치사 사례가 확인되었다. 그 중 2007년 1월부터 6월 사이에 박해받아 사망한 사람이 9명이고, 최근 지난 2007년 7월에 추가로 4명이 박해로 사망하였다. 고문 받아 사망한 파룬궁수련생 중 여성은 9명으로 69.2%를 차지한다. 나이가 가장 젊은 수련생은 헤이룽장성 다이칭시 여성 수련생 쟝파이로써 2007년 6월 28일 박해받아 사망할 당시 겨우 30세였다.

이 13건의 박해치사 사례는 각각 아래의 8개 성시에서 발생하였다. 그 중 요녕성과 길림성에서 각각 3건, 헤이룽장성에서 2건, 후이베이성, 산둥성, 후난성, 간수성과 베이징시에서 각각 1건씩이다.

* 겨우 이틀 만에 길림성 파룬궁수련생 사나이이(沙乃意)가 박해로 사망

사나이이(沙乃意), 남, 40여세. 길림성 길림 유전 홍강 채유공장 농공상 직원이다. 사나이이는 2007년 7월 오토바이를 타고 파룬궁진상 전단지를 배포하던 중 악인이 보게 되었다. 량가진 파출소는 오토바이 면허증을 추적 조회하여 사나이이를 7월 12일 사나이이가 근무하는 직장에서 그를 납치하였으며, 7월 13일 따이안(大安)시 공안국에 이감하였다. 7월 14일, 사나이이의 가족이 그를 보러 갔을 때에는 이미 박해로 사망한 것을 알게 되었다.

소식에 의하면 따이안시 공안국의 류윈화(刘云华), 추궈쥔(楚国军)이 현장에서 지키고 지휘하면서 사나이이에 대해 혹형고문을 진행하였다. 14일 저녁 6시가 지나, 사나이이는 공안국 빌딩 아래에서 사망하였다. 경찰은 그를 제 3병원에 보내어 응급치료를 하는척 가장하였는데, 의사는 검사한 후 다섯 개의 장기가 모두 파혈되어 온 배에 어혈이 가득하여 뭐가 뭔지 알아내기 힘들다고 하면서 이 사람은 사망한지 오래되었다고 하였다.

사건 발생 후, 경찰은 사나이이가 스스로 3층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날조하였다. 이것은 8년 동안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로 치사된 후 중공경찰이 일관적으로 해왔던 변명이다. 현지 노인들은 모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3층에서 떨어졌다고 해도 이 정도로 상할 리 없다. 틀림없이 경찰이 사람을 때려죽인 후 떨어뜨려 가짜 현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얼마 전 현지 惡黨(공산당) 당원이 파룬궁수련생을 못살게 굴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상부로부터 명령이 왔는데, 올림픽 전에 한 무리를 죽이라고 지시하고 있다.” 따안시 공안국 경찰의 박해수단은 극히 잔인한 것으로 붙잡혀온 파룬궁수련생을 철의자나 호랑이의자에 묶어놓고 손, 발을 모두 족쇄로 채워 근본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한다. 파룬궁수련생 쥬지츄(耿继秋)는 경찰들이 그녀를 철의자에 3일 밤낮으로 묶어 놓고 한 무리 악경들이 우르르 함께 몰려들어 죽도록 구타를 가하였는데 그녀의 유방을 도려내는 모욕을 가하여 정신을 잃게 하였고 심장병이 발작하게 하였으며 반신불수가 되게 하였다.

* 짧은 2개월 사이에 겨우 30세밖에 안되는 쟝파이(姜湃)가 박해로 사망하다

쟝파이(姜湃), 30세, 미혼, 대졸. 사망하기 전 헤이룽장성 따칭(大庆) 석유화학공업 총 공장 열전공장 직원이었다. 2007년 6월 28일 0시에서 1시 사이에 중공 따이칭 공안, 국가 안전보위국, 검찰원 등에서 불법으로 감금, 잔혹한 고문을 가하였다. 겨우 30세의 쟝파이는 원한을 품은 채 이 세상을 떠났다. 사망 당시 그녀의 두 발에는 아직도 5킬로그램 무게의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쟝파이의 연로한 모친은 비통하여 애절해 하면서 “그들이 나를 속여 아이를 찾아와서 출근하게 하였는데 결국 내 자식을 해치고 말았다. 나더러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고 말하였다.

