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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제자 장둥버, 상하이 티란치오감옥에서 박해로 사망

[명혜망] 대법제자 장둥버(蔣東波)는 상하이 티란치오감옥에서 엄중하게 박해를 받았다. 2003년 2월 15일 집에 보내졌을 때 이미 그의 목숨은 경각을 다투었으며 2003년 4월 13일경 억울함을 품고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나이 겨우 37살이었다. 티란치오감옥은 4월 하순 청년실험중대에서 장둥버가 사망한 소식을 알리면서 단호히 수련하고 있는 다른 대법제자들을 위협하였다.

장둥버(남)는 장수(江蘇)성 난징(南京)시 출신이다. 상하이에서 사악에 의해 불법으로 6년 판결을 받았다. 2001년 8월 10일 상하이시 어느 간수소(가능하게 쉬후이간수소임)에서 상하이 티란치오감옥으로 보내졌을 때도 박해로 인하여 그 당시 한쪽 다리는 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등에 업힌채로 3층 감방에 들어갔으며 청년실험중대 동1조에 수감되었다. 9월 10일 다시 동 2조에 옮겨졌고 주관경찰은 니링이었다.

‘청년실험중대’를 ‘청중(靑中)’이라고 간칭하였는데 원래 사형범을 가두는 중대이며 전체 상하이감옥에서 가장 혹독한 곳이다. 옥경은 단호한 대법제자들을 오랫동안 3.3평방의 작은 감방 안에 가두고 24시간 식사, 수면, 화장실 가는 것을 포함하여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아침 5시 30분부터 일어나 정좌해야 하고 두 손은 등뒤로 수갑을 채워 움직이 못하게 하는 동시에 각종 자세를 취해야 한다. 예를 들어 등에 수갑을 채우고 쭈그리고 앉기, 손을 등뒤로 하기, 오랫동안 ‘폭로 비판하는’고음질 이어폰을 귀에 끼우기, 다리에 끼우고 바닥에 앉기, 작은 밥그릇에 앉기 등의 고문을 하면서 ‘전향’을 시도하였다.

재소자 위청빈은 옥경의 지시로 장둥버를 전문 감시하였는데, 그에게 일주일간의 학대를 받고 장둥버는 마음을 어기고 법률을 어긴 죄를 인정하는 글을 썼다. 후에 또 아주 빨리 이른 바 죄를 인정하는 글을 작페한다고 선포하였고 옥경은 또 다시 그를 작은 감방에 가두었으며 그는 각종 학대를 받았다.

장둥버는 그 후부터 사상회보와 주기를 쓰는 기회를 이용하여 진상을 알리는 문장을 대량 써냈다. 그리고 각종 시와 노래, 소품 등을 적었는데 610과 옥경이 파룬따파와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진상을 폭로 비판하였다. 이는 옥경들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케 하였고 그의 주기를 감추어 다른 사람들이(심지어 기타 옥경들조처) 보지 못하게 하였다. 장둥버의 정념정행은 기타 대법제자들을 고무 격려하였다.

장동버는 오랫동안의 박해로 인하여 2002년 10월경 심각한 구토증세를 일으켰으며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악한 박해는 멈춰지지 않았고 그는 매일 모두 3.3평방의 작은 감방에 갇혀 핍박에 의해 비누를 포장하는 등의 노동을 하였는데, 그가 완전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12월 경 그는 감옥병원에 보내졌고 옥의는 그가 위암을 얻었다고 말했다.

2003년 2월 15일 감옥은 목숨이 경각을 다투는 장둥버를 난징의 집으로 보냈다. 옥경 어우리강은 그가 감옥에서 죽지 못하게 하여 티란치오 감옥이 대법제자를 박해한다는 진상을 덮어감추는 동시에 또 감옥의 ‘문명형상’의 위신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보낸 것이었다.

2003년 4월 13일경 장둥버는 난징에서 박해로 인하여 인간세상을 떠났다. 티란치오감옥은 4월 하순 청년실험중대에서 장둥버가 사망하였다고 발표하였으며 이로써 대법수련을 견지하는 기타 대법제자를 위협하려 하였다.

문장발표 : 2005년 06월 21일

문장분류 : 【박해진상】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5/6/22/1045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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