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2월 10일] 법을 얻은 날을 회상해 보면, 바로 어제와 같은데 순식간에 벌써 13년이 더 지나갔다. 사존님의 우렁차고 순박한 목소리, 상냥하고 친절한 웃음 띤 얼굴, 자비로운 가르침은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며 영원히 제자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어 시시(時時)로 곳곳에서 제자의 일언일행, 일사일념을 바로잡아 주시어 수련의 길을 바르고 잘 걸어가게 하고 있다.
93년 7월 16일부터 나는 생명이 세간에 오게된 진정한 의의를 알게 되었고 세계관에 심각한 변화가 발생하였으며, 참으로 진짜 경전을 알게 되었다. 이는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제일 유쾌한 날로서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나는 행운스럽게도 치치하얼 전업 문화궁과 하얼빈 아이스하키장에서 있었던 두 차례의 사존님 설법반에 참가하였는데 그 행복과 기쁨을 인간의 모든 언어를 다 쓴다해도 나의 심정과 사존님에 대한 탄복과 감격을 형용하기 어렵다.
나는 기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사부님의 학습반 열기 전 한 차례의 보고가 나를 심심(深深)히 끌어당겼다. 몸이 편안할 뿐만 아니라 사상 깊은곳도 변화가 발생하였고 늘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 같은 그런 친절감이 들어 보고가 끝났는데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분은 평범한 기공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학습반에 참가할 결심을 내렸다. 기회는 잃어버릴 수 없으며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아 대략 2~3백 명 정도였는데 나중에 점점 많아지더니 닷새째 되는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문화궁 좌석이 기본적으로 꽉 찼다. 처음에 나의 오성은 아주 차하여 날마다 일찍 와서 두 동료의 좌석까지 맡아 주었는데 목적은 사부님의 음성과 웃으시는 모습을 똑똑히 보고 듣기 위해서였다. 언제나 앞줄 3~4번 째 줄에 앉았는데 이는 연단에서 제일 좋은 위치였다. 법을 듣는것이 깊어짐에 따라 이런 방법이 옳지 않으며, 위사위아(爲私爲我)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는 착오적인 생각을 바로잡고 고쳤다. 사존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도 말로도 모두 감복하게 하였고 영혼 심처(深處)에서 자발적으로 귀정(歸正)하게 하였다.
사존님은 특별히 붙임성이 좋으셨고 상냥하고 친절하셨다. 하시는 말씀은 자성(磁性)이 아주 강하여 누구나 모두 편안한 감각을 느꼈으며 사상 가운데는 나쁜 염두가 없고, 번뇌가 없었으며 모두 몹시 기뻐하였다.
이 기간 나는 사부님의 머리 위, 어깨 위, 신체 주변에 오색찬란한 많고 많은 채색 기둥들이 수시로 변하고 있는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전등 불빛이 비추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여겼는데 다른 사람들은 못봤다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그것은 사존님의 각종 공의 현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참으로 너무도 신기하였다. 그때 나는 사부님은 아마 제일 큰 부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번 째 시간에 천목을 강의하셨는데 사부님은 수련생들의 다른 공간에 대한 사고와 인식을 열어 주기 위하여 예를 들어 말씀하셨다. 당시 강연대 위에는 검은색에 뚜껑이 달린 차컵이 있었는데 사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략)”나는 이 차컵을 다른 공간의 존재 형식으로 끌어다 왼손 위에 놓겠으니 여러분 주의하여 보십시오” 사존님은 오른 손으로 책상 위에 놓인 컵을 들고 왼손을 오른손에 붙이고는 왼쪽으로 끌어당기시는 것이었다. 한 쪽으로 당기면서 한편으로 말씀하셨다. “나의 왼손을 주의하여 보십시오.” 30 센티미터쯤 거리에서 멈추시더니 보았느냐고 물으셨다. 아래에서 일부 사람들이 보았다고 대답하였다. 나는 당시 보았는데 검은색이 아니라 흰색이었다. 마음속에 의문부호를 그렸다. 나는 또 사존님이 연단에 계실 때 어떤 때는 엄청나게 키가 크셔서 하늘을 받친 듯 하여 마치 하늘을 꿰뚫으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평소에 보면 180 센티미터 쯤 되어 보여 아주 괴상하다고 느꼈다.