2000년 10월 쟝파이는 “진(眞), 선(善), 인(忍)”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 이유로 핍박에 의해 공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20여 세의 여자 아이는 이렇게 해고를 당하였다. 하지만 중공 경찰은 여전히 그녀에 대한 박해를 느슨히 하지 않았는데, 이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여러 차례 그녀를 납치 및 불법 구류하였으며 수 차례 그녀의 가족과 친척을 찾아 못살게 굴었다.

2003년 8월 29일, 쟝파이는 따칭시 안전국에 비밀리에 납치되었다. 안전국에서는 그녀를 특무로 수매하려고 시도하였는데 그녀의 능숙한 컴퓨터 실력을 이용하여 안전국에서 일하도록 요구하였다. 쟝파이는 엄정하게 거절하고 단식으로 납치에 항의하였는데, 고문으로 생명이 위급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겨우 “보외구의(保外就医)”(형 집행 중에 심각한 질병이 생겨 보증을 하고 승인을 받아 형무소 밖의 의료기관에서 병을 치료하게 하는 제도)되었다.

2006년 8월 29일 쟝파이는 자기 집 아파트 아래에서 또 악경에 의해 납치되었는데 일주일 후 지혜롭게 탈출하였다.

얼마 전, 쟝파이가 일하던 직장에서 그녀의 가족을 속이면서 말하기를, 이젠 괜찮을 것이다 그녀더러 돌아와 출근하라고 하였다. 가족은 이를 정말로 믿고 또 아주 기뻐하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실업한 지 7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2007년 4월 26일 오전 9시 경, 쟝파이가 금방 회사 문 앞에 도착하자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워리툰분국 경찰에게 납치되어 그 후 따칭시 간수소에 감금되었다. 그 사이 쟝파이는 고문으로 구토, 실신 상태가 되었고 기침과 피를 토함이 멈춰지지 않고 사람이 심하게 여위어 힘이 없어 걸을 수 없는 상태에서 일찍이 병원으로 보내져 10여일 간 응급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가족은 여러 차례 공안국을 찾아가 사람을 풀어달라고 요구하였는데 따칭시 공안국의 장이칭(张义清)은 감히 이렇게 말하였다. “그 누가 보외구의하든지 다 되지만, 오직 쟝파이만은 안 된다.” 뿐만 아니라, 따칭시 공안국은 또 쟝파이에 대해 불법체포통지서를 하달하였다.

6월 26일 쟝파이의 가족은 쟝파이가 현재 따칭 유전 총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는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저녁에, 연로한 부모는 병원에 쟝파이를 보러 갔는데 당시 그녀는 감시실내 침대에 족쇄로 발이 채워져 있었고 두 명의 경찰이 감시하고 있었다. 쟝파이는 이미 혼수상태에서 깨어날 수 없었고 산소관을 낀 채 두 발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부어있었다.

6월 27일 쟝파이는 연속 48시간 혼수상태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쟝파이 가족은 가슴을 태우며 눈물을 머금고 시 공안국 국보(국가보호)대대와 시 인민검찰원, 용풍구 인민검찰원에 찾아가서 사람을 석방해달라고 요구했으나 그들은 여전히 풀어주지 않으면서 “법률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구실로 회피하였다.

6월 28일 새벽 1시경, 겨우 30세였던 쟝파이는 짧은 2개월 동안의 중공악당과 따칭 악도들의 박해로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 두 발에는 아직도 5킬로그램 무게의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명혜망 자료에 근거한 비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쟝파이는 적어도 60번째로 박해치사 당한 따칭(大庆)시 파룬궁수련생이다. 바로 전에 2007년 5월 31일, 파룬궁수련생 저우수하이(周述海)가 따칭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하였는데 그녀 나이는 겨우 35세였다.

