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불광은 관주 대지를 골고루 비추네(3)

【명혜망 2007년 2월24일】(앞글 이어서 계속)

3, 사부님께서 두 번째로 관현에 오시다

1993년 5월 12일 사부님께서는 린칭(临清)에서 학습반을 꾸리는 기회를 이용하여 또 한번 관현 제자들을 보러 오셨는데, 오후 두 시 넘어 관현 술창회의실에서 제자들을 위해 한시간 넘게 설법을 하셨다.

중국 기공 과학연구회의 신청푸(辛成富)는 린칭 사람으로 관현의 한옥안과 같이 고덕 대법을 고향사람들에게 추천하였다. 사부님께서는 린칭시 기공협회의 요청으로 5월 7일 오전에 린칭으로 오셔서 린칭시 정부 초대소에 투숙(현재 린칭 호텔, 사부님께서 당년에 투숙하신 작은 층집과 예의당 학습반에서 설법한 곳과, 관현제자와 함께 식사하신 곳은 지금은 사라졌다)하셨다. 8일 저녁 시초대소(린친시위 초대소) 회의실에서 시유관 영도와 공작인원들이 환영의식을 했다. 시 기공협회의 이 회장이 환영사를 하고 동시에 한 수의 시를 읊었다. “관현린칭 인접현, 전야 밭머리 만나, 함께 모여 기쁘게 새로운 공을 배우니, 중생은 파룬따라 돈다네.”

장송해( 张荣楷)는 린칭시 각계를 대표하여 “린칭에 경을 전하고 보배를 가져다준 이 선생님을 열렬히 환영한다” 고 했다. 관현에서도 30여 명이 환영의식에 참가하였다. 환영의식이 끝나자 사부님께서는 한차례의 기공 보고를 하셨다.(첫 강의로 신청푸와 한옥안도 참가했다)

8일 오후 관현의 제자들이 시초대소에 차례차례 도착했다. 그 중 관현 교통국의 이봉(李峰, 가명)도 왔는데 그는 반신불수라서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어느 중년 여인의 병을 사부님께서 치료하여 나은 것을 보고, 그의 가족들이 그를 데리고 린칭에 와서 병치료를 해 달라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매우 바쁘셨으므로 관현의 제자들은 류따제를 찾았다. 류따제는 사부님을 도와 공과 법을 전하고 있어서 사부님께서 병치료하는 공능을 주신 상태였다. 류따제가 초대소 안에서 이봉의 신체를 조절하는데 관현의 제자들이 빙둘러서 있었다. 류따제가 힘있게 이봉의 병부위를 두드려 병을 흩어지게 한 다음, 좋지 않은 물질들은 밑으로 끄집어 냈다. 한참 지나자 이봉은 정상적으로 걷게 되었는데 그는 기뻐서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이봉과 그의 처 손칭(孙青,가명)은 9일 사부님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런데 지금은 애석하게도 이봉이 수련을 견지하지 못해 결국 속인의 길을 걸었다. 지금까지 배회하고 있는 수련생들과 속인에게 일깨워 주고 싶다. 기연을 정말로 잃었을 때 어떤 후회라도 쓸데없는 것이다.

9일 일찍부터 관현의 제자들은 초대소 안에서 조용하게 사부님을 기다렸다. 사부님께서 오시자 관현의 노제자들은 공원에서 연공할 지점을 선택해 달라고 했고, 사부님은 이를 흔쾌히 수락하셨다. 여러 사람들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면서 어린애마냥 사부님을 뒤따라 갔다. 다리 건너 대중공원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현대인이 지은 로식 건축이 있고 앤샤(檐下)처마 밑에 편액 옆에서 한 사람이 노래연습을 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계속 앞으로 가시다가 죽림숲을 지나 동쪽으로 꺽어들어 일부 사람들이 손발을 움직이며 고함을 치고 연공하는 것을 보고는 한 번 미소를 지으셨고, 아무 말 없이 한바뀌 돌아보시고는 마지막에 로식 건축 남쪽 자리를 선택해 주셨다.

