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아래에는 다칭시 훙웨이싱 감옥에 불법으로 수감되어 있는 몇 명의 대법제자들이 구원을 청한 편지, 고발편지, 박해를 받고있는 사실들을 적은 편지들이다. 이 편지들은 갖은 봉쇄를 돌파하고 여러 경로를 통해서야 외부에 전해졌다. 감옥 안에는 통제가 심한 탓으로 또한 대법제자들이 문자 표달 방식이 부족한 등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써보낸 구체적 사실들이 실제로 박해를 받고 있는 사실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으며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 그렇지만 근근이 이런 정황으로도 다칭 감옥 안의 어둠과 테러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다칭 감옥에서 이 몇 달 사이에 3 차례나 대법제자가 박해로 사망한 사례가 발생했다. 희망하건대 국제인권조직, 국내외의 정의의 인사들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이 박해를 저지하여 주기를 바란다.
1、다칭 석유학원의 노동자 장즈의 앞니 하나가 부러졌다,
대법제자 장즈(張志, 남),원 다칭시 석유학원 노동자
2003년 6월 18일 다칭 간수소에서 불법으로 다칭감옥 교육분감구에서 계속 박해를 실시 했다. 2003년 7월 20일 교육 개조를 책임진 과장인 궈춘탕이 범인들을 인솔해 가지고 장즈에 대해 박해를 진행했다. 그를 핍박해서 ‘보증’”를 쓰게 하기 위해 강제로 잠을 못자게 했는데 연속 5일동안이나 시달리게 했다. 낮에는 그를 예당에 끌고 가서 음악을 틀어놓거나 아니면 잡음을 내거나 또한 사람들을 윤번으로 돌아가며 말을 시키게 해서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저녁에도 똑 같은 수단으로 그를 시달리게 했으며 피로해서 조금만 자려고 하면 손으로 늑골부위를 찔렀으며 조금만 순종하지 않아도 주먹으로 턱을 때렸다. 박해에 참가한 범인들은 “경찰들이 하는 말에 의하면 외상만 내지 않으면 어떻게 때려도 괜찮다고 한다”라고 했다.
당시 장즈는 박해를 받고 있을 때 감옥 부감옥장 왕잉제를 만나서 이 일을 말했지만 왕잉제는 듣고 나서 그들을 저지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죄수들은 그에게 더욱 사납게 굴었다.
2005년 5월 12 일 오전 9시경에 교육 개조과는 궈춘탕을 제외하고 전부가 감방에 모여서 추이전꾸이(崔真贵)의 지휘 하에 장즈를 강박하여 죄수복을 입게 했다. 그가 말을 듣지 않자 범인들을 시켜 장즈의 옷을 벗기게 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그들은 죄수들과 같이 그를 구타하고 나서는 작은 감방에 처넣었다. 장즈는 내의만 입은 채로 차디찬 철판 위에 앉거나 누워 있어야 했다. 추이쩐구이와 자오댄은 사람들이 그에게는 솜옷을 가져다 주지 못하게 했으며 이번에는 꼭 장즈를 굴복시키겠다고 떠벌렸다
장즈의 왼쪽 늑골이 발길에 차여 상처가 나서 약 한달 반이 지나서야 통증이 소실됐다. 오른쪽 늑골도 상했는데 숨을 들이쉬기 가빴다. 8일 동안 불법으로 감금되자 장즈는 단식으로 항의했는데 또 강제로 그에게 음식을 투입시켰다. 음식물을 투입하던 중 앞니 하나를 부러뜨렸다. 작은 감방에 긷힌 이튿날 궈춘탕은 작은 감방에 가서 장즈를 감시실에다 불러 내놓고 벌을 서게 했는데 개별적으로 경찰들의 저지를 받았다. 8일이 지나서 장즈는 작은 감방에서 놓여 나왔으나 감방문을 나서지는 못하게 했다. 때로는 물을 달라고 했으나 그들은 “감옥이란 바로 이런거다”라고 대답했다
평소에 옥경들은 늘 배후에서 죄수들을 시켜 대법제자들을 괴롭혔는데 끓인 물을 주지 않는다거나 식권을 주지 않거나 배불리 먹지 못하게 하거나 개인 물품들을 훔치는 일들이 늘 생겼다..
2、류주차이(劉祝才)가 왼쪽 귀를 얻어맞아 고막이 터졌으며 리리좡(李力壮)의 항문에다 물을 주입했다.
