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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룽룽이 박해 받아 사망

【명혜망 2005년 6월 19일】(명혜기자 정옌[鄭岩] 종합보도)2005년 6월 16일,온갖 박해의 고통을 당한 끝에 가오룽룽(高蓉蓉 여, 37세)이 선양(沈陽)의 중국의과대학 제1부속병원 응급실에서 세상을 떠났다. 명혜망 자료의 기재에 따르면, 가오룽룽은 랴오닝(遼寧)성 선양시에서 박해로 사망한 54번째 파룬궁 수련생이다. 현재 가오룽룽의 시신은 선양시 원관툰(文官屯) 장례식장에 안치되어 있다. 사악한 무리들은 지금 가오룽룽의 가족들에게 압력을 가하여 시신을 급히 화장하고 증거를 인멸하려고 하고 있다.

*중공 귀순관리 ‘때려죽이면 자살로 간주하라’는 정책의 존재를 실증

99년 7월 파룬궁 탄압이 시작된 지 6년 동안, 명혜망은 줄곧 전력을 기울여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장쩌민 집단의 ‘명예를 더럽히 경제를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하는’ 정책을 폭로해왔다. 아울러, 이로 인해 발생한 많은 사망사례와 상해로 불구가 된 사례들을 폭로해왔다.

2005년 6월 9일,호주의 수도 캔버라에서는 가족들의 안전 때문에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전(前) 중공 국가안전부의 한 고급관리가 호주의 저명한 변호사 버나드 콜래리(Bernard Collaery)에게 위탁하여, 자신이 견증한 중국 안전부문에서 공산당과 다른 정치견해를 가진 인사들에 대한 혹형을 공개하였다.

호주통신사(AAP)의 6월 9일 보도에 따르면, 익명의 중공 공안원이 자신의 눈으로 직접 자신이 있었던 공안국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이 고문을 받다가 사망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는 경찰의 지독한 구타소리를 듣고는 가서 간섭하려 했으나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2층으로 갔다. 그는 이때 양심에 심한 가책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말했다. ‘반드시 중단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그는 혹형을 받던 파룬궁 수련생이 고문으로 치사한것을 보았다. “그는 나체 상태인 남자의 머리가 의자에서 뒤로 넘어진것을 보았으며 두 다리는 쭉 뻗어 있었다. 이미 사망한 것이 확실했다. 그는 눈앞의 일에 놀라서 멍해졌다.”

원래 시드니 주재 중국영사관에서 정치사무를 담당했던 천융린(陣用林)영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중국에서 박해받아 사망한 자료는 기밀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들은 보통 중공으로부터 ‘자살’한 것으로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방면의 자료는 일반적으로 비밀입니다.”

*전기고문으로 얼굴이 망가진 가오룽룽

파룬궁수련생 가오룽룽은, 생전에 랴오닝성 선양시 루쉰 미술대학 재무처의 직원이었다. 2003년 7월 불법(不法) 무리들에게 납치당해 룽산(龍山)노동교양원으로 끌려갔다. 2004년 5월 7일 오후 세시, 가오룽룽은 이 교양원 2대대 부대대장 탕위바오(唐玉寶), 대장(隊長) 장자오화(姜兆華)에 의해 숙직실로 불려가, 연속 6~7시간 전기충격을 당했다. 당시 가오룽룽의 얼굴은 심하게 훼손되어 얼굴에는 온통 물집이었고, 타서 눌러 붙은 피부와 머리카락이 피고름과 함께 달라붙어 있었다. 얼굴이 부어 오른 후 눈은 실눈 밖에 뜰 수 없었고 입도 아주 많이 부어 변형되었으며, 아침 저녁으로 같이 지내던 죄수들마저도 알아보지 못했다. 사진 2에서 뚜렷이 보이는 것은 물집이 가라앉은 후에 타서 눌러 붙은 상태로 어떤 곳은 딱지가 아주 두꺼웠다. 이를 통해 전기고문의 후유증이 얼마나 심했는지 볼 수 있다. 허다한 곳에 반복적으로 전기충격을 당하여 물집과 눌러 붙은 곳이 많이 중첩되었다.

2004년 5월 7일 밤, 연속 7시간 동안의 전기고문을 받은 후 가오룽룽은 2층 악경(惡警) 사무실의 창문에서 뛰어 내렸다. 병원에서는 양쪽 골반이 부러졌으며 왼쪽 다리가 심하게 골절되었으며 오른쪽 발목뼈가 부러졌다고 진단했다. 룽산 교양원에서는 밤새 그녀를 선양육군통합병원으로 보냈으며 나중에 선양시 공안병원으로 이송했다. 같은 해 5월 18일, 가족들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가오룽룽은 중국의과대학(‘의대’로 간칭)제1부속병원 5층 골2과 0533호 방으로 후송되었다. 당시 가오룽룽은 신체가 너무 허약해서 수술을 할 수도 없었다.

이전에 두 명의 여자 파룬궁 수련생인 왕슈위안(王秀媛)과 왕훙(王紅)이 룽산 노동교양원에서 고문으로 생명이 위급한 상태로 석방된 후 며칠만에 사망한 적이 있다.