공원에서 나와 린칭시 박물관 맞은 편에 있는 포장마차 앞에서 사부님께서는 여러 사람을 불러서 아침 식사를 하라고 권하셨다. 사부님께서 앉으시자 관현의 제자들이 아침 밥을 가져왔다. 사부님께서는 계란알 지짐하나와(작은 것이다,안에는 계란이 하나있다), 만두 하나(5개가 한근임)두부국 한 그릇을 시키셨다. 관현의 제자들이 계산을 하려고 하니 사부님께서는 말리시면서 류따제에게 계산하게 하셨는데, 이것은 수 십명 제자들의 아침식사를 챙겨 주신 것이었다. 여기까지 글을 쓰니 우리는 언어로는 사부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다 전하지 못하겠다.

아침을 먹은 뒤 사부님께서는 또 관현제자들을 불러서 박물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주셨다. 후에 류따제가 전하기를 린칭 인민들이 재빨리 대법을 요해하기 위하여 사부님께서 백사람에게 병치료를 해준다고 하셨다. 사부님께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하여 관현의 제자들은 가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우리는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사부님께 인사드린 뒤 학습반에 참여하지 않는 제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1992년 11월에서 1993년 5월 반년만에 관현의 제자들은 백여 명에서 3백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런데 여러 원인 중 주요하게는 “수련”에 대한 인식이 얕아서 십여 명은 학습반에 참가하고 기타 사람들은 사부님과 작별한 후 돌아갔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사부님께서 린칭에 계시다고 하자 관현 제자들은 매우 뵙고 싶어하여 사부님께 관현에 또 오실 것을 부탁했다. 사부님께서는 여러분들의 소원을 만족시켜주려고 시간을 내어 5월12일(수요일)오전에 오신 것이었다. 소식을 일찍들은 제자들은 일찌감치 로대집에 가서 기다렸는데 곧이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평소 많은 사람들은 사부님께 많은 것을 여쭈려고 했지만 진작 뵙고나면 무슨 말을 해야할 줄 몰랐다. 사부님께서는 객실 서쪽벽 북쪽 쇼파에 앉아 제자들이 제출한 문제에 대해 대답해 주셨다.

이번에 사부님을 모시고 관현에 온 사람은 류따제, 쏘리즈(小李子)와 린칭의 몇 공우(功友)였다. 점심은 현위 초대소 북쪽에 있는 작은 식당(지금은 존재하지 않다)에서 부현장 치옥분(齐玉芬)이 특별히 찾아와 대략 30여 명이 사부님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식사 전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관현에 온 것은 나의 고향에 온 샘이다”라고 하셔서 제자가 묻기를 “사부님의 고향은 장춘이 아닙니까?”라고 여쭈었다. 이에 사부님께서는 “나의 일세가 관현에 있었다”라고 답하셨는데, 당시 많은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법공부와 실제 수련을 한 후에야 그 중의 함의를 이해할 수 있었다. 후에 장춘제자들이 말하기를 “사부님께서는 관현 일세 때 속인 중에서 밥을 동냥하셨다” 그제서야 관현의 제자들은 마치 사부님과 관현의 특수한 인연과 사부님께서 이 곳의 중생들을 구도하시려는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었다.