대법제자 류주차이(刘祝才, 남)와 진성(金生, 남) 2002년 2월 23일 자오저우현싱산향에서 파룬궁의 전단지를 배포하다가 향파출소에 잡혀갔다. 거기서 자오저우현 간수소에 넘어갔다. 류주차이는 자오저우현 법원에서 불법으로 5년 판결을 받았다. 2002년 8월 7일 강박으로 그를 다칭 감옥에 잡아갔다. 단체 훈련 팀에서 20일 동안 갖은 시달림을 당했는데 장시간 동안 세워 놓거나 비인간적인 학대를 했다. 8월 27일 심리자문 주임인 탕후이버는 밤에 이야기 하자는 이유로 교도실에 불러놓고 하루저녁 꼬박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이튿날 죄수들을 사주하여 잇달아 연일 휴식과 정상적인 수면을 취하지 못하게 했으며 ‘전환’할 것을 강박으로 강요했다. 이 기간 류주차이는 교도과 과장 궈춘탕, 부과장 스후이쉐의로부터 여러 차례나 되는 압력을 받았으며 정신이 극도로 피로한 상황에 처하고 신체가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보증’을 썼다..
2003년 7월 24일 저녁 8시 좌우에 류주차이는 화장실에서 파룬궁 수련생 장즈와 몇 마디 서로 위안하는 말을 주고 받았는데 (당시 장즈는 이미 연속 4-5일이나 잠을 자지 못한 상황) 마침 당직을 서고 있던 옥경 추이쩐꾸이한테 맞아서 왼쪽 고막이 터졌다. 이튿날 류주차이는 과장에게 이 일을 반영했으나 검사하지도 않고 치료도 해 주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귀에 좋지않은 반응이 있으며 청력이 떨어졌다. 2005년 5월부터 지금까지 류주차이는 감옥에서 죄수를 시켜서 윤번으로 지키고 있으며 인신자유가 엄중하게 제한을 받고 있다.
대법제자 리리좡(남)은 대법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불법판결 4년을 받고 다칭감옥 1감구에서 박해를 받고 있다. 1감구의 옥경은 범인들과 결탁하여 그에 대해 비인간적인 시달림을 가했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으며 구타하고 냉수를 퍼붓고 심지어는 수돗물 호스를 항문에 밀어넣고 물을 주입했으며 때려서 늑골을 부러뜨리기까지 했다.
대법제자 쟈성후이(贾生辉, 남),다칭시 둥펑신촌 사람, 2002년 6월 10일 집에 있다가 다칭시 형사대대 경찰들에게 잡혀갔다. 쇠로 만든 의자에 수갑을 채워놓고 옹근 하루를 지내고 나서 다칭 간수소에 넘겼다. 2002년 9월 불법 판결 7년을 받았으며 12월 4일 다칭감옥 1감구에 보내어 박해를 가했다. 오늘까지도 기소서나 판결서 같은 것이 없다. 그의 아내도 대법제자이며 박해를 받아 반신마비가 되어 집에서 딸애가 돌봐주고 있다. 쟈성후이는 잡혀간 날부터 오늘까지 신체상 육체상에서 거대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3대대 대대장 주루이환은 일찍이 공개적으로 파룬궁 수련생들을 구타했으며 4명의 죄수들을 부추켜 24시간 감시를 진행했으며, 대법제자 덩칭산이 방에서 반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고, 소변은 방에서 보게 하며 대변은 화장실에 가게 했다. 방에 그를 단독으로 있게 했으며 4명의 범인이 그를 지켜보게 했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시켰는데 덩칭산은 일체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했다.
3、장즈둥(張子栋)、장슈펑(張秀丰)이 받은 박해
대법제자 장즈둥은 1999년 10월에 파룬궁을 위해 베이징에 상방한 것으로 인하여 하얼빈 대학에서 제명 당했으며 하얼빈시 난강구 공안분국에 27일동안 구치되었다. 2000년 11월 9일에 파룬궁 진상자료를 인쇄하다가 잡혔으며 하얼빈시 도외구 공안분국 간수소에 수감되었다. 2001년 7월 하얼빈 중급법원에서 불법으로 12년 판결을 했으며 2002년 3월에 불법으로 하얼빈 감옥에 수감되었다. 2002년 7월 하얼빈 감옥의 옥경 겅하오(耿豪)는 비열한 수단으로 장즈둥에 박해를 가했는데 그의 침대 옆에 폐결핵이 있는 죄수를 데려다 있게 했으며 그로 하여금 결핵성 흉막염, 복막염, 엄중한 적수(積水)가 생기게 했다. 하얼빈 흉과병원에 30일 동안 입원하고 있는 동안 흉복에서 9키로의 물을 빼냈다가 후에 하얼빈 병원에 9개월 동안 입원했다. 주치의사는 하르빈 흉과병원의 주임인 류주루, 의사 황잉쥔, 치료에 참가한 의사들로는 하얼빈 감옥병원 원장 류밍더, 가오스훙, 의사( 医师) 한훙쥔이다.
