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4년 10월 8월] 지린(吉林)성 안투(安圖)현 중 고등학교 교사 샤오궈빈(肖國斌)은 신념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연이어 납치당하여 박해를 받았다. 2004년 5월 26일, 악경은 샤오궈빈을 납치하고 불법으로 집을 수색하였다. 재산을 몰수하는 과정 중, 샤오궈빈은 6층 되는 집에서 떨어졌고, 박해로 사망하였다.
샤오궈빈, 남, 31살, 지린성 안투현 바이허(白河) 임업국 독립 고등학교 화학 교사이다. 2002년 초, 바이허 임업국의 당위서기 양훙빈[楊洪斌, 현재 옌볜주 임관국(林管局)으로 옮김]과 톈창제(田昌杰)가 비밀리에 세뇌반을 계획하였다. 세뇌반에서 샤오궈빈은 정당하고 날카로운 말로 대법을 실증하였는데, 그날 오전 사악한 610의 쉬원화(徐文華)와 국안과의 위칭이(于慶一)(현재 두 사람은 이미 퇴직함)가 샤오궈빈을 세뇌반에서 구치소로 납치하였고, 동시에 왕톄쑹(王鐵松)도 납치하였다(2001년 12월 옌볜 강제 노공 수용소에서 박해 받아 사망하였다. 명혜망에서 보도한 적이 있음). 샤오궈빈은 정념정행하여 구치소에서 나온 후, 대법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2000년 10월에 옌볜 강제 노도 수용소에 납치당해 불법 노교 2년을 판결 받았다. 2001년 12월, 왕톄쑹이 박해로 사망하였고, 동시에 옌볜 대법제자 60여명은 악명이 높은 지린성 주타이(九台) 인마허(飮馬河) 강제 노동 수용소로 보내졌다.
사악한 악마의 소굴에서도 샤오궈빈은 정정당당하였다. 여러 번 작은 감방에 갇히고 기간을 연장하는 등 각 종 혹형의 박해를 당하였으나 절대 사악에게 타협한 적이 없었다. 결국 경찰과 일반 노교 인원들도 모두 매우 탄복하였다. 2003년 10월 정념정행으로 정정당당하게 주타이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나왔지만 현지 610은 오서(五書)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샤오궈빈이 학교에서 수업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미행, 소란, 박해 등을 가하였다. 그가 다른 대법제자를 만나지 못하게 하였고, 민감한 날에는 박해를 가중하였다.
2004년 5월 26일(음력 4월 8일), 샤오궈빈은 길에서 얼다오(二道) 바이허 임업국 제1파출소의 악경들에게 납치당했다. 악경은 또 샤오궈빈을 데리고 불법으로 집을 수색하였다. 재산을 몰수하던 중에, 샤오궈빈이 6층짜리 집에서 떨어졌다. 병원으로 보내 응급조치를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는바, 박해로 사망하였다. 악경들은 병원을 치밀하게 감시하였으며, 영안실은 경찰이 경비를 보고 있었다. 그날 저녁 법의(法醫) 페이스장(費世江)이 시체 검증을 하였다. 샤오궈빈의 부모는 좋은 아들을 잃었다고 통곡하였고, 상황은 매우 처참하였다. 샤오궈빈의 아들은 5살이 되었는데, 이렇게 부친의 사랑을 잃었다.
후에 어떤 경찰이 다른 사람과 한담할 때 ” 만약 샤오궈빈의 가족들이 이치를 쥐고서 놓지 않고 추궁한다면, 많은 돈을 배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였다.
얼다오 바이허 임업국은 백두산의 아래, 인가가 드문 지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대법제자 3명이 박해로 사망하였는데, 그들이 샤오궈빈과 왕톄쑹, 여 대법제자 한 명이다.
샤오궈빈이 박해로 사망한 후, 바이허 임업국의 악인들은 외부에 샤오궈빈이 집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등의 허튼 소리를 하였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분명히 생명을 아끼라고 요구하는바, 자살 등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모두 현지 610 악인, 악경들이 한 나쁜 짓이 아닌가?
샤오궈빈은 옌지(延吉) 강제 노동 수용소, 주타이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박해 받던 기간에, 정념정행하여 매우 잘 하였으며,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일찍이 샤오궈빈을 접촉하였던 동수들은 샤오궈빈의 이야기를 정리해 주기 바란다.
문장완성 : 2004년 10월 7일
문장발표 : 2004년 10월 8일
문장갱신 : 2004년 10월 8일 09:13:21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10/8/861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