식당 밖에는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많은 제자들은 주불의 은혜를 흠뻑 입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약 두시쯤 사부님께서는 관현 술창에 오셨다(지금은 관이춘(冠宜春)술 유한회사임). 많은 제자들은 일찌감치 나와서 사부님을 환영 하였다. 그 중 당시 현위부서기 사영조(史永朝)와 일부 과,국의 영도들도 있었다. 갑자기 비가 와서 먼 곳의 제자들은 참여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강의대에 오르시자 실내에는 우레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사부님께서는 조용히 하게 하신 뒤 우리에게 설법을 하셨는데 많은 제자들은 반년 전의 감각과 같이 많은 느낌을 얻었다. 사부님께서는 우선 간단하게 반년동안 파룬궁의 발전정황을 소개하셨고 동시에 법공부와 마음수련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동시에 관현제자들에게 갓 출판한《중국파룬궁》을 린칭반이 끝나고 난 뒤 백여 권을 주셨다. 또 린칭반에서 설법한 녹음테이프를 관현 제자들에게 한세트주기로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또 부분 제자들의 질문에 해답하셨고, 마지막에는 사부님께서 친히 여러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 주셨다.(왜냐하면 금방 들어온 사람, 일부분 속인이 있었기에 이 역시 그 사람들의 연분이고 분복인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강의대에서 왼손에는 마이크를 드신채 사람들에게 자신이 제거할 병을 생각하면서 느슨한 자세로 잘 서라고 하셨다. 두 눈을 감고(만약 자신이 병이 없으면 친인의 병을 생각하면 된다). 사부님께서는 커다란 손을 한번 흔드신 뒤 전체 사람들을 향해 묻기를 “좋습니까?” 어떤 사람은 좋다고 했으나 어떤 사람은 안 된다고 했다. 사부님께서 또 한 번 병을 제거할테니 잘 서있으라고 하셨다. 오성이 좋은 사람은 많은 덕을 보고 왜냐하면 병은 마음대로 제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손으로 또 한 번 잡았다. 대다수 사람들의 병은 좋아졌지만 극소수 사람들의 병은 낫지 않았다.

아래 좌석에 친척관계인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 중 한 할머니는 20년 앓고 있던 B형 간염으로 인해 복수(腹水)가 차서 밥도 먹기 힘들었다. 중서양 의사 모두 치료를 포기한 상태였는데, 말하자면 시한부 인생이었다. 오전에 그의 아들이 사부님을 찾아 정황을 말하자 사부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바나나 두 개를 뜯어 두 손으로 쥐고 있다가 아들에게 주었다. 그녀의 아들이 “나는 먹지 않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 먹으라고 주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아들이 즉각 알아 들었다.

사부님께서 강의하시기 전, 이 할머니는 사부님께서 공을 발한 바나나를 먹었고, 사부님께서 병을 잡을 때 한 번 손을 흔들자 우쪽 간부위에서 한줄기 냉기가 오른쪽 다리로 내려갔다. 이때부터 B형 간염은 어디로 날아가 버렸다. 이 할머니는 지금도 수련을 견정히 하고 있는데, 사부님의 요구대로 자신을 수련하면서 진상을 말하고 세인을 구도한다. 할머니는 초등학교 1학년 학력임에도 대법책을 능란하게 읽을 수 있다. 이런 제자들이 관현에는 적지 않게 있다.

사부님께서 가시게 되어 많은 제자들은 대문 밖에서 사부님의 차가 멀리가는 것을 보며,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천천히 흩어졌다.

사부님게서 린칭에 간 다음 일부 제자들이 15일(토요일)린칭에 사부님을 뵈러 갔다. 사부님께서는 예물을 받지 않으시고, 술과 차도 마시지 않으신다.(관현에서 어떤 사람이 모태주(茅台酒)를 사부님에게 드리자 사부님은 완고히 거절하셨다). 오후에 도착한 제자들이 사부님께서 계신 방에 들어가자 사부님께서는 린칭의 성이 왕씨인 중년부녀와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쏘리즈(小李子)가 사람들에게 앉으라고 권하고는 매 사람들에게 차를 따라주고 또 귤을 권했다. 사부님께서 손님을 배웅하고는 우리와 이야기를 하시면서 차와 과일을 권했다. 사부님께서도 차를 드셨다. 우리가 무슨 차인가 여쭈었더니 사부님께서는 로서를 가리키면서 “저 사람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자 로서는 웃고 있었는데 사부님께서 예외로 로서가 공양하는 차를 한 봉지를 받으신 것이었다.

로서는 사부님께서 스웨터를 입고 가부좌하신 법상과, 금방 출판한《중국 파룬궁》 한 권을 손에 들고 있었다. 책의 속표지에 사부님께서 써주신 서문, 한마음으로 정법수련을 하여 더 한 층 높이 오르자.(후에 이 책은 섬서의 한 수련생이 보겠다고 가져갔고 후에 관현 공안국 악경이 빼앗아 갔다) 기타 제자들도 사부님의 법상을 모셨는데, 사부님께서는 가져오신 책을 학습반이 끝나자 대부분 관현의 제자들에게 남겨주셨다.