2004년 7월 1일 장즈둥은 다칭감옥으로 넘어갔다. 2005년 3월 31일 연공을 한다는 이유로 다칭감옥 교도과 과장 궈춘탕의 엄격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그날 저녁에 당직 서는 죄수가 소란을 피우면서 그를 자지 못하게 했다. 장즈둥은 핍박에 단식항의를 시작했다. 2005년 4월 1일 장즈둥의 모친이 그를 보러 감옥에 왔을 때 그는 당장 감옥에서 저지른 죄악을 폭로했으며 불법요원들에 의해 저지당했다. 4월 1일부터 4월 7일까지 7일 동안 단식을 하는 도중에 장즈둥에게 강제로 호스를 꽂아넣고 음식물을 투입했는데 심신에 엄중한 손상을 받았다.
2005년 5월 12일 장즈둥은 죄수복 입기를 거절했다. 교도과 옥경들은 5-6명의 범인들을 시켜서 강박으로 옷을 벗겨내고 뺨을 때렸으며 안경까지 발로 짓밟아 버렸다. 장즈둥은 작은 감방에 8일간 감금되어 있는 동안 단식으로 항의했으며 2차례나 강박으로 음식을 투입당했다. 5월 20일부터 지금까지 (7월 25일) 감방문을 나서지 못하게 하며 식당이나 슈퍼, 물 길러 나가지 못가게 하며 매일 2명의 범인을 시켜서 그를 감시하고 있다.
대법제자 장슈펑(남) 2002년 10월 6일 전에는 하얼빈시 팡정현 영안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2002년 10월 6일 팡정현 공안국 국보대대 처우융성(丑永生)등 경찰들이 갑자기 집에 뛰어들어 강제로 그를 잡아갔는데 당시 아무런 문서도 내놓지 않았다. 그후에 7일 아침 새벽 1시 40분까지 몇 시간 안되는 사이에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며 악경들은 그를 억지로 호랑이 의자 안에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1촌가량 굵기의 sl관으로 손목과 관절부분에 살이 적은 곳을 때려서 손가락을 쓸 수 없게 했다. 땅땅한 물건을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며 부분적인 공능을 상실했다. 장시간 동안 핍박에 호랑이 의자에 앉아 있은 탓으로 지금까지도 일어나 소변보기가 어려우며 굽히고 앉아서 대변을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2003년 4월 16일 장슈펑은 새로 조직된 감옥 단체 훈련팀에서 강박으로 무릎을 굽혔다 펴기를 하였는데 무릎을 굽히지 못하게 되자 마씨성을 가진 죄수 반장이 이것을 발견하고 달려와서 발로 그의 오른쪽 내측의 늑골을 걷어차서 몇 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나았다. 2003년 5월 29일 불법으로 장슈펑을 하르빈 감옥으로 넘겼으며 거기서 또 9대대장 겅하오의 위협과 시달림을 당했다. 핍박하여 ‘5서’를 쓰게 했으며 중대장 순궈슝의 협잡을 당했다. 2004년 7월 1일 다칭감옥에 넘어왔다. 다칭감옥에서나 이전에 있었던 감옥에서를 막론하고 그는 모두 통신자유, 인신의 자유를 잃었으며 제한된 장소에서만 활동이 가능했고 해를 보기도 드물었다. 때로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으며 항의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후에 또 그에 대해 여러 가지 수단으로 보복을 진행했다
4、쑨댄빈(孫殿斌)、리후이펑(李惠丰)이 하얼빈 감옥에서 혹형을 당하다
