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명혜기자 잉즈가 보도)전 톈진 610관원 하오펑쥔은 일찍이 파룬궁수련생 쑨티 모녀의 고난의 경력을 직접 목격했다. 더구나 쑨티가 혹형을 받고난 후의 참상이 늘 하오펑쥔의 꿈속에 나타났는데 그로 하여금 밤잠을 제대로 잘 수 없게 했다. 하오펑쥔의 말에 의하면 이 일은 그의 사상에 있어서 변화를 일으키는 하나의 큰 전환점이 되었고 훗날에 그를 호주로 가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토대를 다져 놓았다고 했다. 이들 모녀가 어찌하여 이러한 고난을 겪게 되었는지, 이들이 겪어온 경력은 중국의 파룬궁수련생들 중에서 보편성을 갖고 있는지, 6월 14일 우리는 일찍이 쑨티 모녀와 안면이 있는 파룬궁수련생 왕위즈 여사와 인터뷰 하였다.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혹형과 박해는 중국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왕위즈 여사는 회상하면서 말했다. “나는 베이징에 진정하러 가서 쑨티를 알게 되었으며 그 후의 2년이라는 시간에 우리는 서로간에 왕래가 있었습니다. 내가 세번째로 납치당한 후 우리는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나는 그가 두번 납치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쑨티는 13-14살짜리 딸애가 있었는데 딸애가 후에 톈진에서 하루빈으로 도망갔는데, 쑨티의 딸을 통해 나는 그가 체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쑨티의 딸은 왕위즈에게 쑨티가 박해를 받은 경과를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는 몹시 쇠약해 졌고 또 20여일간 단식을 했는데 그녀에게 강제로 음식물을 투입시켰으며 몸에는 상처투성이였다고 했다.
하오펑쥔은 쑨티가 혹형을 받은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단위(역주:단체나 기관 등의 부문)에서 다른 한 여자 인민경찰과 함께 차를 운전하여 톈진시 난카이분국 구치소로 향했다. 우리 두 사람은 난카이분국 구치소(톈진시 난카이구 이위로)에 도착한 후 파룬궁수련생 쑨티가 심문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눈은 맞아서 거의 맞붙어 있을 정도였으며 당시 그를 심문하던 경찰은 국보국 610사무실 2대대 대장인 무루이리였는데 손에는 피가 묻어 있는 철근(직경이 약 1.5센치미터)이 쥐어져 있었으며 테이블 위에는 고압전기 충격기가 놓여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돌아서면서 웃옷을 벗자 나는 놀라서 멍해졌다. 그녀의 뒷잔등은 피부색을 찾아 볼 수가 없었으며 몽땅 흑자주색으로 변해 있었다. 또한 길이가 20센티미터 정도인 커다란 상처자국이 두 개나 있었으며 붉은 피가 천천히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 경찰이 길이가 반 미터되는 철근으로 그를 때렸습니다. 나는 그것을 본 순간 더는 이 일을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위즈 여사는 회상에서 말하기를, “쑨티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톈진의 어느 한 채소시장 부근의 자그마한 집에서였습니다. 당시 그와 다른 파룬궁 수련생들은 함께 진상 전단지를 제작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쑨티가 투숙하고 있는 집이 너무도 간소한 것을 보았는데 종이 여러 장과 작은 밥솥 그리고 사발 한 개가 있었습니다. 그가 먹는 것은 극히 간단했는데 채소를 먹는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왕위즈는 쑨티의 불행한 처지에 매우 괴로워했다. 그는 말하기를 중국에서 진선인 신앙을 포기하지 않거나 혹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박해를 중지할 것을 호소하며 진상을 알리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박해를 받고 있는 현상이 너무도 보편적이며 왕위즈 자신도 그 하나의 사례인데 그도 납치되어 노교소에 끌려간 적이 있었다. 그를 굴복시키기 위해 경찰들은 강제로 그의 옷을 홀딱 벗기고 그를 쇠로 만든 의자에 앉혔다. 그가 단식으로 항의하자 굵은 호스를 그의 목구멍에 밀어 넣고 강제로 음식을 투입했다. 왕위즈는 몇번이나 질식했으나 경찰들은 여전히 그를 못살게 굴었으며 또한 수련을 포기하지 않으면 죽는 길 밖에 없다고 위협했다.
누가 혈육을 갈라놓고 가정을 흩어지게 했는가?
왕위즈는 말하기를 이 한 차례의 박해는 심지어 애들마저도 빼놓지 않았다고 했다. 2000년 말부터 2001년초 사이에 왕위즈는 13~14살 밖에 안되는 쑨티의 딸 쉬즈아오를 만났다. 어느날 그는 학교에서 학과를 보던 중 갑자기 납치되었다. 그를 핍박해서 쑨티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파출소의 경찰은 아이에게도 벌을 세웠다. 반나절 그를 꼼짝 못하고 서 있게 했으며 먹을 것도 주지 않고 심지어는 아이를 때리기까지 했으나 그는 끝까지 엄마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았다. 후에 쉬즈아오는 할빈으로 도망갔다. 당시 그는 매우 얇게 옷을 입고 있었다. 왕위즈의 말에 의하면 쑨티의 딸은 할빈에서 이미 학업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하오펑쥔은 자신이 쓴 글에서 이렇게 썼다. ‘쑨티와 접촉하고 있는 기간에 쑨티는 거의 매일 딸아이의 상황을 물었으며 그는 또 우리에게 파룬궁수련생들이 하나의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데 대해 이해하기를 바랬다.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또한 그들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의 딸이 더욱 걱정되었다. 13살짜리 아이가 부모도 옆에 없고 또한 친척집(쉬즈아오의 모든 친척들이 감시를 당하고 있었음)에도 가지 못하고 있는데 어디서 먹고 자고 하는지? 내가 이 모든 것을 저지하지 못한 것이 정말로 후회되었다. 나는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해졌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왕위즈는 말했다. “쑨티의 딸아이가 겪은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만약 한 아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면 이 아이의 이름은 610의 검은 명단에 오르게 되며 일단 박해 행동이 개시되면 이 아이도 엄밀한 통제를 받게 된다. 만약 아이의 부모나 혹은 다른 친척들이 파룬궁을 수련한다면, 경찰이 그 어른들을 잡지 못할 경우 이 아이들은 꼭 고통을 받게 되거나 610 혹은 공안들이 아이를 찾아서 핍박하여 어른들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한다.”
왕위즈는 전 세계의 모든 선량한 사람들에게 쑨티 모녀를 포함한 파룬궁수련생들을 구원해줄 것을 호소했으며 박해에 참가한 사람들이 하오펑쥔처럼 박해의 진상을 간파하고 중공의 통제에서 벗어남으로써 광명을 찾기를 바란다고 했다.
문장 완성 : 2005년 06월 14일
문장 분류 : [대륙소식]
문장 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6/15/1040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