오후부터 보슬비가 한참동안 내려 공기는 매우 맑았는데, 일부 제자들은 사부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몇 명을 불러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하셨는데, 로서가 과일즙 한 상자를 사와서 마셨더니 마음까지 달았다.

저녁 식사 후 마지막 한 강의를 하기 전에 간단한 마무리 인사가 있었다. 한 유선암을 앓던 여수련생은 의사가 이미 불치병이라 했는데 학습반에 참석한 뒤 암증은 어디로 날아가 버렸다고 했다. 그녀는 강의실 앞에서 감동으로 말을 하지 못한채 그냥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 정경은 사람을 감동시켜 마음에 새겨진 듯 잊혀지지 않는다.

수련생의 발언이 끝나자 사부님께서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해주셨다. 우리들 중 몇 사람은 특별히 몸이 더워져, 너무 더워 땀을 흘리는데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평소 정신력이 강한 공안 간부도 천천히 눈이 감겨 억지로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 마지막에는 그래도 잠들어 버렸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법은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들었다.

5월 16일(일요일) 아침,사부님께서 북경으로 가시는 날이었다. 린칭의 수련생들이 버스 한 대를 세내었는데, 관현의 제자들은 일찌감치 울안에서 사부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부님은 윗층에서 내려와 관현의 제자들과 일일이 악수하시고 제자들은 아쉬운 마음으로 사부님께서 차에 오르시는 것을 보았다. 차가 대문을 나섰을 때 제자들은 참지 못하고 급히 사부님이 떠나시고 있는 대문밖을 향해 뛰어갔다. 진수학교의 여수련생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자 기타 제자들도 눈에 뜨거운 눈물을 머금었다. 사부님을 태운 차는 천천히 떠났으나그래도 멀어져 갔다.

세 번째로 관현에 오실 준비를 하셨던 사부님

1994년 1월,사부님께서 산동성 단학교에서 파룬궁 기남 제1기 학습반을 꾸리므로 27일(목요일)아침 7시 무렵 로대와 과학위주임 두선생과 5,6명이 기남 서역으로 사부님을 마중 나갔는데 기남의 유관부문에서는 사부님을 모르고 있었다. 로서와 몇 사람은 역 입장표를 사서 기다리다가 사부님께서 기차에서 내리시는 모습을 보았다. 여럿이 사부님을 도와 행장을 들고 역밖으로 향했다. 로서와 두선생에게 차가 있고 주최측도 차가 있어 사부님을 어느 차에 오르시게 하겠는가? 로서가 사부님은 그래도 주최측 차에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주최측의 차가 앞에서 달리는데 속도가 빨라서 로서는 뒤에서 급하게 뒤따랐다. 차가 십자가 동쪽 길남쪽 성위생청 초대소에 도착하자 사부님께서는 4층으로 가셨다. 일체 수속이 끝난 뒤 로서가 사부님께 오늘 관현으로 돌아가므로 사부님께 점심을 같이 하자고 청했다. 기실 주최측도 점심식사에 사부님을 초대하고 싶어했지만 사부님께서는 로서의 말을 듣고 즉시 주최측에다 점심 안배를 하지 말라고 하여 주최측은 높은 풍격으로 관현에 양보하였다.

사부님께서는 일체를 안치하신 후 곧 길북쪽 “산동탄교” 회의실(团校)에서 약 10시쯤 한 차례 기공 보고회를 진행하셨다. 회의실은“소례당”(小礼堂)으로 북에서 남쪽을 향했고 학교 대문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대략 6백 개의 좌석이 있고 그중 40여 개 의자에 앉아서 관현의 제자들이 사부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예당은 후문과 측문이 없어서 출입을 모두 정문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은 자연히 정문쪽을 바라보았다.