*가오룽룽 병실에서 5개월간 감시당한 후에 구원

3개월 동안의 고통스러운 시달림을 겪은 후, 2004년 8월 9일부터 가오룽룽은 혈뇨(血尿)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음식물도 마실 수 없었으며 온몸은 상처투성이로 해골처럼 여위었다. 눈은 움푹 꺼져 들어갔고 눈거풀은 감을 수 없었는데 이미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의대’의 의사는 수시로 그녀의 생명이 위급하다고 하면서 재차 위독통지를 내렸다. 그러나 룽산 노동교양원의 상급주관부문인 선양시 사법국에서는 석방을 거절하였다. 위험이 있으면 ‘의과대학’에서 응급조치하고, 죽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가오룽룽이 의대 일원(一院) 0533병실에 있었던 5개월 동안, 줄곧 불법적인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경찰은 그녀가 전화를 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그녀의 모든 우편물은 전부 ‘룽산’경찰에게 차단 당했다. 0533호병실로 병문안을 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선양시 사법국장의 비준을 얻어야만 갈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0533병실은 외부 전화를 금지당했다. 가족들이 가오룽룽에게 가져다 준 모든 물품은 반드시 감시자의 검사를 통과해야 했다.

2004년 10월 5일,여러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선양시 룽산교양원 악경에게 얼굴을 훼손당한 가오룽룽을 성공리에 구출해냈으며 잔혹한 상해를 당하여 얼굴이 망가진 사진을 세상에 공포하여 사악한 세력으로 하여금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하였다.

*뤄간(羅干)이 직접 나서 보복을 조직

그러나 중국 관련 부문에서는 가오룽룽을 학대한 책임자를 추적조사하기는 커녕, 공안부에서는 가오룽룽이 위험에서 벗어난 사건을 ‘26호 대사건’으로 정하고, ‘610’ 두목 뤄간이 직접 손을 써서 보복을 실시했다. 뤄간의 지시에 따라, 랴오닝성 정법위원회, 610, 검찰원, 사법부, 공안 등의 부문에서는 서로 연합하여 악행을 저지르고 가오룽룽에 대한 소식을 봉쇄하였다. 가오룽룽을 구하는데 참여했다가 체포된 대법제자들은 모두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사법계통의 한 인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뤄간의 지시가 있었다. 이 일(가오룽룽이 전기충격을 당하여 얼굴이 망가진 일이 폭로된 일)이 국제적으로 너무 큰 영향을 끼쳐서 우리더러 ‘잘 처리하라’고 했다(사실은 바로 비밀리에 박해를 더 심하게 하라는 의미.)”

이후, 선양시 공안국, 국가안전국은 일체 수단을 이용하여 현지 파룬궁수련생들을 도청, 조사, 미행하였다. 파룬궁 남자 수련생인 펑강(馮剛)은 13일 동안 단식한 관계로 마싼자(馬三家) 감옥병원에 보내졌는데 현재 정황은 더 조사해보아야 한다.

한편 가오룽룽의 구원에 참여했던 다른 한 명의 남자 파룬궁 수련생 쑨스유(孫士友)는 납치당한 후, 선양시 공안국 테시(鐵西) 형사경찰대대에서는 그를 구타하는 동시에 음부에 전기충격을 가하면서 떠들어댔다. “다른 곳을 전기충격하면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으니까(가오룽룽이 얼굴을 훼손당한 일을 가리킴), 이번에는 볼 수 없는 곳을 충격하자!” 그러면서 큰 핀을 그의 손톱 속에 박아넣었다. 쑨스유의 장모, 아내, 처제까지 모두 이른바 ‘26호 대사건’ 때문에 장스(張士)교양원 세뇌반에 감금되었다.

*다시 납치된 가오룽룽, 쇠약해져 끝내 사망

2005년 3월 8~9일에 가오룽룽은 다시 한번 납치를 당한 후 행방불명이 되었다. 확인한 바에 의하면, 가오룽룽은 2005년 3월 6일 납치 당한 이후, 줄곧 단식으로 박해를 막아냈다. 6월 6일, 그녀는 마싼자 교양원에 의해 선양 다베이(大北) 감옥병원에서 ‘의대’로 이송되었다.

2005년 6월 10일,가오룽룽의 부모는 마싼자에 가서 딸을 석방하라고 했다. 왕 씨 성을 가진 원장(남, 신임 원장, 원래 관리과 과장)은 가오룽룽의 부모에게 가오룽룽이 이미 의대에 보내져 응급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도리어 발뺌하면서 말했다.

“애초부터 우리는 가오룽룽을 받고 싶지 않았다.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지금은 ‘상부’에서 허락하면 만나게 하고 언제 내보내라면 그때 내보내는데 우리는 ‘상부’의 말에 따른다.”

6월 12일,가오룽룽의 부모는 통지를 받은 후에 병원에 도착했다. 당시 가오룽룽은 이미 혼수상태에 처해있었으며, 온몸의 기관들은 쇠진하여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으며 피골이 상접했다. 의대의 의사는 말했다. “[가오룽룽]은 올 때부터 이미 위중했습니다.”
마싼자 교양원의 관교(管敎, 교도원)는 말했다. “가오룽룽이 막 의대에 왔을 때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목격자의 말에 의하면, 가오룽룽이 의대에서 응급조치를 받는 기간에, 내력을 알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의대 입구를 엄격하게 지켰다고 한다. 그리고 보안(保安)복과 평복을 입은 사람들이 때때로 건들거리면서 “언제나 죽는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마싼자 교양원은 좋은 약을 쓰려 하지 않았는데, 가족의 요구에 의해 영양제 용량을 약간 증가하였다.

2005년 6월 16일,가오룽룽은 의대 1원 응급실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향년 37세였다. 이는 장쩌민 및 그 악당(惡黨) 집단이 파룬궁에 진 또 하나의 피의 빚[血債]이다. 박해에 참여한 모든 책임자들은 반드시 응분의 보응을 받을 것이다.

문장완성:2005년 06월 19일

문장발표:2005년 06월 19일
문장갱신:2005년 06월 20일 03:45:52

문장분류: 중국소식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6/19/104419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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