대법제자 쑨댄빈(남)이 파룬따파를 견지한데서 지시(鸡西)법원에 의해 불법판결 10년을 받았다. 2002년 4월 12일 강박으로 하얼빈 감옥에 넣었다. 하르빈 감옥의 단체 훈련팀 부대장인 장쥬산은 대법제자들을 강박하여 ‘3서’를 쓰게 했으며 그를 작은 감방에 밀어 넣었다. 쉬즈챵, 위쥔제 이 두 죄수를 시켜서 작은 감방안에서 쑨댄빈을 구타했다. 그들은 쑨댄빈에게 억지로 48근에 달하는 족쇄를 채웠으며 수쇄와 함께 땅바닥에 고정해 놓은 쇠고랑이에 잠궈놓았다. 그는 그저 전신을 옹송그린 채로 있을 수 밖에 없었으며, 그 다음 쉬즈챵은 주먹을 휘둘어 쑨댄빈의 얼굴, 가슴, 잔등, 옆구리 다리 등을 사정없이 때렸으며 전신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이렇게 줄곧 4일동안 시달리게 했는데 그로 하여금 대소변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범인 쉬즈챵은 으시대면서 “ 장대장이 나를 파견해서 너를 강제로 전향하게 했는데 전향하지 않으면 화장해 버리거나 때려 죽이겠다. 그래봤자 3년 더 연장하면 그만이다”라고 떠벌이며 다녔다. 비인간적인 시달림은 쑨댄빈으로 하여금 정신이 붕괴의 변두리에 이르게 했다
2004년 3월 18일 한 차례에 있은 문답에서 쑨댄빈의 대답이 경찰 장쥬산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자 그는 잡공 관더쥔, 류옌밍, 진즈둥, 리둥후이, 류즈리등 죄수들을 사촉하여 그를 유린했다. ‘말타기 놀음’을 벌였는데 쑨댄빈을 머리를 벽에다 박게 하고는 사람이 올라타게 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사정없이 때렸으며 새벽녘까지 이렇게 시달리게 했다. 낮에는 대열을 지어 서서 벌을 세웠으며 휴식도 못하게 했다. 이렇게 연속 몇 주일간 계속 지속됐다. 범인 관더쥔은 쑨댄빈에게 “장대장은 나보고 너를 한바탕 혼내주라고 했다.”고 했으며 죄수 류즁리는 “장대장이 말했다. 때려 죽이지 않고 숨만 붙어 있게 하면 된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쑨댄빈은 정신상, 육체상에서 극대한 상처를 입었다. 하얼빈 감옥에서는 그들이 저지른 죄행을 덮어 감추기 위해 대법제자들을 다른 곳에로 이전시켜 계속 박해를 가했다.
대법제자 리후이펑(李惠丰, 남),치치하얼시 테펑구에 거주 .2 001년 1월 22일 저녁 동수의 집에서 갑자기 뛰어든 치치하얼 형사3중대의 경찰에게 체포되었으며 그 자리에서 구타 당했다. 형사 5중대의 경찰들은 전기 몽둥이를 그의 소변기에 대고 전기를 가했다. 또 허공에 달아매기 까지 했는데 두 팔은 반년이 되도록 위로 치켜들지 못했다. 이튿날 치치하얼시 제 2간수소에 보내어 불법으로 감금했다. 2002년 1월 24일 하르빈 감옥 단체 훈련팀에 넣었다. 2001년 7월 불법으로 12년 판결을 받았으며 판결에 불복하면 상소하라고 했으나 그러나 2심 판결서에는 그가 1심에서 판결에 복종하며 상소하지 않겠다고 한다고 썼다.
하얼빈 감옥 단체훈련팀에서 리후이펑은 판결에 불복하여 죄를 승인하지 않고, 박해를 반대한다고 단체훈련팀의 황대대, 궁대대는 강박으로 그를 작은 감방에 집어 넣었으며 범인들을 시켜 감시하게 했다. 때는 바로 가장 추운 겨울이었는데 옥경들은 고의적으로 창문들을 열어 놓았다. 매일 적은 양의 옥수수죽을 주었는데 작은 감방에서 39일 동안 박해를 받았다. 15일 후 리후이펑은 6감구에서 옥경 탕신민, 주원천의 박해를 받았으며 죄수들을 시켜 자유를 제한하고 가족들이 면회도 하지 못하게 하고 보내온 물품 같은 것도 압수하고 그가 상소하여 쓴 자료들도 억류했으며 정신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강제노동을 시키는 등 강박적인 수단을 사용했다
하얼빈 감옥의 관리들과 610경찰 천수하이(陈树海)、리푸차이(李福财)는 경상적으로 파룬궁을 모욕하는 녹화 테이프를 가져다 강제적으로 보게 했으며 대법제자들에 대해 강제적인 세뇌를 진행했다. 정기적으로 사상회보를 쓰게 했으며 강박으로 ‘3서’를 쓰게 하는 등의 수단으로 대법제자들을 박해했다. 2004년 경찰은 죄수를 시켜서 대법제자 왕따위안을 때려 죽였다. 감옥에서는 진상을 덮어 감추기 위해 2004년 7월 1일에 하르빈 감옥에 있는 모든 대법제자들을 다칭, 타이라이. 우단쟝 등 감옥으로 전이시켜 계속 박해를 가했다. 리펑후이는 지금까지 다칭감옥 1감구 1분구에 수감되어 있으며 정신상 육체상에서 엄중한 유린을 당했다.
