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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성 솽청시 대법제자 탄청창이 남긴 세 아이의 상황(사진)

[명혜망 2004년 10월 10일] 헤이룽장(黑龍江)성 솽청(雙城)시 한뎬(韓甸)진 훙청(紅城)촌 대법제자 탄청창(譚成強)의 세 자녀, 장남 탄언룽(譚恩龍), 차남 탄언페이(譚恩飛), 딸 탄위슈(譚玉秀)와 아내 궈징란(郭井蘭)은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으며 집에 있는 유일한 10여무의 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탄언룽 : 16살, 지금 솽청시 중점 고등학교인 자오린(兆麟)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닌다.
탄언페이 : 13살, 지금 훙청 초등학교에 다닌다.
탄위슈 : 19살, 집이 가난하여 중퇴하였고, 지금 집에 있다.
궈징란 : 39살, 농사로 생활한다.
탄청창 : 남, 42살, 2003년 7월 19일 박해로 사망.

1995년 탄청창의 온 가족은 대법을 얻었다. 1999년 8월 탄청창은 북경으로 청원하러 간 후 불법으로 15일 감금당했으며, 같은 해 10월 또 한번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간 후 불법으로 노동교양 2년을 판결 받아, 이몐포(一面坡)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2003년 5월 18일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촌장 왕훙성(王洪升), 촌민 류훙궈(劉洪國)에게 신고 당했다. 5월 21일 아침 4시 솽청시 610들에게 제 2구치소로 납치되었다. 감금되어 있던 기간에 탄청창은 단식으로 박해를 제지하였으며, 구치소의 악경들은 그에게 강제로 야만적인 음식주입을 여러 번 가했는데, 하루에 두 번 씩 주입하였다. 어느 한번, 싼먼전(三門診)의 장씨라는 의사가 술을 많이 마시고 그에게 음식주입을 하다가 관을 폐에 끼워 넣었다. 탄청창은 당시 이미 대량적으로 피를 토했으며 옆에 있는 사람이 대야를 들고 받았는데, 반 대야나 받았다. 탄청창은 이미 반 혼절 상태였으나 그 의사는 “그는 가장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고, 또 옆에 있는 사람을 불러 찬물로 그를 깨웠다. 이때의 탄청창은 이미 숨이 곧 끊어질 듯 했다. 탄청창은 이렇게 강제적으로 7, 8번의 음식주입을 당했다. 생명이 위급해서야 병원에 보내어 검사했는데, 폐에 물이 고여 짓물렀다고 진단하였다. 이것은 완전히 악경들이 박해한 결과이다. 병원은 이미 생명이 위급한 탄청창을 치료하지 못했다. 2003년 6월 30일, 솽청시 구치소 사람들은 탄청창이 감옥에서 죽는 것이 두려워 가족에게 통지하여 돌려보냈는데, 당시 탄청창은 이미 말라서 나무막대기와 같았고 얼굴은 자색으로 변해 있었으며, 집에 있는 1개월 동안에 매일 피를 토했다. 마지막에는 아내와 세 아이를 두고 7월 19일 저녁 10시에 사망하였다.

문장완성 : 2004년 10월 10일

문장발표 : 2004년 10월 10일
문장갱신 : 2004년 10월 10일 01:03:50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0/10/862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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