* 헤이룽장성 파룬궁수련생 쿵샹주(孔祥柱)가 목단강 감옥에서 박해로 치사하다

쿵샹주(孔祥柱), 남, 39세. 쐉야산시 잰산구(双鸭山市尖山区) 주민이다. 쿵샹주는 헤이룽장성 목단강 감옥에서 고문으로 숨이 곧 끊어질 듯 하여 더 이상 응급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2007년 4월 18일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2개월 후 그는 숨을 거뒀다.

쿵샹주는 극히 빈곤한 가정에서 자랐다. 수련하기 전 그의 신체는 극도로 허약하여 무슨 일이나 할 수 없어 하루 종일 누워있어야만 했다. 쿵샹주는 28세 되는 해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한 후, 신체는 아주 빨리 건강해졌고 또 부모를 위해 효도를 다할 수 있게 되었다.

2002년 5월 1일 저녁 쐉야산시 형사경찰대대의 악경은 쿵샹주가 유선TV 선로를 이용하여 파룬궁박해 진상을 삽입하고 있다는 핑계로 그를 납치해갔다. 이튿날 쿵씨 가족은 쿵샹주가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 다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쿵샹주는 온 몸이 맞아 시퍼렇게 되어 있었고 뒷 등 전체는 전기곤봉의 전기충격을 당하여 까맣게 탔으며, 목 부위의 뼈와 살은 다 떨어져 나갔다.

이후 쿵샹주는 목단강 감옥 10감구에 불법 감금되어 박해를 받았다. 2006년 6월 고문으로 결핵성 뇌막염을 일으켜 혼수상태에 빠진 적이 있다. 당시 쿵샹주의 하반신은 이미 마비되었고 대소변을 혼자서 해결할 수 없었으며 정신이 몽롱하여 상황이 아주 위급하였다. 가족은 수차례 석방해 줄 것을 감옥 측에 요구하였으나 감옥측은 사람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여기면서 쿵샹주가 죽든지 살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몇 개월이 지나도 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쐉야산시 잰산구 영홍파출소에서도 쿵샹주의 호적이 관할범위 내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유로 접수를 거절함으로써 치료시기를 놓쳤다.

최후로 가족의 10개월 간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목단강 감옥은 비로소 협박하면서 5천위안을 납부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피골이 상접하고 인사불성인 되어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는 쿵샹주를 집으로 돌아가도록 석방하였다. 2개월 후인 2007년 6월 23일 저녁 10시 쿵샹주는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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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동안, 하나하나의 역사상 존재하지 않던 참혹한 죄악과 학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으며 천지를 분노하게 하였다. “이 만고(萬古)의 큰 죄, 이 악이 하늘에 사무친 큰 죄는, 뭇 대궁(大穹)의 일체 신들로 하여금 모두 진노(震怒)하게 하였다.” 《세간을 향해 파룬(法輪)을 돌리노라》 중. 이 전대미문의 한 차례 사악한 박해에 대한 징벌이 최종에 전면적으로 발생하게 될 것이다.

8년 동안, 중공의 인성을 멸절하는 잔인한 학살 앞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은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꾸준히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었다. 그들은 아무런 보답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단지 사람들이 이 역사의 관건적 시각에 자신의 양심의 위치를 똑바로 놓기를 요구할 뿐이며, 사람들에게 중공악당의 사악한 본질을 똑똑히 인식하고 더 이상 그것과 한 무리가 되거나 심지어 그것을 따라서 천리를 위배하는 일을 하지 말기를 바라며 하나의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므로 진선인을 수련하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제지하는 것은 바로 모든 생명에 대한 중공 사악한 당의 박해를 제지하는 것이다.

문장완성 : 2007년 8월5일

문장발표 : 2007년 8월6일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7/8/6/16025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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