5、청페이밍(程佩明)가족들의 호소
99년 7월 20일부터 2005년 7월 20까지 이미 간수소, 감옥의 6곳에서 박해를 받았는데 간략하게 아래와 같다.
1、지시(鸡西)시 지콴구 공안국에서 36 시간동안 ‘쇠로 만든 의자에 앉기’ ‘허공에 달아매기’ ‘늑골 쑤시기’ 등 혹형을 받았다. 청페이밍은 그들에게 대법제자들을 박해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2、지시(鸡西)간수소의 악인 부소장 장의(张义)는 5-6명의 악인들과 죄수들을 데리고 작은 감방으로 가서 청페이밍에 대해 연속 3일간 전기 충격기로 고문했으며 발에는 40여근 되는 족쇄를 20여일 동안 채워놓았다. 경찰은 죄수들을 시켜서 그의 옷을 홀딱 벗기게 하고는 5근 되는 고양이를 그의 몸에 올려놓아서 고양이의 발톱이 살속에까지 패여 들어갔다. 전기고문을 모두 7번이나 했다
3、지시시 훙싱향의 경찰 5-6명은 청페이밍에 대해 2시간 동안 구타를 했다.
4、하얼빈 감옥의 단체 훈련팀에서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는 더욱더 사악했다. 감옥 안에 작은 감방의 땅바닥에다 쇠고랑이를 고정시켜 놓았다. 훈련대의 대장 황즈민, 장쥬산, 간버는 60여근 되는 쇠로 만든 족쇄를 청페이밍이게 채워놓고 장커쥔, 장샤오펑, 예제, 장융 4명의 죄수를 시켜서 청페이밍을 박해했는데 ‘고환을 비틀’ ‘환을 튕기기’ ‘앞뒤 가슴을 발로 갑자기 들이차기’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기’ 등 형벌을 가했으며 “너를 죽여도 정부에서 책임진다”고 말했다. (명혜망에 상세한 보도가 있음)
5、다칭 감옥에서는 작은 감방에 크게 매달아 놓아서 청페이밍은 머리, 팔에 중상을 입었는데 머리에는 2센치에 달하는 상처가 생겼으며 팔에도 3센치에 달하는 상처가 생겼다. 11월 16일 시병원에 호송되었다. 작은 감방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으로 병원에서 좌측늑골부위를 수술하여 100여 곳을 꿰매었다. 6일동안 병원에 입원하고는 다칭감옥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도 계속 작은 감방에다가 족쇄를 채워놓았으며 입은 나뭇가지를 물려놓았으며 수술자리에서 아직 실을 채 뽑아내지 않은 상황에서도 계속 10여일간 박해를 진행했다. 경찰 둥멍환은 3개월 동안이나 샤워를 하지 못하게 했다.(명혜망에 상세한 보도가 있음)
6、2005년 5월 13일 다칭감옥의 병감(病监)인 판사오린 대대장은 죄수 쩐잉제를 시켜 감옥 숙소의 물탱크실에서 청페이밍을 목을 졸라 죽이라고 하면서 일이 성사한 후 5000위안을 주겠다고 했다. 죄수 쩐잉제는 창훙바오를 시켰으나 창훙바오는 말을 듣지 않고 감옥에 이 일을 보고했다. 그러나 감옥에서는 도리어 쩐잉제를 감싸주었으며 창훙바오에게 보복을 했다. 청페이밍의 집에서 새로 사온 옷에다가 ‘범’자을 새겨 놓았다. 청페이밍이 판사오린을 찾아가니 그는 “너를 목졸라 죽이지 않은거야 ?”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상의 사실들은 모두가 진실하며 대법제자들의 생명은 여기에서 아무런 보장도 없다. 바라건대 국제 인권조직에서 성원해 주기를 희망
청페이밍의 가족 :청페이펑,(程佩风)、청진즈(程金芝)
문장완성 : 2005년 08월 01일
문장발표 : 2005년 08월 02일
문장갠신 : 2005년 08월 02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5/8/2/1075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