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6년 10월9일] 나는 료닝 초우양시의 노 대법수련생이다. 나는 아주 행운스럽게 1994년 룽깡, 진저우, 다랜에서 꾸린 사부님의 3기 전공 설법 학습반에 참가하였다. 사부님의 설법을 직접 경청할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사부님과 악수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이것은 나의 일생에서 제일 행복한 일이다. 사부님의 위덕, 대법의 신기함은 시시각각 나를 고무하고 있다. 오늘 동수들의 수많은 회억을 보고 나는 문화가 없어 쓸 줄 모른다는 관념을 타파하고, 수련생을 청하여 내가 듣고 본 제한된 몇 가지 이야기들을 대필함으로써 여러분에게 이야기 하려 한다
1994년 7월31일 오후 5시에 사부님께서 다렌시 전력학교 예당에서 설법하시고 공을 전하기 시작하셨다. 나와 몇 몇 수련생은 하루 앞서 도착하여 학습반 근처의 여관에 숙소를 잡았다. 여관의 책임자는 우리가 대법을 배우러 먼 곳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우리에게 특별대우를 해주어 정상적인 여관비는 15원인데 우리에게서는 12원만 받았고 매일 두끼 식사는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이로부터 우리는 당시에 파룬궁이 중국에서 깊은 환영을 받았음을 볼 수 있다.
7월31일 전력학교 책임자가 사부님께서 곧 오실테니 역으로 마중 나가라는 것이었다. 사부님은 지난에서 학습반을 끝내시고 배를 타고 대련으로 오신 것이다. 여러 사람은 분분히 현수막이며 생화를 들고서 일찍 부두로 나갔다. 배는 마침내 대안에 닿았고,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께서 풍채늠름하시게 우리에게로 걸어 오셨다. 영접하러 간 대오는 질서정연하였고, 열렬한 기분이면서도 혼잡하지 않았다. 사부님은 수련생들과 일일이 악수하셨는데, 삽시간에 한 갈래의 따스한 난류가 마음 속으로 흘러 들었다. 우리는 모두 사부님의 손은 일종 초상적이어서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나른하고도 보드러운 감각을 느꼈다. 나는 그 당시의 감수를 언어로 표달하기 어렵다. 그저 늘 우리는 천지간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란 느낌만 들었다. 나는 사부님을 만나 뵈었다! 우리는 끝내 사부님을 찾았다!
마중이 끝나자 나와 함께 왔던 한 여 동수의 몸이 불편해지기 시작하였다. 손발이 얼음처럼 차거웠고, 차거운 얼굴은 회백색을 띄었고 위장의 반응은 더욱 선명하여 자꾸만 메스꺼워 시커먼 물울 토하였다. 토하고 토하여 그때에 약을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강의할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그녀를 고무해 주었다. “꼭 가야 해요. 절대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돼요.” 그녀도 마음을 다잡아 먹고 사전에 비닐 봉투를 사서 토할 때 쓰려고 준비 하였다. 나와 그녀는 예당의 18번째 줄에 앉았는데, 그녀의 온 얼굴에는 콩알같은 땀방울이 맺혔고, 손발은 더욱 차가워졌다. 사부님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사부님의 두시간 동안의 설법을 듣는 동안에 그녀는 점점 더 아무일도 없게 되었으며 그 사이에 화장실에 가지도 않았고, 토하지도 않았다. 강의가 끝나자 그녀의 온 몸은 후꾼하게 더워졌다. 이때에야 사부님께서 그녀의 몸을 정화해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때로부터 그녀는 병이 없어 몸이 가볍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체험할 수 있었다.