10시가 되자 사부님께서 오셨고 사부님의 딸도 함께 왔다. 관현의 제자들이 마중을 나가니 사부님은 웃으시면서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시고는 강연대로 향하셨다. 관현제자와 노제자들 외에는 기남시에 파룬궁과 사부님을 아는 사람이 적어서 박수소리는 열렬하지 못했다. 이때 관현 과학위 주임도 강연대에 올라 관현 대법제자들을 대표하여 사부님께 숭고한 경의를 드렸다. 동시에 간단하게 파룬궁이 관현에서 발전하는 정황과 파룬궁을 수련한 후 사람들에게 심신건강에 전변을 가져다준 일부 건강을 회복한 실예를 들었다. 동시에 관현제자들의 축하 편지를 드리면서 기남 파룬궁 제1기 연수반이 성공적인 진행을 축하하였다. 그러자 회의실은 우레같은 박수소리가 터졌다.

사부님께서는 한 시간 넘게 설법을 하셨다. 보고회는 매 사람마다 5원씩 받았는데 많은 사람들은 보고를 듣고 즉시 돌아가려던 생각을 바꾸어서 연이어 강의표를 샀다. 열 번 강의에 매 사람마다 10원씩받고 노 수련생에게는 20원을 받았다. 이는 실제 사실이다. 이 방면에서 장마귀와 그의 무리들은 사부님께서 수업비용을 고액으로 받는다고 거짓말을 떠드는 것은 거들떠 볼 필요도 없는 것이다.

강의를 마친 뒤 사람들이 나가자 사부님께서는 제일 마지막으로 예당 대문을 나가셨다. 이학수는 (가명) 처음으로 사부님을 뵙고 소리내자 수업증을 가진 사람들은 《중국파룬궁》책을 들고 사부님께 싸인해달라고 우르러 모여들었다. 사부님께서는 필을 꺼내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차례차례 신수련생들에게 싸인을 해주셨다. 로서의 차는 그대로 기다렸고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인을 다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사부님께서 차에 오르셨다. 이때는 벌써 12시 반이 되었는데 사부님께서는 이미 열 몇 시간을 휴식할 틈도 없으셨던 것이었다.

차는 십자길에서 동으로 향하다가 제비산 밑에서 북으로 굽이돌아 한동안 가다 길 동쪽에 있는 식당앞(이름은 생각나지 않음)에 섰다. 로서와 관현과학위밑 현기공협회에서 연합으로 사부님을 위해 연회를 차렸는데 두 상을 차려 10여 명의 제자들이 사부님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밥을 다 먹자 이학수는 사부님 앞에 있던 문을 열었고 사부님께서 계단을 내리시자 또 사부님을 위해 차문을 열었다. 사부님께서 기사 뒷쪽에 앉으신 후 이학수가 차문을 닫자 사부님께서는 창문을 내리시면서 그에게 알려 주시기를 “관현 제자들의 공은 온당하게 상승하고 있다.(기본상 사부님의 본래 말씀임)” 식사 할때도 로서에게 알려 주시기를 “관현도시의 온 상공이 온통붉다”

초대소에 돌아온 뒤 이학수는 과학위에서 사부님께 드리는 사과 한 상자를 4층에 옮겨놓았고, 여러 사람들은 사부님과 작별하였다. 로서가 마지막으로 가게 되어 사부님께서는 그를 2층까지 배웅하자 그는 사부님께서 더 나오시지 않도록 만류했는데 눈물이 글썽한 채로 사부님께서도 그를 보내기 아쉬워 하셨다. 이것은 그가 사부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영암사에 간 것을 대부분의 관현 제자들은 모두 다 알고 있다. 학습반의 몇 명의 제자들도 역시 영암사에 가서 사부님께서 걸어오신 길을 한 번 더 더듬어 보았다. 이 몇 사람은 저녁강의가 끝나자 사부님을 뵈러갔다. 사부님께서 그렇게 바쁘신 와중에도 이 몇 명의 제자들을 만나주셨다. 동시에 쏘리(小李)보고 배(梨)(학습반 첫날 관현의 제자들은 사부님께서 천진에서 사온 공을 발한 꽈배기)를 사람들에게 먹도록 주라고 하셨다. 그 중 한 제자가 “이 배를 저는 안 먹고 저의 모친이 몸이 안 좋으니 사부님께서 공을 발하면 제가 집에 가져가서 모친에게 주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사부님께서는 배를 받아 두 손으로 쥐고 있다가 제자에게 주면서 또 다른 배 하나를 제자에게 먹어라고 주셨다. 여러 사람들은 어린아이처럼 사부님을 둘러싸고 먹었는데 사부님께서는 아주 기뻐하셨다. 그 중 세 사람은 공작방면의 일을 하기에 아침 일찍 집으로 가야 된다고 하자, 사부님께서는 “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고 말씀하셨다. 그중 두 사람은 공작이 어떠어떠하여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이를 듣고 한참 침묵하시다가 “그럼 가려면 가 보아라”(사부님께서는 그 사람들이 돌아가는 것을 매우 원치 않으셨다)그중의 한 사람이 보고 있다가 즉각 “저는 또 오겠습니다!” 그들은 이야기를 좀하다가 사부님과 작별했는데, 사부님께서는 문밖까지 나가서 서 계시다가 사람들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서야 집안으로 들어오셨다.

