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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학습반에서 가졌던 아름다웠던 시간들

글 / 대륙 대법수련생

[명혜망] 어린 시절부터 나는 책읽기를 즐겼다. 소녀시절 때는 손에 들어오는 책이면 닥치는대로 무엇이나 다 읽었다. 15세인가 16세였을 때는 내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자치통감(资治通鉴)’까지도 읽었다. 시골로 보내진 후 건강이 나빠졌다. 당시 사람들은 여전히 무료진료소를 찾았기 때문에 나도 도시로 돌아오자 매 병원을 찾아다녔고 조상에게서 물려받았다는 고인들의 민간비법 등을 포함한 모든 것을 시도해보았다. 심지어는 무당에게까지 갔다. 최후에는 나 자신이 중의를 공부하게 되어 ‘본초강목(本草纲目), ‘황제내경(黄帝内经)’까지도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딸의 알레르기를 고쳤는데, 그것은 내가 사는 성(省) 수도의 유명하다는 서양병원과 중의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 자신의 병은 여전히 고치지 못했다. 그러자 나는 기공을 시도해보았다. 각종 유명하다는 기공을 거의 전부 해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마치 우연처럼 1994년 나는 내가 사는 도시에서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하게 되었다. 첫 세 강의를 들은 후, 내 인생에서 풀지 못했던 난제들, 그리고 여러 책들을 읽는 동안 축적되었던, 내게 대답을 주지 못했던,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이 왔다. 마치 갑자기 내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린 것 같이 아주 넓고 환해짐을 느꼈고 아주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실제로 첫 두 학습반에서 나는 잠을 잤다. 하지만 나의 귀는 아무 것도 놓치지 않아 사부님께서 강의를 끝내시면 나도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부끄러웠고, 이것은 아주 예의가 바르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나서야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의 두뇌를 청리해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섯 째 학습반 마지막에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병이 없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우리가 강당을 나간 다음 알게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너무 힘이 나서 자전거도 타고 싶지 않았다. 내내 어린 시절 이후로 느껴보지 못했던 일종 경쾌함을 느끼면서 자전거를 옆에서 밀며 걸었다. 발걸음도 아주 가벼워 걷는 것이 즐거웠다. 나는 점점 더 빨리 걸었다. 나중에 자전거에 올라탔을 때는, 마치 전혀 페달을 밟을 필요도 없는 것 같았다. 언덕이었는데도 자전거는 그냥 혼자서 위로 굴러 올라갔다. 나는 너무도 격동되었다. 나는 내가 찾았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대단히 소중히 여겼다.

1994년 말, 나는 사부님께서 광저우에서 마지막 학습반을 여신다고 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가야한다. 사부님께서 우리 도시에 오셨기 때문에 나는 그런 소중한 법을 너무 쉽게 얻었다. 바로 내가 법을 찾고자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광저우로 가야한다.” 사실 나는 정말 얼마나 내가 법을 보배처럼 생각하고 존중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또한 수련하겠다는 나의 결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광저우로 가는 길에서, 전에 내가 앓던 병들이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다. 때로는 서있을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내가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자, 나는 곧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내가 사부님의 학습반에 들어가서야,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우리의 신체를 조정해주기 시작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날 학습반이 시작되기 전,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앉아 있는 바로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 직원과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그런 다음 우리 곁을 지나가셨다. 사부님은 친절하게 웃으시며 우리를 쳐다보셨다. 다섯 여섯 번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했다는 한 노수련생이 존경의 표시로 두 손을 마주하고 허스 자세로 사부님께 인사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사부님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사부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인사에 미소로 답하셨다. 사부님께서 지나가신 후에야 나는 갑자기 “깨어났다”. 그리고 크게 후회했다. “왜 내가 사부님께 인사를 하지 않았지?” 나는 즉시 두 손을 포개 사부님의 등 뒤에 허스 자세를 하고, “사부님, 안녕하세요?”라고 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갑자기 사부님께서 돌아보시더니 내게 미소를 지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 마음에 한 차례의 격동이 일어났는데, 정말이지 언어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나는 사부님께서 한 번 쳐다보신 것으로 다음 날 아침 내게 기적이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어린아이 때부터 책을 너무 많이 읽어 내 시력은 표준인 1.5에서 0.5~0.6으로 나빠졌고 거기다 난시까지 있었다. 나는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하기 전에, 한 쪽은 150도 그리고 다른 한쪽은 300도 그리고 난시가 각각 150도인 안경을 맞추었다.

그 날 아침 잠을 깬 후, 나는 습관대로 베개 옆에 놓아두었던 안경을 집어들었는데, 왼쪽 안경알의 가운데가 깨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나를 생각하고 있는데, 사부님의 학습반을 열 번이나 참석했다는 한 동수의 어린 딸이 내게 말했다. “사부님께서 당신이 안경 쓰는 것을 원치 않으세요.” 아무리 쓰고 싶어도 가운데 금이 간 안경을 쓸 수는 없었다.

어린 소녀의 말을 반신반의하면서, 안경을 재킷 호주머니에 넣고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맡겨둔 물건을 찾기 위해 호텔 데스크로 갔다. 우선 호주머니에서 영수증을 꺼내기 전에 안경이 필요했다. 안경을 꺼냈는데, 오른쪽 안경알 가운데도 금이 가 있는 것을 보고는 나는 아연해지고 말았다. 내가 위층에서 걸어 내려오는데 단 5분도 안 걸렸고, 안경에 금이 갈만큼 누구와 심하게 부딪친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해서 다른 쪽 안경알까지 금이 갔을까? 이때에야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게 안경을 쓰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왔다. 달리 이야기하면, 내 시력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이제 안경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검사를 통해 내 시력이 정말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오랫동안 써왔던 안경을 벗어버렸다.

사부님의 학습반에서 나는 대법이 진실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또한 불법(佛法)의 무변(無邊)함도 느꼈다. 7년의 박해 동안, 내가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했던 경험을 되새길 때마다 나는 더욱더 견정해졌다. 7년이라는 박해 속에서 가족에 대한 정, 모든 것을 잃는 어려움, 그리고 박해로 죽을 수도 있는 상항, 그 어떤 것도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나의 믿음을 흔들지 못했다.

발표일자 : 2006년 8월 1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중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7/3/132068.html
영문위치 :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6/8/19/769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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