무릇 사부님을 따라 다니면서 학습반에 직접 참가한 대법 수련생이라면 내 생각에 모두가 사부님의 위덕과 대법의 신기함을 감각했으리라고 여긴다. 몇 천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예당에 앉았고 그것도 여름이어서 도리대로 말한다면 상당히 더운 것이다. 대부분 수련생들은 부채를 준비하지 않았고, 다만 극소수의 사람들 만이 부채를 가졌다. 사부님은 부채질하지 말라고 하셨고 부채질을 할수록 더욱 더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말씀이 계신 후, 사람들은 더는 부채질을 하지 않았다. 이어서 시원한 바람이 부채질을 하지 않는 수련생들에게로 솔솔 불어 왔다. 개별적인 사람들은 여전히 부채질을 하였는데 할수록 점점 더 더워졌다.
사부님께서는 다렌설법 마지막 날에 수련생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중국에서 출생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전 세계의 인연있는 사람들을 모두 구도해야 합니다. 후반년에 나는 출국하게 됩니다.” 중공 사당(邪黨)은 파룬궁을 박해하면서 사부님이 외국으로 도망가서 복을 누리고 있다고 요언을 날조했다. 기실 일찍이 1994년도에 사부님은 벌써 해외 여러 나라에 법을 전하러 가셨던 것이다.
이번 설법반이 결속된 후, 수련생들은 사부님께 금기 등을 드렸고 우리는 공예품 거울을 기념으로 드렸다. 사부님은 거울을 받으신 후 초우양의 수련생들을 향하여 세 번이나 거울을 흔드셨다. 뿐만 아니라 책임자에게 부탁의 말씀을 하셨다. “초우양의 수련생들, 당신들은 서로 많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은 후, 모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1994년 정월10일, 사부님은 룽깡에 요청되어 오셔서 학습반을 꾸리셨다. 룽깡 공회는 사부님에게 하루 저녁에 240원 하는 고급 방을 배당해 드리면서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다. 사부님께서 아신 후, 이튿날 일찍 친히 원래 비용대로 돈을 지불하시고는 값이 아주 싼 방에 드셨다. 이번에 나의 어린 손자도 우리와 함께 와서 법을 들었다. 그는 그해 9살이었는데, 비장이 나빠 밥을 먹을 수 없었고, 늘 약을 먹었다. 학습반을 연 첫 이틀 동안 사부님은 그의 몸을 정화해 주셨는데, 그때로부터 그는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있어 신체가 특별히 좋아졌다.
이번에 룽깡에 와서 법을 들을때 나는 60여세 되는 한 여수련생을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원래 교사였다. 문화혁명 기간에 농촌에 내려가서 이른바 ‘노동개조’에 참가하였다. 하루는 차에 수수단을 실었는데 이미 아주 높이 실어 더는 실을 수 없는 형편인데도 감독은 한 쪽에서 음흉한 웃음을 지으면서 억지로 위에다 싣게 하였다. 힘을 너무 쓴 탓에 그녀의 요골이 엄중히 탈골되어 여러 해 동안 숱하게 돈을 썼지만 치료되지 않아 이제는 거의 마비상태에 이르렀다. 1993년, 그녀에게 사부님께서 꾸린 북경 동방 건강 박람회의 설법반에 참가하는 행운이 찾아왔다. 회의에서 사부님은 그녀의 신체를 정화시켜 주셨기에 그때로부터 그의 탈골은 기적적으로 나아졌다. 사부님의 룽깡 학습반도 후에 듣고 참가하러 왔던 것이었다.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하기 전에 나는 체질이 약하고 병이 많은 늙은이였다. 열 가지도 넘는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 중 골질증식, 근육수축, 심장병, 풍습성 관절염, 백반풍, 허리다리 통증, 그리고 시력이 엄중히 떨어져 200도 안경을 써도 신문의 제목 만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제1차로 사부님의 설법 학습반에 참가하자 눈이 좋아져 돋보기를 벗어 버렸고, 기타 각종 질병도 저절로 없어졌다.
대법이 널리 전해질 때, 나는 행운스럽게 대법을 만났다. 오늘 나는 대법의 아름다움을 세인들에게 알려주려 한다. 자신을 잘 수련하고 진상을 잘하여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겠다.
문장발표 : 2006년 10월9일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6/10/9/139626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