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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제자 차오핑이 쓰촨 더양 감옥에서 박해받아 치사한 더욱 많은 정황

[명혜망] 法輪大法(파룬따파)제자 Mr.차오핑(曹平), 40세, 쓰촨(四川) 린수이(鄰水)현 면마(棉麻)공사 회사 주택에 거주. 쓰촨 더양(德陽)감옥에서 야만적인 시달림을 받아 2003년 7월 7일 억울하게 사망.

2000년 7월 차오핑은 베이징 톈안먼에서 대법을 실증하다 붙잡혀서 린수이에 돌아와 15일 구치 당했으며 2001년 5월 28일 거처를 잃고 떠돌아다니다가 린수이에 돌아와 심득교류회에 참가하고 진상자료들을 배포하다 악인의 밀고로 경찰에 잡혔다. 경찰들은 그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으며, 경찰 자오융(趙勇)은 나무 몽둥이로 그의 전신을 사정없이 때렸는데 그때 왼쪽 발과 무릎 관절이 맞아서 부러졌다.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한 후 계속 구치소에 감금시켰다. 3개월이 지나도 상처는 제대로 낫지 않았는데 현 국보대대 대장 리지량(李吉良)과 경찰 자오융 등은 그를 심문할 때 매달아 놓고 잔인하게 몽둥이로 그의 온몸을 내리쳤다. 이번에는 그의 왼쪽 손이 맞아서 부러졌다. 차오핑은 손발이 맞아서 부러졌고 내장도 엄중하게 손상을 입었는데 늘 내장동통을 느꼈으며 신체가 몰라보게 쇠약해졌다. 2002년 5월 8일 법원에서는 불법으로 유기징역 4년을 판결했으며 2002년 6월 25일 쓰촨 더양 감옥에 감금시켰다.

더양 감옥에서 차오핑은 세뇌전향을 접수하지 않았다. 교도원들은 차오핑에게 갖가지 혹형들을 실시했는데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무더운 날씨에 그를 밖에 세워 놓고 두 손을 위로 쳐들고 서있게 했으며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뜨거운 열기 때문에 그는 늘 기절했는데 경찰들은 비위가 거슬리면 범인들을 시켜서 그를 때렸다. 뿐만 아니라 끼니도 정량보다 적게 주었다.

이렇게 장기적인 혹형을 받다보니 차오핑은 시달림을 받아 사람 꼴이 말이 아니었는데, 2003년 5월에 가족들이 면회를 가서 보니 그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었다고 한다. 2003년 6월 28일 감옥에서는 차오핑을 린수이에 있는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에 돌아온 후 집식구들은 그를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원래 체중이 78kg이던 그의 체중은 36kg밖에 안 되었으며, 전신은 뼈에 가죽만 붙어 있었다. 집에 온 후 여러 차례나 대변에 피가 섞여 나왔는데, 전신이 아프고 내장에 극도의 동통을 느꼈으며 신음소리가 그칠 줄 몰랐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2003년 7월 7일 저녁 10시경에 항문 부위에서 출혈이 끊지 않았는데 병원에 가서 구급을 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관련전화

쓰촨 더양 감옥 옥정과 : 86-838-3820225
쓰촨 광위안(廣元) 감옥 옥정과 : 86-839-3950135
린수현 공안국 국보대대
대장 리커량(李克良)86-826—3223842
경찰 자오융86-826-234599 86-826-3222737

문장완성 : 2004년 8월 10일

문장발표 : 2004년 8월 11일
문장갱신 : 2004년 8월 11일 2:43:16 PM

문장분류 : [박해진상]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8/11/814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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