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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 헤이룽장, 산둥 세 대법제자가 박해로 사망

[명혜망 2007년 5월 29일]

충페이롄(叢培蓮)이 선양 다베이(大北)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

랴오닝(遼寧) 차오양(朝陽) 대법제자 충페이롄, 1943년 5월 26일 생, 퇴직 후 줄곧 건강이 좋지 않았다. 99년 사부님의 설법을 들은 후 부부는 수련의 길을 걸었다. 99년 7.20 이 후 현지 공안 악경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괴롭히고 강제로 보증을 쓰고 서명을 하라고 하여 하는 수 없이 둘은 도처로 떠돌아 다녔다.

2002년에 베이퍄오(北票)에서 악인들의 제보로 베이퍄오공안에 불법으로 납치당해 10년 판결을 받았다. 충페이롄의 남편은 선양 다베이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2005년에 충페이롄은 건강이 나빠져 온몸에 땀이 나고 두 손이 심하게 떨렸다. 그가 보외치료를 한 후에 선양 다베이 감옥에서는 그의 병력을 제시하고, 반년에 한번 그에게 병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병력과 진료카드 등 서류를 내놓으라면서 여러 차례 가족을 협박하고 괴롭혔다. 2007년 5월 13일에 그녀는 억울하게 사망했다. 그 해 64세.

헤이룽장(黑龍江)성 솽청(雙城)시 대법 수련생 장화빈(張華濱), 억울하게 사망

헤이룽장성 솽청시 신싱(新興)향 대법 수련생. 장화빈은 아내를 통해 97년에 운좋게 법을 얻었고 아들도 수련을 하였다. 세 식구가 대법을 수련한 후 많은 이득을 얻었다. 99년 7월 20일에 장씨 건달 집단들이 불법으로 파룬궁을 탄압하면서 솽청시 악경들도 불법으로 수련생을 납치하여 성 정부에 감금시켰다. 장화빈은 기사이다. 그는 불법으로 납치당한 수련생을 데려오기 위해 7월 22일에 큰 트럭을 몰고 수련생 40~50명을 데리고 성 정부에 찾아가 청원하면서 대법을 실증하고 사부님의 결백을 호소했다.

2001년에 아내 안링(安玲)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었다. 그 해 11월의 어느 날 아침, 집에서 밥을 하고 있는데 향 파출소 부소장 쿵칭만(孔慶滿)이 임시로 고용한 주민 몇을 데리고 쳐들어 왔다. 수련생들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을 때 현수막과 진상자료를 안링이 제공 했다는 핑계로 그를 들어서 차에 밀어 넣고 납치해갔다. 안링이 납치당하던 전날 그의 남동생 안진싱(安金興)은 이미 불법으로 납치당한 상태였다. 악경들은 둘을 악독하게 때리고 가족에게 인민폐 2만위안을 강탈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안링에게 7년 판결을 내려 하얼빈 여자 감옥에 감금 시키고 안진싱은 8년 판결을 내려 다칭 감옥에 감금시켰다. 둘이 감금, 박해 당한지 5년이 넘었다.

5년 넘는 시간에 장화빈은 아빠, 엄마 노릇을 모두 해야 했다. 생활을 유지하고 대학교 다니는 아이들 교육비로 집을 팔아야 했다. 그는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았고 아내가 혹형으로 박해 당할까봐 걱정되어 건강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 간경화 복수 증세가 나타나 배가 붓고 얼굴은 회색으로 변했으며 온몸에는 힘이 없고 아파서 참기가 힘들었다.

2007년 5월 10일, 그는 가족의 보살핌 덕분에 하얼빈 감옥에 있는 안링에게 면회를 갈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여 아내가 보고 견디지 못할까봐 아내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감옥장을 찾아가 안링이 밖에서 치료를 받도록 요구하려 했으나 만나지도 못했다. 감옥 정법과장 정제(鄭杰)가 가로막으면서 생명이 위독한 장화빈에게 비인간적인 말로 “안링이 전향하지 않으면 감옥장과 만나지 못하게 할 것이다”고 했다.

돌아온 후 그의 병증세는 악화되었고, 겨우 46세 된 그는 평생의 한을 안고 2007년 5월 20일에 사망했다. 그는 연로한 어머니와 학교 다니는 아들을 두고 떠났다. 아내 안링은 하얼빈 여자 감옥에서 전향을 하지 않고 삼서를 쓰지 않았으며 사악들에게 협조하지 않아 현재까지 참혹한 혹형으로 박해를 당하고 있다.

이것이 중공악당들이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한 또 하나의 범죄의 증거이다. 여기에서 장화빈 가족 박해에 참여한 악인, 솽청시 장궈푸(張國富), 진완즈(金婉智), 신싱향 정법위원회 장윈룽(張雲龍), 정소장 류칭위(劉清宇), 직접 납치에 참여한 악인 부소장 쿵칭만 등 악경, 악인, 들에게 경고한다. 선과 악은 보응이 있으며 이것은 천리이다. 당신들이 저지른 죄행은 하늘이 꼭 청산할 것이니 하루 빨리 하얼빈 여자 감옥에 감금되어 있는 대법제자 안링을 풀어주고 당신들의 죄행을 사죄하라.

산둥성 이수이현 대법제자 장완민(張萬民)이 억울하게 사망

산둥(山東)성 이수이(沂水)현 취안좡(泉莊)향 대법제자 장완민(張萬民)이 여러 번이나 악경 등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세뇌반에 보내져 박해로 2002년 10월 22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장완민, 남, 66세, 거주지 산둥성 이수이현 취안좡향 허난(河南)촌. 법을 얻기 전에는 심한 위장병으로 매일 신물을 토하였으나 98년에 법을 얻은 후에 건강이 빨리 완쾌되었다.

99년에 사악들이 대법을 박해한 후 그는 대법수련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벌금, 괴롭힘을 당하고 인민폐 1300위안이나 강탈당했다. 2000년 겨울에 취안좡향 정법위원회 서기 민샹위(閔祥玉)가 그에게 오랫동안 바닥에 앉지 못하고 서있게 하는 박해를 가했다. 취안좡향 사법국은 또 수련생들에게 매일 2번이나 출근 도장을 찍게 하고 동시에 5개월 동안 불법으로 감시 했다.

장완민은 여러 번이나 악경들에게 세뇌반에 납치당해 박해를 당했다. 악당들의 협박 하에 그는 줄곧 긴장 상태였다. 2001년 봄, 대대에 가서 “출석부(點名)”를 부를 때 늦었다는 이유로 관리구의 부서기 천융둥(陳永東)이 욕을 하였고 그에게 강제로 사부님과 대법을 욕하라고 하였으나 그는 협조하지 않아 박해를 받았다. 집에 돌아간 후 그는 심장이 이상함을 느꼈다.

악당들의 정신, 육체적 박해로 매일 긴장하고 두려움 속에서 생활하다가 2002년 10월 22일에 심장병이 심해져 억울하게 사망했다.

산둥성 이수이현 취안좡향 관리구의 부서기 천융둥 집 전화 : 0539-2259918
휴대폰: 13583934415 거주지 이수이현 이수이진 차안제

문장완성 : 2007년 5월 25일

문장발표 : 2007년 5월 29일
문장갱신 : 2007년 5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7/5/29/1556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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