수업 사이에 한 수련생이 수련생들을 거느리고 연공 동작을 할 때 사존님이 강연대 위에서 손으로 무엇을 잡아서 강연대 뒤에다 뿌리치고는 발로 힘주어 밟는 것을 보았다.나는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하시느라고 나쁜 생명을 처리하고, 제자들을 위하여 공간장을 청리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자는 보답할 방법이 없다. 그저 정진실수(正進實修)하여 사부님께 조금이라도 기쁨과 위안을 더 드리는 것 밖에 없다.
13년이 흘러갔다. 매번 이 시각을 생각할 때면 늘 눈물이 줄줄 흐르면서 평온해질 수 없었다. 매번 “내 생각에, 내가 공을 전하고 설법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장래에 당신은 알겠지만, 당신은 이 시간 동안이 매우 보람찼음을 느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연분(缘份)을 중시하는데 여러분이 여기에 앉아 있는 것도 모두 연분때문이다.”(>)라고 하신 이 단락 설법을 볼 때마다, 제자는 각별한 친절감과 마치도 또다시 강의실로 돌아가 직접 가르침을 받는 듯한 체험을 심심히 느끼곤 한다.
학습반 기간, 나는 날마다 문화궁 문앞에서 어떤때는 사부님과 2~3 미터 사이에 두고 마주서 있을 때가 있었다. 날마다 모두 어떤 사람들이 사부님을 둘러싸고 있어서 병을 치료받거나 사인을 받거나 하였는데 (수정본이 아닌 최초의 책)책에 사인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마음속으로 훌륭한 공이니 잘 연마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늘 선생님을 에워싸고 떠들썩하는 것은 얼마나 예절이 없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였다. 우연히 사부님께서 머리를 돌리시고 나를 향해 살짝 웃으시는 것을 보았는데 이후의 법공부를 통해서야 나는 사부님께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알고 계셨다는 것을 알았다. 때때로 사부님의 말씀이 들려온다. 이 책은 모두 내가 쓴 것이며 매 글자마다 모두 부처인데 그래도 사인을 받겠는가? 하지만 사존님께서는 미소를 머금고 일일이 사인해 주셨다.
열번 째 강의 시간에 사존님께서 수련생들에게 문제 해답을 해주셨다. 나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문제를 제출하였다.
1. 사존님, 당신은 강연대 위에서 왜 그렇게 키가 큽니까? 어떤 때는 천정에 닿는 것 같던데요? 사존님은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그건 당신이 제대로 본 것입니다.” 법공부를 통하여 그것은 사존님의 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사존님 저는 당신을 제일 큰 부처라고 여기는데 그렇다면 당신이 수련한 것은 어떤 과위입니까? 사존님은 이 쪽지를 읽으시고 소리내어 웃으시고는 해답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당시 부처세계의 일에 대해 깜깜했고 또 부처수련을 하는 사람도 접촉해본 일이 없었기에 너무도 유치하였고 매우 가소로웠다. 이것은 사부님에 대한 불경이다. 나는 지금 알고 있다. 사존님은 사람을 구도하고 우주를 귀정(歸正)하러 오셨지 수련하러 오신 것이 아니란 사실을.
학습반은 곧 결속되겠는데 나는 오래도록 마음을 평정할 수 없었다. 나는 존경과 탄복, 미련, 감격,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을 품고 심득 체험을 써서 바쳤다. 두 구절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법을 얻은 그 날 하나의 생각이 있었네. 끝까지 진수하며 마음 변치 않으리. 간난신고에 걸음 멈추지 않으리. 반본귀진은 나의 염원이어라.
십여 년 동안의 피비린내나는 비바람 속에서, 고난의 세월 속에서, 반박해의 겨룸 속에서 사존님과 법을 반석같이 믿어오면서 오늘까지 착실하게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사부님의 한결같은 보살핌, 자비로운 구도, 제자에 대한 끊임없는계오(启悟)의 결과이다. 제자는 다만 절대로 해이해지지 않으며, 세 가지 일을 바짝 틀어쥐고 열심히 잘하려는 것밖에 없다. 우리는 반드시 최후의 길을 잘 걸어가야 한다. 미래의 펼쳐짐은 머지 않았다.
문장발표 : 2006년 12월 7일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6/12/10/1441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