학습반을 연지 나흘째 일요일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원래 이 날 관현제자들을 세 번째 보려고 하셨던 날이었다. 사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 때 관현의 제자 아화(阿华)(가명)는 그 자리에서 즉각 말하기를 “사부님께서 가기로 결정하시면 저는 즉시 관현에다 차를 오라고 하겠습니다”. 태산과 천불산(千佛山)에 모두 사부님께서 처리하실 일이 남아 있어서 사부님께서는 관현에 오실려고 하셨던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一1996년 겨울 어느 날 저녁 관현의 한 제자의 꿈에 사부님께서 트럭을 타고 오셨는데, 차가 서자 사부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지 않으셨다. 이 제자는 꿈에 로전(老钱)(왜냐하면 전씨 성을 가진 제자는 자신의 지프차가 있다)이 차문을 열고 사부님께 차에서 내리시기를 청하자 사부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지 않으시겠다면서 차는 동북방향으로 갔다고 했다. 뒷 날 아침 연공장의 제자가 말하기를 “사부님께서 어제 저녁 단에서 기남으로 가시는 도중 관현을 지나갔는데 내리시지 않았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세 번째로 관현에 오신 것인데 제자들의 수련에 영향을 줄까봐 그렇게 묵묵히 오셨다가 묵묵히 가시면서도 사부님께서는 언제나 매 하나의 제자들을 걱정해 주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한 사람의 제자도 떨구지 않으려고 하신다. 우리는 응당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연장한 분초를 진귀하게 여기고 수련을 잘하고 의무를 충실히 하여 자신의 서약을 실천하여 사전 서약을 부끄럽지 않게 이행해야 한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니 우리의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신성한 신앙과 반석같은 정념이면 조사정법, 중생구도는 필연코 성공한다. 어떠한 역랑도 중생이 회귀하는 길을 막지 못할 것이다. 관현의 제자들은 꼭 사부님의 간절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사부님께서 맡겨주신 세 가지 일을 더욱 잘할 것입니다!

2007년이 곧 오게 되므로 이 문장을 발표하는 기회를 빌어 대법관현 전체 제자들은 우리의 위대한 사부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사부님께 설 인사를 드립니다. 관현대법 제자들은 사부님을 너무나 그리워합니다. 사부님께서 또 한번 관현에 오시기를 희망합니다.

후기

이 문장은 관현대법제자들이 사부님의 은혜를 회억하며 당시 있었던 제자들이 반복하여 회억하고 토론한 것을 바탕으로 쓴 글이다. 한 편의 역사, 원래의 면모를 재현하는 한 편의 문장이다. 특별히 시간, 지점과 인물 등을 관현 기타 제자들이 이 장과 같지 않게 쓴 것은 이 장을 기준으로 한다. 예를 들면 사부님께서 처음으로 관현에 온 시간, 제1차 기공보고회의 시간 등이다.

지금의 형세와 조건의 제한으로 본문이 담은 것은 아주 적은 것이다. 결점과 부족한 점이 많을 것인데, 광대한 동수들 특히 그 당시 현장에 있었던 관현 대법제자들이 보충 의견을 많이 제출하고, 이후 보충하여 수개하는 중에 더욱 충실히 할 것이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전문끝)

문장성립:2007년02월21일

문장발표:2007년02월24일
문장갱신:2007년02월24일 18:01:30

문장위치: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7/2/24/149468p.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